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회 금지는 ‘최후의 수단’인데…남발하는 경찰

정희완 기자 2023. 7. 9.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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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퇴근 시간대 집회 등 잇단 금지 통고
법원 “다른 수단 충분히 존재” 집회 허용
경찰, 전장연 활동 노골적 깎아내리기도

[주간경향] 경찰이 최근 서울 도심에서 퇴근 시간대 집회·시위·행진에 잇따라 금지 통고를 내리고 있다. 교통혼잡이 발생할 우려가 있어 집시법과 그 시행령 등에 따라 금지 조치를 했다는 게 경찰 입장이다.

법원은 그러나 경찰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집회를 허용한 것이다. 경찰이 집회를 전면 금지하기에 앞서 조치할 수 있는 다른 수단이 충분히 존재한다고 법원은 판단했다. 실제 ‘집회의 금지’는 조건을 붙여 집회를 허용하는 등의 다른 수단을 모두 사용한 뒤에야 고려할 수 있는 ‘최후의 수단’이라는 게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의 일관된 견해다. 이에 따라 경찰이 무리하게 금지 통고를 남발한다는 비판에 힘이 실리고 있다.

또 경찰은 법원의 심문 과정에서 집회 주최 측의 그간 활동을 노골적으로 폄훼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런 활동을 하게 된 사회적 배경 등 맥락을 제거한 채 ‘불법 전력’과 ‘시민 불편’만을 강조해 금지 통고의 정당성을 주장한 것이다.

정부와 여당이 지난 5월 집회 강경 대응책을 논의한 자리에서 나온 ‘출퇴근 시간대’ 및 ‘불법 전력 단체’ 등의 집회·시위 금지 방안이 그대로 현장에 반영된 모습이다.

경찰, 17년 전 사건까지 꺼내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는 지난 6월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대로에서 마포대교를 지나는 행진을 하겠다고 6월 12일에 경찰에 신고했다. ‘장애등급제 진짜 폐지’와 ‘장애인 권리예산 반영’ 등의 필요성을 알리려는 목적이다. 그러나 경찰은 금지를 통고했다. 신고한 행진 시간이 오후 4~8시인데, “퇴근 시간과 겹쳐 심각한 교통 불편을 초래할 수 있다”는 이유를 들었다.

지난 6월 29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이룸센터 앞에서 열린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장애등급제 폐지 1박2일 전동행진’에서 참가자들이 행진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에 전장연 측은 법원에 금지통고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6부(재판장 이주영)는 행진 하루 전인 지난 6월 28일 “행진을 허용하더라도 공공복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우려가 없다”라며 전장연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2개 차로를 이용하는 등의 조건을 달아 행진을 허용했다.

경찰은 법원의 심문 과정에서 행진이 퇴근 시간대에 이뤄진다는 점을 줄곧 강조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교통질서 유지를 위한 조건을 붙여 제한할 수 있는 등 전면적 금지 외에도 교통소통 장애를 해소할 수단이 있다”라며 “전면적 금지는 이런 수단으로도 교통소통 장애를 막을 수 없다는 사정이 명백하게 예상될 때 한해 인정될 수 있다”고 판시했다.

경찰은 법원에 제출한 답변서에서 전장연이 과거 집회와 관련한 ‘불법 전력’이 있다는 점을 서술하는 데 절반 이상의 분량을 할애했다. 이 같은 전력 때문에 이번 행진도 신고 범위를 벗어날 우려가 크다고 주장한 것이다. 경찰은 그러면서 17년 전 사건까지 꺼냈다. 2006년 장애인들이 한강대교를 6시간 동안 기어서 건넜다는 언론보도 내용을 ‘무단으로 도로나 교차로를 점거한 전력’의 사례 가운데 하나로 제시했다. 경찰은 그러나 장애인들이 당시 ‘활동지원 서비스’ 제도화를 촉구하기 위해서 이런 행동을 했다는 배경은 답변서에 담지 않았다. 활동지원은 장애인에게 생존권과 직결된 사안이다. 경찰은 전장연의 최근 ‘지하철 타기 행동’ 등으로 시민들이 불편을 겪었다는 언론보도 내용을 발췌하면서도 ‘왜 지하철을 탔는지’ 등의 맥락은 뺐다.

특히 경찰은 전장연의 이런 활동을 노골적으로 깎아내리며 공격적인 모습을 보였다. “자신의 이익과 언론보도 등 이슈화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불법행위든 아니든 다수 시민이 불편을 겪든 말든 불사하는 모습을 보인다”는 대목이 대표적이다. 경찰의 이런 태도는 지난 5월 윤석열 대통령과 정부 및 여당이 밝힌 집회 ‘강경 대응’ 기조에서 비롯된 것으로 풀이된다. 랑희 공권력감시대응팀 활동가는 “경찰의 목적은 전장연이 시민들에게 불편을 끼치려는 등 악의적인 의도를 가진 나쁜 집단이라는 점을 내세워서 판사를 설득하려는 것”이라며 “집회를 금지하고 싶지만 별다른 근거가 없기 때문에 이런 행태를 보이는 것 같다”고 짚었다.

하지만 재판부는 경찰 주장을 모두 배척했다. 재판부는 “경찰은 행진이 신고의 범위를 넘어서는 불법 행진으로 이어질 우려가 있기 때문에 금지돼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경찰이 제출한 소명자료만으로는 이와 같이 단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어 “행진이 신고 내용과 달리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행진 자체를 금지하는 것은 헌법상 보장된 집회의 자유를 원천 봉쇄하는 것으로, 허용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전장연을 대리한 박한희 변호사(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는 “퇴근 시간대라는 이유로 집회를 못 한다면, 도심 어디에서도 모든 집회는 출퇴근 시간에 이루어질 수 없다”라며 “법원이 경찰의 자의적 조치에 제한을 걸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밝혔다.

법원의 잇따른 제동

유사한 사례는 또 있다. 지난 6월 민주노총은 7월 총파업 기간에 개최할 집회와 행진 등 36건을 경찰에 신고했다. 선순위 신고자가 있다는 이유로 금지된 집회 등 8건을 제외하고, 28건은 부분 금지 통고를 받았다. 경찰이 ‘오전 10시 이전’과 ‘오후 5시 이후’ 집회 및 행진은 일률적으로 금지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출퇴근 시간대 원활한 교통소통이 이유였다. 이에 민주노총은 우선 7월 4·7·11·14일 퇴근 시간대 촛불문화제에 금지 통고한 부분을 두고 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냈다.

민주노총 소속 조합원들이 지난 7월 5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서 열린 총파업 결의대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 김창길 기자

이번에도 경찰의 주장은 먹히지 않았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부(재판장 강동혁)는 지난 7월 4일 “집회가 퇴근 시간대에 이뤄진다고 해서 집회 인근 장소에 막대한 교통소통의 장애를 초래할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신고된 집회장소인 서울파이낸스센터 앞 세종대로가 왕복 8차선으로 규모가 크기 때문에 퇴근 시간대 교통량을 상당 부분 소화할 수 있다고 봤다.

또 주최 측이 하위 2개 차로만을 이용하는 점, 집회 참여 인원에 따라 집회장소를 탄력적으로 조정하며 교통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는 점 등도 고려했다. 경찰이 집회 외의 다른 장소에서 차량을 통제하고 우회도로를 안내하는 방법으로 교통을 분산할 수 있다고 재판부는 판단했다. 재판부는 참가인원이 500명 미만이면 인도만, 1000명 미만이면 인도와 1개 차로를 이용하라는 조건을 붙였다.

경찰이 지난해부터 대통령의 ‘관저=집무실’이라는 자체 해석에 근거해 용산 대통령실 앞 집회에 금지를 통고했지만, 법원이 잇따라 집회를 허용하는 패턴이 다시 반복되는 양상이다.

경찰은 최근 일부 야간집회에도 금지를 통고했다. ‘비정규직 이제그만 공동투쟁’ 등은 7월 7일 오후부터 1박2일 노숙문화제를 연다고 경찰에 신고했다. 그러나 경찰은 오후 11시부터 이튿날 7시까지는 집회를 금지했다. “인근 사유지·공용재산을 장기간 무단 점유하거나 음주·소란·노상 방뇨 등 행위를 할 수 있고 안전사고 발생이 우려된다”는 게 제한 사유다. 이에 공동투쟁 등은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하면서 의견 표명을 촉구했다. 헌법재판소는 2009년 9월 야간에 ‘옥외집회’를 금지한 집시법 조항 내용을 두고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바 있다.

경찰은 앞서 지난 5월과 6월 이들 단체가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연 두 차례 문화제를 집회로 규정하고 강제 해산시켜 논란을 빚었다.

“시민들끼리 싸움 붙인 꼴”

대통령실은 지난 6월 13일부터 7월 3일까지 ‘집회·시위의 요건 및 제재 강화’를 ‘국민참여 토론’에 부쳤다. 추천 12만9416건, 비추천 5만3288건으로 집계됐다. 총 13만1283건의 의견이 달렸다. 대통령실은 이런 결과를 분석한 뒤 국민제안심사위원회 논의를 거쳐 관련 부처에 권고안을 전달할 계획이다. 집회·시위의 소음 단속 기준을 강화하고, 교통소통을 이유로 집회를 제한할 수 있는 ‘주요 도로’를 확대하는 방안 등을 권고안에 담을 것으로 보인다.

‘비정규직 이제그만 공동투쟁’ 등이 지난 6월 9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문화제를 개최했지만 경찰이 이를 미신고 집회로 규정하고 강제 해산하고 있다. / 연합뉴스

집회의 자유라는 기본권의 제재 여부를 심층 토론 없이 간단한 설문조사로 결정하려는 것이 적절한지를 두고선 비판이 제기된다. 정부가 헌법상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노력을 회피한 채 시민들을 갈라친다는 지적도 나온다. 랑희 활동가는 “국가가 시민들끼리 싸우게 만들고 있다. ‘집회 때문에 불편하죠? 저 집회하는 사람들 때문이에요’라며 갈등을 부추기고 있는 것”이라며 “집회는 당연히 불편함을 초래한다. 이런 점을 설득해 기본권을 보장하는 게 국가의 역할인데, 반대로 기본권을 축소·제한하기 위해 시민들을 동원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국민의힘은 야간집회 금지를 위한 입법도 추진하고 있다. 지난 6월 박성민 국민의힘 의원은 오후 11시부터 오전 7시까지 집회·시위를 예외 없이 금지하는 내용의 집시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2020년 6월 발의한 개정안도 국회에 계류 중이다. 이는 자정부터 오전 6시까지의 집회·시위를 금지한다.

정희완 기자 rose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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