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슈퍼팀’ 합류한 최준용, 우승청부사가 될 수 있을까?
원소속팀 SK와 최준용은 FA 협상에서 일찌감치 평행선을 그렸다. 원주 DB와 서울 삼성이 최준용 영입에 뛰어들었다. 보상금에 대한 부담이 커 사인&트레이드가 논의되고 있던 가운데, KCC가 후발주자로 영입 경쟁에 가담했다. DB, 삼성과 달리 KCC는 온전히 FA 협상이었다. 보상금을 최대 11억 원 지불하더라도 최준용을 영입하겠다는 의지가 확고했다. 아무도 예상치 못한 전개였다. KCC는 지난해 허웅, 이승현을 영입하는 과정에서 이미 거액을 투자한 터였다. 또한 오는 11월 송교창도 전역한다. 최준용의 선택에 의해 KCC는 ‘슈퍼팀’으로 거듭났다.
“DB, 삼성도 적극적이었어요. 돈이 평가의 기준이 된다는 게 조금 그렇긴 하지만, 제 가치를 잘 평가해주셔서 고마웠죠. 결국 KCC를 택해 죄송한 마음도 있어요. KCC를 선택한 이유는 솔깃했기 때문이에요. 제 방향성과 가장 적합한 팀이었어요. 저는 우승도 하고 싶고, 제가 좋아하는 선수들과도 같이 뛰고 싶었어요. (라)건아, (이)승현이 형에 (송)교창이까지 있는 팀이잖아요. 제가 좋아할 뿐만 아니라 농구 잘한다고 인정받는 선수들이기도 하죠. 좋은 조건이 주어진 것 같아요. 미국 도전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생각해주셨고요. 종합적으로 잘 맞아서 고민없이 KCC를 택했어요. 사인 전 (허)웅이 형에게 전화가 왔어요. 유혹하는 게 아니라 그냥 ‘올 거야, 말 거야? 안 오면 죽여버린다’라고 하더라고요. 가족들은 다 놀랐죠. 제가 원래 가족들이랑 농구와 관련된 얘기를 해본 적이 없어요. 그걸 싫어해서 부모님도 농구 얘기를 먼저 안 꺼내시고요. 집에 제가 농구하는 사진이 하나도 없을 정도죠. 주위 반응이 재밌더라고요. 기자님도 제가 KCC 갈 거라곤 상상 못 하셨잖아요. 왜 갔냐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저는 남들과 똑같이 결정하지 않는 사람이니까요.”
최준용은 연세대 재학 시절 동료였던 허웅과 재회했다. 이대성, 라건아와의 브로맨스가 워낙 유명해 상대적으로 주목을 덜 받았지만, 허웅 역시 최준용이 두터운 친분을 유지하고 있는 선수 가운데 1명이었다. 사실 최준용이 당초 바랐던 건 허웅이 아닌 허훈과의 재회였다. 최준용은 이에 대해서도 허심탄회하게 비화를 전했다.
“웅이 형은 오라고 해놓고 막상 사인하니까 ‘그냥 삼성이나 DB 가지 왜 왔냐. 돈 많이 받고 꺼져. 너랑 (이)대성이 형은 도대체 왜 그러는 거야?’라고 했어요(웃음). (허)훈이와는 FA 기간에 가장 많이 연락했어요. 솔직히 말하면 아쉬웠죠. 저는 KT 가고 싶은 욕심이 있었거든요. 예전부터 훈이에게 KT와 관련된 얘기도 종종 했어요. ‘만약 내가 SK 나가게 되면 네가 SK로 와’라고 한 적도 있었고요. 개인적으로는 훈이, (하)윤기랑 뛰어보고 싶었는데 안 됐죠. 별다른 얘기도 없었고요. 이제 KCC가 훈이 데려오면 돼요. 다 데려와야죠(웃음). 형제들이랑은 농구를 대하는 열정이 잘 맞아요. 저는 농구에 대한 열정이 차이가 나는 사람이랑 안 맞거든요. 특히 (최)성원(KGC)이랑 진짜 안 맞아요. 3주째 우리 집에서 살고 있는데도 안 맞아요. (최성원은 최준용 덕분에 성격이 많이 바뀌었다고 하던데?) 저 만나고 진짜 많이 바뀌었죠. 예전에는 조용하고 착했는데 요새는 돈 많이 벌었다고 나대더라고요. 차도 바꾸고…. 물론 기량도 너무 좋아졌죠. 제가 도와준 건 없어요. 그냥 시간을 같이 보냈을 뿐 성원이 스스로 해낸 거죠. 도와준다고 해도 본인이 노력 안 하면 안 되는 거잖아요. 노력한 만큼 가치를 인정받은 것 같아요. KGC에서 더 성장할 것 같아요. 나중에 성원이가 최대어 되면 좋겠어요. (허형제와 함께 방송에 나와도 재밌을 것 같은데?)저는 방송 나가는 걸 별로 안 좋아해서요. 성공하고 나가야죠. (이미 성공한 것 같은데 성공의 기준은?) 딱히 정해둔 건 없지만 농구인들, 팬들 모두에게 인정받아야죠. MVP 한 번 받았다고, 우승 몇 번 했다고 인정받은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성공에 대한 제 욕구를 채우려면 한참 멀었어요. 방송은 이루고 싶은 거 다 이루고 나가고 싶어요.”
OVER TIME_벤치 옆에서 지켜본 연장전
SK와 KGC가 치른 지난 시즌 챔피언결정전은 KBL 역사상 손꼽히는 혈투였다. 역대 4번째이자 2008-2009시즌 이후 14년 만에 7차전이 성사됐고, 7차전이 연장전까지 돌입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하지만 최준용의 복귀는 끝내 무산됐다. 최준용은 벤치 옆에서 D리그 멤버들과 함께 경기를 지켜봐야 했고, 데뷔 후 첫 준우승을 맛봤다.
“준우승은 물론 아쉽죠. 무엇보다 동료들에게 미안했어요. 제가 뛰었으면 무조건 우승했을 거예요. 지금 생각해도 아쉽네요. 커리어에 우승을 추가 할 수 있는 기회였지만 어쩔 수 없었어요. 벤치 옆에 서 있는 게 힘들더라고요. 팬들의 시선, 뛰고 싶은 욕구, 동료들이 나 없이 뛰고 있는 모습을 지켜만 봐야 한다는 것 등등 모든 게 다요. 표정 관리도 안 되더라고요. 그래도 성원이가 너무 잘했잖아요. 그걸로 만족해요. 솔직히 7차전이 연장까지 갔는데 기억이 생생하진 않아요. 저 스스로 너무 산만했던 터라 디테일한 부분은 기억이 안 나요. 경기 자체가 재밌었던 건 맞죠. 제가 뛰었으면 이전 시즌 통합우승할 때처럼 재미없게 끝났을 거예요.”
INJURY_“저도 너무 답답했어요”
2월 11일 대구 한국가스공사와의 홈경기는 최준용이 SK 소속으로 치른 마지막 경기였다. 아무도 예상치 못한 결말이었다. 경기 종료 직전 발바닥 부상을 입은 최준용은 빠르면 1개월 내에 복귀할 거란 전망과 달리 끝내 복귀전을 치르지 못한 채 SK를 떠났다. 플레이오프에서 복귀 가능성이 높게 점쳐져 최준용의 회복세를 두고 다양한 추측이 나왔던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현재 최준용의 몸 상태는 어떨까.
“다친 줄도 몰랐어요. 다음날 운동하러 나갔는데 이상하게 아프더라고요. 애매하게 아파서 타박상인 줄 알았어요. 십자인대 다쳤을 땐 통증이 100이었다면, 점점 10씩 줄어서 복귀했던 거예요. 발바닥은 통증의 강도가 10이라면 6 정도로 아팠는데 그 상태가 계속 이어졌죠. 저도 너무 답답했어요. 나아질 기미가 안 보였으니까요. 1개월 정도 쉬고 D리그 선수들이랑 훈련하니까 또 아팠어요. 며칠 쉬다 또 D리그 선수들이랑 훈련해봤는데 또 아프고…. 이 과정을 몇 번 반복한 게 욕심이었어요. 그냥 푹 쉬었어야 했던 것 같아요. 지금은 괜찮아요. 몸을 만들고 있는 단계이긴 한데 아픈 건 없어요. 다 나았다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이곳은 이제 제 체육관입니다.”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열린 2016 신인 드래프트에서 2순위로 선발된 후 최준용이 남긴 한마디였다. 최준용은 그렇게 연을 맺은 SK에서 7시즌을 치렀다. 부상으로 시즌아웃되기도, 정규리그 MVP로 선정되기도 하는 등 희로애락을 함께한 팀이었다. 비록 떠나게 됐지만, 최준용은 “지금도 너무 좋아하는 팀이에요”라며 SK에서의 추억을 돌아봤다.
“잠실은 제 농구 인생에서 많은 추억이 담긴 곳이죠. SK는 지금도 너무 좋아하는 팀이에요. 어릴 때부터 좋아한 팀이었고 아직도 그리워요. KCC와 계약 후 집에 혼자 있는데 기분이 많이 이상하더라고요. 밖에서 마주친 사람들도 계속 ‘SK 최준용 선수’라고 불렀죠. 저는 SK 선수라는 자부심이 컸어요. 또 모르죠. 제가 5년 뒤 다시 SK에 갈 수도 있는 거고요. 아무도 모르는 일이잖아요. 물론 SK가 원해야 돌아갈 수 있겠죠. (원정선수로 전주 갈 때 느낌은 어땠나요?) 너무 멀어서 별로 안 좋았어요(웃음). 2020년 2월 2일 전주 원정경기에서 다쳤던 것도 기억나요. 전주 경기라 해도 컨디션은 평소와 똑같았어요. 늘 안 좋았죠. 시즌 치르다 컨디션이 100%인 날은 솔직히 한두 번이에요. 매 경기 100%를 만들고 싶긴 한데 그건 욕심이죠. 70~80%의 컨디션을 유지하며 시즌을 치른다고 보면 될 것 같아요. 관중은 SK가 제일 많긴 했죠. 세련되고 분위기도 좋잖아요. 서울이다 보니 다양한 층의 팬들이 오는데 이건 장점이자 단점인 것 같아요. 골수팬은 지방에 비해 적다 보니 가끔 홈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KCC나 DB, LG 홈경기는 느낌이 다르죠. 우리 선수 쓰러지면 관중들이 죽일 기세로 상대 욕하잖아요. 그런 게 부러웠어요. 이제 KCC 팬들이 절 지켜주시겠죠.”
UNTOUCHABLE_최준용이 꼽는 언터처블
최준용은 극적인 부활 스토리를 쓴 2021년 12월호 커버스토리에서 선수로 꿈꾸고 있는 궁극적인 목표에 대해 말한 바 있다. “다른 선수들이 봤을 때 ‘와, 쟤한테는 안 되겠다’ 할 수 있는 레벨의 선수가 되고 싶어요. NBA 선수들이 케빈 듀란트 바라보는 것처럼 같은 선수라도 더 높이 있다는 게 느껴지는 존재 있잖아요. 연예인을 예로 들면 GD가 연예인의 연예인이잖아요. ‘농구계의 GD를 꿈꾼다’ 이렇게 쓰진 마시고요.” 당시 최준용이 남긴 목표였다. 이후 정규리그 MVP를 받는 등 한 단계 더 성장했지만, 최준용의 목표는 변함이 없었다.
“목표는 여전해요. 다른 선수들이 ‘와, 쟤한테는 안 되겠다’라고 생각하게 되는 레벨이 되고 싶어요. KCC가 원래 전력이 좋은 팀이긴 했지만, 제가 오면서 우승 후보가 됐잖아요. ‘쟤네 팀은 못 이기겠다’라고 생각하게 만들어야죠. 이타적인 선수가 많은 팀이라 재밌을 것 같아요. 제가 생각하는 KBL의 언터처블은 피트 마이클(전 오리온스)이었어요. 어릴 때 보며 ‘왜 한국선수들은 저렇게 공격 안 하지?’란 생각도 했죠. 한국선수 중에는 김승현, 서장훈, 김주성이 대단해 보였어요. 저도 크면 그들처럼 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NBA에서는 여전히 듀란트를 비롯해 모든 선수를 좋아해요. 쿤보(야니스 아데토쿤보)만 싫어해요. 너무 사기잖아요. (르브론도 사기 아닌가요?) 르브론은 그래도 센스도 있고, 느낌 있게 농구를 하는데 쿤보는 그냥 몸을 갖다 박는데 다 되잖아요. 그게 실력이긴 한데 얄미워요. 물론 실제로 보고 싶긴 해요.”
최준용의 목표 가운데 하나는 미국 무대 도전이다. SK에 있을 때도 여러 루트에 대해 알아봤지만, 결국 뜻을 이루진 못했다. KCC는 최준용의 꿈을 존중해주기로 했다. 전창진 감독 역시 공식 인터뷰를 통해 “설령 우승을 못 한다 해도 미국 도전을 도와주겠다”라는 의사를 밝혔다.
“대학 때도 미국에 가는 것에 대해 알아보긴 했어요. 문화적으로 안 좋게 생각한 부분이 많았거든요. 농구 원로, 주변 사람들이 말려서 못 갔는데 그걸 뿌리치고 나갔어야 했어요. 아직도 후회하고 있지만, 이제 더 후회하지 않아야죠. SK 있을 때도 알아보긴 했는데 뭔가 안 맞는 부분이 있었어요. (NBA를 목표로 하는 건 당연히 최고의 리그이기 때문이겠죠?) 제가 꼭 NBA에서 뛰고, 돈을 많이 벌겠다는 건 아니에요. 솔직히 말하면 도전해도 진출 못 하는 게 당연한 거잖아요. 그래도 도전하다 보면 벽을 제대로 느낄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런 과정을 통해 성장할 수 있고, 그러다 보면 나중에 더 무서운 선수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이)현중이는 이미 많이 성장했지만, 더 성장할 거예요. 가능성이 무궁무진해서 무조건 NBA에 갈 것 같아요. 대성이 형도 여전히 다수의 의견을 따르지 않고 자기만의 선택을 했잖아요. 멋있는 것 같아요. 이현중, 이대성은 한국에 있는 모든 농구선수들에게 영감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이에요. 우리나라에 없었던 길을 걸어가고 있잖아요. 어린 선수들에게 롤모델이 될 것 같아요. 저뿐만 아니라 많은 선수도 멋있다고 생각할 거예요. (실제로 NBA를 보러 간 적도 있나요?) 제가 안 뛰어서 그런가 지루하더라고요. 시카고랑 댈러스 경기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3쿼터부터 잤어요. 물론 ‘내가 뛰었으면 저렇게 안 했는데’라며 감정이입은 되더라고요. 댓글러들의 마음을 알게 됐어요. (빠르면 내년에 바로 미국에 도전할 수도 있나요?) 만약 우승한다면 바로 나가야죠. 가방 하나 메고 도망가려고요. 죽으러 가는 거죠(웃음).”
최준용은 코트에서 팔방미인이지만, 인터뷰에서는 거침이 없다. 승부욕이 강해 종종 상대와 신경전을 펼치기도 한다. 흔히 말하는 ‘센캐’다. 이로 인해 팬들 사이에서는 호불호가 갈리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하다. 최준용 역시 자신을 향한 시선에 대해 잘 알고 있지만, 팬들을 대하는 자세는 진심이었다.
“남들의 시선에 대해선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제 인생을 살아갈 뿐이에요. 제 사람들만 챙기면 돼요. 남들 신경 쓰다 내 것을 놓치는 바보가 되는 건 싫어요. 이제 KCC 팬들도 SK 팬들이 왜 저를 좋아했는지 알게 될 거예요. 물론 SK 팬들은 이제 저를 싫어하겠죠. 승부의 세계니까 그건 어쩔 수 없어요. 이기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소시오패스가 되어야죠. (그래도 팬들을 대할 때 진심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건 초심을 잃었을지 몰라도 농구, 팬들에 대한 마음은 안 잃었다고 생각해요. 어디를 가든 대우받고, ‘SK 최준용 선수’라고 하면 사람들이 좋아하고, 좋은 옷 입고, 좋은 차 타고, 좋은 집 사는 것의 지분은 팬이 80~90%라고 생각해요. 물론 SK에서 잘 대우해준 것도 있지만, 제 기준에서는 그래요. 아무도 안 좋아하고 응원도 안 하고 저를 보러 안 온다면 구단이 저에게 돈을 줄 이유도, 데리고 있을 이유도 없는 거잖아요. 거짓이나 과장 없이 모든 것은 팬들 덕분이라고 생각해요.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경기 끝나고 사진, 사인 요청하는 팬이 100명 넘게 있으면 저도 귀찮을 때가 있어요. 사람이니까요. 져서 기분 나쁘면 그냥 버스 타고 싶을 때도 있고요. 그래도 항상 이기면 기쁘니까, 지면 미안해서라도 해드려야 한다고 마인드 컨트롤해요. 오지랖, 주접일 수 있지만 팬들이 인지해주셨으면 하는 부분도 있어요. 선수들도 성향, 기준, 루틴이 있잖아요. 사인이나 사인 요청 안 들어주는 선수들이 나쁘다는 얘기는 절대 아니에요. 깜빡할 수도, 개인 사정이 있을 수도 있는 거니 팬들이 나쁘게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해요. 제가 본 KBL 선수 중 팬들에게 못하는 선수는 1명도 없어요. 다른 종목에서 팬 관련 논란 나오는 거 보면서 ‘어떻게 저럴 수 있지?’ 싶었으니까요. 만약 선수에 대한 서운함이 있었다면 개인 사정이라 생각해주시고, 그래도 서운한 게 안 풀린다 싶으면 이제부터 KCC로 오시면 됩니다.”
ORANGE BALL_햄버거와 함께 시작된 농구 인생
최준용은 어릴 때부터 승부욕이 강한 아이였다. 농구뿐만 아니라 게임도 지고는 못 살았다고 한다. “농구를 안 했어도 뭐든 성공했을 것 같아요”라는 게 최준용의 설명이다. 승부욕 강했던 초등학생 최준용이 농구에 빠져들게 된 계기는 의외로 단순했다. 햄버거와 아파트. 최준용 의 농구 인생은 그렇게 시작됐다.
“5학년 겨울방학 끝날 때쯤이었어요. 원래 농구를 좋아해서 재밌게 하고 있는데 이상한 아저씨가 햄버거 주면서 농구 하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다음부터는 매일 햄버거랑 용돈을 주셨어요. 할머니랑 살 때였고, 돈도 뭐도 아무것도 없으니까 혹했죠. ‘저 사람 뭐지?’ 싶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어디 농구팀 감독이었어요. 농구 하면 아파트에서 살 수 있다고 해서 그날 바로 농구부 들어갔어요. 할머니, 엄마, 아빠한테 얘기도 안 했어요. 저 납치된 줄 알고 집은 난리 났었죠. 막상 들어가 보니 아파트 옷방 같은 곳에 이불 하나만 깔아주더라고요. 그렇게 농구를 시작했죠. 키는 그렇게 크지 않았어요. 중3 때부터 많이 자라더라고요. (농구를 안 했다면 지금쯤 뭘 하고 있을까요?) 뭐든 성공했을 것 같아요. 느낌이 그래요. 저는 어릴 때부터 놀 때, 게임 할 때, 싸울 때 다 이겼거든요. 학교에서 저한테 조금만 뭐라고 하면 다 때렸어요. 엄마, 아빠가 그랬어요. 세 번까지 참아도 안 되면 갈기라고요. 어릴 때 집안 형편이 어려워서 할머니랑 둘이 살았거든요. 전학 가니까 애들이 거지라고 놀리더라고요. 한 번, 두 번, 세 번 참은 다음 다 갈겼어요. (농구 하길 잘했다는 생각도, 후회된다는 생각도 해봤을 것 같은데?) 한 번도 후회하거나 흥미를 잃어본 적이 없어요. 처음부터 지금까지 농구를 잘했다는 생각만 하고 있어요. 나중에 아들이나 딸이 농구 하고 싶다면 시키려고요. 자기가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아야죠.”
최준용은 KBL 데뷔 시절부터 함께 해왔던 자밀 워니와의 이별에 대해선 아쉬워했지만, 이별은 곧 또 다른 만남을 기약하는 법이었다. KCC에서는 ‘인생의 첫 외국인 친구’라 표현한 라건아와 만나게 됐다. 지난 시즌 KCC가 기대에 못 미친 성적에 그치자, 라건아에 대해서도 전성기와 비교해 박한 평가가 뒤따랐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최준용은 반문했다. 이어 “결과론이라고 생각해요. 지금도 충분히 무서운 선수예요”라며 라건아의 부활을 자신했다.
“워니와는 매일 연락해요. 저랑 성원이 다 나가서 많이 아쉬워하고 있어요. 계약하기 전 장문의 문자도 왔었죠. 같이 더 하자고, 1년만 더 해보자고요. 워니는 국내선수 FA 시스템을 모르잖아요. 저도 1년만 할 수 있으면 했을 것 같아요. 워니는 제 단짝이자 가족이기 때문에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었어요. 아쉽지만 KCC에도 제 가족이 있잖아요. 인생의 첫 외국인 친구이자 외국인 가족. 건아는 KCC 갈 거라고 하니까 안 믿더라고요. 대성이 형과 마찬가지로 건아도 대표팀에서 친해졌고, 지금은 진짜 가족이에요. (공식 기자회견에서 라건아를 모두가 무서워했던 리카르도 라틀리프 시절처럼 만들겠다고 했습니다. 지난 시즌 라건아의 경기력은 전성기에 못 미친다는 평가도 있었는데?) 그건 결과론이라고 생각해요. 건아는 지금도 충분히 무서운 선수지만 성적을 못 냈기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거예요. 워니가 엄청 뚱뚱했는데 우승했다면 ‘벌크업했다’라는 말이 나왔을 거예요. 스펠맨은 지난 시즌에 더 뚱뚱했어요. 근데 결과를 만들어냈잖아요. 건아도 성적으로 보여주면 돼요. 물론 KCC에 국내선수의 부상 이슈, 교창이의 입대, 외국선수 이슈가 있긴 했죠. 사생활도 중요하고요. 외국선수들은 친구가 없잖아요. 그래서 항상 외로워 보였어요. 저도 외로웠고요. 외로움을 채워주는 동료가 있으면 그게 농구로도 나와요. 물론 건아도 집에 가족들이 있지만, 그걸로는 한계가 있거든요. 같이 경기 뛰는 건 선수들이잖아요. 선수들과의 마음, 사생활적인 부분도 잘 맞아야 해요. 감독님과 오해도 있었고요. 제가 중간에서 그런 부분들을 잘 풀어주면서 농구만 할 수 있게 만들어주면 될 것 같아요. 건아는 이미 완성됐고 증명된 선수예요. 감히 저따위가 평가할 수 없는 선수라고 생각해요. 건아도 저한테 ‘이번에 우승 못 하면 무조건 나가겠다’라고 하더라고요.”
GOAL_최준용도, KCC도 너무도 우승을 원한다
KCC는 한때 KBL을 대표하는 명가였지만, 2010-2011시즌에 V5를 달성한 후 번번이 우승에 실패했다. 지난해 FA시장에서 이승현, 허웅을 영입하며 거액을 투자했던 KCC가 샐러리캡 포화 상태에서 최준용까지 영입하는 승부수를 띄운 이유다. 구단 내부에서 찬반 여론이 갈렸던 게 사실이지만, 결국 KCC는 우승을 위해 최준용에게도 큰돈을 투자했다. KCC와 최준용. 많은 관심을 모았던 이들의 만남은 해피엔딩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
“KCC로 온 후에도 목표는 똑같아요. 범접할 수 없는 선수가 되어야죠. 아직 한참 멀었는데 공격을 잘하는 게 그 기준은 아니에요. 저는 개인 기록만 챙기는 선수들을 너무 증오하거든요. 기록이 아니더라도 인정받을 수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어요. 보이는 게 다가 아니거든요. 함께 뛰는 선수, 상대팀 선수가 봤을 때 ‘쟤 때문에 저 팀에겐 안 된다’라는 생각을 갖게 만들어야 해요. 농구뿐만 아니라 인생에 있어서도 주위에 좋은 영향을 끼치고 싶어요. (KCC의 올 시즌 목표는 우승입니다) 물론 당연히 우승한다는 보장은 없어요. 할 수도, 못할 수도 있겠지만 우승을 위해 오늘 이 시간 이후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할 거예요. 의심하지도 않을 거고요. 이제 막 이적했지만 KCC는 저에 대해 알고 있는 선수가 많은 팀이에요.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이기려고요. 무조건 우승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죠.”
Copyright © 점프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