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한 작가다운 발칙한 설정에도 가릴 수 없는 '아씨 두리안'의 아킬레스건

정덕현 칼럼니스트 2023. 7. 8.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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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극으로 시선은 끄는데 이 드라마를 왜 봐야 하는 걸까(‘아씨 두리안’)
족보 꼬고 희한하게 비틀어도 여전히 남은 ‘아씨 두리안’의 문제는

[엔터미디어=정덕현] "미치겠어요. 저도. 제가 생각해도 정상 아닌데, 아니지 싶은데... 입이 안 떨어져요. 나. 당신 안 사랑해. 어머님 사랑한다고... 며느리로서가 아니라 여자로서요. 무슨 뜻인지 아시죠?" TV조선 <아씨 두리안>은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사랑한다는 기상천외한 고백으로 포문을 연다. 성소수자의 사랑을 다루는 서사야 그리 낯선 건 아니다. 하지만 이건 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 하는 사랑고백이다. 그것도 남편을 포함해 가족이 다 모여 있는 자리에서.

이 파격적인 고부간의 사랑 설정은 조선시대와 현재를 훌쩍 뛰어넘는 타임리프 판타지와 동시에 전개된다. 조선시대의 마님 두리안(박주미)과 그의 며느리 김소저(이다연)가 아들이자 남편인 박언(유정후)이 사망하자 절망해 벼랑 끝에서 뛰어내리며 현재로 타임리프 된다는 설정이다. 그런데 하필 이들이 떨어진 곳이 재벌가 단씨 집안이다. 그곳에는 그들이 떠나온 조선시대의 인연들이 다른 관계들로 얽혀있다.

타임리프 전 조선시대의 두리안은 자신을 따르고 연모하던 머슴 돌쇠(김민준)와 씨내리를 해 아들 박언을 낳았는데, 돌쇠는 결국 시어머니(최명길)에게 살해된다. 그런데 타임리프를 해온 현재에 시어머니는 단씨 집안의 최고 어른인 백도이(최명길)였고, 돌쇠는 백도이의 둘째 아들 단치감(김민준)이다. 조선시대에 두리안의 병사한 남편은, 현재에는 백도이의 셋째 아들 단치정(지영산)이고 사망한 두리안의 아들 박언은 이곳에서는 백도이의 장손 단등명(유정후)이다.

즉 <아씨 두리안>은 조선시대의 인연과 달라진 현재의 관계를 타임리프로 병치함으로써 이를 뛰어넘어온 두리안과 김소저가 향후 이들과 어떤 관계를 맺어나갈 것인가를 들여다보는 드라마다. 결국 두리안에게 백도이는 조선시대에 자신의 정인이었던 돌쇠를 죽인 원수지만, 이 세계에서는 바로 그 돌쇠와 같은 얼굴을 한 단치감의 엄마가 되고, 아들이었던 박언은 이곳에서는 백도이의 장손인 단등명이다. 그러니 두리안의 마음은 복잡해진다.

결국 이 단씨 집안에 들어온 두리안과 김소저가 이들과 새롭게 이어가는 관계성이 이 드라마가 갖는 핵심적인 재미요소다. 이를테면 두리안이 조선시대에는 금기됐던 돌쇠와의 사랑을 이 시대에서는 단치감을 통해 피워나갈 수 있지만 이미 단치감은 기혼자라는 측면에서 보면 그것 역시 불륜관계가 된다. 또 조선시대에 허망하게 죽은 남편에 대해 애틋한 감정을 가진 김소저가 똑같이 생긴 백도이의 장손 단등명에 대한 연정을 갖게 될 수 있지만 이렇게 되면 백도이와 두리안의 관계가 애매모호해진다. 조선시대의 고부관계가 이 시대에는 사돈관계로 바뀌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계성의 변화는 그 자체로 자극적인 면이 있다. 마치 근친 간의 금기된 관계를 타임리프라는 장치를 통해 슬쩍 꺼내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갑자기 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 사랑 고백을 하는 대목 역시 그리 놀라운 파격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결국 <아씨 두리안>이 보여주는 관계는 그런 '금지된 관계'의 양상을 띠기 때문이다. 시간을 뛰어넘어 다른 족보로 위치가 달라진 가계도를 보여주고 있어서다.

임성한 작가다운 기상천외한 발상이고, 그것이 만들어내는 기묘한 자극점들이 분명히 존재하지만 여기에는 한 가지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타임리프로 비틀어 놓은 관계가 주는 묘미는 알겠는데, 시청자들이 기대하는 스토리의 동력을 잘 모르겠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전작이었던 <결혼작사 이혼작곡>의 경우에는 '내로남불'이라는 불륜코드가 만들어내는 일종의 복수극 서사가 강력한 동력이 됐다. 시청자들은 뻔뻔한 내로남불을 보며 저들이 뿌린 대로 거두는 걸 끝내 보고픈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아씨 두리안>은 어떤 동력이 있을까. 조선시대에 이루지 못한 사랑을 끝내 이루는 과정일까. 아니면 시어머니를 사랑하게 된 며느리가 그걸 이뤄가는 과정일까. 어느 것이든 그다지 시청자들이 보고픈 동력이 되는 것 같지는 않다. 마치 일일드라마처럼 장면 장면에 담긴 자극점들이 존재하긴 하지만, 전체를 끌고 가는 굵직한 한 방의 동력이 부족한 점. 그것이 <아씨 두리안>이 가진 아킬레스건이다. 물론 아직 그걸 꺼내 보이지 않은 것일 수도 있지만.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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