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조 K시리얼' 크라운 죠리퐁 51년, 누적매출 1조 향해 [장수브랜드 탄생비화]

주동일 기자 2023. 7. 9.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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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달 회장 유학 생활 중 시리얼 접해
1972년 뻥튀기 원리로 우리나라서 생산
1972년 죠리퐁 첫 패키지. (사진=크라운제과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주동일 기자 = 미국에 유학 중이던 윤영달 크라운해태홀딩스 회장은 1969년 당시 아버지인 윤태현 크라운제과 창업주의 호출을 받고 크라운제과에 입사했다.

먹거리가 풍족하지 않던 시절, 그는 맛과 영양이 풍부하고 식사 대용으로도 먹을 수 있는 스낵을 만들길 원했다.

특히 1956년 출시한 산도의 뒤를 이을 스낵을 개발해야 한다고 생각한 윤 회장은 불현듯 유학 시절 본 시리얼을 떠올렸다.

우리 입맛에 맞는 한국형 시리얼 스낵을 개발하겠다고 다짐하고 오랜 연구 끝에 1972년 죠리퐁을 선보였다.

뻥튀기로 만든 한국형 시리얼

'K시리얼'을 만드는 것은 쉽지 않았다. 대량 생산을 위한 설비를 갖추려면 막대한 자본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당시 국내 제과업체들이 자체 기술력과 설비로 시리얼을 생산하지 않았던 이유다.

그때 윤 회장의 눈에 국민 간식 '뻥튀기'가 들어왔다. 그는 뻥튀기 제작법을 통해 한국형 시리얼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고, 작은 뻥튀기 기계 6대를 구입했다. 집무실에 기계를 설치해 옥수수부터 보리·팥·밀·율무까지 여러 곡물을 튀겨가며 연구를 이어갔다.

튀긴 곡물을 먹느라 식사를 거르고, 과열된 기계가 폭발해 집무실 절반을 태우기도 했다.

6개월 뒤 윤 회장은 배추 한 포기만큼의 섬유질과 단백질을 함유한 '밀쌀'을 골랐다. 쌉싸름한 맛을 잡아 줄 수 있는 당액을 개발하고 겉면에 고르게 입혀 우유와 함께 먹었을 때 달짝지근하고 고소한 한국형 시리얼을 완성했다.

연세대 물리학과를 졸업한 윤 회장은 뻥튀기 기계 원리를 활용한 소형 수동 '퍼핑 건'을 개발하고, 죠리퐁 설비에서 가장 중요한 건조기 제작을 위해 목수 '조 선생'과 매일 씨름하며 양산 준비에 나섰다.

조 선생은 정년을 넘겨 70대 중반까지 현역으로 기계 제작을 담당했던 크라운제과의 전설적인 인물이다.

윤 회장이 처음 지은 이름은 '조이퐁'이었다. 국민에게 큰 기쁨을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기쁨(Joy)'이라는 뜻의 영어 단어에 제품을 생산할 때 나는 '펑' 소리를 더한 것이다.

하지만 이미 같은 상표가 등록됐다는 사실을 알고, 포장지 인쇄에 돌입하기 직전이었던 윤 회장은 기지를 발휘해 '즐거운'이라는 뜻을 담은 '죠리(Jolly)'라는 단어를 썼다.

이로써 당시 투명 포장 방식을 사용한 다른 과자들과 달리 파격적인 원색 인쇄 포장지에 '죠리퐁'이라는 이름을 새겨 1972년 출시했다.

2016년 죠리퐁 희망과자 프로젝트. (사진=크라운제과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첫 소비층은 주한 미군

죠리퐁은 50원짜리와 10원짜리 소형 포장 두 가지로 분류해 출시했다. 시리얼에 대해 아무런 경험이 없던 한국 사람들에게 죠리퐁은 뻥튀기와 다를 게 없는 과자로 여겨졌지만, 용산에 거주하던 주한 미군들은 용산 한강 맨션에 진열된 '가성비 시리얼' 죠리퐁에 빠져들었다.

죠리퐁은 생산 첫해를 넘기기 전에 품귀현상을 빚을 정도로 인기를 얻으며 빠르게 자리를 잡았다. 대부분 과자가 10~20원 선이던 시절, 50원이었던 죠리퐁이 매진된 것이다. 당시 물건을 사러 온 도매상들이 현금을 들고 공장에 줄을 서야 하는 진풍경까지 벌어졌다.

죠리퐁은 비스킷·캔디·건빵이 대부분이던 국내 과자 시장에 토종 스낵 시장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크라운해태에 따르면 당시엔 면류나 제과류를 생산하고 남은 재료를 튀겨 서양 스낵을 모방한 제품이 전부였다.

윤 회장은 장마철 습기로 밀쌀이 잘 건조되지 않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978년 완벽한 자동 건조기를 도입하고 포장 방식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등 다양한 개선 방안을 도입했다.

분당을 뿌려 만드는 초기 모델과 달리 당액을 코팅하는 방식으로 표면을 매끈하게 만드는 방법도 적용했다. 이렇게 죠리퐁은 크라운제과의 든든한 '경쟁력'이 됐다.

현재 죠리퐁 패키지. (사진=크라운제과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50년 넘게 소비자 발맞춰 변화

윤 회장은 1983년 애플 죠리퐁을 생산하고 1984년 땅콩 죠리퐁을 내놨다. 1995년엔 죠리퐁의 상징인 '종이스푼'이 도입됐다. 1996년엔 죠리퐁 라이트(커피맛)를 만들고, 1998년엔 시리얼로 즐기는 소비자를 겨냥해 대용량 제품을 출시했다.

2010년엔 드림볼스푼을 도입했다. 종이에서 더 진화된 플라스틱 스푼으로, 조립 완구가 붙어있어 32개를 모으면 '드림볼' 공이 완성된다.

2012년엔 손을 대지 않고 쉽게 먹을 수 있는 '마시는 죠리퐁 이지샷'을 출시했다. 이듬해엔 싱가폴 무이스 할랄 인증을 받아 타깃 확장 뿐 만 아니라 '안전한 먹거리 인증'에도 나섰다.

죠리퐁을 통해 한 소비자가 실종된 친오빠를 52년만에 만난 일화도 있다. 죠리퐁은 2016년 9월 '희망과자 프로젝트'를 진행했는데, 식품업계 최초로 제품에 실종아동 정보를 기재한 프로젝트다.

희망과자 프로젝트 1차로 죠리퐁 450만봉을 시판하고, 실종아동 1명당 75만개 전단지가 뿌려지는 효과를 냈다.

실제로 만 7세 나이에 가족과 헤어졌던 이영희씨는 죠리퐁에 인쇄된 실종아동 정보를 보고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에 문의해 친오빠를 52년만에 찾았다.

죠리퐁은 2010년대 후반부터 라떼와 쉐이크에 올라가기 시작했다. 죠리퐁은 메가커피·쟈뎅과 협업해 각각 '퐁 크러쉬' '죠리퐁 카페라떼'를 냈다. 2019년엔 SPC 배스킨라빈스·던킨도너츠와 협업해 라떼 등을 출시했다.

2021년과 2022년엔 국순당 막걸리·신세계푸드와 '죠리퐁당' '밀크퐁 죠리퐁 크로와상'을 협업했다.

출시된 지 51년이 지난 죠리퐁은 2017년부터 연 매출 200억원을 돌파하고, 이후 5년간 연 매출 평균 230억원대를 유지하며 누적 매출 1조원을 향해 순항 중이다.

올해 1월엔 누적 매출 약 7700억원을 달성했다. 총 20억 7000만 봉지에 달하는 양으로, 국민 1인당 평균 40봉지 이상을 먹은 셈이다.

☞공감언론 뉴시스 jdi@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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