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질이 사실 칼 갈고 있는 거 아냐? 너한테 복수하려고” [반려인의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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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식물이 인간과 똑같은 방식으로 기억하거나 감정을 가진다고 보기는 어렵다.
우리는 인간의 몸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식물에 감정이나 기억이 없다고 단정하기보다 식물에 대한 실험을 토대로 기억과 감정 자체를 다시 생각해야 할지도 모른다.
이때 우리 집에 있는 바질은 인간의 영혼과 식물의 몸을 지닌 존재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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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에서 한 동영상을 봤다. 공학도들이 모여서 특이한 발명품들을 만드는 ‘긱블’이라는 채널인데, 식물이 로봇팔을 장착하고 칼을 들고 있는 섬네일이 너무 강렬해서 재생할 수밖에 없었다. 영상은 식물의 기억력과 전기반응에 관한 실험이었다. 실험 결과는 놀라웠다. 영상에 등장한 식물은 자신을 쓰다듬은 사람과 잎을 뜯은 사람을 기억하는 듯이 다르게 반응했다. 식물이 생성하는 전기신호가 로봇팔로 이어지도록 장치를 만들고 그 로봇팔에 칼을 쥐여주자, 식물은 잎을 뜯은 사람을 향해 칼을 마구 휘둘렀다. 복수라도 하듯이.
물론 식물이 인간과 똑같은 방식으로 기억하거나 감정을 가진다고 보기는 어렵다. 둘은 물리적인 구조, 즉 몸이 다르기 때문이다. 다만 이 실험이 제기하는 것은 어쩌면 기억이나 감정과 같은 것이, 특정한 구조를 지닌 몸, 이를테면 인간과 같은 동물의 몸만이 아니라 다른 몸에서도 작용할지 모른다는 의문이다. 우리는 인간의 몸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식물에 감정이나 기억이 없다고 단정하기보다 식물에 대한 실험을 토대로 기억과 감정 자체를 다시 생각해야 할지도 모른다.
이 영상을 함께 본 이후 우리 가족은 식물을 대할 때 묘하게 어색해졌다. “바질들이 사실 칼 갈고 있는 거 아냐? 너한테 복수하려고.” 우리는 요리하는 데 필요할 때마다 바질과 로즈마리를 뜯었다. 뜯는 건 주로 내 몫이었다. 어쩌면 바질과 로즈마리는 나를 기억하고 주변 식물들에 전기신호를 보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저놈 조심하라고. 이렇게 생각하니까 괜히 바질을 뜯으러 갈 때마다 한 번씩 주춤하게 되었다. 뜯기는 뜯되 이전보다 조심스럽게 뜯는다고 해야 하나. 이 녀석들이 우리를 인식하고 우리를 기억하고 어쩌면 우리의 행동에 따라 짜증이나 화가 날지도 모르는 존재들이라는 생각이 들자, 우리는 식물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이 일은 나에게 인간의 몸과 영혼에 대한 관점의 차이를 상기하게 했다.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한 에스파냐인들은 원주민이 자신들과 같은 인간인지 알기 위해 종교· 윤리·양심을 지녔는지 확인하고자 했다. 이는 영혼을 상징했다. 같은 인간이 아니라는 판단은 학살을 부추겼을 테다. 그들에게 인간이란 ‘인간의 영혼’을 지닌 존재다. 반면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백인이 정령인지 인간인지 확인하기 위해 백인들을 물에 빠뜨렸다. 시체가 물 위로 떠오른다면 일단 정령은 아닐 것이다. 이들에게 인간은 ‘인간의 몸’을 지닌 존재다.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관점에서는 재규어, 바질, 거미도 원래는 인간이었다. 인간의 영혼은 다른 몸에 스며들어 다른 형태로 나타난다. 이때 우리 집에 있는 바질은 인간의 영혼과 식물의 몸을 지닌 존재라고 볼 수 있다. 바질도 기억과 감정을 지니고 있지만 그건 식물의 몸에 맞게 변형되어 나타난다. 그런 의미에서 로봇팔 실험은 식물의 몸을 바꾸어 식물이 감각한 것에 다른 방식으로 반응할 수 있도록 돕는, 그렇게 식물에 깃든 ‘인간의 영혼’에 닿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식물은 잎과 열매, 뿌리의 모양과 색깔 같은 요소들을 통해 인간을 포함한 동물과 소통해왔다. 과학기술의 발전을 통해 우리는 어쩌면 식물의 효율적인 재배 방법보다, 식물의 신호에 감응하는 조심스러운 소통 방식을 발명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안희제 (작가)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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