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를 친구로 둔 당신은 미치지 않았다
[리뷰] 넷플릭스 오리지널 블랙미러 시즌6 '악마79'
[미디어오늘 윤유경 기자]
※본 리뷰 기사에는 드라마의 스포일러가 될 만한 줄거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있지 너 안 미쳤어.”
처음으로 자신의 속마음을 드러내고 괴로워하는 주인공에게 악마가 말한다.
1979년 영국에서 살아가는 주인공 '니다'는 인도인 여성이다. 인종차별과 성차별에 더해 인도가 영국의 식민지였기 때문에 더 쉽게 무시당한다. '아프다'는 말에 병균을 옮기지 말라며 피하고 온갖 일을 그에게 떠넘기는 백인 동료와 함께 일한다. 퇴근길에는 남성들의 성희롱을 당하고, 술집에 갔다는 이유만으로 인근 살인사건 관련해 경찰의 의심을 받는다.
그럴수록 니다는 더 꼿꼿하게 허리를 펴고 옷매무새를 깔끔하게 정돈한다. 주인공은 스스로 검열하며 살 수밖에 없는 조건에서 처해 있다. 차별받는 이들은 더욱 남들의 눈치를 보게 된다. 최근 넷플릭스가 공개한 블랙미러 시즌6 드라마 <악마79>는 사회적 목소리를 내는 소수자들에게 '당신이 미치지 않았다'고 말해주는 이야기다.
백화점의 한 신발가게에서 일하는 니다는 점심으로 싸 온 인도식 도시락이 냄새가 난다는 동료의 불만에 지하실에서 밥을 먹는다. 니다는 우연히 남들이 보지 못하는 부적을 발견하고 '악마'를 만난다. 부적에서 나온 악마 '가압'은 니다가 평소 눈여겨 보던 그룹 보니M의 흑인 멤버 모습이다. 가압은 대뜸 “우린 결속돼있다”며 3일 동안 세 명의 사람을 죽여야 한다고 재촉한다.
죽이지 않으면 인류 전체가 멸망한단다. 불타는 세계에 사람 타는 냄새까지 맡게 하니, 죽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당황한 니다는 집밖에서 처음 만난 사람이 아동 성범죄자라는 사실을 알게 돼 그를 돌로 쳐 강물에 빠뜨린다.
일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니다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가압의 존재를 보지 못한다. 니다와 가압의 대화는 타인들에겐 니다의 혼잣말처럼 보일 뿐이다. 니다를 혼잣말하는 '미친 사람'으로 치부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소수자들을 다수가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혼자 엉뚱한 말을 하는 사람으로 취급하는 우리 사회와 닮아있다. 그래서 소수자들은 때로는 자신의 입장을 외치기 시작하면 '미친 사람'으로 오해받는다. 남들이 보기엔 큰 문제없이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일상적으로 불편한 시선이나 차별에 노출되어있기 때문이다.
부적에서 꺼내달라고 소리치는 악마를 외면하려하고, 살인하라는 말에 경찰에 전화하려는 것을 보면 니다는 비도덕적이거나 폭력적인 사람은 아니다. 세 명을 빨리 채우기 위해 아무나 죽이라고 부추기는 가압은 분노가 극단화된 상태를 상징하는데, 니다는 그중에서도 '죽어 마땅한' 인간을 물색하기도 한다.
이러한 장치들은 시청자들로 하여금 거부감 없이 니다에게 공감하게 한다. 하지만 결국 악마를 꺼내주고 전화를 끊는 니다의 모습은 차별받는 사람들이 내면에 품고 있는 분노를 보여준다. 니다는 그렇게 아내를 살인한 남성도 죽이게 된다.
드라마는 소수자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현상을 '살인'에 비유했다고 볼 수 있다. 소수자의 자기 주장을 '살인'에 버금가는 위협으로 취급하는 현실의 주류를 보면 어느정도 납득이 되는 비유다. 성소수자들, 연대하는 사람들이 모여 거리를 행진하는 퀴어문화축제에는 항상 가정과 교육을 '파괴'하는 존재라는 비난이 따라온다. 자신을 드러낸 것만으로 파괴당했다고 비난하는 건 드라마 속 풍경이라고만 보기 어렵다. 이동이 불편해 학교조차 제대로 다니지 못해 보장해달라고 요구해온 장애인들 앞에는 욕설과 폭력, 시위 탄압이 마주하고 있다.
그렇다면 니다에게 나타나 살인을 부추긴 악마 '가압'은 그의 내면의 목소리다. 악마는 불평등한 사회를 향한 증오 혹은 분노이거나, 소수자들의 울분이다. 소수자가 행동하게 하는 구원자일 수도 있다. 드라마는 도덕적 판단을 내리지 않는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를 '악마'로 캐릭터화했다. 사람을 죽이지 않으면 가압은 “심오하고 손에 잡힐듯하면서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존재의 부재를 홀로 끝없이 견뎌내야” 한다.
이민자를 탄압하는 극우정당이 행진 중 폭력을 행사해 수천 명이 부상을 입었다는 뉴스를 보곤 채널을 돌려버린 니다는 그 후 애니메이션과 음악 프로그램만 본다. 그런 니다에게 나타나 다시 뉴스를 틀어주는 악마는 차별을 직면하게 하고 대항할 수 있는 분노를 이끌어낸다. 그리곤 니다에게 “네 안에 뭔가 어두운 힘이 있는 채로 부적을 만졌을거야. 부끄럽게 생각하지마”라고 말해준다.
흉악범을 살인하던 니다는 마지막으로 보수 정당의 총리 후보를 죽이기로 한다. 대처를 상징하는 보수정당의 총리 후보는 교묘한 인종 차별주의자다. 총리 후보는 대놓고 이민자를 혐오하는 문구를 내건 극우정당(국민전선, NF)에 투표하겠다던 니다의 동료에게 자신도 똑같이 이민자를 혐오하지만 보수정당의 집권을 위해 선거공약으로 내걸지 않았을 뿐이라고 설득한다.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니다는 그가 총리가 된 후 끔찍해질 영국 사회를 보게 됐고 마지막 살인 대상을 총리 후보로 결정한다.
원래 니다의 마지막 살인대상은 그를 괴롭히던 백인 동료였다. 그랬던 니다가 총리 후보를 죽이기로 결심한 건 차별이 구조적 문제라는 걸 깨닫는 장면이다. 구조적인 문제를 바꾸려는 니다를 막은 건 경찰이다. 경찰은 “(죽이지) 못하면 불타요”라고 말하며 총리 후보를 죽이려는 니다의 팔을 잡고선 “그건 그때 해결하면 돼”라고 말한다. 차별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게 하는 존재가 공권력이라는 점에서 상징적인 장면이다. '나쁜 사람들'은 응징하지만 차별을 만들고 선동한 근원을 뿌리 뽑지 못한 것이다.
결국 총리 후보를 죽이지 못했고, 니다를 '미친 사람' 취급했던 경찰 앞에는 핵폭탄이 덮친다. 드라마를 보는 모두가 '설마'하고 의심했던 핵폭탄이 터져 온 세상을 뒤덮는 장면은 이 영화의 절정이다. 온 세상을 덮친 끔찍한 핵폭탄에서는 세상을 뒤덮은 혐오와 차별의 끔찍함이 보인다. 가진 것 없는 약자들이 고통받게 되는 1980년대 신자유주의 시대를 풍자한 장면이다.
핵폭탄이 터지고, 가압은 니다에게 말한다. “나를 추방한대. 영원한 망각의 세계로. 나랑 같이 갈래?” 니다는 대답한다. “해보지 뭐.” 살인에 실패한 둘은 왜 영원히 잊혀지는 '망각의 세계'로 추방될까? 그들의 시도는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 '실패한 혁명'이다. '역사는 승자의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아도 괜찮다. 불길에 휩싸인 세상을 뒤로 하고, 니다와 가압은 손을 맞잡고 앞을 향해 걸어나간다. 승패보다 따뜻한 연대의 장면이다.
<블랙미러> 시리즈의 다수 작품이 기술 발전으로 인한 미래의 디스토피아를 보여주는 반면, <악마79>는 익히 아는 과거의 역사적 사실에 기반해 디스토피아를 보여준다. 영화는 전형적이고 귀를 째는 옛 공포영화 배경음악으로 시작하며 '과거' 배경을 강조한다. 빨간색으로 거칠게 쓰여진 커다란 'DEMON 79'라는 글씨도 옛날 영화를 떠올리게 한다.
앞선 작품들이 미래의 극단적 사례를 보여주며 현실을 돌아보게한다면, <악마79>는 현재와 똑같은 40년전 과거의 모습을 보여줘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이 디스토피아임을 자각시켜준다. 지금 벌어지는 일들은 드라마에 나오는 차별적 현실과 별반 차이가 없다. '블랙미러', 어두운 면을 보여주는 거울이 꼭 미래일 필요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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