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한텐 '축복' 아닌데요" 위기의 임신부…병원 밖 목숨 건 출산

안채원 기자, 김성은 기자, 김지영 기자 2023. 7. 9.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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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내 아기, 안 키울 권리(上)
[편집자주] 인간은 유일하게 혼자서 출산할 수 없는 동물이다. 하지만 1년 뒤부턴 출생통보제에 따라 병원에서 아기를 낳으면 산모의 이름이 남는다. 그럼 원치 않은 아이를 낳아야 하는 사람들은 어떨까. 이름을 안 남기는 보호출산제 도입 법안이 있지만, 자칫 영아 유기를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인간의 자유와 책임, 생명까지 아우르는 딜레마다.
"산모와 아기가 위험하다"...병원 못 가고 목숨 건 홀로 출산, 왜?

내년 7월부턴 병원에서 아기를 낳을 경우 부모가 출생신고를 안 해도 자동으로 정부에 통보된다. 최근 국회를 통과한 '출생통보제법' 때문이다. 지난해까지 8년 간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영유아가 2236명에 달한다는 감사원의 발표가 법안 논의에 불을 붙였다.

그러나 함께 다뤄진 '보호출산제' 도입 법안은 처리되지 않았다. 미혼, 미성년 등 여러 이유로 출산 사실을 숨기고 싶은 산모들이 병원에서 익명으로 아이를 낳을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다. 버려지는 아기가 늘어날 수 있고, 아동의 '부모 알 권리'를 빼앗는다는 등의 이유로 야당이 신중론을 펴고 있다.

전문가들은 미혼모 지원 강화, 낙태죄 대체입법 등까지 아우르는 포괄적인 시각에서 '원치 않는 출산' 문제의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7일 정치권에 따르면 김미애 국민의힘 의원이 대표 발의한 '보호출산에 관한 특별법안'과 조오섭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위기임산부 및 아동 보호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안' 등 보호출산제 도입 법안들이 현재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 계류돼 있다.

1년 뒤 출생통보제가 시행됐을 때 보호출산제가 없다면 피치못할 사정으로 육아를 피하고 싶은 일부 산모들이 병원 밖에서 출산을 시도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여야는 보호출산제 법안을 조속히 심의하기로 했지만 야당 내 일부 반대 의견 때문에 신속한 처리는 쉽지 않다.

(서울=뉴스1) 임세영 기자 =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2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아동보호체계 개선대책 민·당·정협의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2023.6.28/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전문가들은 보호출산제 도입 여부를 둘러싼 논쟁만으론 근본적인 해법을 찾을 수 없다며 보다 포괄적인 논의를 주문했다.

노혜련 숭실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국회의 입장은 출생신고제를 시행하게 되면 병원 밖 출산이 많아질 수 있으니 최대한 빠르게 입법을 추진해 마무리해야 한다는 이야기인데 그렇게 서둘러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며 "아이를 키우고 싶은데 경제적인 상황이 되지 않아서, 사회적 인식이 두려워서 키우지 못하는 미혼모들을 위한 지원책은 이번 논의에서 빠져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노 교수는 "원하지 않았던 임신이었다고 해도, 아이를 낳아 직접 기르고 싶어 하는 분들이 굉장히 많다"며 "미혼모들에 대한 사회 복지 수준은 제자리인 상태에서 보호출산제만 성급하게 시행하게 되면 오히려 미혼모들에게 익명 출산을 사회가 권유하게 되는 부작용이 일어날 수 있다"고 했다.

유미숙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 대외협력국장도 "출생신고제와 보호출산제 도입 문제에 있어서 참 많은 논의가 빠져있는 느낌"이라며 "지금 보호출산제를 무작정 실시하면 그 아이들을 어떻게 입양시킬 것이고 훗날 그 아이들의 부모를 알권리는 어떻게 보호할 것인지 잘 모르겠다. 친부가 지금보다 더 쉽게 친모와 아이를 포기할 수 있게 되는 등 여러 부작용이 굉장히 많이 발생할 것"이라고 밝혔다.

유 국장은 "보호출산제의 성급한 시행은 기둥을 세우지 않고 지붕을 얹는 격"이라며 "가장 먼저 미혼모에 대한 임신, 출산 지원 체계를 더 촘촘히 안정화시킨 뒤에 그래도 지금처럼 익명 출산이 많아지고 유기 아동이 많아진다면 그때 보호출산제를 시행해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서울=뉴스1) 안은나 기자 = 10일 오후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열린 낙태죄 폐지 1년 4.10공동행동 '모두에게 안전한 임신중지가 보장될 때까지'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참가자들은 낙태죄가 공식적으로 법적 효력을 상실했음에도 정부와 국회가 관련 법·제도를 만들지 않은 채 방치하고 있다며 유산유도제 도입, 임신중지 의료행위에 건강보험 적용, 재생산 및 성에 관한 건강과 권리 포괄적 보장을 촉구했다. 2022.4.10/뉴스1

궁극적으로 여성이 원치 않는 출산 자체를 피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인 임신 중절, 즉 낙태에 대한 논의도 본격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낙태죄는 2019년 헌법재판소에서 '헌법불합치' 결정이 내려졌지만 이후 국회는 대체 입법 논의에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

김민문정 한국여성단체연합 대표는 "영아 유기 문제는 여성의 임신과 출산 전 과정을 다 들여다봐야 하는 문제"라며 "임신이라는 게 아무리 피임을 한다고 해도 완벽히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닌데, 환경적으로 양육할 여건이 갖춰져 있지 않은 여성이 갑작스러운 임신이나 출산을 하게 되면 굉장히 당황스러운 상황에 처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임신과 출산의 각 단계별로 이 과정의 당사자인 여성의 권리를 어떻게 보호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국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며 "근본적으로 여성에게 보장돼야 할 하나의 선택지인 임신 중절의 경우에도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이 나오고 난 뒤 후속 논의가 이뤄지지 않으면서 계속 문제가 반복되고 있다. 이번 기회에 종합적인 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미애 "보호출산제, 덮어놓고 익명? 사회가 함께 책임지는 것"
김미애 국민의힘 의원 / 사진= 머니투데이

"보호출산제는 덮어두고 무조건 비밀로 아이를 낳게 하겠다는 게 아닙니다. 여성과 국가, 우리 사회가 함께 책임을 지는 겁니다"

김미애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5일 머니투데이 더300(the300)과 만나 이같이 밝혔다. 김 의원이 지난 2020년 발의한 '보호출산에 관한 특별법'(이하 보호출산제)은 미등록 아동을 방지하기 위한 출생통보제가 지난달 국회를 통과하면서 논의에 속도가 붙고 있다.

김 의원이 발의한 보호출산제는 위기 임산부의 병원 밖 출산을 방지하기 위해 산모의 신원을 비공개로 하고 신생아의 생명을 보호한다는 취지에서 출발했다. 법안은 생모의 직접 아기 양육 지원을 우선 원칙으로 하되 보호 출산에 관한 전문가 상담 이후 출생신고와 입양 절차가 이뤄지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김 의원은 보호출산제를 소개해 달라는 기자의 주문에 '베이비박스' 이야기부터 꺼냈다. 김 의원은 "베이비박스에 찾아 온 산모를 만날 때 상담사들이 나서서 불안하게 혼자 출산을 한 여성을 안심시키는 것이 첫번째 일"이라며 "신뢰를 주고 편안하게 만들어 주고 신원도 보장해 주면 산모들이 사연을 얘기한다. 이후 양육 지원과 입양 절차 등을 설명해 주고 편안한 상태가 되면 22%정도는 직접 양육을 선택하고 13%가 출생 신고 후 입양을 선택한다"고 했다.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아이의 생명과 안전을 모두 지킬 수 있다는 설명이다.

김 의원은 "베이비박스의 순기능이 있다는 것이 입증이 됐고 아동 유기, 양육 포기를 조장하는 게 아니라는 게 증명된 것"이라며 이를 출산 과정에 적용하는 것이 바로 보호출산제라고 강조했다.

김 의원은 1년 뒤 시행을 앞둔 출생통보제와 보조를 맞출 수 있도록 1년 내 보호출산제 도입을 서둘러야 한다는 입장이다. 김 의원은 "출생통보제가 통과하면 병원 밖 출산이 늘어날 것을 우려해 시행을 '1년 뒤'로 시간을 준 것"이라며 "사실상 시스템 구축을 위한 시간이라기 보다는 더이상 위기 상황이 생기면 안되기 때문에 보완 입법을 할 시간을 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의원은 보호출산이 산모로 하여금 아이 양육을 손쉽게 포기하는 길을 열어줄 수 있다는 일각의 지적에 대해서는 "덮어두고 익명 출산이라고 하는 것과 다르다. 무조건 '비밀을 지켜주고 아기는 알아서 키워주세요', 이런 게 아니라 국가와 산모와 우리사회가 함께 책임을 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의원은 이어 "소중한 아기를 지키고 결국 혼자인 여성이 불안에 숨지 않고 법의 보호 체계 아래 국가의 보호 체계 아래로 들어오는 것"이라고 했다.

다만 김 의원도 보호출산제가 '만능키'가 될 수 없단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

김 의원은 "법이 도입된다고 해도 사건 사고는 또 생길 것이다. 결국 우리 사회가 이웃에 관심을 가져야 되고 복지 사각지대를 없애려는 노력을 또 같이 해 나가야한다"며 "서로의 품과 시간, 정서를 나눠야 아이도 크고 여성도 보호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신현영 "위기 임신 실태조사부터···임신→육아 원스톱 서비스 강화"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신현영 의원실 제공

"위기 임신에 대한 전반적 실태조사가 먼저 필요합니다. 출생 미신고 아기 사망사례가 발생한 원인부터 제대로 파악한 후 그 원인에 맞춰 지원책을 마련, 임신부터 출산, 양육까지 지원할 수 있는 원스톱 서비스를 강화해야 합니다."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7일 머니투데이 더300(the300)과 만나 이같이 강조했다. 신 의원은 보건복지위원회 위원 및 여성가족위원회 간사로 활동중이다. 최근 출생통보제 내용을 담은 가족관계등록법, 아동학대 피해아동보호지원을 위한 상시적인 협의체 구축 등의 내용을 담은 아동복지법 등을 발의해 영유아·아동 복지, 모성 보호에 앞장서 온 의원으로 꼽힌다.

신 의원은 부모가 아기의 출생신고를 하지 않은 경우 병원 등 의료기관이 지방자치단체에 출생 사실을 알리도록 하는 내용의 '가족관계 등록 등에 관한 법 개정안'(출생통보제)이 국회를 통과한 데 대해 "정말 다행"이라고 하면서도 보호출산제에 대해서는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신 의원은 "시신으로 유기된 영아들이 속속 드러나는 뼈아픈 상황이다. 방치된 아이들에 대한 사회적 책무를 국회에서 크게 느꼈다"라며 "출생통보제는 그동안 많은 관련법 발의가 있었고 의료계와 지속 소통해왔고 또 현장 저항을 해소할 시스템도 어느 정도 마련해 와 여야 간 이견없이 통과됐다"고 설명했다.

신 의원은 이에 비해 보호출산제에 대해 아직 이견들이 많은데다 자칫 제대로 된 사태 진단 없이 제도 먼저 도입할 경우 또 다른 문제가 야기될 수 있다고 봤다.

그는 "위기 임산부들의 경우들을 다 알지 못한 채 보호출산제를 우선 도입하면 오히려 양육 포기 사례만 더 늘어날 수 있다"고 했다. 위기 임산부란 경제적, 심리적, 신체적 어려움 등으로 인해 출산·양육에 대해 갈등을 겪는 임산부를 뜻한다. 돈이든, 사회적 눈초리든 아이를 포기하는 이유가 있을 것이고 그 문제가 해결된다면 충분히 내 아이를 양육할 수 있을텐데 그 부분에 대한 고민 없이 보호출산제 먼저 도입하는 것이 성급하단 지적이다.

신 의원은 "어려운 상황이라 할지라도 임신하고 출산해 아이를 키우겠단 여성들이 있다면 이를 국가가 도와주는 게 기본 원칙이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위기 임산부들이 처한 상황에 맞춰 충분히 선택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면서 보호출산도 제도권 안에 둬야 한다"고 말했다. 보호출산제 도입시 보호출산으로 태어난 아이들이 친부모에 대한 정보를 알고자 할경우 이를 어떻게 해결할지, 국내에서 근로중인 외국인 노동자들의 보호출산 지원은 어디까지 해줘야 할지도 사회가 논의하고 풀어가야 할 후속 과제다.

신 의원은 우선 위기 임산부 지원 센터 설립, 숙련된 전문가들의 24시간 상담, 위기 임산부에 대한 정의와 지원 범위 명확화, 임신·출산·양육까지 아우르는 원스톱 지원 서비스의 강화 등이 필요하다고 봤다. 신 의원은 이같은 내용이 담긴 한부모가족지원법 개정안을, 이르면 7~8월 발의를 목표로 준비중이다.

신 의원은 꼭 하고픈 이야기에 대해 "아동에 대한 제도, 법률이 필요하다고들 말하지만 정작 관련 정책은 국가 정책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경우가 많고 사건 사고가 있을 때마다 단발성 이슈에 그치고 마는 게 안타깝다"라며 "이번 기회에 충분히 논의되고 많은 부분들이 바뀌었으면 좋겠다. 실효성 있는 성과로 이어지도록 정부, 국회, 언론이 모두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안채원 기자 chae1@mt.co.kr 김성은 기자 gttsw@mt.co.kr 김지영 기자 kjyou@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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