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섭의 MLB스코프] 전반기에 벌써 40도루 등장, 2023 MLB 얼마나 뛰고 있나
[스포티비뉴스=이창섭 칼럼니스트] 1970년대 메이저리그는 규모가 큰 다목적 구장들이 등장했다. 그러면서 홈런 열풍이 살짝 사그라들었다. 홈런이 주춤하자 다시금 지위가 오른 요소가 바로 도루였다. 1970년대 활기를 찾은 뛰는 야구는 1980년대 부흥기를 맞이했다.
현대 야구가 시작된 1900년 이후 단일 시즌 100도루 선수가 나온 건 단 8번이다. 그리고 이 8번 중 7번이 1970년대와 1980년대 나왔다. '전설의 대도' 리키 헨더슨을 필두로 루 브록과 빈스 콜먼 같은 스피드 스타들이 주름 잡은 시대였다.
단일 시즌 100도루 선수
1962 - 모리 윌스 (104도루)
1974 - 루 브록 (118도루)
1980 - 리키 헨더슨 (100도루)
1982 - 리키 헨더슨 (130도루)
1983 - 리키 헨더슨 (108도루)
1985 - 빈스 콜먼 (110도루)
1986 - 빈스 콜먼 (107도루)
1987 - 빈스 콜먼 (109도루)
도루의 강세는 오래 가지 못했다. 1990년대 메이저리그는 이른바 '스테로이드 시대'에 접어들었다. 파업으로 떨어진 위상을 홈런으로 일으켰다. 1998년 마크 맥과이어와 새미 소사의 홈런 대결에 메이저리그를 넘어 전 세계가 열광했다. 당시 버드 셀릭 커미셔너는 홈런이 '정답'이라고 생각했다. 더 많은 선수들이 홈런을 치도록 분위기를 조성했다.
홈런의 가치는 떨어지지 않았다. 타자들은 홈런이 돈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여기에 구속이 빨라진 투수들이 탈삼진을 노리자, 타자들도 이에 질세라 홈런으로 응수했다. 2019년 메이저리그는 도합 6776홈런으로 단일 시즌 신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단일 시즌 리그 최다 홈런
2019 : 6776홈런
2017 : 6105홈런
2021 : 5944홈런
2000 : 5693홈런
홈런이 늘수록 도루는 줄었다. 베이스를 훔치는 것보다 홈런을 치는 것에 더 초점을 맞췄다. 또한 세이버매트릭스가 대두되면서 도루의 효용성에 의문이 생겼다. 도루 성공보다 도루 실패 시 기대 득점에서 더 손해라는 점이 알려졌다. 무엇보다 선수들의 몸값이 수직 상승하면서 부상을 유발하는 도루는 더 외면을 받았다.
도루의 시대는 이대로 저무는 듯 했다. 하지만 사무국은 홈런과 탈삼진으로 획일화되는 리그를 그냥 두지 않았다. 이번 시즌을 앞두고 피치 클락 도입과 주자 견제 제한, 투수 보크 강화 등을 발표하면서 주자들이 뛸 수 있는 쾌적한 환경을 만들어줬다. 이에 각 팀들은 스프링캠프 때부터 뛰는 야구를 시험하면서 달라진 시즌에 적응할 준비를 마쳤다.
사무국이 권장한 도루는 실제로 올해 크게 증가했다. 2021년 도합 2213개, 2022년 2486개였는데, 전반기가 아직 끝나지 않은 현재 2000개를 앞두고 있다(1903개). 이대로면 2012년 3229개 이후 처음으로 3000도루 시즌이 기대된다. 경기 당 평균 0.72개 도루 역시 2021년 0.46개, 2022년 0.51개에 비해 많아졌다. 참고로 메이저리그는 2000년대 들어 경기 당 평균 도루 수가 0.70개를 넘어간 적이 없다.
무작정 많이 뛰기만 하는 것도 아니다. 올해 메이저리그는 리그 도루 성공률이 80%로 높은 수준이다. 지난해 성공률은 75%였고, 5년 전인 2018년은 72%밖에 되지 않았다. 사무국이 도루를 위해 마련한 장치들이 분명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현재 팀 도루가 가장 많은 팀은 탬파베이 레이스다. 109개를 성공시켰다. 탬파베이에 이어 신시내티 레즈가 106도루로 열심히 달렸다. 신시내티는 이번 시즌 바뀐 규정을 십분 활용하면서 예상밖의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85도루로 전체 4위에 올라 있는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도 마찬가지다(3위 오클랜드 어슬레틱스 89도루).
애리조나는 팀 도루 성공률이 88%다. 그런데 도루 성공률 1위 팀은 따로 있다. 뉴욕 메츠다. 메츠는 76번의 도루 시도에서 69번의 도루를 해냈다. 도루 성공률이 무려 91%에 달한다. 도루 작전을 주관하는 웨인 커비 1루 코치는 구체적인 비결은 밝히지 않았지만, "피치 클락이 시작되면 투수들마다 다른 습관들이 보인다. 나는 그 부분을 찾으려고 한다"고 전했다. 도루가 떠오르면서 세밀한 점을 발견하는 현미경 야구도 덩달아 강조되고 있다.
개인 기록도 좋아졌다. 지난해 메이저리그 도루 1위는 마이애미 말린스의 존 버디였다. 버디는 41도루를 기록했다. 그런데 올해는 이미 전반기에 두 명이나 40도루를 넘어섰다. 오클랜드 에스테우리 루이스가 43도루,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로날드 아쿠냐 주니어가 41도루를 성공시켰다. 전반기에 40도루 선수 두 명이 나온 건 2014년 이후 9년 만이다(디 스트레인지-고든 43도루, 호세 알투베 41도루).
작년 12월 삼각 트레이드로 오클랜드에 온 루이스는 이번 시즌 최대 수혜자다. 리키 헨더슨이 특별 고문인 오클랜드는 어느 팀보다 도루에 개방적이다. 덕분에 루이스는 자유롭게 뛸 수 있는 그린 라이트를 받았고, 루이스는 팀의 바람대로 마음껏 뛰고 있다. 도루 성공도 가장 많지만, 도루 실패도 가장 많다. 나가면 다음 베이스를 바라보는 루이스는 1977년 미첼 페이지의 오클랜드 신인 최다 도루 기록(42도루)을 벌써 갈아치웠다.
아쿠냐는 루이스보다 더 훌륭한 시즌을 보내고 있다. 21홈런을 날린 아쿠냐는 전반기 20홈런 40도루 시즌을 달성한 역대 최초의 선수다(1986년 헨더슨 15홈런 51도루). 홈런 페이스만 끌어올리면 역사상 5번째 40홈런 40도루 시즌을 선보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았던 40홈런 60도루 시즌도 충분히 가능하다. 루이스와 달리 팀 성적도 뛰어난 아쿠냐는 이번 시즌 강력한 리그 MVP 후보다.
메이저리그 역대 40-40 클럽 선수
1988 : 호세 칸세코 (42홈런 40도루)
1996 : 배리 본즈 (42홈런 40도루)
1998 : 알렉스 로드리게스 (42홈런 46도루)
2006 : 알폰소 소리아노 (46홈런 41도루)
한동안 주춤했던 도루가 살아나면서 메이저리그는 역동성을 회복했다. 투수와 타자의 승부뿐만 아니라 투수와 주자, 포수와 주자의 승부가 더 치열해진 점도 재미를 더하고 있다. 포스트시즌이 되면 경기 흐름을 바꿀 수 있는 도루는 남은 시즌 더 큰 무기가 될 전망이다.
현대 야구에서 처음으로 100도루 시즌을 선보인 모리 윌스는 과거 스피드 스타의 존재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발이 빠른 주자가 나갔습니다. 그러면 당신은 타자를 봅니까, 1루 주자를 봅니까."
우리는 모처럼 1루 주자도 더 많이 지켜보는 시즌을 보내고 있다.
<저작권자 ⓒ SPOTV 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스포티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