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읽는 세상] 여야의 악마적 해석 … 비이성적 믿음들
매일같이 펼쳐지는 확대해석
종전선언 추구하면 반국가세력
정책 이끈 대통령은 ‘간첩’ 간주
일본과 관계개선 원하면 매국
극단적이고 악마적인 해석
여야 정쟁 이젠 불편함 던져
뉴욕시에서 가톨릭 교단이 운영하는 한 중학교에서 젊은 제임스 수녀가 역사 과목을 가르치고 있다. 어느날 수업시간에 학교의 주임 신부인 플린 신부가 흑인 학생 한명을 사제실로 호출한다. 플린 신부를 만나고 교실로 돌아온 중학교 2학년 흑인 학생 입에서는 술 냄새가 나고, 매우 혼란스러운 기색이다. 제임스 수녀는 이 '사소한' 사건을 교장선생님이기도 한 알로이시우스 수녀에게 보고한다.
영화 '다우트'에서 벌어지는 의심의 광풍은 여기에서 시작된다. 플린 신부를 만나고 온 그 학생에게서 왜 술 냄새가 났는지, 왜 당황스럽고 혼란스러운 모습이었는지 여러 해석이 가능한 일이다.
플린 신부의 해명을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성당 미사를 돕는 일을 맡고 있는 이 학생이 미사에 사용되는 미사주를 몰래 마시는 것을 알고 불러 훈계했다. 이 학생은 가정문제로 우울해서 미사주를 훔쳐 마셨다." 이 해명이 사실이라면 그야말로 별것도 아닌 사건이다.
그러나 플린 신부가 눈엣가시와 같았던 알로이시우스 수녀는 플린 신부를 공격하기 위해 이를 극단적으로 확대해석한다. '돼먹지 못한 진보적인 신부들이 대개 그렇듯 플린 신부도 본래 동성애자였으며, 플린 신부는 이 학교에 부임하자마자 따돌림당하고 있던 이 흑인 학생을 성적 욕망 충족의 도구로 삼고, 그날도 수업 중이던 이 학생을 사제실로 불러 술을 먹이고 성추행했다'는 의혹을 완성하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아무런 목격자도, 증인도 없고, 학생의 진술도 없다. 이 어처구니없는 해석은 알로이시우스 수녀의 '희망사항'일 뿐일 수도 있다. 그 해석이 사실이어야만 플린 신부를 교단에서 축출할 수 있다. 그렇게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플린 신부를 만나고 온 소년의 입에서 술 냄새가 났다'는 사소한 사실을 극단적으로 부정적으로 확대해석한다.
상대를 공격하기 위한 확대해석은 악마의 수작이다. 팔레스타인의 작은 움직임 하나도 적대적인 공격의 조짐이라고 확대해석하고 먼저 공격을 퍼부어대는 이스라엘의 행태를 조롱하는 '유머' 한토막을 살펴보자.
어느 날 한 유대인과 독일군 장교가 기차를 타고 여행을 하고 있다. 유대인이 객실에서 담배를 꺼내 물고 막 불을 붙이려고 한다. 마주 앉아 있던 독일군 장교가 유대인이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빼앗아 던져 버린다. 유대인이 무슨 짓이냐고 화를 내자 '객실에서 담배를 피우면 어떡하냐'고 질책한다. 유대인은 화가 나지만 할 말이 없다. 얼마 지나자 독일군이 신문을 보려고 가방에서 신문을 꺼내든다.
유대인은 기다렸다는 듯이 독일군 장교의 신문을 빼앗아 창밖으로 내던진다. 독일군 장교가 무슨 짓이냐고 화를 내자 유대인이 정색을 하고 대꾸한다. '객실에서 ×을 싸시면 어떡합니까?' 팔레스타인 푸줏간 주인이 무엇엔가 화가 난 얼굴로 칼을 들고 거리에 나서기만 해도 '팔레스타인이 이스라엘을 공격할 것 같다'고 확대해석하고 먼저 폭격을 하는 꼴이다.
독일군 장교나 유대인이나 모두 '아직 발생하지 않은 일'을 현재 상황으로 해석하고 예측하고 있다. 그러나 독일군 장교의 해석은 '합리적'이라고 할 수 있지만 유대인의 해석은 극단적인 확대해석이다.
플린 신부를 꼬집은 알로이시우스 수녀의 해석 역시 신문을 꺼내드는 독일군 장교를 보고 '객실에서 ×을 싸려고 한다'는 유대인의 해석만큼이나 황당하고 극단적이다. 알로이시우스 수녀나 어느 유대인의 '확대해석'이나 모두 황당한 것 같지만, 오늘 대한민국에서도 이런 당황스러운 확대해석을 매일같이 접한다.
북한과의 평화협상이나 종전선언을 추구하면 '반국가세력'이 되고, '김정은 수석대변인'이 되고 그 정책을 이끈 대통령은 '간첩'이라고 극단적이고 악마적인 확대해석을 한다.
반대로 한쪽에서 일본과 관계개선을 하자고 하면 또 다른 쪽에서는 '당신이 대한민국 대통령이냐 조선 총독이냐'부터 시작해 '윤완용이 일본에 나라를 팔아먹는다'는 격문을 쏟아낸다.
모두 기차간에서 신문을 펼쳐드는 독일군 장교를 향해 '왜 기차 객실에서 ×을 싸냐'고 대드는 유대인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서로를 악마라고 삿대질하는 이들의 표정을 보면 우리의 전ㆍ현직 대통령이 한결같이 북한이든 일본이든 나라를 팔아먹으려고 환장한 것으로 확신한 듯 진지하고 비장하다.
모두 '확대해석'의 농담집에나 실릴 만한 이야기들이다. 눈에 불을 켜고 이를 부득부득 갈면서 하는 농담을 듣는 듯한 기묘한 느낌이다. 이쯤 되면 '비이성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을 듯하다.
아닌 게 아니라 사회심리학자들은 확대해석을 '비이성적 믿음(irrational belief)'과 동일한 것으로 간주한다. '비이성적 믿음'이 황당한 확대해석마저 진지하게 만든다는 게 사회심리학자들의 주장이다.
프랑스의 구조주의 철학자이자 문화인류학자인 클로드 레비스트로스(Claude Levi-Strauss)는 자신들이 이성적이고, 아마존 오지의 어느 부족들과는 다른 문명사회의 시민이라고 자부하는 우리들의 착각을 꼬집는다.
"어떤 사회든 몇가지씩 비합리적ㆍ비이성적인 믿음을 갖고 있지 않으면 유지될 수 없다. 그 '비이성적 믿음들'은 비이성적이기 때문에 어떠한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비판에도 흔들리거나 고쳐지지 않는다."
레비스트로스가 보기엔 '비이성적 믿음'으로 유지되기는 건 원시부족사회나 현대사회나 마찬가지다. 우리사회의 진영이나 정당들도 아마 모두 '비이성적 믿음들' 덕분에 유지되는 모양이다.
김상회 정치학 박사|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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