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을 조달하기 위해 지(池)를 팠을까? [이강웅의 수원화성이야기]

경기일보 2023. 7. 9.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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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의 중요 시설물 ‘남지·북지’ 복원 중
치수대책·흙 사용 위해 연못 조성설 허구
사실은 축성 부지 물 제거 위한 ‘저류지’
수원시가 남지와 북지를 복원 중이다. 사진은 북지 터.

 

수원특례시가 화성에서 매우 중요한 시설물을 복원 중이다. 남지와 북지다. 남지는 상남지와 하남지 2개로, 팔달문 안 남창의 남쪽에 있고 북지는 북동포루와 북포루 사이에 있다. 수원시민으로서 큰 기대를 하고 있다. 기대가 큰 만큼 복원에 철저해야 한다. 이하 ‘지’를 ‘연못’으로 표기하겠다.

화성에 지는 연못으로 남지 2개, 북지, 동지 2개로 모두 5개의 연못이 있다. 남지는 성 안의 물을 빼는 데 관련된 시설이고 북지는 남지와 반대로 성 밖의 물을 끌어들여 모아 두는 역할을 했다. 동지도 남지와 유사한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연못을 복원한다고 하니 바로 알려야 할 것이 있다. 일부 학자들이 “초기에 연못을 판 것은 치수 대책과 동시에 성을 쌓는 데 필요한 흙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주장이 정설로 가까이 가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먼저 의궤 ‘일시’ 기록에서 초기 일정을 분석하면 크게 3단계로 볼 수 있다. 1단계가 돌 뜨기, 현장조사, 측량 말뚝박기로 공사 준비 단계다. 다음 2단계로 북수문, 남수문, 개울치기, 상남지, 북지, 하동지 공사로 모두 물과 관련이 있는 공사다. 그 다음 3단계로 북성과 남성의 착수다. 초기 일정을 보면 치수 대책을 화성 건설의 최우선 과제로 삼은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것은 착시현상이다. 사실은 어떤 특정한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써 치수일 뿐이다. 특정한 목적이란 바로 3단계 공사인 북성과 남성의 착수다.

성역 초기 상남지, 북지, 하동지는 왜 팠을까.

2단계 공사, 특히 3개의 못을 파지 않으면 3단계인 성을 쌓는 공사가 불가능했다. 남지 인근 남성 터는 개울이 성을 통과해야 했다. 그리고 북지 인근 북성 밖은 항상 물이 고여 있는 저지대여서 물을 잡아두지 않으면 북성을 착수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렇기 때문에 상남지와 북지를 가장 먼저 판 것이다.

상남지를 끝낸 날이 4월1일이고 보름 후인 4월16일 남성을 착수했다. 북지를 끝낸 날이 4월4일이고 3일 후인 4월7일 북성을 착수했다. 이것이 우연일까? 아니다. 필수조건이며 정조의 당초 계획이었다. 모두 상남지와 북지 공사가 끝나기를 기다린 것이다. 치수를 위한 치수공사가 아니라 북성과 남성을 착수하기 위한 치수이고 선행공사인 것이다.

성역 초기에 연못을 판 것이 성을 쌓는 데 필요한 흙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라는 설은 허구다. 직접적 근거도 제시해 본다. 첫째, 공급에 맞는 일정이 아니다. 5개 연못 전체에서 나올 흙양의 3분의 2는 하남지와 상동지에서 나온다. 흙이 필요했다면 많은 양의 흙이 나오는 하남지와 상동지를 먼저 파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이 두 곳은 모든 성역이 거의 끝나는 시점에 팠다. 허구라는 첫 번째 근거다. 둘째, 소요되는 흙의 양과 맞지 않는다. 북성의 내탁에 필요한 흙은 5만4천㎥로 계산된다. 반면에 북지에서 나온 흙은 1천800㎥다. 북성에 필요한 양의 3% 정도다. 매우 적은 양이다.

북성은 북지가 끝난 3일 후에야 착수할 수 있었다.

셋째,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초기에 필요한 것은 흙이 아니었다. 의궤 ‘토품(土品)’에 남성과 북성은 “토질이 개흙과 같아서 땅을 6척을 파고 벽돌을 3중으로 깔았다”고 기록했다. 이로 미뤄 초기에는 실제 나쁜 토질을 벽돌로 채우는 치환공사와 기반을 보강하는 공사여서 흙이 아닌 모래, 자갈, 벽돌, 큰 성돌이 필요한 시기였다.

종합하면 소요되는 자재의 종류, 시기, 수량이 모두 맞지 않는다. 연못을 파고 나온 흙을 북성과 남성에서 사용했다는 연관성이 전혀 없다. 오히려 개울치기 준천으로 확보된 모래, 자갈, 돌은 그래도 유용하게 쓰였을 것이다. 종류와 시기가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결국 정조는 물을 제거하지 않으면 성 맡에 숨겨진 남은구, 북은구 공사를 할 수 없고 성 쌓기 공사를 시작할 수 없으므로 연못을 판 것이다. 이때 연못의 기능은 은구와 성 쌓기 공사를 위한 저류지 역할이다. 요즘 용어로 말하면 연못 공사는 크리티컬 패스(Critical Path)인 셈이다. 크리티컬 패스란 어느 한 공정(패스)이 지연되면 전체 공사가 그만큼 지연되는 여유 일정이 없는 주 공정을 의미한다.

화성 연못 계획에서 정조의 비상한 혜안과 의도를 엿보았다.

이럼에도 정조는 연못 공사에 또 다른 큰 의도를 갖고 있었다. 다름 아닌 막대한 공사용수의 확보다. 연못에 모여진 물을 용수로 사용한 것이 아니라 용수를 확보하기 위한 목적을 갖고 연못을 판 것이다. 그것도 지역에 맞춰 상남지, 북지, 하동지 3곳을, 소요량에 맞춰 필요한 크기로, 사용 시점에 맞춰 초기에 판 것이다. 공사량, 즉 공사용수 필요량과 연못의 체적이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지역, 규모, 시기를 정확히 계획하고 실행한 것이다. 상남지는 남성과 서성 일부를, 북지는 북성과 서성 일부를, 하동지는 동성에 필요한 용수를 담당했다. 공사 초기는 저류지가 목적이라면 공사 기간에는 저수지의 기능을 한 것이다.

예쁘기만 한 연못이 화성성역 전체에 미친 막대한 영향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3개 연못이 없었다면 화성은 없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도랑 치고 가재 잡는다”는 말은 화성의 연못과 준천을 위해 태어난 말이다. 이런 숨은 큰 의미를 지닌 남지와 북지가 의궤에 충실하게 잘 복원되길 기원한다. 크리티컬 패스를 정확히 파악한 상남지와 북지, 하동지, 개울치기에서 정조의 비상한 혜안과 의도를 엿보았다. 이외에도 더 중요한 다른 기능도 있다. 그리고 위아래로 연못을 2개씩 붙여 판 비밀도 있다. 관련 주제의 글을 기대하셔도 된다. 글·사진=이강웅 고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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