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코 인사이드] 돌아온 부천의 여제(女帝)

손동환 2023. 7. 9.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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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바스켓코리아 웹진 2023년 6월호에 게재됐다. 인터뷰는 5월 9일 오후 7시에 진행됐다.(바스켓코리아 웹진 구매 링크)

한 에이스가 있었다. 하지만 그 에이스 앞에는 기분 나쁜 수식어구가 붙었다. ‘팀을 이기게 하지 못하는 에이스’였다. 마음고생을 한 에이스는 그 팀을 떠났다. 새로운 팀에서 두 개의 우승 반지를 획득했다. 두 번째 우승 후, 고민 끝에 친정 팀으로 돌아왔다. 마지막 선수 인생을 친정 팀과 함께 하게 됐다. 돌아온 부천의 여제(女帝), 김정은(부천 하나원큐)의 이야기다.

INTRO
김정은의 지금을 이야기하기 전에, 김정은의 예전을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 그것도 꽤 예전 이야기.
김정은의 데뷔 팀은 하나원큐의 전신인 신세계. 하지만 신세계 농구단은 해체됐고, 하나원큐가 해체된 신세계 농구단을 인수했다. 김정은은 그 후에도 하나원큐를 상징하는 선수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하나원큐와 김정은은 아름다운 드라마를 쓰지 못했다. 하나원큐는 창단 후 지금까지 플레이오프에 못 갈 정도로 하위권을 전전했고, 김정은은 그 곳에서 ‘고독한 에이스’라는 명칭만 얻었다. 힘이 점점 빠졌다.
너무 많은 힘을 쓴 탓일까? 김정은의 무릎에 이상이 생겼다. FA(자유계약) 신분이 됐지만, 하나원큐는 김정은을 잡지 않았다. 김정은은 상처를 안은 채 하나원큐를 떠났다.

하나원큐의 프랜차이즈 스타였습니다. 그렇지만 하나원큐에서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는데요.
하나원큐가 농구단을 어렵게 인수했고, (김)지윤 언니(전 인천 신한은행 코치)와 (허)윤자 언니(현 부천 하나원큐 코치) 등 베테랑 선수들이 팀을 나가게 됐어요. 팀이 저 위주로 리빌딩을 시작했거든요. 그러다가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 강이슬(청주 KB스타즈)과 김이슬(은퇴) 등 어린 선수들이 팀의 핵심이 됐어요. 지속적인 리빌딩 때문에, 다들 어려웠어요.
지금도 허윤자 코치님이랑 이야기하는 게 “그 멤버가 그대로 있었다면, 플레이오프는 갔을 건데...”라는 이야기를 해요. 하지만 제가 부족한 게 가장 컸어요. 다른 팀 멤버가 워낙 좋은 것도 있었고요.(웃음)
2016~2017시즌 16경기 밖에 나서지 못했습니다. 평균 출전 시간은 18분 27초였고요.
지나간 일이기는 하지만, 혼자 해내야 하는 일들이 그때는 많았어요. 무엇보다 농구단을 인수해준 하나원큐에 보답하고 싶어서, 성적을 잘 내야 한다는 스트레스가 컸어요. 그런 스트레스 때문에, 몸도 마음도 힘들었죠. 결국 부상이 쌓였고, 2016~2017시즌 또한 부상 때문에 많이 허덕였어요.
FA가 됐지만, 하나원큐는 김정은 선수를 찾지 않았습니다. 서운했을 것 같은데요.
예전 일을 자꾸 꺼내는 게 조금 그래요.(웃음) 조심스러운 것도 있고요. 그렇지만 그때만 해도, 팀이 저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어요. 많은 나이(31살)도 아니었고, 재활도 독하게 해서 몸을 끌어올렸죠.(종아리 파열을 당했던 김정은은 부상당한 종아리 반대쪽의 무릎을 다쳤다. 그래서 재활을 진행했다) 그렇지만 저는 감독님께서 원하셨던 방향에 부합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FINAL MVP
김정은은 결국 하나원큐를 떠났다. 그런 김정은의 손을 잡아준 팀은 우리은행이었다. 김정은은 2017~2018시즌부터 우리은행의 일원이 됐다. 우리은행은 2012~2013시즌부터 2016~2017시즌까지 통합 5연패를 달성한 팀. 더 높은 무대를 원했던 김정은에게 최상의 팀이었다.
김정은은 우리은행에서 농구를 처음부터 배웠다. 위성우 감독과 전주원 코치 밑에서 혹독한 조련을 받았다. 그러나 그런 어려움을 다 견뎠다. 하나원큐에서 누리지 못했던 결과물을 얻기 위해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은행과 김정은의 초반 행보는 좋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은행도 김정은도 최상의 성적을 남겼다. 정규리그 우승으로 챔피언 결정전에 직행했고, 챔피언 결정전에서 KB스타즈를 3-0으로 꺾었다. 우리은행은 통합 6연패를 달성했고, 김정은은 프로 데뷔 14번째 시즌 만에 ‘우승’과 ‘FINAL MVP’를 처음으로 거머쥐었다.

우리은행이 손을 잡아줬습니다. 위성우 감독님께서 어떤 말씀을 해주셨나요?
“너의 명예 회복이 내 목표다”고 하셨어요. 진심으로 느껴졌어요. 위성우 감독님을 믿게 된 결정적인 한 마디이기도 했고요. 그리고 그 말씀을 실천하셨어요. 그런 믿음을 주신 분이라, 우리은행에서 나오는 게 어려웠던 것 같아요.
우리은행의 초반 행보가 좋지 않았습니다. 내심 불안했을 것 같아요.
제가 이적할 때만 해도, 인터넷 기사에 댓글이 있었어요. 거기서 “우승 버스 타려고 왔네”라는 댓글을 봤어요. 하지만 우리은행에 합류하고 보니, 선수층이 그렇게 두텁지 않았어요. 쉽지 않겠다고 생각했고, 위성우 감독님 부임 후 처음으로 개막 2연패를 당했어요.
분위기가 좋지 않았는데, 감독님께서 어느 날 저를 부르셨어요. 제가 부담을 느낄까봐, 감독님께서는 “이번 시즌에는 우승 어렵다. 그래도 너를 데리고 왔는데, 우승 한 번 못 하겠어?”라고 저를 격려해주셨어요.
저도 우승은 어렵다고 생각했어요. 박지수와 다미리스 단타스, 모니크 커리 등 KB스타즈 멤버가 워낙 좋았거든요. 게다가 저희 팀은 외국 선수를 수도 없이 바꿨어요. 그런 현실과 마주하니, ‘내가 불운의 아이콘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더라고요.(웃음)
하지만 최상의 결과를 냈습니다. 우리은행은 통합 6연패를 달성했고, 김정은 선수는 ‘데뷔 첫 우승’과 ‘데뷔 첫 FINAL MVP’를 동시에 차지하셨습니다.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요?
‘선수 김정은’의 가치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재기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죠. 운동을 그렇게 많이 한 게 처음일 정도로(웃음), 전투력을 머리 끝까지 끌어올렸어요.
그렇지만 개막 2주 전에 무릎 반월상연골을 또 한 번 다쳤어요. 병원에서는 수술을 이야기했고, 위성우 감독님께서도 수술을 권하셨어요. 그렇지만 저는 그런 현실을 용납할 수 없었어요. ‘팀을 어렵게 옮겼는데, 부상 때문에 무너질 수 없다. 부상으로 무너지는 건, 나를 비난했던 사람들의 말이 맞게 되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어떻게든 버텼어요.
프로 선수 하는 동안, 그렇게 집중한 시즌도 처음일 거예요. 앞으로 선수 생활을 못할 지라도, 2017~2018시즌에는 우승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 정도로 치열했고, 그 정도로 모든 걸 걸었던 것 같아요. 실제로, 정규리그 마지막 경기에서야 챔피언 결정전 직행을 확정했고요. 그래서 2017~2018시즌이 더 기억에 남아요.

그 후 5년
우리은행은 2018~2019시즌부터 ‘통합 6연패 팀’의 포스를 보여주지 못했다. 정규리그 우승(2019~2020, 2020~2021)은 2번 했지만, 플레이오프 혹은 챔피언 결정전에서 힘을 내지 못했다. 다른 팀의 우승 세레머니를 바라봐야 했다.
김정은도 그 동안 속앓이를 했다. 하지만 기다렸다. 그리고 2022~2023시즌. 기회가 생겼다. 우리은행이 FA 시장에서 김단비를 영입한 것. ‘박혜진-박지현-김단비-최이샘-김정은’이라는 막강한 라인업이 구축됐고, 우리은행은 압도적인 경기력으로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플레이오프와 챔피언 결정전에서도 상대를 압도했다. 플레이오프에서는 신한은행에 2전 전승을 거뒀고, 챔피언 결정전에서는 BNK를 3-0으로 제압했다. 2017~2018시즌 이후 5년 만에 통합 우승을 차지했다. WKBL이 2020~2021시즌에 플레이오프 제도를 바꾼 후(정규리그 우승 팀도 2020~2021시즌부터 4강 플레이오프를 치러야 한다), 우리은행이 낸 최초의 성과이기도 했다.

2018~2019시즌부터 2021~2022시즌까지 우승을 하지 못했습니다.
비록 2018~2019시즌부터 2021~2022시즌까지 우승 못했지만, 이적 첫 시즌에 우승을 했어요. 그것만 해도, 저의 선택에 만족했습니다. 또, 우리은행과 제가 어떤 결과를 냈든, 제가 우리은행에 있었던 시간을 후회하지 않았어요.
2022~2023시즌에 최상의 전력을 꾸렸습니다. 기대가 컸을 건데요.
(박)지수가 부상으로 빠졌고, 삼성생명도 풀 전력을 갖추지 못했어요. 여러 변수가 존재했던 게 사실이에요. 그렇지만 (김)단비가 합류한 후, 저희도 준비를 많이 했어요. 그래서 2022~2023시즌을 통합 우승으로 마쳤다고 생각해요.
말씀하셨듯이, 데뷔 두 번째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5년 전과는 다른 느낌이었을 것 같아요.
첫 번째 우승을 차지했을 때는 많이 치열했어요. 압박감을 느꼈죠. 하지만 두 번째 우승은 달랐어요. 대표팀에서나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라인업에서 뛴 거라, 정말 신나게 했던 것 같아요. 우리은행에서의 처음과 끝을 우승으로 장식해서, 여러모로 의미 있는 것 같아요.(웃음)

갈림길
김정은은 2022~2023시즌 종료 후 FA가 됐다. 몸 상태가 좋지 않고 나이도 많았지만, 김정은의 인기는 시장에서 여전히 높았다. 공격과 수비 모두 리그 최상급이고, 라커 룸 리더로서의 역량도 갖췄기 때문.
그래서 우리은행을 포함한 여러 구단이 김정은에게 러브 콜을 보냈다. 김정은은 고민했다. 고민의 시간은 꽤 길었다. 농구 인생의 갈림길에 다시 섰기 때문.
고민의 끝은 결국 선택이다. 김정은도 선택해야 했다. 그리고 고민의 결말을 맺었다. 김정은은 계약 기간 2년에 2023~2024 연봉 총액 2억 5천만 원(연봉 : 2억 원, 수당 : 5천만 원)의 조건으로 하나원큐 유니폼을 입기로 했다. 친정 팀에서 마지막 불꽃을 태우기로 했다.

FA가 됐고, 여러 구단이 러브 콜을 보냈습니다. 고민이 컸을 것 같아요.
여러 인터뷰에서도 말씀 드렸지만, 사실 은퇴를 심각하게 고민했어요. 시즌 중부터 생각해왔죠. 그런데 우승을 하니, ‘연장을 해야 하나?’라는 혼란스러운 생각이 존재했어요.
그렇지만 우리은행이라는 팀을 봤을 때, 제가 나와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얼마 전에 은퇴한 (양)희종 오빠(전 안양 KGC인삼공사)의 말에 공감을 했거든요.(양희종은 2022~2023시즌 중 “내가 20분을 뛰는 것보다, 어린 선수들이 20분을 뛰는 게 팀의 가치를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장기적인 관점으로 본다면, 저 역시 우리은행에서 나와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또, 확신하는 게 있어요. 우리은행은 저 없이도 상대를 이길 수 있어요.(웃음) 제가 빠져도, 다른 선수가 제 자리를 메워줄 거예요. 제 공백이 전혀 안 느껴질 겁니다. 냉정하게 이야기하면, 그래요.
김정은 선수의 선택은 결국 하나원큐였습니다.
저에게 너무 과분한 조건을 제시해줬습니다.(“우리은행도 마찬가지였다”고 덧붙였다) ‘친정 팀’이라는 조건도 마음에 남았고요.
선수로서의 가치만 본다면, 하나원큐가 그런 조건으로 저를 영입하기 어려웠을 거예요. 그렇지만 저의 다른 가치를 높게 봐주셨어요. 이번 FA 계약을 통해, 농구 인생을 잘 쌓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자신감도 얻었고요. 감사한 마음이 너무 컸습니다.
하나원큐와 계약한 후, 우리은행을 향한 장문의 글을 SNS에 업로드했습니다.
우리은행 선수들한테는 가족 이상의 정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기사로 이적 소식을 듣게 하는 건, 우리은행 선수들을 향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보도 자료나 기사로 나오기 전에, 한 명씩 이야기해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이적 기사가 생각보다 빨리 떴어요. 강아지를 산책하고 있었는데(웃음), 후배들이 1~2명씩 연락을 주더라고요. 또, 후배들이 저와 함께 했던 추억을 개인 SNS에 업로드해줬어요.
감동을 받았지만, 미안한 마음이 컸습니다. 마음도 많이 아팠고요. 또, 제 선택에 서운할 법도 한데, 제 선택을 존중해준 후배들에게 너무 고마웠어요. 그리고 6년의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더라고요. 잠을 이룰 수 없었고, 그래서 SNS에 제 심정을 차근차근 적었어요. 이별은 역시 쉽지 않더라고요.(웃음)

중심을 잡아야 할 선수
하나원큐는 성적 쇄신을 위해 많은 변화를 줬다. 그러나 변화의 결과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김정은이 하나원큐로 돌아갔지만, 하나원큐의 경기력이 당장 나아질 확률은 높지 않다.
김정은도 이를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정 팀인 하나원큐로 돌아왔다. 하나원큐를 위해 해야 할 게 많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나름의 청사진도 갖고 있었다. 김정은이 그린 청사진은 ‘하나원큐의 중심을 잡아줄 선수’였다.

밖에서 본 하나원큐는 어땠나요?
하나원큐가 계속 안 좋은 비시즌을 보냈잖아요. 친정 팀이라 그런지, 신경이 쓰이더라고요. ‘비시즌부터 (선수 영입이나 선수 계약을) 잘 했다면, 더 좋은 성적을 거뒀을 건데...’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렇지만 어리고 가능성 풍부한 선수들이 지금의 하나원큐에 많습니다. 하지만 중심을 잡아줄 선수가 부족했어요. 팀에 안정감을 줄 수 있는 선수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죠.
하나원큐에서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선수 인생이 2년 밖에 남지 않았어요. 또, 제가 왔다고 해서, 팀이 몇 승을 더할 수 있겠어요.(웃음) 다만, 선수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주고 싶어요. 선수들의 성장에 보탬이 될 수 있도록, 제 경험을 좋은 방향으로 알려주고 싶어요.
5년 만에 부천실내체육관을 홈 코트로 삼습니다. 부천실내체육관에 서게 된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요?
이질감이 들 것 같지는 않아요. 5년 전에도 뛰었던 곳이라...(웃음)
반대로 아산이순신체육관은요?
6년 전에 부천에서 느꼈던 감정처럼, 지금 당장은 아산을 더 홈으로 여길 것 같아요. 인터뷰하는 지금도 마음이 그럴 정도로, 정이 많이 들었거든요.
지금도 가끔 우리은행 생각이 나요. 또, 우리은행은 이길 자격과 우승할 자격을 지닌 팀이에요. 어느 팀보다 많이 준비하고, 어느 팀보다 땀을 많이 흘리거든요. 그리고 제가 우리은행에 오랜 시간 있었기 때문에, 하나원큐 소속이어도 우리은행을 많이 응원할 것 같아요. 대신, 저희 팀과 선수들이 우리은행의 준비 과정과 노력들을 배웠으면 좋겠어요.

일러스트 = 정승환 작가
사진 제공 = WKB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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