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가전 잘 팔려도 씁쓸해 하는 삼성 직원들…이유는 [방영덕의 디테일]
공교롭게도 기자가 최근 만난 예비부부 3쌍은 삼성전자 패키지로 모두 ‘가전 졸업(가전 구매 완료)’을 했다고 했습니다. LG냐 삼성이냐 고민을 많이 했는데, 결국 삼성 매장으로 발길을 돌린 이유는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했기 때문이라고 말하더라고요.
30대 예비신부 A씨는 “백화점 상품권과 카드할인 등을 다 합해 1300만원대에의 가전 견적을 받았다”며 “그런데 같은 금액대로 LG에선 못샀던 에어컨과 식기세척기를 포함한 삼성 패키지 금액이라서 (할인) 체감가는 훨씬 더 컸다”고 말했습니다.
문제는 이같은 판매 전략이 삼성 TV와 가전부문 실적의 발목을 잡는다는데 있습니다.
물건 값을 깎아 파는 게 당장은 매출을 끌어올릴 순 있겠지만 파격 할인이나 사은품 껴주기에 따른 비용 부담은 기업이 져야 하고, 이는 결국 영업이익을 해치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가전이 (싸게) 잘 팔린다는 얘기에 삼성전자 직원들이 마냥 웃지 못하고, 씁쓸해하는 이유입니다.
실제로 삼성전자의 올해 1분기 TV사업을 담당하는 VD(영상디스플레이)와 생활가전사업부의 영업이익은 1900억원으로, 전년동기(8000억원)의 4분의1 수준에 그쳤습니다. 직전 분기(영업손실 600억원) 대비로는 흑자전환을 했지만 수익성 악화가 심각한 상황입니다.
삼성전자 측은 이에 대해 글로벌 경기침체에 따른 수요부진에 비용 부담이 이어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특히 LG전자의 생활가전을 담당하는 H&A사업본부는 1분기 매출 8조217억원, 영업이익 1조188억원을 기록했는데요. 이는 역대 1분기 기준 최대치입니다. 특히 영업이익이 분기 1조원을 넘긴 것은 LG전자 전체 사업부 중 H&A사업본부가 처음입니다.
2분기 잠정실적치를 보더라도 삼성전자는 반도체 업황이 여전히 부진해 14년 만에 가장 적은 분기 영업이익(6000억원)을 냈습니다.
반면 LG전자는 가전 부문에서 재고 조정과 프리미엄 제품 중심 판매 등 체질을 개선하고, 전장사업(자동차 전기·전자장비) 등 기업간거래(B2B)에서 성과를 거두면서 역대 2분기 기준 매출액(19조9988억원)은 최대, 영업이익(8927억원)은 두 번째로 큰 규모를 기록했습니다.
가전을 놓고 국내 안팎에서 치열하게 경쟁을 펼치는 삼성전자와 LG전자. 라이벌 기업보다 크게 뒤쳐진 성적표를 받아든 삼성전자의 위기감은 어느 때보다 큽니다.
당장 위기의식에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선대회장의 ‘신경영 선언’이 소환되고 있습니다. 1993년 6월 7일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회사 중역 200명을 모아놓고 발표한 신경영 선언은 삼성 경영의 핵심 목표를 ‘양’에서 ‘질’로 바꾸겠다고 발표한 것을 말합니다. 이른바 ‘품질경영’ 입니다.
이 회장의 신경영선언은 1993년 2월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 있는 한 가전매장에서 먼지가 수북이 쌓여 있는 삼성 제품을 보고 위기감을 크게 느낀 것에서 비롯됐습니다.
삼성 임직원들 사이 ‘국내 1위’라고 자평하던 삼성전자 가전제품이 선진국에서 싸구려 대우를 받자 “한쪽 구석 먼지 구덩이에 처박힌 것에 왜 삼성이란 이름을 쓰냐”며 임직원들을 질타한 것이죠.
또 하필 이 때 터진 ‘세탁기 사건’ 역시 삼성 위기 의식에 경종을 울립니다.
당시 삼성사내방송 SBC가 제작한 일종의 사내 품질고발 영상물을 보면 세탁기 뚜껑 여닫이 부분 부품이 들어맞지 않자 직원들이 거리낌 없이 덮개를 칼로 2㎜를 깎아내고 조립하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교대자를 바꿔가며 이런 식으로 제품을 대충 끼워 맞추는 장면에 이 회장은 큰 충격을 받았고, ‘품질경영’에 박차를 가하게 됩니다.
지난해 7월 삼성 세탁기 유리문 파손으로 불거진 품질 문제나, 경쟁사 대비 저렴한 가격대의 상품으로 취급받는 모습은 30여년 전 상황과 오버랩 되며 신경영선언을 몇 번이고 곱씹어 보게 합니다.
이 전시회 역시 이건희 선대회장이 세계 1등 제품과 삼성의 차이를 살펴보자는 취지로 신경영선언과 함께 1993년 처음 만들었습니다.
매년 혹은 격년 단위로 열렸으나 2018년 이후 코로나 팬데믹(대유행) 등을 이유로 열리지 않았던 전시회를 5년 만에 부활을 한데에는 삼성과 경쟁사 간 기술 ‘초격차’가 사실상 사라졌다는 지적 등 각종 위기의식 작용이 커 보입니다.
생활가전은 사실 반도체와 스마트폰과 달리 아직 유일하게 삼성전자가 세계 1위를 하지 못한 사업 분야입니다. 아픈 손가락인 셈이죠.
생활가전사업부장을 겸직하고 있는 한종희 삼성전자 디바이스경험(DX)부문장(부회장)은 올 초 기자간담회에서 “항상 목표는 1등”이라며 “생활가전 사업을 DX부문의 성장동력이 되도록 키워가겠다”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습니다.
최근 수요 침체로 국내외 가전 시장의 상황이 그리 좋지 않습니다만 신경영선언 30주년을 맞아 위기를 극복할 혁신 제품, 비싸도 꼭 사서 써보고 싶은 삼성만의 제품 개발이 이뤄질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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