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지역 차등’ 재점화…日에선 임금 많이 올린 곳 고용의 질 악화

세종=손덕호 기자 2023. 7. 9. 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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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울산 임금이 100일 때 강원·대구 75, 제주 71
대기업 밀집 지역 아니면 임금 수준 낮지만 최저임금은 같아
지역별 차등 두는 日에선 최저임금 오른 지역
정규직 고용 대폭 축소·비정규직 고용 소폭 증가

노동계가 내년 최저임금으로 올해(9620원)보다 25% 오른 1만2000원을 주장하고 있는 가운데, 경영계와 정치권에서는 최저임금을 지역별로 차등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다시 나오고 있다. 지역별로 처한 여건이 다르니 최저임금도 다르게 적용해서 임금 인상이 경제에 미치는 타격을 줄이자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최저임금을 지역별로 다르게 적용하는 일본에서는 임금을 빠르게 올린 곳은 고용의 질이 악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5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 연 '총파업 승리 결의대회'에서 참가자들이 최저임금 인상을 촉구하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최저임금을 지역별로 차등을 둬 적용해야 한다는 논의는 지난달 국회 부의장인 정우택 국민의힘 의원이 최저임금법 개정안을 발의하면서 불거졌다. 현재 최저임금은 업종별로만 다르게 적용할 수 있지만, 지역별로도 구분할 수 있도록 추가하는 내용이다.

정 의원은 법안 제안 이유에서 “지역별 인력 수급 구조의 차이는 평균 임금 수준에 차이를 가져온다”며 “고용노동부 사업체 노동력조사(임금 부가조사)결과 2022년 기준 서울시와 울산시의 임금 수준(100%)을 기준으로 충북은 82%, 강원·대구는 75%, 제주 71%로 나타나는 등 수도권이나 대기업이 조업 중인 일부 지역을 제외하면 임금 수준이 20% 이상 낮다”고 했다.

지방에는 최저임금을 제대로 주지 못하는 사업주도 많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에 따르면 2022년 법정 최저임금이었던 시급 9160원을 받지 못한 근로자는 275만6000명으로, 전체 근로자의 12.7%를 차지했다. 전경련이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자영업자들은 현행 최저임금 제도의 가장 시급한 개선 과제로 ‘경제상황 등을 고려한 최저임금 인상률 제한’(28.2%)을 꼽았고, 이어 ‘업종별·지역별 차등 적용’(26.2%)을 들었다.

최저임금을 지역별로 차등 적용하자는 제안은 지난 정부에서도 나왔다. 문재인 정부가 소득주도성장 정책으로 최저임금을 급격하게 올렸던 2018년 10월, 김동연 당시 경제부총리(현 경기지사)는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최저임금의) 지역별 차별화에 대해 고용노동부와 저희(기획재정부)가 내부 검토하고 있다”며 “최저임금 인상 폭으로 일정한 밴드(범위)를 주고 지방(지자체)에 결정권을 주는 것도 아이디어 차원에서 살펴보고 있다”고 했다. 이에 대해 당시 더불어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는 “할 수만 있으면 해도 좋다고 생각한다”며 “그러나 현실적으로 우리나라에서는 (다른 나라보다 땅이 좁아) 쉽지 않다”고 했다.

근로자위원인 류기섭 한국노총 사무총장(가운데)과 박희은 민주노총 부위원장(오른쪽)이 4일 오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최저임금위원회 회의실에서 열린 제10차 전원회의에서 최저임금 1만2000원 동의서가 담긴 서명지를 박준식 위원장에게 전달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저임금을 지역별로 차등을 둘 수 있다는 발언이 나온 후 관련 연구가 진행됐다. 이소현 주일한국대사관 선임연구원은 2020년 12월 펴낸 ‘최저임금의 지역별 차등화가 성별 고용형태에 미치는 영향’ 논문에서 한국과 유사한 노동시장 구조를 갖추고 있으면서 지역·업종별로 차등화된 최저임금 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일본을 분석했다.

일본은 임금의 하한선을 정하는 지역별 최저임금과 특정 산업의 노동조건을 반영하는 산업별 최저임금을 정한다. 두 가지의 최저임금이 동시에 적용되는 경우, 사용자는 높은 쪽의 임금을 지불해야 한다. 이 연구원에 따르면 일본은 최저임금을 결정할 때 지역별 기업 경영과 소득, 소비 지표를 반영하도록 한다. 이 때문에 기업이 집중돼 있고 근로자 소득이 높은 수도권과 지방 대도시의 최저임금 인상률이 그렇지 않은 곳보다 높고, 지역간 임금격차가 점차 확대되고 있다.

현재 도쿄의 최저임금은 시급 1072엔이지만, 아오모리·아키타·나가사키·가고시마·오키나와 등 10개 현은 853엔이다. 도쿄 최저임금이 오키나와보다 25.7% 높다. 전국 평균은 961엔이다. 인상률도 다르다. 돗토리현은 최저임금이 1년 새 821엔에서 854엔으로 4.0% 인상됐지만, 도쿄는 1041엔에서 1072엔으로 3.0% 올랐다.

이 연구원이 2012년, 2016년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 일본에서는 주변 지역보다 최저임금이 빠르게 인상되는 지역에서는 비정규직이 늘며 고용의 질이 전반적으로 하락했다. 그러면서 “지역 최저임금 인상이 정규직 고용을 대폭 축소시키고 비정규직 고용을 소폭 증가시켜 전반적인 고용의 질을 악화시킬 수 있다”고 분석했다.

노동계는 반대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정 의원의 최저임금 차등 적용 법안에 대해 “중소·영세 자영업자와 기업의 애로를 들먹이며 이미 사문화된 업종별 차등 적용을 주장하는 것도 모자라 한발 더 나아갔다”며 “최저임금 제도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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