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바이벌은 꼭 매워야 하나…도전장 내미는 '순한 맛' 오디션
(서울=연합뉴스) 오명언 기자 = 극한 상황에서 드러나는 이기주의, 순간적으로 분위기를 얼어붙게 만드는 욕설과 눈물, 절묘한 순간에 포착되는 찡그린 표정. 아이돌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 적어도 한 번쯤은 봤을 법한 장면이다.
갈등을 부각하고, 출연자별 캐릭터를 설정해 극적인 상황을 연출하는 편집은 이목을 끌기 위해 방송사들이 택하는 전략 중 하나다.
자극적이라는 비난은 받을지언정, 금세 몰입하게 만들고, 욕하면서도 계속 보게 한다.
9일 방송가에 따르면 '서바이벌은 자극적이어야 성공한다'는 이 같은 추세에 도전장을 내민 '순한 맛' 서바이벌 프로그램들이 주목받고 있다.
지난달 30일 첫선을 보인 JTBC 여자 아이돌 경연 프로그램 '알유넥스트'(R U Next)를 대표적인 사례로 꼽을 수 있다.
하이브와 CJ ENM의 합작 레이블 빌리프랩의 차세대 걸그룹 멤버를 결정하는 프로그램으로 총 7개의 라운드 미션을 거쳐 참가자의 데뷔 여부가 결정된다.
서바이벌 프로그램이지만 '인물 다큐멘터리'를 표방한 것이 특징이다.
연출을 맡은 김선형 PD는 방송에 앞서 진행된 제작발표회에서 "엄마의 마음으로 만든 프로그램"이라고 강조했다.
김 PD는 "다른 오디션 프로그램들에는 참가자들이 워낙 많다 보니 개인의 매력에 공평하게 주목하지 못했던 것 같다"며 "'알유넥스트'는 출연진 한 명 한 명이 소중하게 보였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인물 다큐멘터리처럼 만들었다"고 말했다.
물론 '알유넥스트'에서도 출연자 사이에 팽팽한 신경전이 이어질 때도 있다. 하지만 이를 갈등 요소로 과도하게 부각하지 않는다. 출연진이 경쟁심을 드러낼 때면 MC가 "서바이벌이라면 이런 멘트가 있어야 한다"고 해설해 자연스럽게 넘어간다.
비슷한 시기에 방송을 시작한 엠넷의 '퀸덤퍼즐'과 확연히 대비된다.
지난달 13일 막을 올린 '퀸덤퍼즐'은 전현직 걸그룹 멤버 또는 여성 아티스트를 퍼즐처럼 맞춰 새로운 조합의 걸그룹을 선보이는 프로그램이다.
진행 방식 때문에 본방송 전부터 잡음이 일었다.
'퀸덤퍼즐'은 선공개 영상에서 제작진이 출연진을 1~4군으로 구분했다가 아이돌 상품화 및 팬덤 가르기를 부추겼다는 비판을 받았다.
연출을 맡은 윤신혜 책임프로듀서(CP)는 제작발표회에서 이에 대해 "엠넷의 서바이벌이 원래 매운맛으로 유명하지 않으냐"며 "방송 초반의 예방 주사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갈등을 부각하는 편집이 피로도를 높인다는 평가도 있다.
사소한 동작을 타 참가자에 대한 불편한 감정을 드러내는 것처럼 편집해 몇몇 출연자를 '빌런' 역할로 활용하고, 감정싸움을 유도하는 진행 방식에 대해 소셜미디어(SNS)에는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느냐', '화제 몰이를 위한 자극적 편집이 불편하다'는 시청자 반응이 나온다.
JTBC는 올해 초에도 '착한 오디션'을 표방하는 남자 아이돌 경연 프로그램을 선보였다.
무명 가수들이 대중 앞에 설 수 있는 무대를 마련했던 예능 '싱어게인' 제작진은 아이돌 경연 프로그램 '피크타임'을 선보였다.
'피크타임'은 무대 퀄리티에 집중해 오디션의 본질에 충실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각 팀의 배경과 특징을 충분히 설명하면서도 시청자의 관심이 이들이 보여주는 무대 외적인 부분에 지나치게 쏠리지 않도록 연출했다.
K팝이 세계 각국에서 주목받는 상황 속에서 서바이벌 프로그램들은 앞으로도 점차 '순한 맛'을 추구하게 될 것이라고 관측하는 전문가도 있다.
김성수 대중문화평론가는 "해외에서는 미성년자를 극한의 경쟁으로 몰아넣는 것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크다"며 "해외 K팝 팬들을 염두에 두고 만드는 아이돌 오디션이 점차 '착하게' 변해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자극적인 연출이 잠깐의 화제를 끌 수는 있겠지만, 결국 오디션 프로그램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숨은 스타를 발굴해서 키운다는 재미를 줄 수 있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coup@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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