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달 기지 필수품은 ‘햇빛 반사하는 전신주’…왜?

이정호 기자 2023. 7. 9.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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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기업, 달에 세울 ‘라이트 벤더’ 개발
길이 20m 기둥에 거울 2개 장착
그림자 들어간 장비에 햇빛 반사
어둠 속에서도 태양광 발전 가능
아르테미스 계획 추진에 순풍 예상
미국 기업 맥사가 개발 중인 ‘라이트 벤더’가 월면에서 작동하는 상상도. 양지에서 햇빛을 반사해 어두운 그림자 속으로 전달한다. 이렇게 하면 그림자 속에서도 태양광 발전을 해 기지와 각종 장비를 가동할 수 있다. 맥사 제공

#가까운 미래, 달 표면에 건설된 기지는 먼 행성으로 로켓을 발사하기 위한 ‘우주 공항’으로 이용된다.

화성으로 가려는 미국 육군 로이 맥브라이드 소령(브래드 피트 분) 일행은 월면차에 탑승해 달 뒤편에 마련된 발사장으로 떠난다. 파란 지구를 감상하며 몇 분을 달리던 중, 일행 주변으로 정체를 알 수 없는 월면차가 접근한다. 바로 ‘우주 해적’이다. 달에는 영토나 주권이 없기 때문에 생긴 무리다.

해적들은 맥브라이드 소령 일행에게 레이저 총을 난사한다. 물불 안 가리는 공격에 결국 소령이 탄 차량은 절벽 아래로 떨어진다.

차량은 낮은 달 중력 때문에 서서히 월면으로 낙하해 파손되진 않았다. 그런데 절벽 아래에는 지형 탓에 생긴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 있다. 다행히 로켓 발사장은 멀지 않았다. 맥브라이드 소령 일행은 어둠을 뚫고 목적지에 도착한다. 미국 영화 <애드 아스트라>의 한 장면이다.

현재 미국은 한국과 영국, 일본 등 27개국과 함께 달에 사람이 항상 머무는 기지를 짓기 위한 ‘아르테미스 계획’을 추진 중이다. 그 일환으로 2025년 사람 2명을 달에 착륙시킬 예정이다. <애드 아스트라> 속 풍경이 수십년 안에 현실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달 기지를 만들려면 <애드 아스트라>에서처럼 짙은 그림자에 들어가더라도 햇빛으로 전기를 만들 방법이 필요하다. 로봇이나 탐사 차량을 그림자 속에서 장기간 운영하려면 배터리만으로는 불안해서다.

최근 미국의 한 기업이 그런 고민을 해결할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고 밝혔다. 달 표면에 대형 거울을 설치해 월면의 어둠을 향해 햇빛을 반사하는 장치를 만들려는 것이다.

거울 달아 햇빛 ‘정밀 발사’

미국 우주기업 맥사는 최근 달 표면의 어둠을 향해 햇빛을 거울로 쏴주는 신개념 장비를 개발하고 있다고 밝혔다.

맥사가 ‘라이트 벤더’라는 이름을 붙인 이 장비의 겉모습은 평범하다. 다리가 4개 달린 식탁 같은 받침대에 길이 20m짜리 기둥이 박혀 있다. 전신주와 비슷한 모양새다. 이 기둥에 원형 거울 2개가 꼬치처럼 꿰어 있다.

거울 2개 가운데 아래쪽에 자리 잡은 첫 번째 거울은 월면의 양지에 도달한 햇빛을 반사한다. 반사한 햇빛은 바로 위에 설치된 두 번째 거울을 향한다. 두 번째 거울은 월면의 어둠 속에서 운영되는 기지나 탐사 차량의 태양광 전지판을 겨냥해 레이저 광선처럼 햇빛을 쏜다.

첫 번째 거울은 햇빛의 ‘수집’, 두 번째 거울은 ‘전달’에 특화된 셈이다. 맥사는 공식 자료를 통해 “라이트 벤더의 개념은 단순하다”며 “어둠 속 태양광 전지판을 향해 햇빛을 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거울의 움직임은 사람이 아닌 컴퓨터가 자동 통제한다.

인류의 현재 기술 수준을 감안할 때 달에서 전력을 생산하기 위한 가장 좋은 재료는 햇빛인데, 이를 달 어디에서나 쪼일 수 있게 하는 방법이다.

라이트 벤더를 로봇을 이용해 실험실에서 시범적으로 조립하는 모습. 라이트 벤더 제조사인 맥사는 향후 월면에서 라이트 벤더를 설치할 때에도 사고 예방을 위해 인간이 아닌 로봇을 동원해 조립을 할 예정이다. 맥사 제공
달 남극 기지 운영 ‘열쇠’

맥사가 라이트 벤더를 만든 건 아르테미스 계획 때문이다. 아르테미스 계획의 핵심 목표는 달에 상주 기지를 지어 광물자원을 채굴하거나 먼 행성으로 가는 로켓을 위한 우주 공항을 운영하는 것이다.

이런 상주 기지를 유지하려면 사람이 사는 데 필수적인 자원, 즉 ‘물’을 달에서 현장 조달하는 게 유리하다. 로켓으로 지구에서 물을 일일이 공수하려면 막대한 운송비가 든다.

이 때문에 미국은 기지를 달의 남극에 지을 생각이다. 달 남극에는 영구적으로 그림자가 지는, 즉 칠흑 같은 어둠이 지배하는 특수 지형이 있다. 주먹으로 때린 밀가룩 반죽처럼 움푹 들어간 충돌구 안쪽이 대표적이다. 이곳에는 야구모자 챙 밑에 항상 그림자가 지는 것처럼 햇빛이 들지 않는다. 온도가 낮다는 뜻인데, 이 때문에 물이 얼음 상태로 보존돼 있다. 이 얼음을 사용하면 물 조달 문제가 해결된다.

그런데 달 남극에 기지를 지으면 그림자 때문에 태양광 발전이 불가능하다. 기지와 장비를 운영하기 위한 동력을 얻을 수가 없다. 거울을 이용해 어둠 속으로 햇빛을 끌어오는 라이트 벤더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맥사는 보고 있다.

맥사는 라이트 벤더를 지구에서 2025년 시연할 예정이다. 미국은 2025년 아르테미스 3호를 발사해 월면에 사람 2명을 착륙시키고, 2030년을 전후해 달에서 기지를 운영할 예정이다. 달 기지가 본격적으로 운영될 때 라이트 벤더가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라이트 벤더 조립은 로봇이 맡는다. 인간이 달에서 공구를 들고 조립하는 일은 위험해서다. 맥사는 “로봇을 통한 조립이 성공한다면 미래 우주 로봇공학의 발전에도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정호 기자 r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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