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짓기’라 불러야 ‘K커피’답다 [박영순의 커피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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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잔의 커피를 만드는 과정을 정의하는 용어는 혼란스러울 정도로 다양하다.
볶은 커피 즉, 원두에서 유익한 성분만을 빼낸다는 의미로 '추출(extraction)'이라고도 하고, 음료를 만든다는 뜻에서 '브루잉(brewing)'이라고도 한다.
추출이란 용어는 커피에서 성분을 끄집어내는 방법에만 집중했다는 인상을 준다.
커피문화를 우리보다 먼저 꽃피운 서구 여러 국가가 브루잉을 커피 추출을 묘사하는 용어로 사용한 것을 탓할 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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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잔의 커피를 만드는 과정을 정의하는 용어는 혼란스러울 정도로 다양하다. 볶은 커피 즉, 원두에서 유익한 성분만을 빼낸다는 의미로 ‘추출(extraction)’이라고도 하고, 음료를 만든다는 뜻에서 ‘브루잉(brewing)’이라고도 한다.
브루잉은 독일어 어원에서는 ‘끓이거나 성분을 우려낸다’는 의미가 강하고, 라틴어 어원을 추적하면 ‘새로 만든 포도주’ 또는 ‘술로 변화시키다’는 뜻이 담겨 있다. 불을 가하지 않아도 효모가 당분을 분해하는 발효과정에서 이산화탄소가 생성되면서 겉으로는 부글부글 끓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커피문화를 우리보다 먼저 꽃피운 서구 여러 국가가 브루잉을 커피 추출을 묘사하는 용어로 사용한 것을 탓할 순 없다. 하지만 과연 적절한지, 한국다운 용어는 없는지 따져 볼 필요가 있다.
커피가 세계에서 232조원에 달하는 거대 시장을 형성하기 때문만이 아니다. 세계인의 음료로 급성장한 커피를 문화적으로 더 빛냄으로써 국가와 겨레의 위상을 드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K커피’라는 정체성의 확립을 위해선 한국의 정신과 가치를 담은 용어들을 만들어 세계적으로 통용되도록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핸드드립, 더치커피와 같은 조어를 만들어 적어도 한반도에서는 결코 짧지 않은 동안에 커피문화의 주도권을 행사했던 일본처럼 말이다.
중국과 인도에서 커피문화가 타오르는 현상을 목도하면서, 그곳에서 K커피로 한류가 거세게 물결치는 기분 좋은 상상을 해본다. 커피 향미를 묘사하는 자리에서 점차 우리말이 늘어나고 있는 것은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예를 들어 “커피 맛이 리치(rich)하다”라는 표현 대신 “커피가 살집이 있어 보인다”고 하는 것이다. 또 “커피 향미가 델리키트(delicate)하다”는 말보다 “향미가 섬세해서 마치 결이 보이는 듯하다”는 소리가 더 자주 들려 나오고 있다.
커피 추출도 우리말로 ‘커피 짓기’(coffee jitgi)라고 말하고 적으면 더욱 깊은 정서를 담을 수 있다. ‘짓다’는 단순히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정성을 기울인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밥 짓다’와 ‘약 짓다’처럼 생명과 관련된 작업에 사용되는 고귀한 단어이다.
커피를 만들 때 커피와 물의 비율, 물의 온도, 물의 세기, 접촉시간, 가루의 굵기 등과 같은 추출 변수만 고려하는 게 아니다. 커피 생두의 가공법, 로스팅 정도나 로스팅한 뒤 흐른 시간 등도 고려해 추출 변수들을 또 달리해야 한다. 커피를 만드는 데 필요한 이런 섬세함은 ‘짓기’라는 용어가 아니면 담기 힘들다. 생각할수록 ‘짓다’라는 우리말은 커피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는 기분 좋은 확신이 든다.
박영순 커피인문학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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