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달 기지 필수품은 ‘햇빛 반사하는 전신주’…왜?
길이 20m 기둥에 거울 2개 장착
그림자 들어간 장비에 햇빛 반사
어둠 속에서도 태양광 발전 가능
아르테미스 계획 추진에 순풍 예상
#가까운 미래, 달 표면에 건설된 기지는 먼 행성으로 로켓을 발사하기 위한 ‘우주 공항’으로 이용된다.
화성으로 가려는 미국 육군 로이 맥브라이드 소령(브래드 피트 분) 일행은 월면차에 탑승해 달 뒤편에 마련된 발사장으로 떠난다. 파란 지구를 감상하며 몇 분을 달리던 중, 일행 주변으로 정체를 알 수 없는 월면차가 접근한다. 바로 ‘우주 해적’이다. 달에는 영토나 주권이 없기 때문에 생긴 무리다.
해적들은 맥브라이드 소령 일행에게 레이저 총을 난사한다. 물불 안 가리는 공격에 결국 소령이 탄 차량은 절벽 아래로 떨어진다.
차량은 낮은 달 중력 때문에 서서히 월면으로 낙하해 파손되진 않았다. 그런데 절벽 아래에는 지형 탓에 생긴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 있다. 다행히 로켓 발사장은 멀지 않았다. 맥브라이드 소령 일행은 어둠을 뚫고 목적지에 도착한다. 미국 영화 <애드 아스트라>의 한 장면이다.
현재 미국은 한국과 영국, 일본 등 27개국과 함께 달에 사람이 항상 머무는 기지를 짓기 위한 ‘아르테미스 계획’을 추진 중이다. 그 일환으로 2025년 사람 2명을 달에 착륙시킬 예정이다. <애드 아스트라> 속 풍경이 수십년 안에 현실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달 기지를 만들려면 <애드 아스트라>에서처럼 짙은 그림자에 들어가더라도 햇빛으로 전기를 만들 방법이 필요하다. 로봇이나 탐사 차량을 그림자 속에서 장기간 운영하려면 배터리만으로는 불안해서다.
최근 미국의 한 기업이 그런 고민을 해결할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고 밝혔다. 달 표면에 대형 거울을 설치해 월면의 어둠을 향해 햇빛을 반사하는 장치를 만들려는 것이다.
거울 달아 햇빛 ‘정밀 발사’
미국 우주기업 맥사는 최근 달 표면의 어둠을 향해 햇빛을 거울로 쏴주는 신개념 장비를 개발하고 있다고 밝혔다.
맥사가 ‘라이트 벤더’라는 이름을 붙인 이 장비의 겉모습은 평범하다. 다리가 4개 달린 식탁 같은 받침대에 길이 20m짜리 기둥이 박혀 있다. 전신주와 비슷한 모양새다. 이 기둥에 원형 거울 2개가 꼬치처럼 꿰어 있다.
거울 2개 가운데 아래쪽에 자리 잡은 첫 번째 거울은 월면의 양지에 도달한 햇빛을 반사한다. 반사한 햇빛은 바로 위에 설치된 두 번째 거울을 향한다. 두 번째 거울은 월면의 어둠 속에서 운영되는 기지나 탐사 차량의 태양광 전지판을 겨냥해 레이저 광선처럼 햇빛을 쏜다.
첫 번째 거울은 햇빛의 ‘수집’, 두 번째 거울은 ‘전달’에 특화된 셈이다. 맥사는 공식 자료를 통해 “라이트 벤더의 개념은 단순하다”며 “어둠 속 태양광 전지판을 향해 햇빛을 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거울의 움직임은 사람이 아닌 컴퓨터가 자동 통제한다.
인류의 현재 기술 수준을 감안할 때 달에서 전력을 생산하기 위한 가장 좋은 재료는 햇빛인데, 이를 달 어디에서나 쪼일 수 있게 하는 방법이다.
달 남극 기지 운영 ‘열쇠’
맥사가 라이트 벤더를 만든 건 아르테미스 계획 때문이다. 아르테미스 계획의 핵심 목표는 달에 상주 기지를 지어 광물자원을 채굴하거나 먼 행성으로 가는 로켓을 위한 우주 공항을 운영하는 것이다.
이런 상주 기지를 유지하려면 사람이 사는 데 필수적인 자원, 즉 ‘물’을 달에서 현장 조달하는 게 유리하다. 로켓으로 지구에서 물을 일일이 공수하려면 막대한 운송비가 든다.
이 때문에 미국은 기지를 달의 남극에 지을 생각이다. 달 남극에는 영구적으로 그림자가 지는, 즉 칠흑 같은 어둠이 지배하는 특수 지형이 있다. 주먹으로 때린 밀가룩 반죽처럼 움푹 들어간 충돌구 안쪽이 대표적이다. 이곳에는 야구모자 챙 밑에 항상 그림자가 지는 것처럼 햇빛이 들지 않는다. 온도가 낮다는 뜻인데, 이 때문에 물이 얼음 상태로 보존돼 있다. 이 얼음을 사용하면 물 조달 문제가 해결된다.
그런데 달 남극에 기지를 지으면 그림자 때문에 태양광 발전이 불가능하다. 기지와 장비를 운영하기 위한 동력을 얻을 수가 없다. 거울을 이용해 어둠 속으로 햇빛을 끌어오는 라이트 벤더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맥사는 보고 있다.
맥사는 라이트 벤더를 지구에서 2025년 시연할 예정이다. 미국은 2025년 아르테미스 3호를 발사해 월면에 사람 2명을 착륙시키고, 2030년을 전후해 달에서 기지를 운영할 예정이다. 달 기지가 본격적으로 운영될 때 라이트 벤더가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라이트 벤더 조립은 로봇이 맡는다. 인간이 달에서 공구를 들고 조립하는 일은 위험해서다. 맥사는 “로봇을 통한 조립이 성공한다면 미래 우주 로봇공학의 발전에도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정호 기자 r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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