〈녹색평론〉은 반드시 필요하다 [독서일기]
〈녹색평론 2023년 여름호〉
녹색평론 편집부 엮음
녹색평론사 펴냄
2021년 창간 30주년 기념호인 181호를 내고 잠정 휴간에 들어갔던 격월간 〈녹색평론〉이 계간지로 발행 형식을 바꾸어 2023년 여름호를 냈다. 휴간 도중인 2022년 한 해 동안 작고한 김종철 발행인의 유고 원고를 모은 〈발언 Ⅲ〉, 이보 모슬리의 〈민중의 이름으로-가짜 민주주의, 세계를 망쳐놓다〉, 김명수 시집 〈77편, 이 시들은〉 등이 나왔지만 단행본만으로는 급변하는 생태환경과 생태주의 실천에 필요한 목소리를 모두 담아낼 수 없다.
복간호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직접 거론한 글 세 편과 반전·평화주의에 대한 글 두 편이다. 한 잡지의 고유한 특색과 그 잡지가 가진 담론의 힘이 관점을 통해 드러나는 것이라면, 〈녹색평론〉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어떤 관점으로 접근하고 있을까.
전쟁 보도와 해설에서 핵심을 차지하는 것은 국제정치 역학과 전란을 겪고 있는 인간의 고통이다. 이런 인간중심적 관점은 전쟁의 최대 피해자가 생태라는 사실을 감춘다. 〈전쟁의 생태적 비용〉을 쓴 환경운동가 배보람은 전쟁이 어떻게 생태를 파괴하는지를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에서 만들어져 전 세계로 퍼져나간 유기합성 살충제 DDT(디클로로디페닐트리클로로에탄)를 들어 설명한다. DDT를 만든 화학회사들은 이 살충제가 옥수수와 포도 열매에 피해를 주는 알풍뎅이만 박멸한다고 선전했으나 실상은 광범위한 생태 파괴를 동반했다. 땅에 뿌려진 제초제와 살충제의 독소는 지하수와 강물로 흘러들어 땅과 바다를 오염시키고, 먹이사슬을 통해 식물-초식동물-육식동물을 거쳐 인간의 체내에 축적된다. 이 과정을 추적한 책이 레이철 카슨의 〈침묵의 봄〉이다.
화학회사들이 곤충을 ‘해충’으로 부른 것처럼, 전쟁은 적군을 해충 취급한다. 그런데 DDT가 그런 것처럼 전쟁터에서 사용되는 신무기 역시 ‘인간 해충(적군)’만 섬멸하지 않는다. “하늘에서 부려진 다이옥신이 섞인 고엽제와 핵무기나 포탄의 폭발로 인해 발생한 낙진이나 오염물질은 일정 농도 이상일 경우 인체에 즉각적으로 영향을 미쳐 사람을 죽게 하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자연에 고스란히 남아 생태계의 순환고리에 묶인다. 오염이 그 자체로 자연이 되어 토양과 지하수, 하천과 식물과 동물에 흡수되고 이들의 삶의 경로를 따라 순환하며 유전된다. 전쟁은 가장 확실하고 광범위하게 높은 수준의 오염을 ‘자연화’한다.” 군사전문가들은 과거보다 더 고도화된 신무기는 적군과 군사시설만 요격할 수 있다고 말하지만, 이런 기술적 설명은 전쟁의 진짜 목표를 호도한다. 전쟁은 인간(적군)을 대상으로 하는 것 같지만, 전쟁이 작동하는 방식은 적국의 국민과 군인이 생존하지 못하도록 생태환경 자체를 타격한다.
전쟁은 오염을 ‘자연화’한다
전쟁과 군사훈련은 기후위기에 대응하여 온실가스 배출량을 억제하려는 국제적 노력을 파괴한다. 현재 온실가스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국가는 중국·미국·인도 순인데, 전 세계의 군사활동으로 인한 탄소배출량은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5.5%를 차지한다. 전쟁이 하나의 국가라고 한다면, 전쟁은 전 세계에서 네 번째로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국가인 셈이다. 그러나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에서 각 국가가 온실가스를 얼마나 배출하고 줄일 것인지를 계산할 때 군사활동은 예외로 처리되고 있다.
지난 2월, 전쟁 발발 1년에 맞춰 우크라이나 정부는 전쟁으로 인한 환경영향 보고서를 발표했다. 우크라이나의 원시림은 러시아 군의 기지로 바뀌면서 생태계가 파괴되었고, 군사작전이 이루어진 모든 지역의 수질과 토양이 오염되었다. 농토가 못 쓰게 된 우크라이나 사정도 우려할 만한 것이지만, 더욱 커다란 문제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벌어지면서 화석과 원자력 에너지를 자연에너지로 바꾸려는 전 세계의 에너지 전환 노력이 후퇴하는 것이다. 러시아의 에너지 무기화는 화력발전소 200개와 원자력발전소 55개를 새로 건설하게 만드는 좋지 못한 신호가 되었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도중에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수시로 핵전쟁을 거론해왔고, 전황에 따라 위협은 실제로 바뀔 수도 있다. 하지만 언론인 조슈아 프랭크는 ‘우크라이나의 핵 아마겟돈 게임’이라는 글에서 러시아와 나토(미국) 사이에 핵무기를 주고받는 것도 공포스러운 전망이지만, “이 지역이 지금 마주하고 있는 가장 임박한 핵위협은 다른 데 있다”라고 말한다. 러시아 군이 점령한 자포리자에는 원자로 6기를 갖춘 유럽 최대의 원자력발전소가 위치한 데다 교전이 벌어지고 있는 근방에는 14기나 되는 원자로가 흩어져 있다. 그리고 강도 높은 관리가 필요한 체르노빌 원전도 러시아 군 수중에 있다. 러시아는 자포리자와 체르노빌 원전을 장악하고 이곳에 무기와 병력을 배치했다. “핵설비의 취약성을 방어전략으로 사용하는 것은 지금까지 우리가 보지 못한 새로운 군사전략”이라고 말하는 필자는 전 세계에 분포된 원자력 시설이 ‘방사능 폭탄’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평화적 시설이라고 알려진 원자력발전소는 핵탄두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핵전쟁과 똑같은 비극을 만들어낼 수 있다.
샌프란시스코대학 정치·국제학 교수인 스티븐 준스는 ‘전쟁에 대한 풀뿌리의 대안’에서 전쟁을 막는 확실한 대안은 비폭력이라고 말한다. 지난 35년 동안 독재에서 민주체제로 이행한 70개 나라를 조사한 결과 아래로부터의 무장투쟁으로 개혁이 이루어진 경우는 소수에 불과했고, 4분의 3의 국가에서 민주주의로 가는 변화는 비폭력 수단을 사용한 민주적 시민·사회 조직들로부터 비롯되었다고 한다. 또 세계 대다수 국가의 군대는 강력한 군사적 침공에 대해 거의 속수무책이었던 반면, “비협력이나 방해 활동 같은 시민적 저항이야말로 강한 이웃 나라의 침략에 맞서는 보다 현실적인 방법”이라는 사실을 여러 역사적 사례가 입증하고 있다. 1999년 나토의 코소보 개입에 대해선 아직까지 찬반이 분분하지만, 필자는 미국과 나토의 인도주의적 군사개입이 상황을 더 악화시켰으며 서방이 현지의 비폭력 세력을 더 지원했더라면 전쟁을 피할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녹색평론〉은 생태주의 담론을 생산하고 규합하는 수원이자 생태주의에 관심을 가진 초보자를 환대하는 샘터로 반드시 필요하다. 정기간행물(잡지)을 구입한 독자 가운데 통째 완독하지 못해서 죄책감이나 스트레스를 느끼다가 절독을 하는 경우도 있는데, 주간지에서 계간지에 이르기까지 잡지를 가장 잘 읽는 방법은 목차를 펼쳐 이번 호에서 자신이 꼭 읽고 싶은 필자나 글을 서넛 골라, 거기에 집중하는 것이다. 그래도 본전은 빠진다.
장정일 (소설가)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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