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창석의 들춰보기-쏟아지는 멀티버스와 숨겨진 심리[문화칼럼]

이선명 기자 2023. 7. 8.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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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



최근 개봉한 애니메이션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를 봤다. 제목에서도 유추할 수 있듯이 멀티버스를 다룬 작품이었다. 구체적인 내용은 개봉작이라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서 감추겠지만, 멀티버스를 이용해 과거의 무언가를 바로 잡아 현재를 만족시키고자 맥락은 여느 멀티버스 작품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러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언제부터 이 멀티버스의 시대가 열렸을까? 그리고 그 이전에는 어떤 시대가 있었을까? 멀티버스가 익숙해지기 이전인 시대에는 전생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다. 여기서 말하는 전생이라함은 현재 대한민국에서 살아가고 있는 내가 과거 조선시대에는 어떻게 살았는지 알아보는 ‘전생 과거’와 어렸을 적 트라우마를 쫓아가는 ‘현생 과거’를 모두 포함한다. 둘 다 ‘과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이 핵심이다.

먼저 현생 과거. 무한도전의 ‘찐팬’이라면 ‘노홍철’이라는 키워드와 ‘돈가스’라는 키워드만 던져도 어떤 회차를 이야기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해당 회차는 2007년 9월에 방영된, 지금으로부터 무려 16년 전의 ‘네 멋대로 해라’ 특집이었다. 무한도전 멤버들이 각자 PD가 되어 코너를 구성했고 유재석이 기획한 코너에서 노홍철은 설기문 심리학 박사의 집도(?)하에 최면속으로 빠져들었다. 여기서 전설의 ‘돈가스’ 발언이 나왔다. 최면에 걸려 8살로 돌아간 노홍철은 돈가스를 먹으러 가자는 어머니의 말에 아무런 의심 없이 집을 나섰고 도착한 곳은 돈가스집이 아닌 병원이었다. 당시 감기에 걸렸던 8세 노홍철 어린이는 돈가스라는 거짓말에 속아 주사를 맞을 수 밖에 없었고 정말로 어린아이처럼 펑펑 눈물을 흘리며 주사에 대한 트라우마를 고백했다. 그 모습은 두고두고 멤버들의 놀림감이 되었고, 심지어는 다른 멤버들이 병원을 갈 때도 돈가스를 먹으러 가냐고 놀릴 정도로 오랫동안 회자되었다.

두 번째는 전생 과거. 무한도전 관상 특집을 기억하시는 분들이 있을 것이다. 2013년 11월에 방영되어 레전드편이된 관상 특집은 역술가 박성준씨가 등장해 멤버 별로 관상을 봐주었다. 이 특집에서 놀랍게도(?) 정형돈이 가장 왕에 어울리는 관상을 가지고 있었다. 멤버 모두 관상을 다 보고 나서는 조선시대로 돌아가 각자 관상별(?)로 신분을 받아 재미를 뽑아내었다.

이처럼 전생이라는 과거는 예능의 단골 소재였다. 또한 우리도 평소에 이 전생이라는 과거에 대해 자주 언급한다.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는 ‘내가 전생에 도대체 무슨 죄를 지었길래’라고 말하는가 하면, 누군가가 일이 잘 풀릴 때는 ‘저 사람은 도대체 전생에 무슨 덕을 쌓았길래’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 심리의 본질은 무엇일까? 나의 뇌피셜로는 ‘순응’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나의 상태가 만족스럽지 않은 것에 대해 이유를 현실에서 찾기보다는 과거 속에서 찾았다는 것이다. 물론 모든 사람이 이유를 과거에서 찾아 현실에 안주하며 살아간다는 뜻은 아니지만, 그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다는 것이다.

MBC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 방송화면



요즘은 바야흐로 멀티버스의 시대다. 제일 먼저 언급한 애니메이션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부터 어벤져스,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 스파이더맨 노웨이홈까지 모두 멀티버스의 이야기다. 경쟁사인 DC도 마찬가지다. 현재 개봉 중인 플래시도 멀티버스 이야기이며, 또 다른 멀티버스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올해 아카데미에서 무려 7관왕을 거머쥐었다.

심지어는 유튜브도 멀티버스 전성시대다. 딩고 프리스타일의 킬링벌스와 딩고 뮤직의 킬링 보이스가 딩고 스튜디오의 ‘멀티벌스’로까지 진화했다. 래퍼와 가수들의 전유물이었던 곳이 99대장 나선욱, 뚱종원, 뚱시경으로 다양하게 부캐 활동을 하고 있는 유튜버 나선욱의 ‘멀티벌스’까지 오게 된 것이다. 지난 5월 10일 업로드된 이 영상은 한 달이 조금 지난 현재 조회수 210만회에 육박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부캐의 본질 또한 멀티버스라고 할 수 있다. 자기 자신을 멀티버스 세상에 투영해 새로운 캐릭터로 변신하는 것이다. 유재석이 트로트 가수 유산슬로, 개그맨 김해준이 최준이라는 캐릭터로 새로운 상황을 연출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멀티버스를 추구하는 심리의 본질은 무엇일까? 앞서 전생을 찾는 심리의 본질은 순응이라고 말했다. 역시나 나의 뇌피셜로 멀티버스의 심리는 ‘지금 이 순간’이자, ‘현실 타파’라고 생각한다. 과거엔 전생에 기대어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주를 이루었다면 요즘은 멀티버스를 구현해 지금의 현실을 파괴하고 또 다른 나를 창조하는 것에 주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현재의 상태에 만족하지 않는 나의 모습과 그 현실을 즉시 바꾸어버리고 싶은 욕망의 동시다발적 표출이다. 예시를 든 영화들도 마찬가지다. 어벤져스는 멀티버스를 통해 이미 한번 패배했던 현실을 바꾸어 타노스에게서 승리를 쟁취해내었다. 서점가의 책도 순응이 아닌 ‘역행자’가 베스트셀러다.

무한도전도 그런 멀티버스를 시도한 적이 있다. 현실의 상황을 바꾸는 것, 즉 ‘과거에 그랬다면, 지금의 현실은 어떻게 되었을까?’를 다룬 특집, 바로 2014년 1월에 방영된 무한도전 IF 특집이다. 이 특집에서 무한도전의 멤버들은 박명수가 만약 국민 MC라면이라든지, 멤버들이 데뷔 때 작품을 계속하고 있다면 등의 아이디어를 쏟아냈다. 이래서 무한도전에는 모든 것이 있다는 말이 나왔나 보다.

현생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현실을 바꾸고 싶은 마음이 꾸준히 지속되는 한, 이 멀티버스의 전성시대는 쉽게 사그러들지 않을 것 같다. 누군가가 보기엔 멀티버스는 이미 전성기를 넘어 더 이상 특별한 것이 없는 설정처럼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이미 멀티버스는 스스로 진화하고 있다. 그건 바로 마음대로 되지 않는 순간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시작한 것이다. 어벤져스처럼 멀티버스를 통해 히어로가 세상을 구하고 원하는 결과만을 얻게 된다면 이는 너무나도 손쉬운 치트키가 되어버린다. 하지만, 최근의 스파이더맨 노웨이홈이나 DC의 플래시는 바꿀 수 없는 현실이나 바꾸면 안되는 과거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분명 멀티버스는 진화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의 인생도 멀티버스가 될 수 있을까? 우리는 더 이상 평생 직장이라는 말에 순응하지 않는다. 새로운 직장, 새로운 직업에 언제든지 도전할 수 있다. 제 2의 인생이라는 말도 정년퇴직 이후만을 뜻하지 않는다. 우리는 앞으로 어떠한 현실을 바꾸려 노력하고 어떠한 현실을 받아들여야 할까. 적어도 이 글을 읽는 모든 이들이 멀티버스의 본질인 ‘지금 이 순간, 현실타파’를 성공해 멋진 삶을 열어젖힐 수 있길 간절히 소망해본다.

▲오창석 ▲작가 ▲대중문화칼럼니스트

정리: 이선명

이선명 기자 57k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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