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 커피'에 당했다…판돈 6천만원 '내기 골프' 친 50대, 결과는?

김혜지 기자 2023. 7. 9. 06:0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사건의 재구성]조폭 친구 낀 일당 설계…영화 '타짜'처럼 역할 분담
1심 징역 2년→항소심 1년 감형…"피해자 합의 고려"
ⓒ News1 DB

(전주=뉴스1) 김혜지 기자 = 사업가 A씨(52)는 내기 골프에서 거금을 잃었다. 십년지기이자 충남 공주에서 조폭 생활을 하는 친구 B씨(52) 등 3명과 함께 친 내기 골프에서다. 그가 실제로 잃은 돈만 3000만원에 달한다. 일행에게 빌린 돈 2500만원까지 포함하면 총 5500만원이다.

돈도 있고 평소 골프 실력에 자신만만했던 A씨는 친구 B씨가 내기 골프를 제안했을 때 망설임 없이 수락했다. '쉽게 돈 좀 한번 따볼까'라는 생각도 있었다. 결과는 A씨 완패였다.

내기 골프였지만, 실제론 B씨 등 3명이 A씨를 이른바 '호구'로 잡고 수개월 전부터 치밀하게 설계한 '사기 골프'였다. 이들은 마치 영화 '타짜'처럼 호구 물색(피해자 섭외), 약사(약물 커피 제조), 금전 대여, 바람잡이 등 역할까지 나눠 범행을 꾸몄다. 틈틈이 A씨와 골프를 함께 치며 친분을 쌓는 치밀함까지 보였다.

사건은 2021년 4월8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A씨는 B씨 일당 3명과 이날 오전 7시께 전북 익산의 한 골프장에 만났다. A씨는 몸을 풀기 위해 퍼팅 연습을 했다.

그 사이 일당 중 C씨(56)는 식당에서 주문한 아이스 아메리카노에 마약의 일종인 로라제팜을 몰래 넣었다. 로라제팜은 신경 안정제로 항불안제와 예비 마취제 등으로 쓰이는 약물이다. 국내에서는 '의료용 마약류'로 분류돼 의사 처방이 있어야만 살 수 있다.

B씨는 약물이 섞인 커피를 A씨에게 건넸다. A씨는 아무 의심 없이 이를 마셨다.

커피를 먹은 뒤 라운딩에 나선 A씨는 머리가 어지럽고 다리가 휘청거렸다. 몸에 이상을 느낀 A씨는 "게임에서 빠지겠다"고 했다. 판돈 6000만원을 건 내기였기 때문에 이대로 가다간 질 게 뻔해서였다.

하지만 B씨는 "어렵게 숫자를 맞춰 멤버를 섭외했는데 빠지면 어떡하냐"며 "네 평균 타수가 80대 중반인데 그 정도 실력이면 걱정 안 해도 된다"고 A씨를 안심시켰다.

어쩔 수 없이 다시 골프채를 잡은 A씨는 중간중간 "도저히 못 칠 것 같다"며 게임 중단 의사를 내비쳤다. 그때마다 B씨 등은 얼음물과 진통제를 A씨에게 갖다 주며 게임을 이어가게 했다. "(오늘따라) 몸이 안 따라준다"며 분위기를 몰아갔다.

결국 A씨는 게임에서 졌고, 현금 3000만원을 B씨 일당에게 줬다. 게임 중간에 이들에게 빌린 2500만원은 나중에 주기로 약속했다.

지칠대로 지친 A씨는 게임이 끝난 뒤 낮 12시30분께 대리운전을 이용해 귀가했다. 곧바로 깊은 잠에 빠졌다.

오후 10시께 눈을 뜬 A씨는 오전에 골프장에서 있었던 일을 다시 생각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게임 결과가 납득이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튿날 병원까지 찾았지만, 의사는 "아무 증상도 없다"고 했다.

그러던 중 A씨는 문득 골프장에서 B씨가 건넨 커피가 수상하다고 생각했다. '누군가 약물을 탔다'고 의심한 A씨는 직접 경찰서를 방문해 소변 검사를 받았다. 예상은 들어맞았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분석 결과 A씨 소변에서 마약 성분이 검출됐다.

수사에 나선 경찰은 B씨 등이 처음부터 A씨를 범행 대상으로 삼고 돈을 가로챈 것으로 결론 지었다. 골프장 식당에서 C씨가 A씨가 마실 커피에 몰래 로라제팜을 넣는 장면이 찍힌 CCTV 영상이 결정적 단서가 됐다.

검찰은 사기와 마약류 관리법 위반 혐의로 B씨 등 3명을 기소했다.

1심을 맡은 전주지법 형사제2단독(부장판사 지윤섭)은 지난해 12월28일 "인적 신뢰 관계를 이용해 범행해 죄질이 나쁘다"며 이들에게 각각 징역 2년을 선고했다.

B씨 일당은 "형이 너무 무겁다"며 항소했다.

이에 전주지법 제3형사부(부장판사 이용희)는 지난 5월18일 "죄질이 나쁘다. 하지만 당심에 이르러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의사 표시를 했다"며 원심을 파기하고 각각 징역 1년으로 감형했다.

iamgee@news1.kr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