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로코 모더니즘 미술, 포스트식민지 추상화 실험[PADO]

김동규 PADO 편집장 2023. 7. 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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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하메드 차바, <구성(Composition)>, 1975, . Societe Generale Maroc (C) Chabaa Foundation


모로코 모더니즘 예술가 모하메드 멜레히(Mohamed Melehi)의 1969년 사진 속에는 전통 치마를 입고 무거운 자루를 머리에 이고 시장에서 일하는 여인이 있는데, 그녀는 마라케시의 메인 광장인 제마 엘 프나의 붉은 진흙 벽에 전시된 눈부시게 다채로운 추상화들 때문에 발걸음을 멈추게 된다. 이 즉흥적인 야외 갤러리에서 그녀는 그림을 보려고 목을 빼고 있는 다른 군중과 함께 서있다. 이들은 1956년 독립 이후 모로코 예술의 결정적인 순간이 되었던 실험적 전시회를 관람하는 관객들이며, 오늘날 이 전시는 글로벌사우스 모더니즘의 획기적 사건으로 여겨지고 있다.

2020년 83세의 나이에 코로나로 사망한 멜레히는 살롱에서 거리로 예술을 옮기는 것을 목표로 한 '플라스틱 프레젠스(Plastic Presence)' 운동을 이끈 아방가르드 예술가 중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이 운동은 카사블랑카의 대서양 연안에 줄지어 있는 하얀 회벽에서 계속되었다. 이 운동을 주도했던 작가들은 모두 1960년대 카사블랑카의 미술학교 '에콜 데 보자르'에서 교편을 잡았는데, 바로 이 미술학교가 테이트 세인트 아이브스에서 진행되고 있는 기획전의 주제이다. 대서양 연안도시라는 점, 그리고 영국 모더니즘의 중심지로서 가지는 역사성 때문에 세인트 아이브스는 이 기라성 같은 모로코 모더니스트들을 한 군데 모은 첫번째 미술관 전시회 장소로 아주 적합해 보인다. 전시회의 제목은 다음과 같다:《카사블랑카 미술학교: 포스트식민지 아방가르드를 위한 플랫폼과 패턴, 1962-1987》.

서로 다른 스타일의 예술가 세 명이 핵심인 "카사블랑카 트리오"를 구성하고 있으며 2016년 이래 테이트는 이들 모두의 작품을 소장해왔다. 1962년부터 1974년까지 카사블랑카 미술 학교('에콜 데 보자르')의 젊은 교장이었고 2014년에 사망한 파리드 벨카히아(Farid Belkahia)는 2021년 파리 퐁피두센터 회고전의 주인공이었다. 벨카히아는 파리와 프라하에서 수학하였으며 그의 초기 유화 작품들에는 우울한 색조의 <고문>(1961-62)이 포함되어 있다. <고문>은 인물이 족쇄에 채워진 채 고통스럽게 거꾸로 매달려 있는 모습을 그리는데, 이웃 알제리의 독립 운동에 대한 프랑스의 탄압에 분노를 표출한다.

파리드 벨카히아, , 1961 (C) Fondation Farid Belkahia


멜레히는 벨카히아의 정치적 연민을 공유했지만 표현방식은 차이가 있는데, 멜레히의 대조를 이루는 초기 추상화 실험은 그가 스페인과 이탈리아에서 미술을 공부한 후 록펠러 장학금을 받고 유학했던 뉴욕의 강렬한 영향을 엿볼 수 있다. 멜레히의 <미니애폴리스>(1963)는 노란색 띠로 구분된 검은색과 빨간색 영역으로 이루어진 아크릴 캔버스 작품인데, 멜레히 자신의 주요 작품 경향인 변화무쌍한 물결 패턴이 등장하기 전 제작했던 바넷 뉴먼(Barnett Newman)의 색면 회화에 대한 오마주이다. 2019년 런던의 모자이크룸에서 열린 멜레히의 기억할만한 개인전 <새로운 물결(New Waves)>은 모라드 몬타자미와 마들렌 드 콜네가 기획했던 것인데, 바로 이 큐레이터 팀이 이번 세인트 아이브스 전시를 함께 기획했다.

'카사블랑카 트리오'의 세 번째 인물은 모하메드 차바(Mohamed Chabaa)인데, 로마에서 공부하고 2013년에 사망했다. 빨간색, 검은색, 주황색 아크릴 물감으로 양식화된 옆모습을 그린 1965년작 <무제> 작품은 예술과 혁명 관련 계간지로 그해 발행금지된《수플(Souffles, 숨결이라는 뜻)》에 실린 작품으로, 이 작품으로 인해 1972년에 투옥된 차바의 그래픽 감각을 잘 보여준다. '카사블랑카 트리오'의 뛰어난 작품들이 약 20명의 다른 예술가들의 작품과 함께 전시장 곳곳에 전시되어 있다. 벨카히아는 유채를 버리고 현지 재료들을 실험했다. 이를 테면 가죽에 천연 안료를 사용한 <팔라버 트리(Palaver Tree)>(1989), 반추상적인 얕은 부조의 금속을 작업한 초현실적인 <전투(Battle)>(1964-65), 구리를 두드려서 표현한 <게르니카(Guernica)>가 그런 실험을 보여준다. 요동치는 파도와 불꽃을 사이키델릭하게 또는 흙색으로 표현한 멜레히의 작품들은 서정적인 셀룰로오스 회화 <화산(Volcanic)>(1985) (용암이 흘러넘치는 산봉우리와 상현달이 인상적)으로부터 1968년 멕시코 올림픽을 위해 제작된 36피트 높이의 <차라무스카 아프리카나> 기념비(이 전시회에는 사진으로 전시)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차바의 복잡한 기하학적 추상화는 생동감 넘치는 색조의 아크릴과 나무 또는 구리로 만든 조각 작품들을 아우른다.

하지만 이번 전시회의 전시방식은 혼란스러운 점이 아쉽다. 핵심 예술가들의 삶과 작품 궤적을 추적하기보다는 그들의 작품은 전시된 장소에 따라 "플랫폼"이라는 이름으로 분류되어 흩어져 있다.

(계속)

PADO 웹사이트(https://www.pado.kr)에서 해당 기사의 전문을 읽을 수 있습니다. 국제시사·문예 매거진 PADO는 통찰과 깊이가 담긴 롱리드(long read) 스토리와 문예 작품으로 우리 사회의 창조적 기풍을 자극하고, 급변하는 세상의 조망을 돕는 작은 선물이 되고자 합니다.

김동규 PADO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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