끔찍한 '영아 유기' 이렇게 막는다…그런데 안 낳고, 안 키울 권리는?

안정준 기자, 김지영 기자, 김성은 기자 2023. 7. 9.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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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내 아기, 안 키울 권리(下)
[편집자주] 인간은 유일하게 혼자서 출산할 수 없는 동물이다. 하지만 1년 뒤부턴 출생통보제에 따라 병원에서 아기를 낳으면 산모의 이름이 남는다. 그럼 원치 않은 아이를 낳아야 하는 사람들은 어떨까. 이름을 안 남기는 보호출산제 도입 법안이 있지만, 자칫 영아 유기를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인간의 자유와 책임, 생명까지 아우르는 딜레마다.
1년뒤 출생통보제, 정보 시스템 만든다…그래도 핵심은 '보호출산제'

부모의 고의 출생 신고 누락으로 '유령 아동'이 생기는 비극을 막기 위한 '출생통보제'가 국회 문턱을 넘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출생 정보전달 시스템 구축 등 제반 준비에 착수해 1년뒤 시행되는 출생통보제에 대비한다. 시행 1년까지의 공백을 막기 위해 미혼모 등 위기 임산부에 대한 지원 강화도 추진한다. 무엇보다 출생통보제 시행에 따라 신원 노출을 꺼리는 임신부가 병원 밖에서 출산하는 부작용 방지를 위한 '보호출산제' 도입도 정부 차원에서 최대한 노력한다는 방침이다.

여야는 지난 달 30일 국회 본회의에서 출생통보제 도입을 위한 '가족관계 등록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당초 이 법안은 무난한 통과가 예상됐다. 여야는 '수원 냉장고 영아 시신' 사건 등 출생 신고가 안된 영아가 살해·유기되는 비극이 연이어 발생하자 출생통보제 법제화에 속도를 낸 상태였다.

출생통보제는 의료기관에서 의료진이 진료기록부에 출생 정보를 적으면 의료기관장이 14일 이내에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에 통보하고, 심평원이 지자체에 이를 등록하는 제도다. 부모가 한 달 넘게 출생 신고를 하지 않으면 법원의 허가를 받아 지자체가 직권으로 출생 신고를 하게 된다.

국회 문턱을 넘은 출생통보제는 국무회의에서 공포되고 1년 뒤 시행된다. 아직 1년의 시간이 남은 만큼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는 제도 안착을 위한 사전 준비작업에 나설 예정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출생 정보 전송 시스템 구축 등 준비 작업에 들어갈 것"이라며 "제도가 안착하는 한편, 의료시스템에 부담을 주지 않는 방안도 모색할 것"이라고 말했다. 시스템 구축을 위해선 현재 병원에서 사용하는 차트 표준화 작업 등이 선행돼야 해 시간이 필요하다는게 의료계 전언이다.

출생통보제 시행까지 1년이 남은 만큼 제도상 공백을 막기위한 대책 마련에도 나설 예정이다. 보건복지부는 최근 행정안전부 등 관계 부처와 전문가로 구성된 '출생 미등록 아동 보호체계 개선추진단'(추진단)을 구성하고 가장 근본적이고 중요한 대안으로 미혼모 등 위기 임산부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기로 했다. 어려움에 처한 임산부가 임신, 출산, 양육 전 과정에서 정부로부터 도움을 충분히 받을 수 있도록 꼼꼼히 살피고 주거, 소득 등 생활 지원뿐만 아니라 심리지원 방안도 모색한다는 계획이다. 아울러 미혼모가 자녀의 양육을 포기하지 않고 원가정에서 아동이 자라날 수 있도록 사회적 인식 개선도 추진할 예정이다.

임시신생아번호 아동 전수조사도 추진했다. 감사원은 지난 3월부터 보건복지부 대상으로 실시한 정기감사 과정에서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의료기관 출산 기록은 있으나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미신고 영유아가 2236명에 달한다고 확인했다. 이에 보건복지부는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아동에 대한 전국적인 전수 조사를 실시했다. 조사 결과는 곧 발표될 예정이다.

무엇보다 출생통보제를 보완하기 위한 보호출산제의 국회 논의 과정도 지켜볼 예정이다. 보호출산제는 일반적인 출산이 어려운 임산부를 위해 익명 출산을 보장하는 제도다. 그동안 의료계에서는 출생통보제만 시행할 경우 신원 노출을 꺼리는 산모들이 병원 밖에서 출산해 오히려 사산아가 늘어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유럽 일부 국가에서는 익명 출산이 가능하게 하면서도 출생 정보가 담긴 '비밀 파일'을 기록으로 남겨 두 제도의 허점을 보완해 운영 중이다.

하지만 보호출산제는 산모의 양육 포기를 부추기고 부모와 아이의 관계를 비밀로 만들수 있다는 지적도 나와 정치권에선 아직 찬반 논란이 있는 상태다. 보호출산제 관련 특별법안은 아직 상임위원회에 계류돼 있다. 당정은 1년 뒤 출생통보제 시행 전에 보호출산제 합의가 이뤄져 사전에 두 제도에 관한 준비가 진행되야 한다는 시각이다.

이기일 보건복지부 1차관은 "보호출산제가 조속히 입법될 수 있도록 정부에서 최대한 노력을 다 하겠다"며 "1년 후 보호출산제와 출생통보제가 함께 시행될 수 있도록 예산을 미리 확보하고 관련 부처와도 긴밀히 협력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여성의 마지막 선택권 '낙태'...범죄가 아닌데, 아직 범죄인 이유

끔찍한 영아 유기 사건들을 계기로 국회를 통과한 '출생통보제'가 1년 뒤 시행되는 가운데 그 부작용을 막을 '보호출산제' 도입 논의가 한창이다. 여기서 근본적인 의문이 제기된다. 여성이 출산을 원치 않는 경우에도 사회가 이를 강요하는 것이 옳으냐는 것이다. 일각에서 '인공임신중절(낙태)죄'에 대한 논의를 본격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이 나온 지 4년이 넘었지만 국회는 아직까지 대체 입법의 책임을 방기하고 있다. 헌재가 형법 제269조 '자기낙태죄'와 제270조 '의사 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결정을 내린 건 2019년 4월. 이에 따라 특수상황에서의 낙태를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모자보건법' 개정이 필요해졌다. 2020년 정부안은 임신 14주 이내일 경우 본인의사에 따라 낙태를 결정할 수 있도록 했다. 이후 15~24주 이내는 사회적경제적 사유가 있는 경우 상담과 24시간 숙려기간을 거치도록 조건을 달았다. 하지만 이 정부안은 아직도 국회 상임위원회에서 잠자고 있다.

7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모자보건법 개정안 중 임신 중절, 낙태와 관련된 의원 발의 법안은 총 7개다. 더불어민주당 권인숙·남인순·박주민 의원, 정의당 이은주 의원 안은 사실상 낙태죄 전면 폐지를 골자로 하고 있다. 기존 모자보건법에서 '태아가 모체 밖에서는 생명을 유지할 수 없는 시기'라는 허용 범위 조항을 삭제해 사실상 임신 전 기간의 낙태를 허용하자는 취지다. 진선미 민주당 의원 안은 낙태 허용 경우 중 '우생학적 또는 유전적 정신장애나 신체 장애' 문구에서 우생학적을 빼 낙태 허용 기준과 범위를 명확히 하도록 했다.

조해진 국민의힘 의원이 발의한 법안은 낙태 제한 주수를 임신 10주로 정하고 예외적으로 임신의 지속이 태아와 여성의 건강에 중대한 위험이 되는 경우 임신 20주의 범위 내에서 인공임신중절시술을 인정하도록 했다. 서정숙 국민의힘 의원 안은 주수 제한 등은 명시하지 않았지만 기존 모자보건법에 규정돼 있던 낙태 허용요건을 형법에 편입시키고 낙태 전 사전 상담의 절차를 세밀하게 규정해 낙태가 최소화 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다.

입법 공백 속에서 아이를 원치 않는 여성들의 낙태는 매년 최소 2만 건씩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보건복지부의 의뢰로 2021년 11월 19일에서 12월 6일까지 만 15∼49세 여성 8500명을 온라인 설문 방식으로 조사한 결과 지난 2020년 1년간 시행된 낙태는 3만 2063건으로 추정됐다. 2005년 조사에서 34만 2433건에 달했던 것과 비교하면 15년 사이 10분의 1 이하 수준으로 급감했지만 2018년 2만 3175건, 2019년 2만 6985건으로 집계됐다.

낙태 문제를 놓고 여성계, 아동계, 종교계와 의학계까지 첨예한 대립이 이어지고 있다. 낙태 허용 기준을 두고도 심장박동수가 감지되는 시기인 임신 6주와 10주, 14주 (정부안), 24주, 전면 허용 등 의견이 갈린다.

홍순철 성산생명윤리연구소장(고대안암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태아의 생명을 우선하며 "지난해 미국 연방대법원이 여성의 자기 결정권에 '낙태할 권리는 포함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뱃 속 아기의 생명을 엄마가 결정할수 없다는 판결인데 너무 당연한 것"이라며 "우리나라에서 현재 태아, 영아, 신생아에 대한 생명 존중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고 이는 전세계적인 생명 윤리 흐름을 거스르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사회경제적 이유로 낙태를 허용하도록 하는 게 아니라 산모와 아이에 대한 직접 지원금 등을 늘리는 방향을 고민해야 한다"며 "헌재의 결정이 아쉽고 정부안 역시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나영 '성적 권리와 재상산 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 대표는 "형법상 낙태죄의 실효가 사라진 상황인만큼 낙태의 '비범죄화'를 전제로 어떻게 권리를 보장하고 보호할 수 있느냐는 논의로 확장돼야 한다"며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가의 논의에 국한되면 결국 처벌 대상이 생기고 보건 의료 환경에도 제약이 생겨 취약 여성은 선택지가 없어진다"고 지적했다.

이어 "비범죄화를 유지하면서 실질적인 지원 방향과 국가 책임이 담긴 기본법 제정이 필요하다"며 "국가, 지방자치단체가 중장기 계획 세우고 실행할 수 있는 체계를 명시하는 게 기본법에 담겨야 한다"고 말했다. 또 "임신중지가 개별적 사건이 성교육, 성 평등 의식, 임신, 출산과 연계될 수 있도록 교육과 지원이 새로운 법체계에 담길 필요가 있다"고 했다.

"아기 낳으러 왔지만, 제 이름은 비밀이에요"...이게 되는 나라들

미국, 독일, 프랑스는 우리나라에 앞서 보호출산제를 도입한 대표적인 국가들이다. 미국은 영아피난제도(Infant Safe Haven Law), 프랑스는 익명출산제, 독일은 신뢰출산제(또는 비밀출산제) 등 저마다 다른 명칭으로 불리지만 임신과 출산에서 위기 상황을 경험하는 임산부의 건강과 안전을 보호하고 영아의 생명을 보장하기 위함이란 제도의 취지는 같다.

■ 생모 알 권리 인정 여부는 제각각

미국에서 처음으로 '영아피난제'가 도입된 것은 1999년 텍사스주가 '아기피난소법'을 제정하면서다. 당시 미국 텍사스주에서 영유아 유기 및 사망 사건이 잇따라 발생한 것이 원인이 됐다. 2008년 이후 알래스카, 네브라스카주가 아기피난소법을 채용하면서 미국은 50개주 모두가 영아피난제를 갖게 됐다.

주마다 내용이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미국의 영아피난제는 생후 72시간 또는 50일 이내의 유아를 정해진 '피난소에'에 유기하는 행위에 대한 형·민사상 법적책임 면책, 산모의 익명성 보장을 주된 내용으로 한다.

프랑스는 1941년부터 익명출산제를 도입했다. 당시에는 의회식 토론이 없었기에 정확한 입법 이유 등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군의 아이를 임신한 프랑스 여성들의 두려움 및 스트레스를 덜어주기 위한 조치로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프랑스는 익명출산제를 통해 연간(1990년대~2000년대 초반 기준) 약 600명의 아이들이 태어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프랑스에서는 생모가 본인 신상에 관한 기록을 남기지않고 영아를 남겨둔 채 의료기관을 떠날 수 있고 출산 전에 익명출산을 요구하면 입원비, 출산비를 지원받는다. 영아는 생모의 입양 승낙이 있다면 아동보호시설로 옮겨져 국가 후견을 받게 되며 2개월 경과시 입양 절차를 밟게 된다. 이 2개월 동안 생모는 입양 승낙 의사를 철회, 다시 아이를 데려가 키울 수 있다.

독일에서는 2013년 비밀출산법이 제정돼 2014년 5월부터 시행됐다. 그 전까지 법적 근거없이 베이박스가 설치·운영되고 익명출산이 이뤄지는 문제 해결을 위함이었다. 임신한 여성이 의료기관에서 익명으로 아이를 출산할 수 있단 점에서 익명출산과 같아 보이지만 생모 신상에 관한 정보 기록이 선택사항이 아닌, 반드시 남겨야 한단 점이 차이점이다. 즉, 자녀의 출생등록부에는 생모의 '가명'이 기록되나 이와 별도로 생모의 신상 정보(성명, 주소 등)가 기록·밀봉돼 국가기관에 보관된다.

추후 자녀의 친생부모를 알 권리가 실현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신뢰출산제의 가장 큰 특징이다. 독일에서 신뢰출산으로 태어난 자녀는 16세가 되면 본인의 출산에 관한 기록 열람권을 요청할 수 있다. 단 생모가 이 열람을 반대할 때는 가정법원의 판단에 따르게 된다.

이에 비해 프랑스는 법원이 아닌 생모의 의지에 따른다. 신상 공개를 원치 않는 생모의 익명성을 영구히 보장하는 것이다. 프랑스에서는 익명출산을 하더라도 의료기관 등이 산모를 대상으로 아기가 자신의 출생과 관련된 사실을 제대로 아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 설명, 산모가 이 설명을 듣고 만일 기록을 남기기로 결정한 경우 산모가 자신과 친부의 유전병 등 건강상태, 출생 당시 여건 등을 국가기관에 남기도록 돼 있다.

■ 獨, 상담 후 24% 스스로 양육 선택

선진국들은 산모가 보호출산제 활용을 선택하기 전에 충분한 상담이 이뤄지도록 하고, 양육 대책에 대해서도 충분한 고민의 시간을 준다. 출산과 양육을 사회의 공통 책임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독일에서 신뢰출산제도 도입 이후 2014년 5월부터 2018년 12월까지 독일 임신상담소에서 신뢰출산에 관해 상담을 받은 임신여성의 수는 2249명이다. 상담 목적은 단지 신뢰출산에 대한 안내의 수준을 넘어 곤경에 처한 임신 여성들에게 필요한 정보와 지원을 제공, 스스로 합리적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데 있다. 실제 신뢰출산에 관한 상담을 받은 임신여성들 중 24.2%가 자녀를 스스로 양육하는 삶을 선택했다.

독일엔 '임신갈등상태의 회피 및 극복에 관한 법률'(임신갈등법)이 있어 임신한 여성들은 주에서 인가받은 상담소에서 익명성이 보장되는 상담을 받을 수 있다. 임신갈등법에 따르면 임신여성들은 익명 상담은 물론 비대명 방식의 정보제공이 가능한 인터넷 사이트, 24시간 이용이 가능한 중앙 핫라인 이용이 가능하다. 임신 여성들이 스스로 해법을 찾거나 입양 제도를 활용하게 도와주고, 마지막으로 신뢰출산제에 의한 해결이 이뤄지도록 하려는 취지다.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연구원은 지난 6일 '보호출산제, 논쟁의 지점과 숙고할 사안'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원하지 않는 임신으로 인해 고통을 겪는 자, 임신이 축복이 아닌 비난과 고립의 이유가 된 자, 출산 이후의 삶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으로 합리적인 판단이 어려운 자는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존재할 것"이라며 "곤경에 빠진 산모와 태아를 위해 위기심신 상담 시스템을 활성화하고 상담과정을 통해 출산, 그리고 양육에 대한 두려움과 걱정을 떨치고 미래를 계획할 수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이어 "이러한 상담이 진행되기 위해서는 실제 한 부모로서 자녀를 책임지고 안정적으로 키워낼 수 있는 여러 지원 제도가 마련돼야 하는 것은 물론"이라고 강조했다.

안정준 기자 7up@mt.co.kr 김지영 기자 kjyou@mt.co.kr 김성은 기자 gttsw@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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