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희의 치밀함, 진짜 '악귀'는 귀신인가 악습인가 [Oh!쎈 초점]

연휘선 2023. 7. 8.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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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EN=연휘선 기자] 사람 잡는 귀신과 그런 귀신을 만드는 악습과 사건들. 현실에서 진짜 '악귀'는 무엇일까. 김은희 작가가 드라마 '악귀'로 치밀한 서사로 연일 감탄을 자아내고 있다. 

SBS 금토드라마 '악귀'(극본 김은희, 연출 이정림·김재홍)가 최근 순항 중이다. 닐슨코리아 시청률 10%를 넘어선 것은 물론 김태리, 오정세, 홍경 등 주연 배우들의 열연과 섬세한 연출까지 연일 호평을 받고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감탄을 자아내는 건 악귀라는 믿기 힘든 신비로운 소재를 현실적으로 풀어내는 김은희 작가의 치밀한 서사다. 

'악귀'는 악귀에 씐 여자와 그 악귀를 볼 수 있는 남자가 의문의 죽음을 파헤치는 한국형 오컬트 미스터리다. 반신반의한 귀신이라는 소재부터 오컬트라는 장르까지 소재의 어느 한 부분도 예사롭지 않다. 자칫 실제와 동떨어진 귀신의 공포감만 강조한 깜짝 쇼로 끝날 수 있는 모험을 '악귀'는 현실적인 이야기와 디테일로 몰입감을 선사하고 있다. 

이 드라마에서 핵심이 되는 '악귀'는 '태자귀'다. 태자귀란 어린 아이가 죽어서 된 귀신으로, 극 중 무당에게 염매로 희생당한 이목단(박소이 분)이 태자귀가 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전염병에 당하든 굶어 죽든 어린 아이가 죽는 것 만으로도 안타까운데, 어른들의 흉사를 풀기 위한 제물로 쓰였다는 극 중 설명은 분노와 기괴함을 더한다. 그 와중에 장자를 피해 둘째부터 죽였다는 설정은 듣는 이를 경악하게 만든다. 산 사람에게조차 없던 원한도 생길만 한 사건이 믿기 힘든 귀신 이야기를 그럴싸하게 만든다. '악귀'의 시작점이 개연성을 얻은 대목이다. 

극의 중심이 되는 악귀인 태자귀 외에도 '악귀'는 에피소드마다 크고 작은 귀신들의 이야기를 살아 있는 사람들의 삶에서 풀어낸다. 아동학대에 삶을 끊 학생이 죽어서라도 집에 갇힌 동생을 살리려고 귀신이 됐고, 객귀들을 쫓아내는 허재비 놀이를 하는 마을에서는 엄마가 죽어서 귀신이 돼 돌아온 딸을 못 쫓아내게 하려고 굿을 망친다. 귀신이라는 탈을 걷어내면 인지상정상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설정들이다.

흔히들 귀신과 같은 정체 불명의 기운들에 당한 것을 사람이 잡아 먹힌다고 표현하는 바. 잡아 먹힌다는 게 단순히 인간의 죽음을 의미하는 것만 아니라고 본다면 드라마 '악귀'에서 보다 넓은 의미의 악귀는 단지 귀신이 아니다. 오히려 귀신이 만들어지는 것마저 수긍할 정도로 깊은 원한을 쌓는 악습 그 자체다. 혹은 아동학대로 인한 피해 아동의 사망이나, 묻지마 범죄에 당해 객사하는 피해자들의 사연처럼 흔해진 범죄를 저지르는 악인들이 아닐까. 귀신보다 산 사람이 더 무섭다는 말이 유독 '악귀'를 보면 와닿는 까닭이다.

더욱이 드라마 '악귀' 속 귀신들은 인간의 가장 나약한 욕망을 건드리며 성장했다. 미움, 분노, 탐욕과 같은. 극 중 구산영(김태리 분)이 자신에 대한 통제력을 잃고 악귀에게 정신과 몸을 뺏기는 순간도 마찬가지다. 사소하게는 이삿짐 일을 하던 집에서 인형이 없어졌다고 떼쓰던 아이 때문에 타박을 듣고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부터 전세 보증금이 없어 당장 돈이 필요한 데 이를 악용해 사기를 치려는 사람 앞에서 산영은 악귀에 쓰였다. 작은 미움부터 범죄에 당할 뻔 했다는 분노와 돈에 대한 갈급함이 생기는 탐욕의 순간까지 악귀가 치밀하게 파고들어간다. 

'악귀' 속 산영이나 인물들이 악귀에 씌는 이 같은 순간은 현실에서 개인이 버티기 힘든 순간들을 보여준다. 맨정신으로 버티기 힘들 것 같다고 느끼는 크고 작은 위기 상황에 누구라도 악귀에 쓰일 수 있다고 말해주는 것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텨내는 산영과 오히려 악귀를 추적하는 염해상(오정세 분)의 강인한 모습들은 귀신에 씌이고도 버티는 인물들처럼 강하게 인내해야 한다고 말해주는 듯 하다. 

이러한 이야기를 쓰는 작가가 김은희 작가라는 사실도 '악귀'의 매력이다. 그의 남편인 장항준 감독은 과거 예능 프로그램에서 김은희 작가가 계약 과정에서 세금 회피 방법도 마다한 채 "제가 그런 거 나쁘다고 드라마 쓰는 사람인데 그러면 안 되죠. 세금 다 내도 되니까 제 명의로 해주세요"라고 말한 일을 자랑스럽게 밝힌 바 있다. 귀신이라는 탈은 스산하지만 속에 담긴 이야기는 애처롭고 풀이 과정은 정의롭다. 등골이 오싹해져도 두 눈 부릅 뜨고 '악귀'를 볼 수밖에 없는 이유다. / monamie@osen.co.kr

[사진] SBS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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