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잘못이 아니야’ 진심 담긴 위로, 10년 관객 공감 ‘그날들’의 힘”
그리운 김광석의 노래들… 주역 유준상 인터뷰
“누구나 있지 않나요. 잊지 못하고, 풀지 못하고, 용서하지 못하고 묻어둔 응어리, 지켜주지 못한 사람을 향한 미안함 같은 것들요. 이 뮤지컬은 그런 게 우리 잘못 만은 아니었다고, 세월과 시대가 그랬었다고 다독이고 위로하지요.”
2013년 초연 뒤 여섯 시즌. 김광석의 그리운 노래들로 만든 주크박스 뮤지컬 ‘그날들’은 총 관객 55만명을 돌파한 스테디셀러 공연이 됐다. 12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10주년 기념 공연을 앞두고 인터뷰한 이 뮤지컬의 주인공 ‘차정학’ 역 배우 유준상(54)은 “불과 20년 전 우리가 어떤 식으로든 겪고 통과해온 시대, 그 속에 있었을 법한 사람들의 진심이 담긴 이야기”라고 했다. “이 작품을 연기하면서 스스로도 큰 위로를 받습니다. 내가 받는 위로가, 그 진심이 조금이라도 관객들에게 전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무대에 섭니다.”
◇세월 뛰어넘는 ‘김광석 노래’의 힘
뮤지컬은 1992년 한중 수교를 앞둔 청와대에서 경호원으로 일하던 ‘정학’이 신변 보호를 맡았던 ‘그녀’가 라이벌이자 가장 친한 동료였던 ‘무영’과 함께 실종되고 20년 뒤, 한중수교 20주년 기념행사를 앞둔 청와대에서 비슷한 사건이 벌어지는 이야기.
유준상은 “오랫동안 창작 뮤지컬을 해왔지만 어떤 작품도 10주년 공연은 늘 감격스럽다. ‘그날들’은 또 그동안 한 시즌도 안 빼놓고 다 출연했던 작품이라 더 특별하다”고 했다. 그가 꼽는 이 뮤지컬의 가장 큰 매력은 극을 구성하는 가수 고(故) 김광석(1965~1996)의 노래가 가진 힘. 그는 “오래전부터 들었던 음악인데 지금 젊은이들도 좋아한다. 노랫말과 음악이 더해져 주는 울림이 크다”고 했다. “40대 중반에는 ‘서른 즈음에’를 부르며 펑펑 울었죠. 50대가 돼서는 ‘거리에서’를 부르면 눈물이 나요. 여전히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울컥 울컥하는 마음이 일어나는 작품입니다.”
유준상은 “공연을 보면 김광석의 노래에 이야기가 더해지고, 다시 김광석의 음악을 들으면 공연 속 장면들이 떠오를 것”이라고도 했다.
◇”무대에 대한 절실함으로 버텼다”
드라마와 영화로 널리 알려졌지만, 유준상은 꾸준히 뮤지컬 무대에 서 온 배우이기도 하다. 동국대 연극영화과를 졸업하며 1995년부터 연극을 했고, 1997년엔 뮤지컬도 시작했다. 대중에겐 뮤지컬이라는 개념부터 낯설던 때였다. “뮤지컬은 시장이 없다고, 아직 시기상조라고 다들 말렸어요. 하지만 제가 이 장르에 대한 애착이 컸기 때문에 놓지 않고 계속 했죠. 돌이켜 보면 잘 한 선택 같아요. 그 때 뮤지컬을 놓지 않고 버텼기 때문에 지금도 그 때의 절실한 마음으로 계속 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그는 “버틴다는게 시간만 보낸다고 되는 게 아니더라”며 영화 ‘고산자, 대동여지도’(2016)에 흥선대원군으로 출연했을 때 난 치는 법을 배웠던 수묵화의 대가 소산(小山) 박대성(78) 선생 이야기를 꺼냈다. 2년여 전 경주 한 미술관에 걸린 1억원짜리 그림을 어린아이가 훼손한 사건이 벌어졌는데도 웃어넘긴 일로 더 유명해진 화가. “지금도 매일 아침마다 1시간 이상 글씨를 쓰신대요. 왜 그렇게 하시냐 여쭸더니 ‘글씨가 곧 그림이다. 글씨를 잘 써야 그림을 잘 그릴 수 있다’고 하시더군요.” 이후 유준상도 아침마다 배우로서 가장 기본적인 훈련을 반복하는 자신만의 루틴을 만들었다. “연습이 있으나 없으나 집에서 매일 ‘그날들’을 혼자 ‘1일 1런(run·공연을 처음부터 끝까지 하는 것)’하고 있어요. 음악만 있으면 집에서 노래도 안무도 혼자 다 해볼 수 있거든요.”
◇”10년 달렸으니, 10년 더!”
뮤지컬 ‘그날들’에서 유준상은 20대부터 40대까지 연령대를 소화한다. 워낙 타고난 동안(童顔)인 편이라, 최근작 ‘경이로운 소문’이나 ‘환혼’ 등에서도 그는 늘 실제 나이보다 열 살쯤 어린 역할을 맡아왔다. “정말 행복한 일이죠. 지나간 내 20대를 무대에서 살아볼 수 있다니. ‘진짜 20대처럼 뛰어다녀야겠다’고, ‘그러려면 더 열심히 관리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날들’을 쓰고 연출한 사람은 뮤지컬 연출가이자 평창동계올림픽 폐회식을 연출했고 ‘부라더’(2017), ‘정직한 후보’ 1편(2020)과 2편(2022) 등 영화를 만들었던 장유정(47) 감독. 장 감독은 최근 연습 때 유준상이 무대에서 펄펄 나는 모습을 지켜보더니 “선배님, 10년 더 하실 수 있겠네요” 하고 덕담했다. 유준상은 “진짜로 그럴 생각”이라며 웃었다. “10년 뒤에도 20대를 연기할 수 있을까 스스로 질문해보곤 했는데, 감독님 얘기 듣고 마음 굳혔습니다. 제가 ‘송구스럽지만 10년 뒤까지도 이 작품 계속하겠습니다’ 그랬지요.”
유준상은 “장 감독은 처음 이 작품을 쓸 때부터 영화화 노력을 해온 듯 하다. 아마 어떻게 하면 뮤지컬 영화가 쉽게 관객에게 다가갈 수 있을까 고민하며 때를 기다리는 것 같다”고도 했다. “언젠가는 영화로 만드실 것 같아요. 제가 조금이라도 더 젊을 때 만드시면 좋겠어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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