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약설명서] 아스파탐이 쏜 인공 감미료 논란, '발암 프레임'에 현혹됐다

류호 2023. 7. 8.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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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아스파탐 '발암가능물질' 지정 예고에 발칵
"식품 안전성 경고 아닌 발암성 의심 여하로 판단
양의 개념으로 접근을… 평소 먹는 양이면 괜찮아"
편집자주
즐겁게 먹고 건강한 것만큼 중요한 게 있을까요. 그만큼 음식과 약품은 삶과 뗄 수 없지만 모르고 지나치는 부분도 많습니다. 소소하지만 알아야 할 식약 정보, 여기서 확인하세요.
4일 오전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에 진열된 제로 칼로리 음료. 뉴시스

최근 '제로 슈거'(무설탕) 열풍에 찬물을 끼얹는 발표가 있었죠.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가 오는 14일 인공 감미료 중 하나인 '아스파탐'을 '인체 발암 가능 물질'(2B군) 분류를 예고했기 때문인데요. 단맛이 설탕보다 200배나 강해 극소량만 써도 단맛을 낼 수 있고, 칼로리가 거의 없어 '다이어트에 도움 되는 물질'이란 극찬을 받았던 아스파탐. WHO 발표로 순식간에 찬밥 신세가 됐습니다.

그동안 제로 슈거 음식을 먹어 온 소비자들은 화들짝 놀랐습니다. 온라인상에선 발암 물질을 먹어 왔다며 '인공 감미료 포비아'에 휩싸였습니다. 식품업체들도 아스파탐 대신 다른 물질을 쓰겠다며 소비자를 진정시키고자 안간힘을 쓰고 있는데요. 제과업체들은 벌써 대체 물질을 찾고 있고, 주류업체는 WHO의 발표와 함께 가이드라인이 나오면 즉시 대응하겠다며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입니다. 아스파탐으로 시작된 인공 감미료 공포, 앞으론 정말 인공 감미료를 피하는 게 좋을까요.

결론부터 말하면 지금까지 먹어온 대로 적정량을 먹는 건 문제가 없습니다. 전문가들은 "2B군은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며 지나친 공포심을 가질 필요가 없다고 합니다.


1군과 2군, 발암 강도에 따라 구분하지 않는다

4일 오전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 막걸리 매대에서 시민이 막걸리 제품들을 살펴보고 있다. 뉴시스

대중이 막연한 불안감을 느끼는 건 '발암 프레임' 때문이란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입니다. 사실 우리는 이미 일상에서 알게 모르게 1군 발암물질을 먹고 있는데요. 대표적인 1군 발암물질인 술, 담배는 모두가 건강에 해롭다는 걸 알면서도 즐기고 있습니다. 한때 아스파탐과 같은 2B군에 묶였던 커피는 이제는 없어서는 안 될 기호식품이 됐죠. 윤지현 서울대 식품영양학과 교수는 "사람들이 발암이란 용어 때문에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라며 "이미 1군인 술, 담배는 큰 걱정 없이 먹고 피고 있지 않나"라고 말했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암을 일으키는 물질인데 걱정을 안 할 수 없죠. 그렇다면 분류를 예고한 IARC란 기구의 성격을 보는 것도 불안감을 낮추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IARC는 소비자에게 식품이나 식품에 쓰이는 물질이 안전하지 않다고 알리는 기구가 아닙니다. 발암, 말 그대로 암을 일으킬 요소가 있는지를 보는 곳입니다. 2군일 경우 동물실험에서 발암 가능성이 발견됐지만(2A군), 자료가 다소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될 경우 B군으로 분류됩니다. 사람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자료가 있을 경우에는 1군에 포함됩니다.

게티이미지뱅크

IARC는 발암물질에 대해 1~4군으로 분류하는데요. 1·2군은 발암성이 의심되는 경우, 3군은 의심할 이유가 없는 물질이고, 발암성이 없는 것이 확실하면 4군이 됩니다. 1군에는 술·담배·가공육, 2A군에는 뜨거운 차·붉은 고기·튀김, 2B군에는 야채 피클·전자파·고사리·나프탈렌 등이 있습니다. 한국인에게 없어서는 안 될 젓갈류도 2B군에 속합니다.

1군이라고 해서 2군보다 발암 강도가 높다는 뜻도 아닙니다. 분류는 암을 일으키는 발암 강도가 아닌, 인체 또는 동물에 암을 일으킨다는 과학적 증거가 얼마나 있느냐에 따라 나눕니다. 즉 1군이 2군보다 과학적 증거가 더 많다는 의미입니다. 하상도 중앙대 식품공학부 교수는 "2B군은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은 거의 없지만 동물에게는 있으니 주의하는 게 좋다는 수준"이라며 "1, 2군을 구분하는 기준도 심각도가 아닌 연구 성과의 정도에 따라 판단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실제 소비자들에게 '이 식품은 인체에 해로우니 피하셔야 합니다'라고 알리는 기구는 WHO 산하 국제식품첨가물전문가위원회(JECFA)입니다.


커피도 한때 아스파탐과 같은 2B군, 새 연구 결과에서 빠졌다

게티이미지뱅크

IARC 결정에 흔들리지 않아도 되는 이유가 또 있습니다. 과거에도 IARC의 지정 변경으로 혼란을 겪었기 때문입니다. 1990년 커피를 2B군으로 분류하자 세상은 발칵 뒤집혔습니다. 하지만 2016년 인체에 무해하다는 새로운 연구 결과가 나오면서 2B군에서 제외됐죠. 즉, 향후 어떤 연구 결과들이 나오느냐에 따라 아스파탐도 2군에서 제외될 수 있습니다. 하 교수는 "과거 사카린도 2B군에 포함돼 논란이 됐는데 지금은 빠진 것처럼, 아스파탐도 빠질 수도, 1군에 들어갈 수도 있다"며 "이런 논란은 앞으로 모든 물질에 따라붙을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발암이란 단어에 흔들리지 말고 정부가 정한 적정량을 지키며 먹으면 된다고 조언합니다. JECFA나 미국 식품의약청(FDA)이 정한 체중 60㎏ 성인의 하루 섭취 허용량은 2.4~3g인데요. 250㎖짜리 제로 콜라 1캔에 들어간 아스파탐은 43㎎으로, 이는 하루에 55캔을 마셔야 하는 양입니다. 아무리 콜라를 좋아한다고 해도 하루에 이 많은 콜라를 마신다는 건 쉽지 않죠.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우리나라 국민의 아스파탐 평균 섭취량은 일일섭취허용량(ADI) 대비 0.12% 수준"이라며 "유럽인들에 비해 높지 않다"고 설명했습니다. 한국인이 하루에 먹는 아스파탐량 자체가 이미 매우 적다는 의미로, 안심해도 괜찮다는 겁니다.

오히려 아스파탐이 필요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바로 당뇨병 환자들인데요. 앞서 말했듯 설탕보다 매우 적은 양으로 단맛을 낼 수 있기 때문이죠. 윤 교수는 "당뇨병 환자들은 설탕보다 인공 감미료를 먹는 게 삶의 질을 높일 수 있기에 발암 여부보다는 양의 개념으로 접근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습니다.

류호 기자 h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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