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수능도 물수능도 학업성취도엔 ‘쥐약’…에듀테크가 대안될까 [나기자의 데이터로 세상읽기]
학업성취도 갈수록 낮아지는데
사교육비, 학생 불만족 되려 늘어
아시아 교육1번지 싱가포르 보면
출제범위 늘리고 서술형 도입해야
AI통한 맞춤형 교육인 에듀테크도
소프트웨어 연동방식으로 도입필요
해당 메일이 첨부한 링크를 살펴보니 △ 수능과목 늘려서 변별력 키우기 △ 정시확대 등이 필요하다는 게 핵심 골자였습니다. 수능은 단순 암기과목이 아니라는 논리에 근거한 주장이었습니다.
과연 이 주장은 맞는 말일까요? 여러 데이터를 통해 따져봤습니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70%였던 정시비율이 현재 20%까지 줄었습니다. 대다수가 수시로 갑니다. 수능 교과목 범위 역시 계속 축소됐습니다. 제가 대학에 입학한 2008년만 해도 저는 8개 과목(국영수 + 사회탐구 4과목 + 제2외국어)를 응시했는데요. 현재는 5개 과목(국영수 + 2과목)이 주이고, 이마저도 영어는 절대평가화 됐습니다. 수학의 경우 행렬·벡터 및 기하 등의 과목이 일부 빠졌습니다. 국어 문항수도 초기 60문항서 현재 45문항까지 문제수가 줄었습니다.
이는 사교육걱정없는세상(시민단체), 전교조 등 진보단체와 미국식 수시(입학사정관제)를 좋아하는 보수 모두의 합작품입니다. 정권과 관계없이 사교육비 부담완화, 학생들의 학습부담 완화를 내걸며 ‘정시비율 하향 + 수능 출제범위 축소’를 진행해왔습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어떨까요?
연간 사교육비는 당초 기대와 다르게 지난해 26조원을 돌파하며 신기록을 경신했습니다. 수능 출제범위가 줄었지만 변별력을 높이기 위해 ‘킬러문항’이 새로 생기면서 이에 대한 대비법이 중요해졌습니다. 킬러문항은 저와 같은 옛 세대 입장에선 ‘사설학원 문제’(틀리게 만들기 위해 만든 문제)라고 보면 됩니다. 여기에다가 수시 비중이 높다보니깐 각종 입시 전문컨설팅도 성행하게 됐습니다. 사교육비는 되려 늘어났습니다.
학업성취도도 낮아졌습니다.
학생들 역시 행복하지 않습니다. 청소년 자살률은 지난 10년새 거의 그대로입니다.
국제비교를 위해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자료를 봤습니다. 학업성취도 평가를 보면, 2010년대 초반만 해도 읽기 수학 과학 분야서 최상위권이었던 한국이 중국, 싱가포르 등에 전반적으로 밀리며 2위 그룹이 된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중국 싱가포르는 둘째라면 서러울 정도로 두 나라 모두 혹독한 입시제도를 운영 중입니다. 우리와 같은 수능(중국은 까오카오, 싱가포르는 GCE A레벨 시험)이 있고, 싱가포르의 경우 중학교때부터 비평준화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두 나라 모두 6과목 이상을 수능서 시험보고 있습니다.
대한수학교육학회지에 등재된 ‘대학입학 수학 시험 국제 비교 분석’(2016)을 보면, 미국 SAT는 2016년 3월부터 수학시험 출제범위를 되려 확대했으며, 싱가포르 수능인 GCE A레벨은 대학수준의 수학과 통계학 내용까지 포함하고 있습니다. 해당 논문 저자는 “수학 범위를 축소하기보다는 수험생의 선택권을 더 넓히는 방향으로 가야한다”고 말합니다. 또한 선진국처럼 ‘서술형 수학문제’(하위문항으로 더 질문이 가능한)를 통해 다면적으로 학생을 평가해야 한다고도 덧붙이죠.
실제로 스타트업 취재를 많이 하는 입장에서 보면, 수학을 활용한 암호, 우주과학 등이 많이 사업화가 되는 모습을 접하곤 합니다. 수학은 단순히 공식을 외우고 적용하는게 아니라, 우리 사회를 혁신할 수 있는 중요한 도구인 셈이죠.
싱가포르의 사례를 보면, 출제범위를 늘리는게 오히려 다면적으로 학생을 평가할 수 있는 좋은 도구가 될 수 있을듯 보입니다. 또한 서술형 문제를 도입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이미 우리는 행정고시 등 각종 국가고시서 서술형 문제를 통해 다면 평가를 하고 있죠.
심지어 싱가포르는 수학시험서 계산기와 공식 수험서로 지참할 수 있게 해줍니다. 시험시간도 넉넉하게 주는 편(10개 문항 3시간)입니다.
지난 20여년 간 했던 것처럼 수능을 무력화시키기보다는, 서술형 문제를 도입하는 등 여러 대안적 방법을 강구해야 하지 않을까요? 문제풀이 기계를 만들지 않기 위해선 수능 자체를 터부시하기보다는, 수능을 현 시대에 맞게 업그레이드(개편)하는 지혜가 필요해보입니다. 출제범위를 늘리면서 그 문제의 의도에 맞는 하위질문을 하는 서술형 문제를 더 포함시키는 방향으로요.
다만 에듀테크가 만능은 아닙니다. 실제로 영국과 미국의 평균 학업성취도는 우리나라보다 여전히 낮죠. 기술이 아무리 좋아도 결국은 이용하는 사람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에듀테크 관련돼 몇 개 국내 논문을 찾아봤습니다.
요약하자면 △ IT기기가 고장날 경우 수업의 흐름이 끊기는 경우가 많다 △ 학교 현장서 몇몇 교사만 열정적이다보니, 에듀테크 활용 혜택을 보는 학생들이 제한된다 (현장서 저항이 많다) 등이 골자입니다.
결국 에듀테크가 국내 교육현장에 제대로 정착되려면, 교사 전체가 이를 인지해야 하는데 우리나라 교사들, 특히 기성세대 교사들이 그럴만한 능력이 과연 되는지가 의심스럽습니다. 수도권과 지방 간의 격차를 생각하면 지방일수록 더더욱 그렇고요.
에듀테크를 활용하면서 동시에 수능을 내실화하는 방향으로 ‘절충안’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에듀테크가 만능은 아니지만 챗GPT 시대 때 창의 인재를 기르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효과적인 툴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에듀테크 솔루션은 AI를 활용해 △ 학생 학업성취도 진단 △ 학생 수준에 맞는 맞춤형 교육콘텐츠 추천 △ 학생기록부 등 이력관리 △ 교사 행정부담 완화 등의 다양한 효과를 낼 수 있습니다.
즉, 평가인 수능을 조금 더 21세기에 맞게 고치고 (수학 등 출제범위 확대, 서술형 도입), 이에 상응해서 교육방식도 에듀테크를 활용해 혁신하자는 것입니다.
제가 에듀테크 회사분들을 취재한 결과, 공통적으로 에듀테크 발전을 위해 필요하다고 말씀하신 부분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에듀테크 기술에 현재 연 300억원 (앞으로 1000억원으로 확대 예정)이 투여되고 있는데, 소프트웨어보다는 하드웨어(태블릿과 같은 IT기기) 보급에 여전히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제는 소프트웨어에 집중해야 한다.
둘째, 보안을 이유로 한국 클라우드에서만 구동되게끔 정책이 펼쳐지고 있다. 그러면 에듀테크 입장선 국내용 서비스를 하나 더 내놔야 하고, 또 해당 서비스를 해외에 판매하기도 애로사항이 많다.
셋째, 각 에듀테크 솔루션 간의 ‘호환성’과 관련된 논의가 거의 없다. 미국 영국의 경우 선생님과 학생들이 에듀테크 솔루션을 사용하기 편하게끔, 한 번 로그인만 해도 A사 B사 C사 에듀테크 솔루션을 모두 이용할 수 있게끔 각 솔루션을 ‘상호 연동’ 할 수 있게끔 해야 합니다. 이 부분은 정부가 주도적으로 논의해야 하는 부분이죠.
에듀테크 회사에 재직중인 한 부사장급 인사는 저에게 “너무 정부가 거대하게 에듀테크 플랫폼을 만드려고 하는거 같은데, 그러지 말고 작게 작게 시작하면서 현장에서 피드백을 받으며 고쳐나가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에듀테크는 기술이고 결국 활용하는 사람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첫째, 20여년에 걸친 수능 무력화(정시비율 및 출제범위 축소)로 학업성취도 하락, 사교육비 증가 등의 부작용을 낳았다.
둘째, 수능을 업그레이드해서 ‘시험을 위한 시험’이 아닌 진정한 사고력 측정 시험으로 만들어야 한다. 싱가포르처럼 오픈북 테스트를 하면서도 서술형 문제를 내는식으로 얼마든지 시험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다. 출제범위도 늘려야 한다. 그래야 사교육이 다 커버를 못치는 만큼, 기본(독해력, 사고력)에 충실한 사람이 살아남을 수 있다.
셋째, 정부는 자기주도학습이란 명목하에 에듀테크(Edu+Tech) 를 전면 도입하려고 한다. 이른바 AI디지털 교과서다. 취지는 좋고 시대적 흐름인건 맞지만, 에듀테크를 적극 도입한 미국과 영국의 학업성취도가 우리에 비해 낮은 것을 보면, 기술보다는 결국 운용하는 사람이 더 중요하다.
넷째, 현재의 에듀테크 논의는 거대한 플랫폼을 만들려고 하는 관료들의 조바심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에듀테크는 만능이 아니다. 하나하나 일선 학교현장서 피드백을 받으며 실행해나가야 한다. 최소한의 원칙은 각 에듀테크 솔루션이 서로 연동될 수 있도록, 처음 시스템 설계부터 ‘호환성’을 갖춰야 한다. 그래야 한 번 로그인만 해도 여러 솔루션을 사용할 수 있게 되면서, 맞춤형 학습 및 교사 행정업무 부담 축소 등의 효과를 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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