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는 '귀공자'·'비공식작전' 아니었다?…영화 제목의 비밀 [N초점]
(서울=뉴스1) 정유진 기자 = 제목이 흥행에 미치는 영향력은 어느 정도일까? 객관적으로 측정하기는 어렵지만, 관객들에게 더 깊은 인상을 남기는 제목과 그렇지 않은 제목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매우 주관적인 영역이겠지만 누구에게나 수년이 지나도 단번에 떠오르는 제목의 작품이 있는가 하면, 영화를 보고 난 뒤에도 제목이 떠오르지 않는 작품도 있다. 물론 제목을 두고 고려하는 요소가 주목도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영화 관계자들에 따르면 영화의 내용을 효과적으로 반영하는 것도 주목도 못지 않게 중요하며, 연관이 있든 없든 동시기 부정적인 이슈를 연상케 하는 단어들을 피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개봉을 앞두고 영화 제목을 변경하는 일은 제목의 중요성을 방증하는 사례다. 최근에는 영화 '귀공자'(감독 박훈정)와 '비공식작전'(감독 김성훈)이 애초에 알려진 것과 다른 제목으로 개봉했거나 앞두고 있다. '귀공자'의 원제는 '슬픈 열대'였고, '비공식작전'은 '피랍'이었다.
'귀공자' 박훈정 감독은 최근 기자간담회 및 뉴스1과 인터뷰 등에서 영화 제목이 '슬픈 열대'에서 '귀공자'로 바뀐 이유가 완성된 영화와 시나리오의 차이 때문이었다고 알린 바 있다. '귀공자'의 주인공은 '코피노'(한국과 필리핀 혼혈인을 부르는 말) 마르코(강태주 분)와 그를 따라다니는 미스터리한 인물 귀공자(김선호 분)다. '코피노'인 주인공이 자신을 버린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한국행을 결정한 뒤 벌어지는 일을 그린 만큼 주인공의 서글픈 삶을 반영한 시나리오는 '슬픈 열대'라는 제목이 어울렸다.
하지만 찍고 편집하는 과정을 거치며 완성된 영화가 시나리오와는 조금 다른 분위기가 나왔다. 박훈정 감독은 "원래 시나리오는 약간의 슬픔이 있었다, 제일 중요한 건 슬픔이 사라졌고 촬영과 편집 과정에서 캐릭터들이 강하게 나오더라, 그래서 도드라진 인물, 그리고 결국에는 이 판을 짠 인물이 조금 더 부각되겠다 싶어서 제목을 그렇게 정했다, 단어의 뜻 그대로 귀해 보이는 사람, 귀족적으로 보이고 고급져 보이는데 말과 행동과 하는 일은 전혀 그렇지 않은 사람이 등장하는 게 재밌었다"고 밝혔다.
이어 "제목을 한 번 수정한 게 '더 차일드'였는데 중의적인 표현이다, 차일드라는 표현에 귀공자라는 뜻도 있고 아이들이라는 뜻도 들어간다, 그런데 한국 영화가 영어 제목 쓰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있다"며 "그 부분에 대해서 투자사 등과 같이 고민하다가 어차피 이 단어의 뜻이 이거라면 여기에 나오는 캐릭터도 그렇고, 캐릭터 이름을 제목으로 가는 게 어떨까, 이 캐릭터가 도드라지고 관객들이 볼 때 캐릭터가 각인이 될텐데 직관적으로 가는 게 어떨까 하는 의견이 있어서 동의했다"고 과정을 설명했다.
'비공식작전'은 원제가 주는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해 제목을 변경한 케이스다. 김성훈 감독은 최근 열린 제작보고회에서 "'피랍'이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감이 있었다, 작품 자체를 눌러버릴 수 있겠더라"며 "장르적 쾌감이 있는 작품인데 제목이 과연 적합한가 의문이 들었고 결과적으로 교체하게 됐다"고 이유를 설명한 바 있다.
사실 '피랍'은 '비공식작전'으로 변경되기 전 비슷한 소재를 다루는 '모가디슈' '교섭' 등의 영화와 유사할 것이라는 예측을 하게 만들기도 했는데 제목이 변경된 뒤에는 해당 작품들과 차별화된 분위기를 전달한다.
과거 개봉한 작품들 중에서도 제목이 바뀐 사례는 여럿이었다. 하정우 주연의 범죄 스릴러 영화 '추격자'(감독 나홍진, 2008)는 '밤의 열기 속으로'라는 제목으로 준비되던 작품이었다. '추격자'로 바뀌면서 한층 간결하면서 주인공 엄중호(김윤석 분)과 지영민(하정우 분)의 관계를 축약적으로 보여주는 제목이 완성됐다. 김성훈 감독의 전작 '끝까지 간다'(2014)의 원제는 영화 속 소재를 연상케 하는 '더 바디'였으나 영화를 준비하던 도중 '무덤까지 간다'라는 제목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개봉을 앞두고 터진 세월호 참사를 의식해 '죽음'을 연상시키는 '무덤'을 빼고 최종적으로 '끝까지 간다'라는 제목이 붙었다는 후일담이 전해진다.
한 영화 배급사 관계자는 "제목을 정할 때 명확한 기준이 정해진 것은 없다, 영화와 잘 어울리고 재밌어 보이는 제목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다만 부정적인 뉘앙스를 주거나 부정적인 이미지나 사건 등을 연상하게 하는 제목을 최대한 피하려고 노력한다"면서 "중요성이 큰 만큼 배급사와 투자사, 제작사 내에서 공모에 부쳐 집단 지성으로 가장 적절한 제목을 찾으려고 할 때도 있다"고 뉴스1에 밝혔다.
eujenej@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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