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인 보면 신고까지"…빗장 건 여대들이 문제일까[바로 젠더]
학내 범죄 피해자 구제·예방책 재검토 계기로 삼아야
[편집자주] 젠더란 타고난 성을 의미하는 '섹스'와 달리 사회적으로 정의되는 성을 의미합니다. 한국은 물론 전 세계가 주목하는 사회 현상이 바로 젠더입니다. 그러나 젠더 관련 논의는 진영 논리에 따라 갈등으로 치닫거나 기피 대상이 되기 일쑤입니다. 남녀 혹은 성소수자를 둘러싼 오해 등 젠더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 '바로 젠더'를 연재합니다.
(서울=뉴스1) 김예원 기자 = "어디서 오셨어요? 재학생 아니면 출입증 받고 들어가셔야 돼요."
7일 오전 9시, 서울 용산구 숙명여대 정문 앞. 계절학기 수업을 듣기 위해 학생들이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었습니다.
경비원 A씨의 시선도 외부인을 찾아내느라 바쁘게 움직였습니다. A씨는 "벤치에서 도시락을 먹고 있는 남자 학생만 봐도 신고가 들어온다"며 "꼭 '그 사건' 때문은 아니지만 경계심이 심해진 건 사실"이라고 말했습니다.
지난 5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숙명여대 화장실에서 살인을 저지르겠다는 글이 올라왔습니다. 글 작성자는 서울 송파구에 거주하는 20대 남성으로 범행 예고 이틀만에 경찰에 붙잡혔습니다.
2019년 3월엔 마약 수배자인 50대 남성이 숙명여대 화장실에 무단 침입해 학생들과 몸싸움을 벌였습니다. 같은 해 6월 여장 남성이 교내 화장실과 캠퍼스 곳곳을 누비다가 검거됐습니다.
숙대 학생 다수는 불청객 침입 소식으로 간담이 서늘해졌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들이 캠퍼스 외부인 출입 제한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이유입니다.
미대에 재학 중인 이모씨(26)는 "밤 늦게까지 학교에서 작업하다 밖에 남자가 서 있는 게 보이면 예전 사건들이 떠올라 무섭다"며 "안전 문제는 수습보다 예방이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대학원생 김모씨(27)는 "축제 기간 외부인 난동, 여자화장실 침입 시도 등 소동이 매년 터진 결과"라며 "폐쇄적인 건 알지만 그만큼 효과적이지 않나"라고 반문했습니다.
지난해 9월 학교 측은 주민 민원 등을 이유로 캠퍼스 개방을 추진했지만 학생들의 반대로 이를 철회한 바 있습니다.
◇학생들의 불안 부추기는 '불법 촬영' 다른 여대들 역시 외부인의 출입을 제한하고 있습니다. 서울 주요 여대 6곳 모두 건물에 학생증 인증 시스템을 설치하거나 경비 인력을 배치하는 등 외부인 접근에 제한을 둡니다.
이화여대 등 3개 여대는 야간에 외부인의 캠퍼스 출입을 통제합니다. 사건·사고가 많았던 숙명여대, 2018년 캠퍼스에서 음란행위를 한 '알몸남 사건'이 있던 동덕여대는 허가받지 않은 외부인의 진입을 전면 금지하고 있습니다.
대학 관계자들은 외부인 출입으로 안전 요구가 늘며 생긴 불가피한 조치라고 설명합니다. 성신여대의 경우 지난 4월 미대 실기실에 술에 취한 타대생이 침입해 술렁였습니다.
성신여대 관계자는 "폭력적인 목적을 갖고 교내에 들어온 건 아니라고 판단해 선처했다"면서도 "CCTV를 추가로 설치하고 비상 연락처 안내 포스터를 주요 지역에 부착하는 등 대응책을 마련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번화가 및 대학가일수록 불법 촬영 발생 비율 및 증가율이 높은 사실도 학생들의 불안을 부추기고 있습니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 6년간 신고된 불법 촬영 건수가 가장 많은 자치구는 강남구(1425건)입니다. 2위는 서강대와 홍익대 등 대학이 몰린 마포구(984건)가 차지했습니다.
증가율을 따져보면 중랑구(26.33%)가 1위, 이화여대 등이 있는 서대문구(4.91%)가 2위를 기록했습니다. 서울 6개 여대에선 정기적으로 교내 몰래카메라 단속도 실시 중입니다.
◇ "대학은 모두의 공간"…지역 주민 캠퍼스 출입 허용하는 서울여대 일각에서는 이런 외부인 통제가 사실상 남성 출입 금지와 다를 바가 없다고 비판합니다. 여성 외부인의 경우 생김새만으로 재학생인지를 파악하기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한 여대 관계자는 "정·후문에서 이뤄지는 외부인 통제는 1차적으로 경비 직원이 눈으로 보고 판단하기 때문에 남성 외부인 위주의 출입 통제가 대부분"이라고 말했습니다.
'열린 대학'을 표방하는 요즘 추세와 배치된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오늘날 대학은 지역 주민들의 문화생활을 보장하고 이들에게 휴식 공간을 제공하는 역할을 겸하기 때문입니다.
서울여대는 이같은 이유로 서울 6개 여대 중 유일하게 캠퍼스를 개방하고 있습니다. 이 학교 노원구 캠퍼스에서는 학생뿐만 아니라 유아차를 끌며 대화를 나누는 어머니, 벤치에서 경치를 구경하는 노인을 쉽게 볼 수 있었습니다.
올해 입학한 새내기 김모씨(20)는 "평소에 산책하거나 우체국 등 학교시설을 이용하는 사람을 많이 봤다. 주민과 공유하는 게 지역사회에 보탬도 되고 좋다"고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다만 이 학교 학생들도 '안전'이 가장 중요하다고 한목소리를 냈습니다.
재학생인 이모씨(22)는 "캠퍼스 개방이 이뤄질 수 있었던 건 타 여대처럼 위험한 사건이 최근 없었기 때문"이라며 "외부인 사고가 터졌다면 출입 제한에 찬성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결국 학교가 재학생 안전을 보장한다는 믿음이 전제돼야 대학이 지역사회와 교정을 공유하며 '열린 대학'을 추구하는 선순환이 이뤄질 수 있습니다. 외부인 출입 제한을 '재학생 이기심'이나 '금남 구역' 등으로 구분하기보다 학내 안전 조치 재검토의 관점에서 바라봐야 하는 이유입니다.
서혜진 변호사(한국여성변호사협회 인권이사)는 "한국은 여성 범죄 피해자 보호 제도가 잘돼 있지만 집행 과정에서 불합리함을 느끼는 사람이 많다. 여대들의 출입 제한도 처음부터 강력한 보호를 해달라는 의미"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학내 안전 사고 방지 대책이 중요해지는 상황에서 오늘날 조치가 시대에 맞게 구비돼 있는지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kimyewo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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