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은 파괴 아닌 창조…‘이권 카르텔 전쟁’ 성공할 수 없는 이유

성한용 2023. 7. 9. 0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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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한용의 정치 막전막후]성한용 선임기자의 정치 막전막후 488
정치 입문 때부터 내세운 구호
검사 출신 정치인 ‘존립 기반’
노동·연금·교육 등 최우선 개혁
대화·타협 통해서만 가능해
윤석열 대통령이 7월 4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2023년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에 관한 제18차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 정도면 집념을 넘어서서 오기 수준인 것 같습니다. 이른바 ‘이권 카르텔’에 대한 윤석열 대통령의 집착 말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7월3일 신임 차관들에게 임명장을 준 뒤 오찬을 함께 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정부는 반(反)카르텔 정부다. 이권 카르텔과 가차 없이 싸워달라. 민주 사회를 외부에서 무너뜨리는 것은 전체주의와 사회주의이고 내부에서 무너뜨리는 것은 부패한 카르텔이다.”

7월4일 ‘하반기 경제정책방향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공정하고 정당한 보상체계에 의해서 얻어지는 이익과 권리가 아니라 자기들만의 카르텔을 구축해서 이권을 나눠먹는 구조는 철저히 타파해야 한다. 이권 카르텔은 외견상 그럴듯하게 보일지는 몰라도 손쉽고 편리하게 그리고 지속적으로 국민을 약탈하는 것으로서, 모든 공직자는 이와 맞서기를 두려워하거나 외면해서는 안 된다.”

“특정 산업의 독과점 구조, 정부 보조금 나눠먹기 등 이권 카르텔의 부당 이득을 우리 예산에서도 제로 베이스에서 검토해 낱낱이 걷어내야 한다.”

카르텔은 본래 경제학 용어입니다. “동일 업종의 기업이 경쟁의 제한 또는 완화를 목적으로 가격, 생산량, 판로 따위에 대하여 협정을 맺는 것으로 형성하는 독점 형태, 또는 그 협정”을 의미합니다. 우리말로는 기업연합이라고 번역합니다.

점차 쓰임새가 넓어져 지금은 “이익을 독점하거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부당하게 결탁하는 시스템”을 의미합니다. 이를테면 마약을 생산·밀매하는 범죄 집단을 카르텔이라고 합니다.

윤 대통령이 이권 카르텔이라는 말을 처음 사용한 것은 2021년 6월29일 대선 출마를 선언할 때였습니다. 세차례 언급했습니다. 출마 선언문 전체를 꿰뚫는 핵심 단어였습니다.

“정권과 이해관계로 얽힌 소수의 이권 카르텔은 권력을 사유화하고 책임의식과 윤리의식이 마비된 먹이사슬을 구축하고 있다.”

“정권교체를 이루지 못하면 개악과 파괴를 개혁이라고 하고, 독재와 전제를 민주주의라고 말하는 선동가와 부패한 이권 카르텔이 지금보다 더욱 판치는 나라가 돼 국민들이 오랫동안 고통을 받을 것이다.”

“거대 의석과 이권 카르텔의 호위를 받는 이 정권은 막강하다.”

자신이 대선에 출마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바로 이권 카르텔을 물리치기 위해서라고 선언한 것입니다. 이권 카르텔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는 정확히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그 뒤 윤 대통령은 더불어민주당 정권, 신재생에너지 사업, 시민단체, 화물연대, 건설노조, 민주노총, 3대 개혁에 저항하는 기득권 세력, 사교육 시장과 결탁한 교육 관료 등을 차례차례 ‘이권 카르텔’로 낙인찍었습니다. 그러다가 최근 개각을 계기로 마침내 자신이 이끄는 정부의 정체성 자체를 ‘반카르텔 정부’로 규정하고, 이권 카르텔과의 전면전을 선언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이권 카르텔 공격으로 지지율은 올라

이권 카르텔은 윤 대통령의 ‘존재론적 기반’입니다. 무슨 말이냐고요?

윤 대통령은 검사 출신입니다. 그것도 중요 범죄에 대한 직접 수사와 기소를 담당해온 특수부 검사 출신입니다. 정치도 모르고 정책도 모르고 살았습니다. 그런 사람이 대통령에 출마하기 위해서는 뭔가 확실하게 내세울 명분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그게 바로 이권 카르텔이었던 것 같습니다. 범죄를 ‘때려잡는’ 일은 특수부 검사가 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해서 이권 카르텔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윤 대통령도 존재할 이유가 없습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2022년 3월7일 경기 안양 평촌중앙공원에서 유세를 하면서 어퍼컷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물론 그게 전부는 아닐 것입니다. 이권 카르텔에 대한 윤 대통령의 분노는 그 나름대로 진심인 것으로 보입니다. 왜 그럴까요? 윤 대통령이 이권 카르텔을 증오하는 이유가 뭘까요?

첫째, 정의감일 것입니다. 윤 대통령은 어린 시절부터 유난히 정의감이 강했다는 주변 사람들의 증언이 있습니다. 몸집이 작은 친구를 괴롭히는 동급생들을 혼내줬다는 목격담도 있습니다. 그런 정의감은 검사를 하면서 더욱 강해졌을 것입니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검사들은 직업상 일종의 영웅 심리 같은 것이 있습니다. 자신은 ‘정의의 사도’이고 이 세상 도처에 깔린 ‘악의 세력’을 때려잡기 위해 검사가 됐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윤 대통령이 바로 그런 경우인 것 같습니다. 자신은 정의를 실현하고 개혁을 추구하는 ‘절대 선’이고, 이에 맞서는 사람이나 세력은 모두 다 ‘이권 카르텔’이라는 이름의 악당이라고 진짜로 믿고 있는 것입니다.

둘째, 콤플렉스 때문일 수 있습니다. 윤 대통령을 서울중앙지검장, 검찰총장으로 발탁한 사람은 문재인 대통령이었습니다. 문 대통령은 검찰총장 인사를 앞두고 ‘연속 발탁은 반드시 부작용을 낳는다’는 민주당 내부 유력 인사들의 조언을 무시하고 윤 지검장을 검찰총장으로 임명했습니다. 윤 대통령도 이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윤석열 정부의 검찰이 아직은 문 전 대통령을 입건하거나 수사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문재인 정부 주요 공직자들에 대한 수사와 기소는 무리하게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문 전 대통령만 쏙 빼고 민주당 정부를 이권 카르텔로 보고 ‘때려잡는’ 모양새입니다. 뭔가 단단히 뒤틀린 행태입니다.

왜 그럴까요? 혹시 자신을 발탁해서 결과적으로 대통령이 되도록 해준 문 전 대통령과 민주당 정권에 대한 윤 대통령의 열등감과 우월감이 동시에 작용하고 있는 것 아닐까요? 그런 콤플렉스가 이권 카르텔에 대한 지나친 증오와 분노로 분출하는 것 아닐까요?

윤 대통령은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은 비판한 적이 거의 없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경제·복지 정책과 외교·안보 정책이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의 정책과 크게 다르지 않은데도 그렇습니다. 왜 그럴까요? 아무래도 김대중·노무현 대통령까지 공격할 배짱은 없는 것 같습니다.

셋째, 총선용인 것 같습니다. 여론조사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윤 대통령의 이권 카르텔에 대한 공격은 유권자 갈라치기 효과를 내며 대통령 국정 지지율과 국민의힘 정당 지지도를 받쳐주고 있습니다.

앞뒤 사정이 어떻든 대통령이 강력하고 단호한 태도를 보이면 친여 보수 성향의 고정 지지층은 결집하게 돼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 임기 말에 정치 양극화가 극심해지면서 40% 안팎의 국정 지지율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과 비슷한 현상입니다.

여기에 이재명 대표의 민주당이 대장동 의혹, 돈봉투 사건, 김남국 의원 사건 등으로 수렁에 빠져 헤매는 상황이 윤 대통령의 총선 승리 자신감을 부추기고 있는 것 같습니다.

대통령의 선전포고, ‘개혁 걸림돌’ 가능성

윤 대통령은 이권 카르텔과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을까요? 저는 승리할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유는 두가지입니다.

첫째, 표적 설정이 처음부터 잘못됐습니다. 이권 카르텔은 윤 대통령의 머릿속에만 존재하는 허구의 관념입니다. 윤 대통령의 ‘뇌피셜’입니다. 신재생에너지 사업, 시민단체, 노동조합 등에 대한 보조금 지원에 부당한 부분이 있으면 그 부분을 바로잡으면 됩니다. 범죄 행위라고 판단되면 수사를 해서 처벌하면 됩니다. 그러나 신재생에너지 사업, 시민단체, 노동조합 전체를 이권 카르텔로 낙인찍는 것은 무지몽매한 시도입니다. 당사자들로부터 거센 반발을 초래할 수밖에 없습니다. 현실적으로 가능하지도 않습니다.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입니다. 대통령이 이권 카르텔이라는 낙인을 찍었다고 진짜로 이권 카르텔이 될 수는 없습니다.

둘째, 정권이 주도하는 하향식 개혁은 큰 부작용을 낳습니다.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정권은 민심 수습을 위해 정치깡패들을 잡아넣었습니다. 정치깡패는 사라졌지만, 군인들과 중앙정보부가 정치깡패 못지 않은 권력을 휘둘렀습니다. 역시 쿠데타로 집권한 전두환 정권은 사회 정화를 명분으로 삼청교육대를 설치했습니다. 엄청난 인권 탄압을 자행했습니다. 노태우 대통령은 ‘범죄와의 전쟁’을 벌였습니다. 성과를 냈습니다. 하지만 검찰이 권력의 전면에 등장했습니다. 이때부터 힘을 키운 검찰은 윤 대통령을 통해서 결국 정권을 통째로 삼켜버렸습니다. 김영삼 대통령의 ‘역사 바로 세우기’, 김대중 대통령의 ‘제2의 건국’, 박근혜 대통령의 ‘비정상의 정상화’, 문재인 대통령의 ‘적폐 청산’이 있었습니다. 대체로 실패했습니다.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개혁을 추진하면서 국민을 분열시켰기 때문입니다.

마무리하겠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노동·연금·교육 개혁을 국정 최우선 목표로 내세웠습니다. 노동 이권 카르텔을 제거하면 노동 개혁을 할 수 있을까요? 연금 이권 카르텔을 제거하면 연금 개혁을 할 수 있을까요? 교육 이권 카르텔을 제거하면 교육 개혁을 할 수 있을까요? 검찰 수사로 개혁이 가능할까요? 불가능합니다. 개혁은 파괴적인 작업이 아니라 창조적인 작업입니다. 특히 노동·연금·교육 개혁은 대화와 타협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이해 당사자들과 정부, 그리고 여야가 사회적 대화 기구를 구성한 뒤 사회적 대타협을 끌어내야 성공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입니다. 이권 카르텔과의 전쟁이라는 윤석열 대통령의 섣부른 선전포고는 오히려 개혁의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저는 전망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정치부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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