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반 갈등' 보호출산제 타협점 있을까…"최후의 수단이어야"
복지부 "보호출산제는 오히려 아동 알권리 더 보장…미룰 수 없어"
(서울=연합뉴스) 오진송 기자 = 정부가 출생통보제의 보완책으로 추진하고 있는 '보호출산제'가 친부모에 대한 아동의 알권리를 침해하고 양육 포기를 부추긴다는 비판에 직면하면서 찬반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찬반 양측의 우려를 모두 담아 산모와 아이의 권리를 최대한 지키면서 부작용도 최소화할 절충안을 찾는 것이 입법과정에서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일단 도입'보다 여러 선택지 있어야…위기 임산부 지원 우선"
의료기관이 아동의 출생 사실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을 통해 지방자치단체에 통보하게 하는 출생통보제가 지난달 국회를 통과해 내년 6월 시행을 앞두고 있다.
정부는 출생통보제 도입 이후 신원 노출을 꺼리는 산모가 병원 밖에서 출산하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며 익명으로 출산하면 정부가 대신 출생신고를 하는 보호출산제를 함께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산모가 익명으로 출산할 수밖에 없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기보다는, 아이 양육을 포기하는 손쉬운 선택을 하도록 국가가 유도한다는 비판을 제기한다.
또 보호출산제가 도입되면 친부모 동의 없이는 아이가 평생 자신을 낳은 부모를 알 수 없어, 아이를 뿌리 없는 사람으로 성장하게 하고 알권리를 침해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신필식 입양연대회의 사무국장은 "(위기에 처한) 산모와 아이에게 여러 선택지가 주어지고, 그 안에서 해답을 찾을 수 없을 때 제한적으로 보호출산제를 적용해야 하는데, 보호출산제가 필요할 수 있으니 일단 도입하자는 것은 정부에서 '어려운 상황이 생기면 익명으로 출산하세요'라고 안내하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이어 "(아이를 낳아 키우기 어려운 상황으로 인해) 어머니와 아이의 이익이 충돌할 때 정부는 산모의 권리가 침해받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 하고, 더 약자인 아이가 자신의 출생에 대해 알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여러 조치를 하고 난 뒤에 보호출산제를 이용해야 한다"며 "영아 유기와 출생 미등록은 단순히 하나의 법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생후 3개월에 덴마크로 입양된 해외입양인 한분영 덴마크한국인진상규명그룹(DKRG) 공동설립자는 "한국은 1991년에 유엔아동권리협약을 비준했기 때문에 보호출산제를 도입하는 것은 협약 제7∼8조를 위반하는 것"이라며 "위기 상황에 처한 여성과 가족을 지원할 대책이 우선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유엔아동권리협약 제7조1은 '아동은 출생 후 즉시 등록돼야 하며, 가능한 한 자기 부모를 알고 부모에 의해 양육 받을 권리를 가진다', 제8조1은 '당사국은 국적, 성명 및 가족관계를 포함해 법률에 의해 인정된 신분을 보존할 수 있는 아동의 권리를 존중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친부모 알권리 보장 가능…위기 임산부 지원도 병행"
보호출산제에 찬성하는 쪽은 이 제도가 아동의 알권리를 완전히 침해하는 것은 아니라고 반박한다.
김지영 전국입양가족연대 사무국장은 "국회에 발의된 김미애 의원의 보호출산제 법안은 독일식 제도를 가지고 왔기 때문에 자녀가 의료상의 문제 등으로 친부모의 정보가 필요할 때 출생정보를 열람할 수 있게 해놨다"며 "최소한의 알권리가 보장될 수 있도록 길을 터놓은 것"이라고 말했다.
복지부가 지난달 내놓은 보호출산법안 수정 대안에 따르면, 보호출산제를 통해 태어난 사람이 성인이 되면 아동권리보장원장에게 친부모의 인적 사항 등 출생정보가 담긴 '보호출산증서' 공개를 청구할 수 있다. 친부모가 정보 공개에 동의하지 않으면 인적 사항을 제외한 정보만 공개되지만, 의료상 목적 등 사유가 있을 경우엔 전부 공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신뢰출산제'라고 불리는 독일식 제도는 아동이 만 16세가 되면 연방가족청에 보관된 자신의 출신증명서 열람 또는 복사를 요청할 권리를 갖게 되고, 연방가족청이 이를 거부하면 가정법원에 결정을 신청할 수 있다. 법적으로 다퉈볼 여지가 있다는 점에서 의료상 목적 등 특별한 이유가 있지 않은 이상 친부모의 인적 사항 열람이 차단되는 우리나라 법안과 차이가 있다.
아동의 알권리도 중요하지만, 출산 사실을 알리고 싶어 하지 않는 여성의 상황도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박리현 한국가온한부모복지협회 대표는 "위기 임산부 중에는 강간이나 근친상간 등으로 임신한 여성도 있다. 이들에게는 과거의 기억이 상처가 될 수 있다"며 "위기에 처한 여성에 대한 지원을 강화해야 하는 것은 찬성이나 반대 측 모두 동의한다. 다만, 정부의 여러 지원 확대에도 불구하고 (출생신고를 꺼리는) 여성과 그의 아기를 보호하기 위한 최후의 수단으로 보호출산제가 필요하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보호출산제는 이전보다 아동의 알권리를 더 잘 보장하는 법안이라는 입장이다.
김지연 복지부 아동복지정책과장은 "베이비박스는 익명으로 아동을 인도하다 보니 아동의 알권리가 보장되지 않았다. 반면 보호출산제는 국가가 아이의 출생과 관련된 기록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독일처럼 자녀가 친부모의 인적 사항 공개 여부에 대해 법적으로 다퉈 볼 수 있는 여지가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는 "법원의 판결을 통해 친부모의 동의 없이도 정보를 열람할 수 있게 한다면 이 제도의 아주 본질적인 내용이 침해될 수 있다. 인적사항 공개에 대한 동의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위기임산부에 대한 지원이 우선돼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서는 "4월 관계부처 합동으로 한부모 지원 대책을 발표하는 등 정부가 지원 대책을 계속 강화해 나가고 있다"며 "(위기임산부에 대한 지원과 보호출산제 중) 어느 것이 우선이라고 할 수 없다. 출생통보제가 도입되면 (아동 유기와 학대) 위기가 늘어날 수 있기 때문에 보호출산제를 더는 미룰 수 없다"고 말했다.
dind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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