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투쟁 역사 '비욘드 더 스토리(BTS)'…이건 방탄소년단 얘기가 아니다

이재훈 기자 2023. 7. 9. 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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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팝 전환점' BTS를 통해 본 K팝 산업 역사서 겸 인문학서
아미 생일에 출간…총 23개의 언어로 선보여
[서울=뉴시스] 방탄소년단 오피셜 북 'BEYOND THE STORY' 단체. 2023.06.21. (사진 = 빅히트 뮤직 제공)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위어 나우 고잉 투 프로그레스(We're now going to progress)'.

1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유효한 문장이다. 글로벌 슈퍼 그룹 '방탄소년단'(BTS)이 2013년 6월12일 발매한 데뷔 앨범 '투 쿨 포 스쿨(2 COOL 4 SKOOL)'의 첫 트랙 '인트로 : 투 쿨 포 스쿨'(Feat. DJ Friz) 첫 문장은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현실"(강명석 위버스 매거진 에디터)이 됐다.

방탄소년단과 소속사 빅히트 뮤직이 데뷔 10주년을 맞아 9일 출간한 오피셜 북 '비욘드 더 스토리 : 텐 이어 레코드 오브 BTS(BEYOND THE STORY : 10-YEAR RECORD OF BTS)'는 방탄소년단 이야기로만 한정짓기엔 아깝다.

방탄소년단 멤버들의 연습생 시절부터 얘기가 아낌 없이 담겨 있는 이 책은 K팝의 전환점이 된 이 팀을 통해 보는 K팝 산업의 역사서이자 세계적인 아티스트가 된 이들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인문학서이기도 하다.

[서울=뉴시스] 방탄소년단. 2023.06.17. (사진 = 빅히트 뮤직 제공)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데뷔 당시 '사회적 편견·억압을 막아낸다'는 뜻을 담아 '불릿프루프 보이스'(Bulletproof Boys·방탄이 되는 소년들)로 경력을 시작한 방탄소년단은 2017년 브랜드 아이덴티티(BI)를 리뉴얼하며 팀 이름에 '비욘드 더 신(Beyond The Scene)'의 의미를 더했다. 이번 책 제목에 포함된 '비욘드 더 스토리(BEYOND THE STORY)'는 이것의 변형인 셈이다.

또 '비욘드 더 신'은 '눈에 보이는 것, 그 현실 너머'를 의미하는데 방탄소년단의 초창기 역사 자체가 RM이 책에서 "딱 그거예요. '인정투쟁의 역사.' 인정 받고싶다. 증명받고 싶다."(122쪽)라고 얘기한 것과도 맥락이 맞물린다.

자기 자신이나 타인에게 인정을 받기 위한 싸움을 가리키는 인정투쟁의 사전적 의미는 이렇다. '상대편을 굴복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상대편에게서 자신을 확인하려고 한다는 점에서 명예를 위한 싸움'이다. 상대편을 제압하려는 목적보다는 정신적인 성격을 지니는 용어로서 싸움보다는 화합, 승리보다는 연대를 중요하게 여기는 방탄소년단의 성향과도 어울린다.

[서울=뉴시스] 힙합 아이돌 그룹을 표방하던 방탄소년단 활동 초창기 시절 . 2023.02.09. (사진 = 빅히트 뮤직 제공)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데뷔 초창기 힙합을 주요 장르로 내세웠다는 이유로 자신들의 음악을 듣지도 않은 래퍼로부터 인신공격을 당하고, 전면에 잘 나서지 않던 방시혁 하이브 의장까지 해당 래퍼의 예의 없음을 지적해야 했던 상황과 익명의 누리꾼들로부터 이유 없는 '사이버 불링'마저 감당해야 했던 방탄소년단 멤버들의 이야기까지 가감 없이 담은 책은 팀의 위상이 하루 아침에 이뤄지지 않았음을 '증명'한다. 그 증명을 위한 증거들이 책에는 수두룩하다. 증거 혹은 증명을 뜻하는 '프루프(proof)'는 방탄소년단 멤버들이 지난해 6월 자신들의 챕터 1을 정리하면서 낸 앤솔러지 음반 제목이기도 하다.

500쪽이 넘는 책엔 멤버들이 신사역 1번 출구와 (가파른 오르막길을 거쳐야 하는) 568m 떨어진 청구빌딩(하이브의 전신 빅히트 엔터테인먼트 사옥이었던 곳)과 그 인근 식당 밑 숙소 이야기부터 RM이 '단짠단짠'이라고 표현한 초창기 네 장의 앨범('투 쿨 포 스쿨'·'O!RUL8,2?'·'스쿨 러브 어페어'·'다크 앤 와일드')에 대한 작업기, 2014년 '엠넷아시안뮤직어워드'(MAMA) 출연을 비롯 2022년 '그래미 어워즈'까지 챕터 1 내 방탄소년단의 중요한 순간들이 대부분 담겨 있다.

해당 이야기에 익숙한 팬덤 '아미'에겐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동시에 방탄소년단과 K팝에 대해 더 관심을 갖고자 하는 일반 독자에겐 드라마나 영화 같은 흥미로움을 안기는 이야기들이다.

[서울=뉴시스] 조성우 기자 = 그룹 방탄소년단(BTS) 데뷔 10주년 기념 '2023 BTS 페스타'가 열린 17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한강공원 일대가 팬들과 시민들로 북적이고 있다. 2023.06.17. xconfind@newsis.com

RM이 미국 활동에서 인터뷰를 도맡아 2018년까지 큰 스트레스를 받으며 생존용으로 영어를 배운 일화, 슈가가 연습생 시절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다 교통사고가 나 어깨를 다친 일, 연습생 시절에 식사·청소 같은 일상 유지의 중요성을 깨닫고 어떻게든 먹을 만한 음식을 만들어내려고 한 진, 힙합에 대해 전혀 몰랐던 춤꾼 제이홉이 RM·슈가 사이에서 이 장르의 매력을 깨달아가는 과정, 뷔가 영국 배우 콜린 퍼스에서 영감을 받아 '화양연화' 시리즈 활동을 한 이야기, 한 시상식에서 다른 보이그룹과 대결하는 과정에서 '작은 몸'이지만 안 작아 보이려고 걸을 때 일부러 크게 걸었다고 웃으며 이야기하는 지민, 학교 대신 형들과 연습생 생활에서 더 많은 걸 배워 이기적이지 않게 됐다는 정국까지.

책엔 RM, 슈가, 진, 제이홉, 지민, 뷔, 정국의 모습뿐 아니라 김남준, 민윤기, 김석진, 정호석, 김태형, 박지민, 전정국의 속내까지 담겼다. 모두 빅히트 엔터테인먼트가 첫 연습생 생활을 한 곳이라 초창기 K팝 커뮤니티에서 아웃사이더가 될 수밖에 없었던 과정은 멤버들이 자신들끼리 더 뭉치며 연대하는 계기가 됐다. 그 과정에서 뷔·지민의 '만두 사건' 같은 경우는 서로를 위한 마음을 확인하기 위한 해프닝이었다.

책이 출간된 이날은 '아미 데이'(공식 팬덤명 발표일)이기도 하다. 지난달 여의도에서 열린 방탄소년단 10주년 페스타에 이어 아미에겐 또 다른 큰 선물이다. 당연히 어떤 아티스트·팬덤이든 소중하고 귀하지만 방탄소년단·아미의 관계는 사회학적으로 볼 때 더 특별한 유대감을 가지고 있다. 방탄소년단이 폭발적인 성장세와 함께 이유 없는 사이버 공격을 받은 시기인 2015년부터 2017년까지 이들이 겪은 일들은 "관계를 매우 특별한 것"(198쪽)으로 만들었다. 강 에디터는 "아미는 방탄소년단을 업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애쓰던 팀에서 전 세계적인 슈퍼스타로 만들었고 오늘날 많은 아미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사회에 공헌하기도 한다. 방탄소년단에게 아미는 팬이자 강력한 서포터이며, 또는 그 자체로 브랜드"라고 봤다.

[서울=뉴시스] 조성우 기자 = 그룹 방탄소년단(BTS) 데뷔 10주년 기념 '2023 BTS 페스타'가 열린 17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한강공원 행사장 부스에 세계 각국 팬들의 축하 문구가 적힌 카드가 붙어있다. 2023.06.17. xconfind@newsis.com

'비욘드 더 스토리'는 멤버들의 말 그 자체로 알차지만, 강 에디터의 탄탄한 문장도 읽는 맛을 준다. 예컨대 "데뷔 전부터 블로그와 유튜브를 통해 다양한 콘텐츠를 업로드해 온 방탄소년단에게, 자체 콘텐츠 시대는 '오래된 미래'와도 같았다"고 쓴 부분이다. 강 에디터는 대중문화에 대한 다른 식견을 보여줘 호평을 들었던 기자 출신으로 텐아시아·아이즈 편집장 등을 지냈다.

'비욘드 더 스토리'는 한국어를 포함해 영어, 일본어 등 총 23개의 언어로 출간됐다. 한국어로 먼저 작성된 이번 책의 영어 번역은 한국인 번역가인 안톤 허(허정범)의 주도로 미국 작가 클레어 리처즈(Clare Richards)와 슬린 정(Slin Jung)이 도왔다. 안톤 허 번역가는 세계 3대 문학상으로 꼽히는 영국 부커상 최종·1차 후보에 각각 오른 정보라 '저주토끼'·박상영 '대도시의 사랑법'의 번역부터 해외 출간까지 담당한 출판인으로도 유명하다.

이와 함께 빅히트 뮤직은 연습생 시절 지역에서 서울로 올라온 뷔와 지민이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청구빌딩까지 오기 위해 택시를 탄 지난한 과정을 설명할 때, 서울 시내 교통 상황 등을 설명하기 위해 각주를 다는 등 외국 팬들을 위한 세세한 배려를 책 곳곳에 녹여냈다.

[서울=뉴시스] 방탄소년단. 2022.06.09. (사진 = 빅히트 뮤직 제공)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이렇게 무엇보다 책은 아미는 물론 아미가 아닌 독자들까지 마치 공동체의 일원인 것처럼 느껴지게 만든다. 그건 물론 '화양연화' 시리즈, '윙스', '유 네버 워크 얼론' 등 "연대가 불가능할 거 같던 개개인이 공통체를 통해 연대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더 많은 사람들의 세상에 관심을 갖는 청춘의 성장기가 된" 음악 자체 덕분이다.

RM은 이 앨범들로 활동할 당시 방탄소년단이 세계에 대해 갖게 된 인식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했다. "우리 음악을 듣는 사람들을 위해서든, 저 자신을 위해서든, '나는 나를 둘러싸고 있는 이 세상에 대해서 할 말이 있어야 한다'라고 스스로를 다그쳤어요. 제 시작은 나스랑 에미넘(에미넴)이었으니까. 어찌 보면 우리가 되게 불안하고 모순적인 위치에 있다고도 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말은 계속 있지 않겠나…"(278쪽)

우리도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이 세상에 대해서 할말이 있어야 한다. 그걸 못 찾는 몇몇 순간에 방탄소년단이 대신 노래를 해줬다. 그것도 '비욘드 더 스토리'다. 이 지난한 현실 너머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야 할 말은 계속 있다. 방탄소년단이 앞으로도 현재진행형인 이유다.

☞공감언론 뉴시스 realpaper7@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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