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내서 보증금 내주라는 정부…집값 하락 원치 않는단 시그널 준 것”
[주간경향] 첫 번째 산도 제대로 못 넘었는데 더욱 높은 두 번째 산이 나타났다. 한국 임대차 계약의 한 형태 ‘전세’가 야기하는 문제가 끝이 보이지 않는다. ‘전세사기’로 인한 사회문제가 완전히 봉합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이번에는 ‘역전세’ 문제가 불거졌다. 기존 전세계약 때보다 전셋값이 하락해 발생하는 ‘역전세’는 한국은행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4월 기준, 전체 전세 가구의 52.4%에 해당하는 문제다. 새로운 임차인을 구해도 기존 보증금을 돌려주기 어렵게 된 임대인은 은행 대출을 늘려 대응하고 있다. 올해 초부터 5월까지만 약 3조원 규모다.
문제가 심각해지자 정부는 대책 마련에 나섰다. 보증금 반환 목적에 한해 DSR(총부채원리금상황비율) 40% 규제 대신 DTI(총부채상환비율) 60%를 적용해 대출 규모를 확대하겠다는 내용이다. 이미 한국의 높은 가계부채가 문제가 되는 상황에서 다시 빚을 내서 대응하라는 것이 정부 대책의 핵심인 셈이다. ‘왜 집을 싸게 팔아서 대응하면 안 되는지’, ‘전셋값이 계속 하락하면 대출금 회수는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 등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
주간경향은 이에 대한 해석을 들어보기 위해 지난 7월 4일 임재만 세종대 부동산학과 교수를 경향신문사에서 만났다. 임 교수는 “정부, 집주인 모두 집값이 상승할 때까지 버티기 전략에 들어간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역전세 문제가 불거진 이후, 가장 많이 언급된 대책이 ‘대출 완화’다. DSR이든 DTI든 본질은 ‘빚내서 빚을 막으라’ 아닌가.
“순수 경제 논리로만 보면, 임대인은 집값이 상승할 것이라는 데 베팅했다고 본다. 반대로, 집값이 하락할 수 있다는 ‘위험’은 껴안게 된다. 임차인은 집값이 더 이상 오르지 않는다는 데 베팅을 한 셈이다. 보증금, 월세 형태로 비용을 지불하는 대신 집을 소유하는 데 따르는 리스크를 줄였다. 임대차도 하나의 사업이라고 보면 특수한 몇몇 경우를 제외한다면 대출을 더 내더라도 부채비율이 100~200% 선일 것이다. 사실 다른 사업과 비교해볼 때 경제논리에서 크게 벗어났다고 볼 수는 없는 수준이다.”
-그럼에도 전세 시장이 문제가 되고 있는 이유는 뭐라고 보는가.
“만약 집을 살 때 필요한 돈을 금융기관에서 빌렸다고 가정해보자. 만기에 돈을 갚지 못하면 집은 무자비하게 경매로 넘어간다. 순수한 채권-채무 관계다. 이번에는 똑같이 집을 사는데 필요한 돈을 전세를 끼고 사는 방향으로 결정했다고 해보자. 이때 돈을 빌려주는 것은 금융기관보다 상대적으로 힘이 없는 임차인이다. 심지어 임대차로 발생한 부채는 사인 간에 체결된 약 2년 만기의 ‘무이자’ 대출이다. 그런데 똑같이 만기 때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할 상황이 되면, 이번에는 경매가 아닌 ‘버티기 전략’을 쓴다. ‘전셋값이 떨어지는데 난들 어쩌겠느냐. 당신이 계속 살아라’는 것이다. 금융기관처럼 경매 등의 청산절차에 익숙지 않고, 보증금을 완전히 회수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임차인은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결국 세입자를 볼모로 잡고 손해 보지 않는 투자를 누군가는 하고 있는 셈이다.”
-결국 정부가 개입해 해결해 주리라고 믿고 있다는 얘기인가.
“순수한 채권-채무의 원리로만 해결하라고 하면 집이 경매로 넘어가고, 집값이 떨어질 것이다. 그런데 정부가 세입자의 주거 불안정을 해결해 주겠다는 명분으로 개입을 시작했다. 이미 정부는 집값 하락을 원치 않는다는 시그널을 시장에 줬다. 기대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실제로 지난 7월 4일 정부가 ‘2023년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을 발표했다. 핵심은 역전세 우려가 심해지니 보증금을 돌려줄 수 없는 임대인에 한해 한시적으로 DTI(총부채상환비율) 60%를 적용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DSR을 무분별하게 푸는 건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말한 지 하루 만이었다. 집주인이 대출받아 보증금을 상환한다는 측면에서 볼 때 해당 대책이 DSR 완화와 다른 점이 있는 건가.
“실질적으로는 같다. 상세한 내막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국토부와 기재부의 입장이 달라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지금까지 발표된 정책을 보면 정부는 집값 하락을 방어하려는 듯하다. 반면 원희룡 장관은 ‘부동산 가격은 장기 하향 안정이 좀더 지속적으로 갈 필요가 있다고 본다’고 말한다. 규제를 풀면서 말은 대세 상승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한다. 정부가 DSR 대신 DTI를 적용했다는 내용보다 중요한 건 결국 집주인이 대출을 내서 세입자의 보증금을 돌려준다는 점이다. 집을 급매로라도 팔아서 해결하는 대신 시간을 벌게 된 셈이다. 이 정책은 전셋값이 더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집을 팔지 않고 버틸 수 있는 시간을 줬다면 특혜 아닌가.
“그래서 대출의 형태가 중요하다고 여러 차례 지적했었다. 임대인에게 주택담보대출을 해주면 은행이 선순위, 새 임차인은 후순위가 되는데 정부 대책은 임대인에게 보증금반환보증을 의무적으로 가입하게 해서 새 임차인의 불안을 해소하겠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전세가 불안한 시기에 보증을 한다고 해서 새 임차인이 선순위채권이 있는 집에 들어가고 싶어 할지 모르겠다. 또 설사 계약이 체결된다고 해도 전세가가 더 떨어지거나 깡통전세 문제가 발생하면 결국 정부가 다 책임을 지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왜 임대인이 집을 팔면 안 되나. 급매로 가격을 낮춰도 팔리지 않을 정도로 수요가 얼어붙은 상황인가.
“올해 주택 거래량이 작년보다 늘었다. 특히 1분기 거래량은 급매가 많았다는 분석인데, 이 말은 급매로 가격을 낮춰 내놓으면 집이 팔린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집주인들이 이 방법을 선택하지 않는 이유는 결국 ‘우리는 손해 보기 싫다. 정부가 시간 좀 벌어달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 정책도 이들이 희망을 품게끔 만든다. 정부가 가능하면 집값이 폭락하지 않아야 한다는 시그널을 주는데 기다려보지 않을 이유가 있겠는가. 임대인 입장에서는 집값이 반등하면 수익을 낼 수 있다. 이자 내고 버티는 투자를 이어가 보는 거다.”
-집값 하락이 멈췄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전셋값은 더 떨어질 수 있다는데, 집값만 반등하는 건 가능한 시나리오인가.
“집값과 전셋값이 항상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지는 않는다. 동떨어져서 움직일 때도 있다. 실제로 한국사회는 집값 상승이 멈추거나 오히려 하락하는데 전셋값은 그대로거나 오히려 오르는 시기를 거쳤다. 이 시기 갭 투자가 본격화됐다. 이를 야기한 것은 결국 금리 문제다. 전세대출을 저금리로 받을 수 있다 보니 매매수요가 전세수요에 머물러 버린 것이다. 지금 우려가 쏟아지는 역전세 현상도 이 문제에서 시작한다. 2021년 하반기 가장 전셋값이 높았던 시기에 계약한 사람들이 2023년 하반기에 만기를 맞는다. 역전세의 건수가 많다기보다 당시 전세가와 현재의 전세가의 가격 차이가 크다는 점이 근본적인 문제다. 이 차이를 해결하지 못하면 집은 경매로 넘어갈 것이고, 연쇄적으로 집값이 추가 하락할 수밖에 없다. 정부 대책은 한시적으로 대출을 늘려 문제를 막겠다는 방향이다. 잘 생각해보면 이는 보증금 미반환 문제를 해결해 주겠다는 내용이다. 즉 시장에서 집값이 하락하는 흐름을 근본적으로 막을 수 있는 대책은 아니라는 의미다. 그 결과가 혼란을 조기에 수습하는 것이 될지,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 사태를 초래할지는 좀더 지켜봐야 한다.”
-정부는 왜 집값 하락을 부담스러워할까.
“집값이 오를 때보다 집값이 떨어질 때 더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부동산 시장의 이해관계자들은 집값이 올라야 이득을 본다. 임대인은 말할 것도 없고, 건설사들도 부동산 시장이 활황이어야 집을 짓고 돈을 번다. 금융기관도 마찬가지다. 대출 없이 집 사는 사람이 거의 없다. 금융기관 입장에서는 주택가격이 폭락해 매매가 줄고, 대출 수요도 줄어들기보다 집값이 올라서 대출이 활발히 이뤄져야 수익을 본다. 무주택자도 마찬가지다. 한국인들은 집을 주거보다 투자상품으로 보는 시각이 강하다. 즉 집을 통해 부자가 됐다는 경험담이 워낙 강렬하다 보니 너도나도 집값이 오를 때 올라타서 돈을 벌겠다는 기대를 갖는다. 집값 상승에 반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문제는 집값 상승이 기대치처럼 영원히 계속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집값이 큰폭으로 올랐다가 조정을 받는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더 큰 손해를 보는 쪽은 애꿎은 임차인들이었다.”
-정부는 전세제도 자체를 보완해 문제를 잡겠다고 한다.
“현 상황에서 개혁을 시작하기란 정말 어려운 문제다. 그래서 ‘전세가 없어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는 얘기가 나오는 거다. 전세를 없애려면 전제 조건이 있다. 전세가 사라지는 과정에서 집값이 떨어지면서 월세 부담이 줄어드는 과정이 수반돼야 한다. 동시에 집값 변동폭을 줄여줄 임대차 3법과 같은 제어장치가 필요하다. 집값 변동폭만 줄여도 차익을 노리는 투기자본의 유입을 방어할 수 있다. 이들을 건전한 생산자본으로 돌리면 소득성장도 이끌 수 있어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진다. 그렇다면 집값, 월세가 어느 정도 수준으로 떨어져야 하느냐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소득의 30% 이상을 월세로 내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과연 집값이 떨어질까. 역대 정부 다 실패하지 않았나.
“고도성장도 어려운 상황에서 소득이 올라 천문학적인 집값을 감당할 수 있게 한다는 것보다는 현실적인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집값이 떨어지는 방법은 의외로 단순할 수 있다. 도저히 소득으로 집값을 감당할 수 없는 시기에 수요자들이 (집을 사지 않고도) 편안하게 거주할 수 있도록 해주면 된다. 임차인의 지위를 강화해주고 장기로 살 수 있는 공공임대주택 등을 늘려서 주거안정을 도모하는 방식이다. 그러면 자연히 집값은 내려간다. 역대 정부에서 집값을 잡겠다며 다양한 정책을 내놨지만 실상 제대로 해본 적이 없다고 생각한다. 정부마다 겉으로는 집값 안정을 내세웠지만, 실질은 모두 ‘집값은 떨어지지 않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했다. 집값이 오를 때 집권했느냐, 집값이 떨어질 때 집권했느냐 정도의 차이밖에 없다. 하겠다고 말하고 실제로는 안 한 정부, 대놓고 안 하겠다고 말하고 실제로도 안 한 정부가 추진한 정책에 뚜렷한 차별성이 있었겠는가.”
김찬호 기자 flyclos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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