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숲과 호수가 노래가는 만인산자연휴양림 [최현태 기자의 여행홀릭]
최현태 2023. 7. 8. 13:56
싱그러운 녹음·예쁜 호수 즐기는 대전 만인산자연휴양림 / 상소동산림욕장에선 동남아 사원 닮은 돌탑공원 한바퀴 돌고 세족대 얼음물에서 피서
거참 요란하다. 누가 소나기 아니랄까 봐. 잔잔한 호수에 커다란 파문을 그리며 와장창 쏟아져 내리는 굵은 빗줄기는 보기만 해도 속이 시원하다. 그래, 여름 소나기는 이 맛이지. 한바탕 야단법석 떨던 소나기 이내 지나자 마법의 시간이 찾아온다. 거울처럼 매끈한 수면 위로 파란 하늘과 뭉게구름 둥실 떠오르는 풍경. 소나기에 놀라 나무 그늘로 숨어들던 거위 한 쌍 다시 다정하게 헤엄치는 모습까지 어우러지니 이보다 더 예쁜 수채화가 있을까. 푸른 숲과 호수가 노래하는 만인산자연휴양림의 여름은 아름답고 찬란하다.
◆여름 짙어가는 만인산자연휴양림
대전시 동구 하소동 만인산자연휴양림 휴게소로 들어서니 커다란 나무가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주는 테라스 테이블마다 정겨운 대화가 넘쳐난다. 50대 아들 손을 잡고 바람 쐬러 나선 80대 노모는 휴게소 호떡이 참 맛있다며 게 눈 감추듯 먹어 치운 뒤 금세 두 개째를 집어 들었다. 호떡 하나 입에 물고 숲 속 자연탐방로를 따라 걷는다. 소나기 그친 하늘엔 다시 태양이 이글거리지만 탐방로는 시원하다.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짙은 녹색잎들이 터널을 만들어주는 덕분에. 5분만 걸어 내려가면 작고도 예쁜 호수가 펼쳐진다.
“꺼억 꺼억.” 야생 거위 한 쌍은 이방인을 만나자 경계심을 드러내며 우렁차게 울어댄다. 호수의 주인은 오랫동안 터를 잡고 살아가는 자신이라는 사실을 각인시키듯. 소나기 지나간 뒤라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로 예쁠 줄이야. 선명도를 무한대로 끌어올린 파란 하늘과 여름의 상징, 뭉게구름이 호수에 그대로 담기며 그림엽서를 만들어 놓으니 여행자들은 사진 찍기 바쁘다. 정말 오랜만에 보는 예쁜 풍경에 기분은 한껏 하늘로 날아오른다. 자세히 보니 호수의 식구가 또 있다. 커다란 거북이 세 마리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신나게 헤엄친다. 땅에선 매우 느린 거북이지만 물에서는 아주 재빠르다.
만인산자연휴양림은 휴양림을 가로지르는 17번 국도를 중심으로 만인산휴게소가 있는 서쪽은 휴양림권역, 푸른학습원이 있는 동쪽은 자연학습관 권역으로 나뉜다. 두 지역은 추부터널 위로 연결되는 자연탐방로, 휴게소와 학습원을 연결하는 야외 데크를 통해 오갈 수 있다. 한두 시간 정도 휴양림을 산책하고 싶다면 만인산휴게소에서 시작하면 된다. 탐방 데크를 따라 푸른학습원 권역으로 들어서자 피톤치드 가득한 숲의 싱그러움이 마음을 녹색으로 물들인다. 맨발숲길∼출렁다리∼곤충 생태관·새와 동물의 집∼물레방아 도는 연못 등을 거쳐 휴게소로 돌아오는 코스는 1.5㎞이며 등산로를 따라 걷는 코스도 있다. 학습원 천문대에선 천체망원경으로 별자리를 직접 관찰할 수 있어 여름방학 때 아이들 손 잡고 여행하기도 좋은 곳이다. 학습원은 하루 최대 240명을 수용할 수 있고 10일 전까지 신청해야 한다.
◆만인산 올라 태조대왕 태실을 마주하다
대전광역시와 충남 금산군에 걸쳐있는 해발고도 538m의 만인산은 태봉산, 태실산으로도 불린다. 바로 이곳에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태실(胎室)이 있기 때문이다. 사연이 있다. 조선 초기 한 시인이 산세에 반해 정상에 오른 뒤 “산봉우리마다 연꽃이 만발한 것 같고 아흔아홉 골짜기 옥수 같은 맑은 물이 한곳에 모여들어 흐르니 경관이 으뜸”이라고 극찬했다. 이 소식을 들은 태조의 왕사 무학대사의 권고로 1393년(태조 2년) 금산군 추부면 마전리 만인산에 태실을 축조, 함경도 용연지역에 있던 태조의 태를 이곳으로 옮기고 태자의 태도 함께 묻은 뒤 옥계부사를 두어 관리하도록 했다. 태조의 태가 묻혔으니 당연히 만인산은 신성불가침의 성역이 됐다. 연료가 아무리 귀해도 나무를 채취하지 못하도록 했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일제강점기이던 1928년 4월 조선총독부가 태를 창덕궁으로 옮겼고 이후 만인산 태실은 파괴됐는데 1993년에 비석과 여러 석물들을 모아 복원됐다. 휴게소에서 10분 정도 생태탐방로를 따라가면 태실을 만난다. 만인산이 북풍을 막고 남향 능선이라 햇빛이 아주 잘 드니 풍수지리를 잘 모르지만 명당임에 틀림없으리라.
태실은 팔각형이며 돌로 난간을 만들었다. 태실 앞에는 귀부 위에 태실비를 세웠고 정면에는 비문 ‘태조태왕태실(太祖大王胎室)’이, 후면에는 중건한 시기(1689년)가 새겨져 있다. 지금도 추부면 장대리에 ‘옥계부사도(玉溪府使都)’라는 옛터와 ‘비례리(備禮里)’라는 지명이 남아있는데 이곳에서부터 예를 갖춰 태실을 참배한 데서 유래됐다. 재미있는 것은 시인이 극찬한 것처럼 만인산을 관통하는 17번 국도 하행선 방향 깊은 계곡인 봉수레미골은 대전천의 발원지이라는 점이다. 신기하게도 사계절 물이 마르지 않으며 맑은 물은 만인산의 정기를 품고 대전의 중심부로 흘러든다. 만인산의 주봉과 정기봉은 옛날 한성으로 연결되는 봉화대가 설치돼 있었는데 지금은 그 터만 남아있다. 또 주봉의 봉화는 호남의 봉화로, 정기봉 봉화는 영남의 봉화로 연결될 정도로 만인산은 양대 봉화의 분수령 역할을 한 유서 깊은 곳이다.
◆상소동산림욕장 돌탑을 아시나요
만인산자연휴양림에서 차로 20분 거리에 아이들과 힐링하기 좋은 상소동산림욕장이 있어 함께 묶어 여행하기 좋다. 대전천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 한국관광공사 대전충남지사가 강소형 잠재관광지로 선정한 상소동산림욕장으로 들어서자 울창한 메타세쿼이아 길을 따라 시원한 ‘인공 냇물’이 흐른다. 어른들은 족욕 삼매경에 빠졌고 아이들은 옷이 다 젖도록 첨벙첨벙 뛰어놀며 뜨거운 여름을 식힌다.
만인산과 식장산 자락 가운데 들어선 상소동산림욕장은 메타세쿼이아길, 몽돌지압길, 돌탑길, 생태놀이터, 유아숲체험원 등 무료로 이용하는 다양한 시설이 마련돼 무더운 여름을 보내기 안성맞춤이다. 그중 가장 큰 매력은 돌탑공원. 크고 작은 돌탑 400여개가 줄지어 선 오솔길을 따라 10여분 올라가면 눈을 의심하게 만드는 모습이 펼쳐진다. ‘한국의 앙코르와트’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동남아시아의 한 사원으로 점프한 듯, 독특한 모양의 거대한 돌탑 17기가 이국적인 풍경을 만들고 있어서다. 아이들은 신기한 동화의 나라를 만났나 보다. 돌탑 사이를 뛰어다니며 숨바꼭질 놀이에 푹 빠져 집에 갈 줄 모른다.
이덕상씨가 2003년 7월부터 쌓기 시작해 2007년 5월에 완공한 돌탑은 모양도 다 다르고 돌탑 한 개에 사용된 돌의 무늬와 색깔도 각양각색이라 구경하는 재미가 크다. 이씨가 시민들의 건강을 기원하며 쌓은 돌탑은 한 개를 완성하는 데 무려 3개월이 걸렸단다. 대전 동구청은 2003년 상소동산림욕장을 오픈하면서 시민들을 대상으로 돌탑 1000기 쌓기 행사를 진행했는데 당시 74세이던 이씨가 참여해 이처럼 아름다운 풍경을 완성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희망의 탑’으로도 불리는 돌탑은 이국적인 풍경 덕분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사진 명소로도 높은 인기를 누린다.
봄부터 가을까지 수많은 야생화가 반겨주기에 가볍게 산책과 등산도 즐길 수 있다. 산림욕장 내부코스는 1㎞로 30분이면 충분하고 산림욕장 정상까지 다녀오는 2.5㎞ 코스는 두 시간 정도 걸린다. 산림욕장 정상을 지나 동구청소년수련관(지봉산)∼만인산푸른학습원(정기봉)∼만인산으로 이어지는 5㎞ 등산코스는 4시간30분이 소요된다.
상소동산림욕장에 또 하나의 매력이 있다. 바로 입구에 마련된 오토캠핑장. 시민휴식공원과 만인산에서 발원한 맑은 대전천을 끼고 있는 캠핑장의 ‘명당’ 자리는 나무들이 그늘을 만들어주는 ‘대전천 1열’. 커다란 텐트 옆에서 여행자들이 삼겹살을 구워 먹으며 담소를 나눈다. 1만6962㎡ 규모의 캠핑장은 사이트 50면과 화장실 2곳, 취사장 1곳, 사계절 온수 사용이 가능한 샤워장 1곳 등을 갖춰 편하게 자연과 한 몸이 돼 여름휴가를 보내기 좋다. 식장산문화공원전망대도 놓치지 말기를. 전망대에 오르면 호남과 경계를 이루는 대둔산, 옥천 금산의 서대산, 공주의 계룡산, 그리고 대전시 계족산과 보문산이 파노라마로 펼쳐지는 시원한 풍경을 만난다.
대전=글·사진 최현태 선임기자 htcho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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