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히 둘로 나뉘었어요" 압구정3구역 설계 전쟁 [르포]
전혀 다른 용적률 제시에 '용적률 위반 아니냐' 논란 불거지며 여론 갈려
희림, '친환경 용적률 인센티브' 찾아 창의성 발휘…해안 "허위 홍보" 반발
조합원들 "용적률이 사업성 크게 좌우…근거 이해된다면 한 표 행사"
[아이뉴스24 김서온 기자] "주민들이 완전히 둘로 나뉘었어요. 설계회사 두 군데서 사활을 걸고 경쟁을 벌이고 있는데, 더 편리하고 좋은 단지를 만들겠다는 방향을 제시하는 것을 넘어서 서로가 적대적인 상황으로 치닫는 것 같아요. 조합원이야 자산가치가 높아지는 쪽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희림건축은 용적률 360%를 제시하고 해안건축은 300% 넘는 건 불가능하다고 전혀 다른 주장을 하고 있으니 대체 뭐가 맞는건지 모르겠어요. 물론 가능한 수준이라면 당연히 360% 적용 설계안을 선택해야겠죠."
서울 압구정동 아파트 밀집지역의 재건축 추진속도가 빨라지며 청사진(설계)을 어떻게 만들 것인지부터 한치의 양보 없는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특히 오세훈 시장표 재건축 방식인 신속통합기획으로 추진되는 가장 큰 3구역에선 희림건축과 해안건축이라는 대형 설계사무소들이 맞붙어 조합원의 선택을 받기 위한 혈투를 진행 중이다.
이런 가운데 용적률을 두고 벼랑끝 대치가 이어지며 과열 양상마저 보이고 있다. 희림건축에서 360%의 용적률을 제시하자 해안건축에선 보이콧을 선언하는등 극단적 상황으로 발전되고 있어서다.
주민들의 여론도 크게 엇갈려 있다. 용적률에 따라 자산가치가 좌우되기 때문이다.
8일 압구정3구역을 찾아 그 현장을 직접 들여다봤다. 들어보던 것처럼 여름 한낮 날씨만큼이나 분위기는 뜨겁고 4천여 조합원의 숫자만큼이나 다양한 의견들이 쏟아지고 있다.
설계비 300억원이 책정된 '서울 강남구 압구정 아파트지구 특별계획구역3' 설계 공모에는 '해안(기호 1번)'과 '희림(기호 2번)' 2곳이 참여해 경쟁하고 있다.
최종 설계사 선정일은 오는 15일 총회로 예정돼 있다. 홍보전이 시작된 후 각각 홍보관을 만들어 조합원 설득에 나선 설계사들은 조합원들을 상대로 단지 배치와 평면 등의 장점을 부각시키는 중이다. 하지만 서로 다른 재건축 용적률 수치를 각각 제시하면서 돌연 '용적률 위반' 논란이 불거져 있다.
희림은 조합원들의 자산 가치 극대화를 위해 360%의 용적률과 함께 1.6배 실사용 면적이 커지는 1대 1 제자리 재건축을 제안했다. 건축법, 주택법 등 법에 근거한 용적률 인센티브(제로에너지주택, 장수명주택, 지능형건축물)를 적용해 1.2배 용적률을 상향 조정한 계획안을 내놓은 것이다.
희림은 조합에서 작성한 재건축 설계공모 관련 지침에 따르면서도 서울시 주무부서에 서면질의를 통해 공식 답변을 받아 인센티브를 얹어 제시했다고 한다. 서울시는 '건축법 및 주택법 등 개별법령에 따른 용적률 완화는 중첩해 적용할 수 있으며, 제3종일반주거지역의 경우에는 용적률 최대한도(300%이하) 120% 이하까지 중첩 적용이 가능하다'고 회신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해안 측은 법정 상한 용적률이 300%이므로 희림의 360% 설계안은 조합원들을 현혹하기 위한 허위 홍보라고 주장하며 홍보관을 잠정 폐쇄하는 등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용적률 60%포인트 차이가 나는 설계안으로는 경쟁 자체가 어려울 수밖에 없어서다. 업계에서는 60%포인트는 분양 면적으로 볼 때 4만평이 좌우되는 것이며, 개발가치로 환산하면 6조원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규모다. 이런 상태로는 경쟁이 성립되지 못할 수준이 되는 셈이다.
설계회사간 치열한 경쟁 속에 해안 측이 홍보관을 폐쇄하는 조치까지 치닫자 조합이 개입한 상태다. 조합은 "희림에 300% 용적률을 적용한 평면도를 전시하라는 시정조치를 요구했다"고 공고했다. 똑같은 용적률로 경쟁하라는 주문을 한 것이다. 또 "이미 투표를 마친 조합원은 재투표할 수 있다"고 안내하기도 했다.
희림 측은 당황스러운 입장에 처했다. 희림이 제시한 용적률이 조합원에게 이득이 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가진 조합원은 "현재 조합원들 보유 주택 기준 용적률 300%를 그대로 가지고 간다면 준주거 용지와 공공기여분을 제외하고 전용면적이 가구당 15% 줄어들게 된다"는 점을 지적했다.
희림 관계자는 "기존에 제시된 용적률 300% 내에서 별다른 고민 없이 설계안을 제출할 수도 있었지만, '조합원의 수익성 제고'를 최우선 순위에 두고 충분히 실현이 가능한 아이디어를 고심 끝에 제시하게 된 것"이라며 굳이 인센티브를 제외한 설계안을 구상할 이유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수익성 제고를 위한 아이디어를 포함하라'는 지침에 근거해 서울시의 친환경 건축물 인센티브 등 관련 법률과 지침 등의 가산 용적률을 찾아내 설계안을 만들어 제시했다는 점을 평가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 조합원은 "평면, 주동 배치 등은 양사 모두 기대만큼 잘 만들었다"며 "그러나 제일 중요한 것은 용적률이 아니겠냐. 용적률에 따라 향후 자산 가치가 좌지우지된다는 걸 모르는 조합원은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조합원은 "말도 안 되는 근거를 가지고 허위로 용적률을 뻥튀기한 것이라면 누구보다 조합원들이 이를 더 잘 판별해 낼 것"이라며 "용적률이 관건인데, 단순하게 근거 없는 수치로 말장난해서 수많은 조합원들을 현혹시킬 수 있다고 보지는 않는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서울시에서도 균형과 조화가 이뤄진 범위 내에서 규제가 풀리고 있는데, 냉정하게 말하면 당장 가이드라인에 따라 무조건 안 된다는 설계사보다 자산 가치 제고를 위해 방법을 만들어 최상의 결과를 보여주려는 부분이 남다른 것 같다"고 했다.
한편 압구정3구역은 현대아파트 1~7, 10,13,14차, 대림빌라트까지 3946가구 규모다. 내년 시공사 선정에 나설 계획이다.
/김서온 기자(summer@inews24.com)Copyright © 아이뉴스24.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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