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일까 보호일까…그 엄마들이 ‘베이비박스’ 찾은 이유 [주말엔]
지난 6일 서울 신림동 주사랑공동체가 운영하는 '베이비박스' 센터.
취재를 위해 찾은 이곳에서 형사들을 만났습니다. 출생 미신고 아동 사건 수사를 위해 서울의 한 경찰서에서 왔다고 했습니다. 센터 직원은 "서울뿐 아니라 전국 각지 경찰서에서 연락이 끊이질 않아 업무가 마비됐다"고 했습니다.
이 직원은 형사들에게 "다 좋은데 어머니들 집에 직접 찾아가진 말아달라"고 거듭 당부했습니다. 과거 이곳 베이비박스에 아기를 맡긴 어머니들이 너무 불안해하고 있다면서요.
■그림자 아이 절반은 '베이비박스' 맡겨졌다…왜?
베이비박스에 수사기관과 언론의 관심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경찰이 추적 중인 2015년~2022년 출생 미신고 아동 2,123명 가운데 절반 가량은 베이비박스에 맡겨진 아이들로 추정되기 때문입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정식으로 입양 절차를 밟으려면 출생신고를 반드시 해야 하는데, 그럴 수 없는 부모들이 베이비박스에 아기를 두고 가기 때문입니다.
2009년 신림동에 '국내 1호'로 마련된 베이비박스는 15년간 2,097명의 아이를 받았습니다. 사흘에 한 명꼴입니다.
그 아이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요?
지난해 베이비박스에 맡겨진 아이 106명 가운데 30%는 원가정으로 돌아갔고, 약 8%는 입양 보내졌습니다. 나머지는 지자체와 연계한 시설에서 보호하고 있습니다.
■'베이비박스' 10년 치 판결문 보니…대부분 '경제적 이유'
그렇다면, 베이비박스에 아이를 두고 간 행위를 처벌할 수 있을까요.
베이비박스는 여전히 논쟁적인 주제입니다. 찬성하는 쪽은 아이의 생명을 지키는 마지막 안식처라고 하지만 반대하는 쪽에서는 영아유기를 조장한다고 비난합니다. 법의 테두리 밖에 있다 보니 지금까지는 베이비박스에 아이를 맡긴 엄마들이 수사 대상에 오른 일이 매우 드물었습니다. 판결문에 나타나는 사례는 대부분 누군가 고발했거나 죄책감에 자수한 경우였습니다. 물론 우리 형법은 영아유기를 처벌하도록 규정합니다.
형법 제272조(영아유기).
직계존속이 치욕을 은폐하기 위하거나 양육할 수 없음을 예상하거나 특히 참작할 만한 동기로 인해 영아를 유기한 때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베이비박스 관련 '영아유기' 혐의로 최근 10년간 재판을 받은 사건 17건의 판결문을 살펴본 결과, 16건(공범 포함 19명)에서 유죄가 인정됐습니다. 이 중 1명만 실형을 받았고 나머지는 징역형의 집행·선고유예를 받았습니다.
아이를 두고 간 건 대부분 친모였습니다. 드물지만 친부 혼자 유기하거나 부모가 함께, 또는 친모가 자신의 엄마와 함께 유기해 공범으로 재판을 받은 경우도 있었습니다.
범행 동기로는 경제적 이유가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습니다. 남자친구와 이별 후 출산을 하거나, 성매매로 임신을 하거나, 가족에게 출산 사실을 숨기기 위해 유기한 사례도 있었습니다.
2013년 초겨울 어느 날, A 씨는 새벽 5시 반쯤 만 3세 아이를 신림동 베이비박스에 두고 떠났습니다. 발달장애가 있는 아이였습니다.
A 씨는 법원에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이 확정됐습니다. 법원은 A 씨가 치료비 부담 때문에 아이를 버린 죄질이 무겁지만, 그 후 아이를 다시 찾아 키우기 위해 자수를 한 점을 참작했습니다.
B 씨도 2021년 2월 생후 두 달 된 아기를 베이비박스에 보냈다가 되찾아왔습니다. 암에 걸려 항암치료를 받게 되자 도저히 아이를 키울 수 없단 생각에 유기했지만, 결국 아이가 눈에 밟혔던 겁니다.
B 씨는 징역형이 선고 유예됐습니다.
■"도움의 손길이 닿는 곳"이지만…베이비박스서 숨진 아이도
법원에서는 대체로 베이비박스가 상대적으로 아이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이라는 점을 피고인에게 유리한 사정으로 고려해 집행유예를 선고했습니다. 길거리나 화장실에 유기하는 것보다는 아이에게 안전한 장소를 택했다는 겁니다.
"다만 피고인은 도움의 손길이 닿는 곳에 영아를 유기하여 결과적으로는 다행히도 짧은 시간 내에 아기가 구조되었고 현재까지도 건강하게 생활하고 있어 영아의 생명·신체에 구체적 위험까지 발생하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 점…" (서울중앙지법, 2020년 10월 판결문 中)
"그나마 피해 아동을 베이비박스에 유기하여 다른 사람이 양육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피해 아동에게 더 낫다고 생각하고 범행에 이른 것으로 보이는데, 이런 마음가짐은 잘못된 것이지만 범행 경위에 다소나마 참작할 만한 사정이다." (영동지원, 2022년 6월 판결문 中)
하지만 베이비박스가 100% 안전한 곳은 아닙니다.
판결문 17건 가운데 2건에서는 유기된 아기가 사망했습니다. 이 중 한 건은 베이비박스가 아닌 그 바로 맞은 편에 있는 드럼통 위에 아기를 유기한 사례였지만, 나머지 한 건은 베이비박스 안이 유기 장소였습니다.
2019년 1월 C 씨는 화장실 욕조에서 출산한 직후 탯줄도 자르지 않은 아기를 담요로 감싸 경기 군포의 베이비박스에 두고 왔습니다. 최소한의 보호조치도 없이 새벽 시간에 박스에 방치된 아기는 결국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단 1초라도 '보호받지 못한 상태' 아니어야"
이런 점 때문에 베이비박스를 이용했더라도, 전후 과정에서 어떤 조치를 취했는지가 중요합니다.
판결문 17건 가운데 유일하게 무죄가 선고된 사례를 볼까요.
2018년과 2021년 생후 열흘도 안 된 아기 2명을 베이비박스에 두고 간 D 씨는 지난해 7월 무죄가 선고됐습니다.
유무죄를 가른 건 '상담'이었습니다. 아기를 두고 가는 과정에서 센터 직원과 충분한 상담을 거쳤기 때문에, 버린 게 아니라 맡긴 것이라고 본 겁니다.
전문가들은 아이를 잠시라도 '보호 공백' 상태로 두었다면 유기죄가 성립한다고 설명합니다. 하지만 상담을 통해 직접적으로 아기를 센터에 인계했다면 유기로 보기 어렵다는 겁니다.
다만 정식 입양기관도 아닌 민간시설에 아기를 맡기도록 하는 현 상황이 옳으냐는 물음은 여전히 남습니다.
1분 1초라도 누군가의 보호가 아예 없는 공백 상태에 아이가 놓여진 적이 있느냐가 포인트예요. 출생신고를 하지 않았다는 문제는 차치하고 유기죄 요건에는 해당이 안 되는 거거든요.
아이를 키우기 어려운 분들에 대해 국가가 해줄 수 있는 최대한의 지원을 해서 되도록이면 원 가정에서 친모가 키울 수 있게 한 다음에, 마지막으로 나오는 게 베이비박스 논의여야 하는데 우리는 그런 논의가 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운영되고 있는 부분이 있죠. (신수경 변호사)
베이비박스는 본인을 드러내고 싶지 않은 부모한테 대면을 하지 않고 아이를 받아서 안전하게 보호하겠다는 게 깔려 있는데, 대면으로 상담을 하는 게 유무죄를 가르는 기준이 된다고 하면 취지 자체와는 맞지 않는 부분이 있어 보여요. 또 상담을 했더라도 그냥 "아기 두고 간다" 정도의 대화가 아니라 안전성을 담보하는 부분에 대해 이야기가 돼야 합니다. (장윤미 변호사)
경찰도 고민에 빠졌습니다. 지금까지 각 지자체에서 협조 요청 또는 수사 의뢰된 출생 미신고 영아 상당수가 베이비박스에 아기를 놓고 간 사례이기 때문입니다.
경찰은 우선 이런 사례 가운데 베이비박스와 관련된 경우 사실관계를 파악해 혐의를 선별 적용해 베이비박스 설치 기관과 상담이 이뤄진 경우는 입건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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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선민 기자 (jsm@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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