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싼맛’ 모닝·레이 따위가 2천만원, 욕했는데…비쌀수록 대박난 사연 [세상만車]

최기성 매경닷컴 기자(gistar@mk.co.kr) 2023. 7. 9. 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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싼맛에 잠깐 타는 차 취급
불편·불안·불만, ‘3불 굴레’
안전·안심·안락, 가치 상승
비싼 트림일수록 잘 팔려
기아가 내놓은 경차인 레이와 모닝 [사진출처=기아]
라면과 김밥.

대표적인 서민 먹거리입니다. 재료값이 올라 가격이 인상되면 그만큼 저항도 커지는 음식이죠.

라면은 서민 음식의 바로미터로 여겨집니다. 물가체감도가 높은 품목이다 보니 정부가 ‘꼭 집어’ 라면 가격을 지적하기도 합니다.

최근에도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국제 곡물 가격 하락을 이유로 ‘라면 가격 인하’를 권고했죠.

그런데 말입니다. 라면과 김밥을 서민음식이라 부르기 민망합니다. 예전에는 출근길에 회사 근처 분식점이나 노점상에서 1000~2000원짜리 김밥을 사는 일이 많았습니다. 점심을 간단하고 저렴하게 해결하기 위해 ‘라면에 김밥’도 외쳤습니다.

이제는 추억입니다. 물가가 계속 오르다보니 1만원에 육박합니다. 비싼 가격에 라면이나 김밥 중 양자택일 합니다. 김밥 대신 공깃밥을 시키기도 하죠. 컵라면에 삼각 김밥으로 해결하기도 합니다.

자동차 카스트 ‘최하층’ 취급
대우 티코 [사진출처=매경DB]
자동차 분야에서도 ‘라면에 김밥’이 있습니다. 가격 저항이 거세게 일어난다는 서민 차종입니다. ‘작은 차 큰 기쁨’을 외치며 등장한 대우 티코가 원조인 경차입니다.

‘이왕이면 큰 차’를 선호하는 한국에서는 인도의 신분차별제인 카스트(caste)처럼 ‘크기=가격=신분’으로 구성된 자동차 카스트가 맹위를 떨쳤습니다.

카스트 공식도 등장했습니다. ‘경차·소형차=20대, 준중형차=30대, 중형차=40대, 대형차=50대 이상’입니다.

생애 처음으로 차를 사거나 돈이 부족한 2030세대에게는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하고 운전이 편한 경차가 추천됐습니다.

경제력을 갖추기 시작한 40대부터는 ‘자의반 타의반’ 더 비싸고 더 큰 차가 어울린다고 반강요하는 분위기도 형성됐습니다.

대우 티코와 후손인 마티즈, 스파크 [사진출처=매경DB]
결국 자동차 카스트 최하층으로 간주된 경차는 ‘싼 맛에 타는 차’로 치부됐습니다. 덩달아 “싸야 한다”고 강요받았습니다.

싼값에 ‘안심·안전·안락’은 뒷전으로 밀려났습니다. 악순환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죠.

작고 저렴하기 때문에 첨단 안전·편의사양이 부족해지자 경차는 불편하고 불안한 차가 됐습니다. 불편·불안은 불만으로 이어졌고 경차를 ‘싼차’로 고착시켰습니다.

경차 판매는 자동차 브랜드 입장에서도 ‘남는 장사’는 아닙니다. 대당 수익이 50만원 정도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쉐보레가 다마스, 라보, 스파크를 잇달아 단종한 이유 중 하나도 수익성이 떨어져서입니다.

국산차 브랜드 중 유일하게 경차를 내놓는 현대자동차그룹도 분기별 실적을 발표할 때 제네시스와 SUV 중심의 고부가 가치 차종 판매량이 늘면서 수익성이 개선됐다고 밝힐 때가 많습니다. 경차 때문에 수익성이 좋아졌다는 표현은 없습니다.

싼맛에 탄다더니 비싼 트림 인기
비싼값에 출시 때 비난을 받은 올뉴 모닝 [사진출처=기아]
‘싼값에 타는 서민의 차’로 여겨졌기에 디자인을 개선하고 안전·편의성을 향상시켜 가격을 올리면 가격저항이 커졌습니다. 100만원 안팎 올랐는데 200만원 이상 비싸진 다른 차종보다 더 큰 비난을 받았습니다.

2017년 상품성을 향상한 대신 가격이 오른 기아 모닝과 그 뒤를 이어 가격 인상에 나선 기아 레이 모두 겪었습니다. 지난 2021년 아토즈 단종 19년 만에 현대차가 내놓은 경차인 캐스퍼는 기존 경차보다 비싼 가격에 나와 욕 많이 먹었습니다.

“그 돈에 경차 사면 바보” “돈을 보태 준중형차나 소형 SUV를 사는 게 낫다”는 비난이 쏟아졌습니다.

실상은 어떨까요. 경차는 싸야 팔린다니 같은 차종이라도 값싼 트림이 인기를 끌었을까요.

아닙니다. 비쌀수록 잘 팔렸습니다.

2000만원대 가격 논란을 일으킨 캐스퍼 [사진촬영=최기성 매경닷컴 기자]
2017년 출시된 올뉴 모닝의 경우 구매자 10명 중 7명 이상이 저가 트림인 스탠다드가 아니라 중간 트림인 프레스티지와 고급 트림인 럭셔리를 선택했습니다.

올해 6월 기준으로도 비싼 모델이 사랑받았습니다. 모닝(밴 제외)의 경우 가장 비싼 트림인 시그니처 선택비율이 29%, 그 다음으로 비싼 프레스티지가 58%에 달했습니다. 가장 저렴한 스탠다드는 13%에 그쳤습니다.

레이의 경우 가장 저렴한 트림인 스탠다드(시작가 1390만원) 선택비율은 6% 미만에 그쳤습니다.

중간 트림인 프레스티지(1585만원)는 40% 수준, 고급 트림인 시그니처(1720만원)는 50% 수준입니다.

최고급 트림으로 풀옵션 가격이 2015만원인 그래비티(1815만원)는 7%입니다. 저가 트림인 스탠다드보다 더 많은 구매자들이 선택했습니다.

2000만원대 경차 시대를 열었다며 비난을 받은 캐스퍼의 경우 사전계약자 10명 중 7명(70.3%)이 가장 비싼 트림인 인스퍼레이션(시작가 1870만원)을 선택했습니다. 풀 옵션을 선택하면 2000만원이 넘는다고 비판받았던 트림이죠.

중간 트림인 모던(1590만원)은 10명 중 2명(19.5%)이 골랐습니다. 가장 저렴한 트림인 스마트(1385만원)를 고른 구매자는 10명 중 1명(9.2%)에 불과했습니다.

또 구매자 10명 중 6명 이상(64.9%)이 일반 엔진보다 더 비싼 터보 사양을 선택했습니다.

20대 아닌 30~50대가 많이 샀다
공간활용성을 향상한 레이(위)와 캐스퍼 [사진출처=기아, 현대차]
경차는 20대가 생애 첫차로 산다는 굴레에서도 벗어났습니다.

국토교통부 통계를 사용하는 카이즈유 데이터연구소를 통해 지난해 1~10월 연령별·성별 개인 구매자 현황을 분석한 결과에서 알 수 있습니다.

캐스퍼는 30~50대에 인기가 많았습니다. 30대가 28.3%, 40대가 25.7%, 50대가 21.2%로 그 뒤를 이었습니다. 20대는 11.5%에 그쳤습니다. 60대는 11.1%로 나왔습니다.

성별로는 남성이 48.1%, 여성이 51.9%로 거의 반반이었습니다.

다른 경차도 40~50대가 큰손으로 나왔습니다. 20대는 경차를 선호하지 않았죠.

모닝을 가장 많이 구입한 연령대는 50대로 34.1%에 달했습니다. 20대는 6%에 불과했습니다. 레이의 경우 40대는 34.4%, 20대는 6.5%로 나왔죠.

스파크도 비슷했습니다. 50대가 가장 많이 구입한 반면 20대는 가장 적게 샀습니다. 구매비중은 각각 31%와 6.7%로 조사됐죠.

돈 없는 20대가 싼 맛에 생애 첫차로 경차를 산다는 인식은 틀린 셈이죠.

싼차라고 목숨까지 싸게 여기진 말아야
신구 모닝 비교 [사진출처=기아]
기아가 이달 내놓은 더뉴 모닝도 기존 모델보다 95만~115만원 오르면서 20대가 생애첫차로 사는 데 가격이 너무 비싸졌다는 비난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캐스퍼와 레이에 이어 2000만원에 육박했기 때문이죠.

하지만 전례를 볼 때 상대적으로 싼맛에 살 수 있는 저가 트림보다는 중간 이상 트림이 인기를 끌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분명한 것은 이제 싼맛에 어쩔 수 없이 경차를 사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가격이 아니라 필요에 따라 사는 시대입니다.

경제력을 갖춘 사람들도 경차를 삽니다. TV프로그램 ‘나혼자산다’에 나온 배우 경수진도 레이를 탑니다. 경차가 차량 크기에 따라 사람까지 차별하는 ‘자동차 카스트’를 파괴한 셈입니다.

물론 경차 미래가 밝은 것은 아닙니다. 시장 규모가 매년 쪼그라들고 있어서죠.

국토교통부 통계를 사용하는 카이즈유 데이터연구소에 따르면 경차 판매대수는 2012년 20만4158대, 2014년 18만9144대, 2016년 17만3559대, 2018년 12만9321대로 감소세를 기록했습니다.

2020년에는 10만대 아래로 떨어졌습니다. 지난해에는 13만4294대로 다시 늘었지만 올들어 다시 줄었습니다. 올 상반기 판매대수는 6만1586대로 전년동기(6만6627대)보다 7.6% 감소했습니다.

현재 판매되는 국산 경차는 3개 차종에 불과하기 때문에 꼴찌는 당연합니다.

차종이 더 다양해진 SUV, 경차의 장점인 유지비에서 경쟁이 되는 하이브리드와 전기차 등이 잇따라 나오니 3개 차종으로는 판매에 한계가 있습니다.

가격이 100만원 오른 신형 모닝 [사진출처=기아]
하지만 개별 차종별로 보면 여전히 존재가치를 입증하고 있습니다.

기아 레이는 2만5816대 팔리면서 국산차 톱10에 포함됐습니다. 51개 차종(쉐보레 포함) 중 9위입니다.

현대 캐스퍼는 2만1064대로 13위, 기아 모닝은 1만2977대로 21위를 기록했습니다. 게다가 레이는 전년동기보다 16.3% 판매가 늘었습니다.

경차 수요가 감소했지만 여전히 존재이유는 충분합니다. 다른 차종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유지비도 저렴하며 주차난 해소에도 기여합니다. 작지만 큰 역할을 담당합니다.

물론 경차 가격 저항에도 일리가 있습니다. 또 가격이 싸다고 목숨마저 싸게 여겨서는 안됩니다.

경차가 자동차 카스트를 깨고 있는 것처럼 안전에 ‘차별’을 두지 않는 제품 구성이 필요합니다.

안전사양은 되도록 기본화하고 편의사양은 가능한 선택할 수 있도록 구성하면 어떨까요. 소비자가 원하는 편의사양을 지금보다 더 자유롭게 고르게 하면 가격 인하 효과도 발생할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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