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애의 감정까지 느껴져요”...손톱만한 얼굴에 이런 섬세함이 [퇴근 후 방구석 공방]
‘커스텀(custom)’
‘주문(注文)한, 특제의’
기본적인 제품이나 서비스를 개인의 선호에 맞게 변경하거나 디자인하는 것을 ’커스텀‘이라고 합니다. 커스텀 제품은 개인의 독특한 스타일이나 요구사항을 반영하여 다른 사람과 구별되는 특별한 제품을 가질 수 있다는 점에서 개인 맞춤형 제품의 수요가 증가하는 현대 사회에서 중요한 요소로 인식되고 있으며, MZ 세대를 중심으로 큰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피규어 시장에도 ’커스텀‘의 비중은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한정판 판매가 시작되면 온라인 예약이 순식간에 매진이 되고 오프라인 행사장에 전날부터 오픈런을 위해 줄서는 모습은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수집가들은 점점 자신만의 하나밖에 없는 제품들을 원하게 되고 피규어 파츠를 수제 한정판으로 바꾸거나 작가들의 작품으로 교체함으로서 그 가치를 높이게 됩니다.
액션피규어 카페나 동호회 사이트에서 심심치 않게 올라오는 인증글 중에서 ’던힐‘작가 작품의 인증은 항상 많은 관심과 댓글을 받습니다.
’던힐‘ 작가는 12인치 액션피규어. 그중에서도 헤드 리페인팅과 식모(植毛)작업을 전문으로 하는 전업 작가입니다.
안녕하세요. ’던힐‘이란 예명으로 활동하고 있는 성주현입니다. 개인적으로 전 창작활동하는 사람은 아니기에 작가라고 생각하지 않고 그냥 평범한 ’커스텀 작업가‘라고 생각합니다.
- 작가님 작업들을 보면 거의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수준인 것 같은데 너무 겸손하신거 아닙니까~
하하하!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9년전 쯤 입니다. 액션피규어의 인기가 점점 많아지면서 여러 제품들이 쏟아져 나오고 퀄리티도 좋아졌습니다. 하지만 그만큼 눈은 더 높아져서 ’좀 더 사실적이고 사람 같은 작품들로 채워진 내 장식장을 갖고 싶다!‘ 그걸 실현해 보고 싶은 욕구에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꼭 소유하고 싶은 캐릭터를 제조사에서 언제 출시 될지도 모른체 하염없이 기다리거나 작가들의 소량 생산 한정 제품은 너무 고가였어요. ’그렇다면 내가 만들어 보자‘라는 생각으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전업‘을 하기로 맘을 먹은건 직장에서의 스트레스 때문이었습니다. 주 5일이라고 하지만 영업계통의 특성상 휴일 출근이 잦았고 체감은 365일 출근해서 일하는 기계 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YOLO를 추구하는 사람이 많아 졌다고는 하지만 저처럼 나이가 중년을 넘어간 사람들은 쉽지 않다는 걸 압니다.
다행히 몇몇 조건이 맞아서 하루하루 스트레스 받는 삶을 내려놓고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공동의 관심사를 즐겁게 소통할 수 있는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어서 전업으로 이 세계에 뛰어들게 되었습니다. 꽤 높은 연봉을 받았던 15년간의 회사생활을 마무리 하고 작지만 경제적 독립을 해서 생활하는 지금이 행복합니다. 아마 제가 부양가족이 있는 기혼자였으면 절대 이런 선택 못 했을 것 같네요.하하하!
과거에는 식모를 위한 헤드조형이 없었기에 조형모(양산 제품의 머리카락 조형)를 깎아내고 자연스러운 두상을 만들어서 식모하였지만 최근에는 식모의 대중화로 애초에 민머리형 조형이 나와서 편하게 식모를 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안면만 있고 두상이 없는 헤드들은 에폭시 퍼티로 두상을 채워 넣고 식모하는 경우가 있는데 조형을 깎는 사례보다 많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식모하는 과정은 단순합니다. 그냥 헤어를 쌓아 올리면 되는 단순한 작업인데요, 기술적으로 붙히는건 조금의 노력으로 숙련될 수 있지만 그 전에 먼저 디자인하고 설계를 하는 작업에 노하우가 없으면 지속적으로 실력이 늘지 않는 작업입니다.
양모를 사용하는게 대부분이고 그 외에 모든 재료가 식모의 재료가 될 수 있습니다.
과거에는 제 개인 블로그에 노하우나 실패 경험담, 새로운 시도에 대해 일기장처럼 누구나 볼 수 있게 공개 했었는데 글을 보고 필요한 것만 얻어가고 소통이 없는 모습들을 보면서 다 비공개 처리 하였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식모 수업을 진행하면서 정말 배우고자 하는 분들에게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정말 배우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 분들에게만 노하우를 전수하기 위해서 입니다.
피규어보다 오랫동안 사랑받아 온 인형(doll) 분야에서 식모 (植毛) 라는 용어를 써서 펀칭하듯 심어넣는 것으로 용어가 시작됐는데 사실 피규어 분야도 실리콘으로 된 헤드나 양산 방식에서는 식모를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개인 커스텀에서 식모라는 것은 엄밀히 말해서 붙히는 방식인 접모(接毛) 방식을 사용합니다. 과거에 레진(resin)에 진짜로 털을 심는 식모를 연구하기도 하였지만 완성도와 효율성(완성까지 걸리는 시간) 때문에 상용화 하기는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식모와 마찬가지로 과거에는 페인팅 된 것을 지우고 ’repaint‘ 즉, 다시 색을 칠해서 조형에 도색을 했었는데 최근에는 자기 취향에 맞는 미도색 헤드를 구매하여 페인팅을 하는게 트렌드입니다. 용어로는 리페인트라고 하지만 거의 그냥 페인팅 작업이라고 봐야 합니다.
기존 페인팅을 지우는데 가장 많이 쓰는 재료는 아세톤입니다. 물론 작가들마다 도색을 지우는 노하우가 있지만 가장 보편화된 방법이죠.
최근에는 도색의 투명함과 사람의 스킨톤을 중시해서 도색층이 얇아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전통적인 방법인 서페이서를 뿌리고 기초 피부색을 칠해 밑색을 가린 후에 도색을 하는 방법을 쓰지 않고 최소한의 얇게 레이어링(밑색이 보일정도로 얇게 칠하며 여러겹을 겹쳐칠해가며 명암을 잡는 작업 )으로 사람 같은 질감을 나타냅니다.
그게 무조건 좋은 건 아닙니다. 장단점이 있습니다.
도색이 얇다는건 레진의 변색에 의해서 헤드 도색이 변질되거나 탈색의 증상이 나타날 수 있고 도색을 단단히 잡아주는 서페이서나 프라이머가 안깔려 있기에 도색피막이 약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느낌이 너무 자연스럽고 사람같죠, 물론 도색 고수의 작업물일 경우에요.
반대로 전통적인 레진 작가들 작품을 보면 텁텁하고 풀메이크업을 한 여성의 피부처럼 두께감이 느껴져서 자연스럽지 않지만, 오랜 시간동안 노하우가 쌓인 페인팅 스킬이라 내구성에서 좀 더 신뢰할 수 있을 겁니다. ’어떤 도색이 더 고급 스킬이고 좋은것인가?‘ 하는 문제가 아닌 작가의 숙련도 혹은 선호도, 제품의 컨디션에 따른 선택이라고 봅니다.
아직 작가라고 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실력인지라 화풍이란게 딱히 없습니다. 미술 관련 정규 교육을 이수한 것도 아니고요. 다만 제가 지향하는 작업 방향은 작업하고자 하는 피사체에서 나오는 분위기를 담아내고자 노력합니다. 슬픔, 혼란스러움, 발랄함, 유쾌함등등 그 피사체가 가지고 있는 극중의 분위기를 누가 봐도 공감하고 느껴질 수 있게 작업하고자 노력하는게 제 화풍이라면 화풍이죠...
하지만 요즘 많은 컬렉터들이 이쁜 눈동자와 고급스러운 피부표현을 더 중요시 생각하는 트렌드 때문에 그 부분을 해결하기 위해서 노력중입니다. 답이 안나와서 슬럼프가 자주 오곤 합니다.
박용재 , 최예림 , 슨스 , 만진 작가같은 분들이 제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화풍을 가진 작가분들입니다. 작품을 보면 하나같이 리얼하고 호불호 없는 고급스러운 도색을 하시거든요. 따라가려 노력중입니다.
아무래도 헤드 주인공과 같이 보이기 위한 노력이겠죠? 눈빛의 분위기는 어떤지, 피부톤은 적절한지, 헤어스타일은 같은지... 주인공의 사진과 계속 비교하면서 다른 부분이 발견되면 어떻게든 비슷하게 만들려고 노력합니다.
그렇지만도 아닌게 커뮤니티나 SNS에 공유가 되면 비슷하지만 품질이 떨어지는 제품의 헤드 의뢰가 계속 들어올 때가 있어서 곤혹스러울 때가 있죠.
-의뢰 요구조건에 따라 가격 차이가 많이 나나요?
의뢰비는 거의 고정입니다. 쉬운헤드, 어려운 헤드 가리지 않고 동일가격을 받는 편입니다. 다만 추가 작업에 관해서는 추가비를 받고 있죠. 수염의 추가라든지 조형모 제거 작업이라던지... 어려운 작업에 의뢰비를 올릴까 생각도 해봤는데 반대로 생각하면 쉬운 작업이라고 의뢰비를 깍아줘 본적이 없더라구요. 그래서 동일하게 받고 있습니다. 가격이 들쭉날쭉하면 신뢰도 잃을 수 있으니까요.
가장 고민인 부분입니다. 식모는 생각보다 빨리 할 수 있는데 제가 아직 도색 실력이 많이 부족하다 보니 실제 붓을 들고 작업하는 시간보다 고민하는 시간이 더 길어집니다. 식모는 보통 이틀, 도색은 일주일에서 보름 정도 걸립니다. 지나치게 오래 걸리죠? 이 시간관리 때문에 고민이 많습니다. 고수 작가분들의 많은 도움 간절합니다. 하하하!
영화 “명량”의 이순신 장군입니다. 완성도는 최근에 만든 작품들보다 현저히 떨어지긴 합니다. 그런데 2018년 그 커스텀이 완성될 때 우리나라 위인,장군을 모티브로 한 피규어는 거의 전무했거든요. 일본의 사무라이, 중국의 장수들은 종류도 많고 고퀄리티의 피규어로 판매가 되었는데 우리나라는 시장이 작아서 그런지 역사적 인물들이 피규어화가 되질 못했습니다. 해외에서는 인지도가 없어서 안 만들고, 국내업체는 수익성이 없어 제작을 못하니 안타까웠죠.
그래서 시작했고 완성했죠. 90% 정도를 수작업으로 만들고, 10%는 양산품에서 비슷한 루즈를 찾아서 개조했습니다. 손가락 찔려가면서 갑옷의 비늘 하나하나 실로 엮어가면서 만든 작품이라 애착이 가장 많이 가는 작품입니다. 그 당시는 도색도 어떻게 하는 줄 몰라서 마구잡이로 붓질을 해서 퀄리티가 많이 떨어집니다. 지금 보면 못봐줄 수준이죠.
제 전공이 의류쪽이라 의상쪽은 언제든 맘먹고 도전해 볼 수 있는데 지금은 식모, 도색에 집중하고 싶어요. 이것저것 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이것저것 다 건드릴 줄 아는 작업자보다는 헤드 분야에서 인정받는 커스터머가 더 보람될 것 같습니다.
금시초문입니다. 제 작품을 원하는 분들이 계신가요? (웃음) 저 스스로 인정하지만 정규미술과정을 학습하지 않은 아마추어기 때문에 퀄리티가 좋다고 자부할 수는 없습니다만, 제가 자부하는 건 제 헤드가 주는 생명력입니다,
대다수의 의뢰자들이 작가를 선택할 때 피부표현이 잘 되어 있는지, 피부색은 어떤지 , 눈동자는 생기가 있는지 이런 점들을 염려하고 작가를 선택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제가 우선시 하는건 어떤 캐릭터를 커스텀 하느냐에 따라서 슬프, 기쁨 또는 아련한 분위기 같은 감정선을 이끌어내는데 중점을 둡니다. 예쁜 제품이 아닌 추억속의 영화 주인공의 감정을 그대로 기억하고 싶어하는 수집가들이 저와 코드가 맞아서 저를 찾아 주시는거 같습니다.
저도 수익을 위해서라면 작업 속도를 높여야 하고, 사실 그게 정상인데 제 맘에 안 들면 작업종료 싸인을 의뢰자에게 보낼 수가 없더라고요. 헤드를 소유하게 될 의뢰자의 만족감도 중요하지만 먼저 제가 헤드작품을 만족하고 발송하느냐가 더 우선인 것 같습니다. 괴롭습니다. (웃음)
감사합니다.
성주현 작가의 작업물들은 블로그 ‘던힐’s 피규어 쇼케이스‘와 인스타그램 ’@dunhill_custom_works‘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올해 초부터 시작된 식모 클래스는 상대적으로 도색보다 빠르게 안정적인 실력에 이를 수 있고 어려운 경기에 ’내 피규어의 식모는 내가 직접 하자!‘라는 컨셉으로 현재 2기생의 졸업을 앞두고 있다고 합니다. 지금 3기생을 모집중이라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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