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만원이 ‘순삭’ 명동야시장…정작 외국인들은 “비싸도 괜찮아” [화제의 공간]
음식 3개·음료 1개 사니 5만원 ‘순삭’
외국인들 “길거리 음식 맛있고 재밌다”
명동상인복지회 5개 품목 가격 인하
4호선 명동역을 나서는 순간부터 고기 굽는 냄새, 하늘로 흩어지는 뿌연 수증기, 여기저기서 들리는 외국어들, 연신 들리는 카메라 소리에 정신이 혼미합니다. ‘그래, 이게 명동이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관광객 감소로 유령 상권이 됐던 명동은 다시 외국인 관광객들로 북적이고 있었습니다.
특히 을지로입구역에서 명동역까지, 그리고 을지로 롯데백화점 맞은편부터 명동성당까지 이어진 명동 길거리 노점상은 외국 관광객들의 필수코스 중 하나입니다. 수많은 길거리 음식들이 유튜브에 소개되면서 입소문을 탔거든요. 구글 맵에서는 이 거리가 ‘명동야시장’으로 검색될 정도입니다.
이날 방문한 오후 6시의 명동은 출퇴근길 지하철을 연상시킬 정도로 사람들이 꽉 들어찼습니다. 명동엔 360여곳의 길거리 노점상이 있는데 그 수만큼 파는 음식들 종류도 다양합니다. 김치삼겹살, 닭강정, 스테이크, 치즈구이, 붕어빵, 잡채, 수플레케이크, 치즈핫도그, 회오리감자, 만두, 탕후루, 십원빵, 랍스터구이 등…. 족히 수십 가지는 됩니다.
금강산도 식후경입니다. 취재진 역시 곧바로 먹거리를 찾아 헤맸습니다. 남자 3명에 5만원이면 적당히 배를 채울 정도의 양은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셋 다 고기를 좋아하는 터라 가장 먼저 스테이크를 샀습니다. 고기 200g에 숙주를 함께 주는데 가격은 1만5000원입니다. 이곳에서 가장 호화로운 랍스터구이도 빼놓긴 어려웠습니다. 랍스터구이는 인기가 많은 건지 여러 노점상에서 팔더라고요. 작은 랍스터 한 마리에 치즈가 올라가 있는데 가격은 2만원입니다.
탄수화물이 부족하니 군만두도 샀습니다. 만두는 3개에 5000원. 닭고기만두와 돼지고기만두, 고기김치만두 등을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마실 것도 필요하죠. 면역력 필수 시대니까 석류주스를 사볼까요. 평소에는 마시지 않는 석류주스로 관광객 기분을 내는데는 7000원이 필요했습니다.
이제 수중에 남은 돈은 3000원. 5만원을 꽉 채워서 사고 싶었지만, 3000원짜리 음식을 찾기 어려웠습니다. 붕어빵도 4000원은 있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명동의 한 옷가게 앞 계단. 미국에서 온 도널드 레저(46)씨가 계단에 걸터 앉아 탕후루를 먹고 있는 딸에게 어떤 길거리 음식이 가장 맛있냐고 물었습니다. 딸은 “Egg bread(계란빵)”라고 하네요. 레저씨 역시 “계란빵이 여기서 먹어본 것 중에 제일 맛있다”며 웃었습니다. 가격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할까요? 레저씨는 “원래 여행 가기 전 인터넷 등에서 검색해서 예산을 어느 정도 생각해서 오지 않느냐”며 “생각했던 것보다 조금 비쌌다”고 했습니다. 다만 레저씨는 “그래도 돈을 여유있게 준비해와서 괜찮았다”며 “미국 길거리 음식 가격과 비슷한 수준이라 이 정도는 괜찮다”고 했습니다.
평소 한국의 문화와 K팝에 흥미가 있던 스위스 대학생 패트리샤(25)와 안나(22)는 방학을 맞아 명동을 방문했습니다. 떡볶이와 새우튀김을 사먹고있던 이들은 “한국 길거리 음식은 맛있고 재밌다”며 “이 근처에 머물고 있어 며칠째 저녁식사를 여기서 해결하는 중”이라고 했습니다. 가격이 비싸게 느껴지진 않냐는 질문에 “스위스 물가에 비하면…”이라고 웃더니 “이정도면 충분히 합리적인 가격이라고 생각된다”고 답했습니다. 아이스크림이 담긴 붕어빵을 “최고”로 꼽은 이들은 맛 뿐만 아니라 명동야시장이 주는 분위기와 경험에 충분히 돈을 지불할만하다고 느끼는 듯 보였습니다.
‘바가지 논란’에 휩싸인 명동 노점상인들 나름의 속사정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스테이크를 파는 A씨는 ‘요즘 명동에 사람이 많아졌는데 장사가 잘 되느냐’는 질문에 “잘 되다가 보름 전부터 안 되기 시작했다”며 “중국인 관광객이 줄고 폭염과 장마 때문에 장사가 안 된다”고 답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일주일이나 보름씩 장사를 하면 하루도 빠짐없이 찾아오는 외국인 단골이 있다”며 자부심을 나타냈습니다. A씨의 화려한 ‘불쇼’에 지나가던 외국인 관광객은 발걸음을 멈춘 채 스마트폰으로 영상을 찍었습니다.
명동야시장 최고가 음식인 랍스터구이를 판매하는 B씨는 “더운 날씨 탓에 장사가 안 된다”며 능숙하게 손질된 랍스타를 불판으로 옮겼습니다. 어느 국적의 손님이 제일 많냐고 묻자 “인도네시아, 태국 등 동남아 손님들이 제일 많고 그다음 일본 손님”이라고 했습니다. 최근 불거진 바가지 논란에 대해선 “전체 물가가 다 올라서 음식값도 상승했다”며 “소비가 줄었기 때문에 매출은 코로나19 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했습니다. 대답하는 B씨의 얼굴에서 씁쓸함이 묻어났습니다.
명동 노점상에 대한 기사를 보면 ‘돈도 내지 않고 장사한다’는 비판이 가장 많습니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닙니다. 2016년 허가제로 바뀐 이후 이들은 1년에 80만∼170만원 수준의 자릿값을 구청에 냅니다. 자릿값은 공시지가에 따라 차등 적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명동을 관할하는 중구청 관계자는 “현재 명동에 359개의 노점상이 등록돼 있다”고 밝혔습니다.
자릿값을 내더라도 노점상들이 매일 장사를 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하나의 자리엔 2명의 자영업자가 등록돼 격일제로 운영되기 때문이죠. 1명의 노점상이 한 달에 15일만 장사할 수 있단 뜻입니다. 이강수 명동상인복지회 총무는 “이곳은 15일 장사라 만약 오늘 장사하면 내일 쉬어야 된다”며 “A·B조로 나뉘어 한 자리에서 번갈아가며 장사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요즘같은 장마철에 사흘 비가 내리거나 하면 한 주에 한두 번 장사할때도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상인들은 명동 노점상 활성화를 위해 자정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점도 강조했습니다. 이 총무는 “노점상인들이 모인 명동복지회에서는 상시 회의를 하고 주기적으로 점검도 하고 있다”며 “상품의 퀄리티 등 관리로 명동야시장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자부심을 갖고 일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예를 들어 돼지고기 꼬치가 8000원이라고 비싸다고 하시는데, 고기 중량이 200g이라는 건 잘 모르신다”며 “1인분인 160g을 훨씬 넘는 것인데 그런 것들을 따져보지 않고 무조건 비싸다고 하실때 억울한 생각이 들 때도 있다”고 했습니다.
전날부터 명동 노점상은 일부 품목 가격을 인하했습니다. 가격 인하 대상은 회오리감자, 붕어빵, 핫바, 군만두, 오징어구이 등 5개입니다. 오징어구이를 1만2000원에서 1만원으로 2000원 내렸고 회오리감자도 5000원에서 4000원으로 인하했습니다. 군만두와 핫바, 붕어빵도 5000원에서 4000원으로 낮췄습니다. 이 총무는 “최근 명동야시장이 언론 등에 바가지 논란으로 등장하면서 이미지 타격이 심각한 상황이라고 생각됐다”며 “특히 많이 지목됐던 품목들을 중심으로 이번주 회의를 거쳐 가격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는데 합의했다”고 밝혔습니다.
조성민·이희진 기자, 김지호 인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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