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상속세, 유산취득세로 바뀌면 46억~66억원 자산가 가장 이득
부의 대물림 고착화…세수도 최대 1조2000억 감소
10억원 이상 상속인들이 감면 세액의 80% 가져가
[주간경향] 상속세 과세체계가 지금의 유산세에서 유산취득세로 바뀌면 누가 이득을 볼까. 유산취득세 도입을 가정해 분석해보니 과세표준(과표) 30억~50억원 자산가들이 가장 큰 혜택을 보는 것으로 나타났다. 유산취득세가 도입되면 부의 대물림과 자산불평등 문제가 더욱 고착화할 것이란 지적은 꾸준히 제기돼왔다. 세수도 최대 1조2000억원 넘게 감소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특히 전체 상속인의 0.8%에 불과한 과표 10억원 이상 상속인들이 전체 감면 세액의 80%가량을 가져가는 것으로 나타났다. 유산취득세 도입을 가정해 과표 구간별 세율·세액과 전체 세수 등의 변동치를 분석한 결과가 공개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유산세와 유산취득세
현행 상속세 과세체계는 유산세 방식이다. 피상속인(사망자·재산을 물려주는 사람)이 남긴 재산 총액에 상속세를 매기는 방식이다. 유산취득세는 전체 유산에 대한 누진 과세가 아니라 상속인 개인의 취득분에만 매기는 것이다. 상속인이 많을수록 과표가 낮아져 세 부담이 줄어든다.
상속세는 기초·인적·물적 등 공제항목이 다양하다. 일괄 공제(5억원)와 배우자 공제(최소 5억원) 등이 있는데, 통상 상속재산 10억원까지는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 배우자에 대한 상속 재산 규모와 금융재산공제 등에 따라 공제액은 더 늘어날 수 있다. 각종 공제 후 매겨지는 상속세율은 과표 구간별로 1억원 이하에는 10%, 5억원 이하 20%, 10억원 이하 30%, 30억원 이하 40%, 30억원 초과 50%가 각각 적용된다. 최종 산출세액은 여기에 구간별로 0원, 1000만원, 6000만원, 1억6000만원, 4억6000만원 등의 누진공제액을 뺀 후 매겨진다.
시뮬레이션 결과 보니
지난 7월 6일 정의당 장혜영 의원이 국회예산정책처(예정처)에 의뢰해 분석한 유산취득세 시뮬레이션 자료 결과를 보면, 상속인이 다수일 때 세 부담은 확연히 낮아진다. 예를 들어 과표 기준 3억9200만원의 유산을 4명이 물려받는다고 가정할 때 현행 유산세 기준으로 최고세율이 20%가 적용돼 산출세액은 6840만원이 된다. 반면 유산취득세 기준으로는 과세 대상이 4명으로 나눠지면서 각각의 과표가 9800만원이 된다. 최고세율이 10%로 낮아지면서 4명의 총 세금은 3920만원에 그친다. 2920만원이 줄어드는 것이다.
2021년 상속세 과표의 평균적인 피상속인을 기준으로 했을 때 유산취득세 전환으로 세율하락 효과가 가장 큰 구간은 과표 10억원에서 100억원 사이다. 평균적인 공제액을 반영하면 실제 상속재산 규모는 19억~120억원 사이로 추정된다. 이 구간에서 실효세율은 상속인이 2명일 때 6.3~7.1%포인트, 상속인이 4명일 때 11.4~14.2%포인트만큼 각각 하락한다. 현행 유산세가 아닌 유산취득세를 적용했을 때 상대적으로 중간 과표구간에서 하락폭이 크고, 이에 따라 실제 세율이 낮아지면서 최종 산출세액도 그만큼 줄어든다는 것이다.
특히 세율상 가장 큰 이득을 보는 집단은 상속재산 46억~66억원(과표구간 기준 30억~50억원) 구간인 것으로 나타났다. 상속인이 4명일 때 (유산세 대비) 14.2%포인트가 하락해 과표구간별로 하락폭이 가장 컸다. 예를 들어 과표 37억8900만원을 4명이 상속받는 경우 유산세 방식에서 세액은 14억3450만원이지만, 유산취득세 방식에서 총 세액은 8억9680만원으로 5억3770만원(감면율 37.5%)을 덜 내게 된다. 반면 같은 4명이 상속을 받더라도 과표가 4800만원이면 감면액은 0원, 과표가 1억9300만원이면 감면액은 930만원(감면율 4.8%)에 그친다. 과표가 1728억100만원일 때 감면액은 13억8000만원으로 절대 감면액은 상당하지만, 감면율은 0.8%에 불과하다.
문제는 세수가 크게 줄어든다는 점이다. 2021년 기준 상속세 산출세액 추산치는 5조6707억원이다. 유산취득세를 도입했다고 가정한 후 모든 조건에서 상속인 수를 2명으로 본다면 총 상속세수는 5조328억원으로 6379억원(11.2%) 감소한다. 상속인이 3명이라면 4조6654억원으로 1조53억원(17.7%) 줄어든다. 상속인이 4명일 경우엔 4조4413억원으로 1조2294억원(21.7%)의 세수가 줄어드는 것으로 분석됐다. 2021년 기준에서 유산취득세를 도입했다면 상속세수가 많게는 1조2300억원가량 줄었을 것이란 의미다.
줄어든 세수 혜택은 소수의 과표 10억원 이상 구간 상속인이 대부분 가져가는 것으로 나타났다. 2021년 전체 피상속 건수 34만4184건 중 과표 10억원 이상 상속 건수는 2857건이다. 이들의 감면 추정액은 약 1조400억원이다. 유산취득세 전환 시 상위 0.83%에 해당하는 과표 10억원 이상 상속인들이 전체 감면 추정액의 83%가량을 가져가는 셈이다.
장혜영 의원은 “유산취득세 전환은 본질적으로 상위 1%의 부의 대물림을 편하게 하는 도구”라며 “재벌과 같은 최상층 자산가보다는 수십억대 자산가에게 체감 혜택이 큰 것으로 분석됐는데, 이는 고위 관료나 국회의원들이 큰 혜택을 누릴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이해상충 요소가 크다”고 말했다. 지난 3월 말 국회 공직자윤리위원회가 공개한 2022년 말 기준 국회의원 재산변동 사항에 따르면 500억원 이상 자산가를 제외한 국민의힘 의원의 평균 재산은 35억9764만원, 더불어민주당은 18억3967만원이었다. 윤석열 정부 1기 내각을 구성한 한덕수 국무총리와 18명의 국무위원의 재산 신고액은 평균 40억9027만원이었다. 장 의원은 “최근 자산양극화 심화와 경제 규모 확대에 따라 실제 감면액은 더 클 것으로 추정된다. 상속세 무력화는 그렇지 않아도 자산불평등이 심각한 대한민국을 사실상의 신분제 사회로 만들게 될 것”이라고 했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도 “피상속인 유산은 상속인에게는 불로소득이다. 여기에 대해 세금을 부과하는 것이 상속세인데, 이를 정부와 재계 등에서는 불공정하거나 과도한 세금으로 간주한다. 유산취득세를 도입하려면 우선 주식과 부동산 등으로 이득을 본 피상속인에 대한 과세를 먼저 하고 유산을 물려받은 상속인에게 유산취득세를 적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산취득세 도입, 어디까지 와 있나
윤석열 정부는 출범 전부터 유산취득세 도입 필요성을 강조해왔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는 2022년 4월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응능부담(납세자의 부담 능력에 맞게 과세하는 원칙) 원칙과 과세체계 합리화, 국제적 동향 등을 고려할 때 현행 상속세 제도를 유산취득세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각자가 물려받은 만큼만 세금을 내는 것이 원칙에 맞고, 상속세와 유사하면서 유산취득세 방식인 증여세와 과세체계를 맞출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상속세를 부과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23개 국가 중 한국과 미국 등 4개국은 유산세를, 나머지 독일과 프랑스, 일본 등 19개 국가는 유산취득세를 채택하고 있다.
유산취득세 도입은 상속세 부담 완화를 요구해온 재계의 숙원이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 6월 21일 정부와 국회에 전달한 ‘2023년 조세제도 개선 과제 건의서’의 골자도 상속세율 인하 및 과세 체계 개편이다. OECD 회원국 중 상속세 최고세율은 일본(55%)이 가장 높다. 이어 한국(50%), 프랑스(45%), 영국·미국(40%) 등 순으로 높다.
유산취득세 논의는 정부 출범 후 본격화됐다. 추 부총리는 지난해 7월 세제개편안을 발표하면서 “내년에 상속세를 유산세에서 유산취득세로 개편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기획재정부는 이후 9월 유산취득세 도입을 위한 연구 용역을 발주하고 법률·회계 분야 등 전문가들로 태스크포스(TF)를 꾸렸다.
최근엔 기류가 바뀌었다. 추 부총리는 지난 6월 8일 관훈클럽 초청토론회에서 “(지난) 5월 말께 마무리해서 올해 (7월) 세제개편안 때 발표하면 어떨까 고민했지만 조금 더 깊이 있게 보고 연구·논의할 필요성이 있겠다 싶어 올해 상속세 전반적 개편안을 국회에 제출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를 두고 여러 해석이 나온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부자 감세라는 비판 여론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에 따라 도입 시기를 늦추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올해 세수가 줄어드는 부분도 현실적인 부담으로 작용했을 수 있다. 국세 수입은 올해 들어 5월까지 1년 전과 비교해 36조원 이상 덜 걷혔다.
기재부 관계자는 “선진국 사례를 면밀히 검토할 시간이 필요하다. 프랑스와 독일이 유산취득세 운영에서 가장 앞서 있다 할 수 있는데, 영어권이 아니다 보니 분석 작업에 시간이 걸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유산취득세 도입 비판에 대해 “유산취득세 도입은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공정성의 문제다. 논의 과정에서 과표구간과 세율조정 등이 진행되겠지만, 중요한 것은 응능부담 원칙에 위배돼 있는 부분을 개선하자는 취지다. 드러난 문제들이 명확한데 부자 감세 프레임 때문에 한 발짝도 논의가 진전되지 못한다면 사회적 비용과 논란만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안광호 기자 ahn7874@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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