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공대 입시는 어쩌다 ‘스카이 캐슬’이 됐나[시차적응]
‘저 나라 사람들은 왜 그렇지?’ 국제뉴스 속 궁금증을 콕 짚어 새로운 시각에 적응시켜 드립니다. |
인도의 사교육 열풍은 이미 10년 전부터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지금 인도의 2030세대 역시 사교육으로 ‘초집중 관리’를 경험한 세대라고 합니다. 특히 신분 사다리를 오를 수 있는 유력한 경로로 꼽히는 공대 입시는 더욱 치열합니다. 기자는 최근 10년 사이 인도에서 공대 입시 경험이 있는 인도 출신 엔지니어 4명과 인도의 뜨거운 사교육 실태에 대해 대화를 나눴습니다. 한 엔지니어는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시절”이라며 쓴웃음을 짓기도 했습니다.
● “도시가 통째로 입시학원…내 주변 모두가 경쟁자”
인도의 공대 입시 과정은 간단합니다. 바로 공대 입학시험인 JEE(Joint Entracne Examination)를 통과하는 겁니다. 시험은 1차(Mains)와 2차(Advanced)로 나뉘는데, 최상위 공대에 합격하기 위해선 2차 시험을 통과해야 합니다. 문제는 1차 통과 이후 2차 시험을 볼 기회가 단 두 번 주어진다는 겁니다. 기회가 두 번 뿐이다 보니 고교 졸업 이후 1, 2년 ‘갭 이어(gap year)’를 가지며 시험공부를 한 뒤 1차 시험에 응시하는 학생들도 부지기수라고 합니다.
수학, 물리, 화학 3과목으로 구성된 JEE는 세계에서 가장 ‘극악한’ 난도로 악명이 높습니다. 특히 2차 시험의 경우 정규교육 과정만으로 통과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인터뷰 참가자들이 입을 모았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최근 떠들썩했던 이른바 ‘킬러 문항’(초고난도 문항)이 시험 곳곳에 포진돼 있는 겁니다. 이에 최상위 공대에 입학하려면 사교육은 필수라는 얘깁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볼게요. 사교육 없이 IIT에 입학할 수 있었다고 보시나요?
▽라지
어렵다고 봐요. 학교에서 배우는 것들이 ‘상자 속’ 지식이라면 JEE는 ‘상자 밖’의 문제들을 묻는 시험이거든요. 문제에 접근하는 방식부터 새롭게 배워야 하는데 학교에서는 절대 배울 수 없어요.
▽스리카르
학교에서는 언어, 사회, 역사 등 다양한 과목을 배우잖아요. 그런데 냉정히 말해서 JEE를 통과하려면 이런 과목들은 쓸모가 없어요. 최상위 공대에 들어가기 위해선 과감히 이런 과목들은 포기해야 하는 거죠. JEE 준비생들은 보통 8학년(15, 16세), 빠르면 6학년(13, 14세)부터 시험에 나올 딱 3과목(수학·물리·화학)만 집중적으로 파요. 사교육을 통해 ‘JEE 맞춤 대비’를 하는 거죠.
▽심피
사실 저는 IIT 응시 자체를 포기했어요. 입시를 준비하며 단 한 번도 사교육을 받지 않았는데 그러다보니 학원이나 과외 도움 없이 혼자서 2차 시험을 통과할 자신이 없더라고요. 대신 CGPET(Chhattisgarh Pre Engineering Test)라고, 차티스거주(州) 내 공대 입학시험을 봤어요. 이 시험은 정규교육 과정에서만 문제를 출제하기 때문에 저 같이 사교육 없이 공부하는 학생들도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어요.
▽기자
입시 학원은 어떤 식으로 운영되나요?
▽스리카르
저는 기숙학원을 다녔어요. 숙소, 강의실, 식당까지 전부 한 건물 안에 있었어요. 오전 6시에 일어나서 씻고, 내려가서 공부하고, 아침 먹으러 식당 갔다가 다시 강의실로 들어가고…. 학원 수업은 보통 오후 3시면 끝나요. 그럼 한 시간 정도 쉬다가 오후 4시부터 다시 자습을 시작하죠. 그렇게 밤 12시나 새벽 1시까지 공부하는 거예요. 하루에 16~17시간 정도 공부했어요.
(학교는 안 갔어요?) 학교는 안 가도 됐어요. 사실 공부를 잘해서 학원에서도 최상위 반에 있었거든요. 최상위 반 학생들은 학원에서 알아서 모든 걸 처리해줘요. 학교도 안 가도 되고, 학교 시험도 안 쳐요. JEE에만 집중하는 거죠.
▽라비
요새는 일부러 사교육에 집중하기 위해 등교가 필수가 아닌 사립학교를 찾는 학부모들이 많다고 하더라고요.
▽라지
저는 JEE 2차 시험을 위해 도시 자체가 세계 최대 학원가라고 불리는 코타로 갔어요. 원래 살던 곳에서 약 300km 이동해야 했지만 최고의 강사진을 위해서 어쩔 수 없었어요. 저는 그나마 가까운 거고 정말 1000km 넘게 이동해서 오는 친구들도 있었어요.
시험 준비하는 1년간은 매일 매일이 똑같아요. 아침 일찍 일어나 학원에 가서 수업을 듣고, 오후 3시에 수업이 마치면 자취방으로 돌아와 자습을 해요. 그때부터는 혼자만의 싸움이죠. 덥고, 열악하고, 쉬고 싶지만 쉴 수가 없어요. 바로 옆방에서 경쟁자가 공부하는 걸 알고 있으니까요.
▽기자
입시를 준비하면서 어떤 부분이 가장 힘들었나요?
▽스리라카
경쟁이요. 저희 학원은 철저한 ‘계급제’였어요. 매주 시험을 보는데 성적이 떨어지면 강등되고 성적이 올라가면 월반하죠. 좋은 반일수록 선생님들도, 시설도 모두 좋아져요. 무엇보다 장학금을 받을 수 있어 부모님 부담도 덜어드릴 수 있어요. 단, 떨어지면 혜택도 끝이에요. 시험 성적은 항상 모두가 볼 수 있게 공개돼요. 매일매일 사다리타기를 하는 기분이었어요.
▽라지
모두가 경쟁자이니 뒤쳐지지 않게 죽어라 공부만 해야 해요. 숙제를 안 해오거나, 수업 준비를 꼼꼼히 못해 뒤쳐져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아요. 저 아니어도 인도 공과대학(IIT)에 들어갈 똑똑한 학생들은 충분히 많거든요. 농담 같지만, 친구한테 잔다고 거짓말하고 밤새서 공부한 적도 있어요. 왜냐하면 그 친구도 똑같이 그렇게 할 거니까요. 학생들의 부담이 심할 수밖에 없어요. 그거 아세요? 인도에서 가장 자살률이 높은 도시가 바로 코타에요.
▽라비
코타에서 공부한 제 친구가 그러더라고요 “한 반, 아니 한 도시 전체가 너와 똑같은 시험을 통해 똑같은 대학을 준비하는 사람들 밖에 없어. 어떤 기분일거 같아?” 그 말 듣고 섬뜩했어요. 엔지니어가 아니면 인생 전체가 실패했다는 생각에 빠지게 되는데, 저는 위험하다고 봐요.
● “명문 공대생이라니까 버스에서 자리도 양보해줘”
▽기자
그럼에도 많은 학생들이 IIT에 도전하는 이유가 있을 거 같아요. ‘명문 공대’ 합격 소식을 부모님께 알렸을 때 얼마나 좋아하셨나요?
▽라비
(웃으며) 엄청요. 제가 나온 인도 국립공과대학(NITK)는 인도에서 인도 공과대학(IIT) 다음으로 유명한 공대에요. 아버지는 아직도 주변 사람들에게 저에 대해 “NITK를 졸업한 자랑스러운 엔지니어”라고 소개하세요.
대부분의 인도 학생들이 그렇듯, 저 역시 공대에 진학하기로 결심한 데는 아버지의 영향이 가장 컸어요. 대학 진학을 앞두고 아버지는 항상 의사와 엔지니어 중 어떤 길을 선택할 것인지 물으셨거든요. 10년 이상 의대 공부를 할 자신은 없었고, 결국 공대 진학을 결심했죠.
▽스리카르
인도에서 명문 공대를 나오면 부모님은 물론 친척, 이웃, 심지어 처음 보는 사람들도 존중해줘요. 그만큼 치열한 경쟁을 뚫고 시험에 통과했다는 뜻이니까요. 한 번은 버스를 탔는데, 우연히 옆에 앉아서 가던 승객과 대화하다가 제가 IIT 나온 것을 알게 됐어요. 그 분이 “열심히 살았다”며 저에게 자리를 양보하더라고요. IIT를 나왔다는 것 자체가 인도에서는 ‘훈장’ 같은 거죠.
▽라지
제 아버지는 농부예요. 저 하나만 바라보고 재산도 팔고 대출도 받으셔서 겨우 저를 코타에 보내셨죠. IIT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듣고 제가 아버지께 그랬어요. “이제 어머니 아버지를 행복하게 해드릴 수 있어요!” 저로 인해, 저희 집안 전체가 일어설 수 있는 거예요.
▽기자
왜 이렇게 많은 학생들이 공대 진학을 꿈꾸는 걸까요? 돈이나 사회적 지위 때문일까요?
▽라지
일자리 때문이죠. 엔지니어가 아닌 이상 일자리를 구하기가 쉽지 않아요. 인도에서는 직업을 물을 때 엔지니어이거나, 엔지니어가 아니거나 둘 중 하나란 이야기도 있어요. 말 그대로 한 다리 건너 한 명이 엔지니어에요. 이 분야밖에 자리가 없어요.
▽라비
한국에서는 성공으로 가는 길이 여러 갈래가 있잖아요. 스포츠가 될 수 있고, 음악이 될 수도 있고요. 기자가 되는 것도 한 방향일 수 있죠. 꼭 거창하지 아니더라도 성공의 경로가 다양하잖아요. 하지만 인도는 아직 다양하지 못해요. 성공하기 위해선 일단 공대나 의대에 가야 해요.
▽기자
한국에선 ‘의대 열풍’이 과열되고 있어요. 상위권 이공계 학생들이 의대로 쏠리다 보니 아무리 좋은 공대여도 등록 포기자들이 많이 나와요.
▽라지
인도에서도 의사의 사회적 지위나 연봉이 엔지니어보다 높은 건 사실이에요. 문제는 ‘꼭 의사여야만 하나’인 거죠. 의대는 매년 뽑는 수도 적고, 최소 10년은 공부해야 돈을 벌 수 있어요. 반면 공대는 의대보다 상대적으로 정원이 많고, 졸업하면 바로 돈을 벌 수 있죠. 안정적 지위가 보장되는데 굳이 의대로 갈 필요가 없어요.
▽스리카르
물론 일반 엔지니어와 의사를 비교하면, 의사가 우위에 있겠죠. 중요한 건 ‘좋은 공대’에 나왔냐는 거죠. 가령, IIT에 나오면 의사 부럽지 않은 연봉과 사회적 지위가 보장되니까요.
● “땅 팔고 대출 받아 학원 보내는 건 다반사”
한국과 마찬가지로 인도에서도 사교육은 학생들의 일상이 되었다고 합니다. 사교육에 진입하는 연령대도 통상 8학년(15, 16세)에서 점차 내려가는 추세입니다. 본격적인 입시를 시작하기 전부터 기초 수학, 과학 등 준비 단계에서부터 사교육을 받는 사례가 많습니다. 기자가 만나본 인도 출신 공학도들은 “어쩔 수 없는 현상”이라면서도 “경제력 격차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라지
사교육 비용이 만만찮다 보니 빈부에 따른 교육 격차가 점차 심각해질 수 있다고도 생각해요. 저만 해도 부모님 수입으로는 터무니없이 부족했어요. 당시 친척 중에 그나마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분에게 사정사정해서 지원을 받을 수 있었죠.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몇 명을 제외하고는 다 그렇게 돈을 구해야만 자녀를 학원에 보낼 수 있어요.
▽스리카르
제가 다녔던 학원 친구들도 대부분 큰 돈을 구하기 위해 부모님이 가진 재산을 내놓아야만 했어요. JEE 2차 시험은 절대로 학교 교육만으로 통과할 수 없거든요. 그걸 부모님들도 알기 때문에 무엇이라도 하실 거예요.
▽라지
특히 JEE는 카스트제(인도의 세습적 신분제도로 브라만-크샤트리아-바이샤-수드라 등 4대 계층으로 구성)의 영향을 받아서 계층이 높을수록 시험에 통과할 수 있는 정원 규모가 더 커져요. 계급이 높을수록 합격에 더 유리한 거죠. 안 그래도 기회가 적은데다 계급에 따른 빈부격차로 좋은 교육조차 받지 못하면 상황은 점점 더 심각해질 거예요.
기자는 마지막 질문을 했습니다. “돈도 많이 들고, 경쟁도 치열하고, 엄청난 압박을 견디면서까지 그렇게 입시를 준비하는 게 가치가 있나요?
라지 씨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당연하죠. 제가 명문 공대에 가서 성공하는 게 제 자식을 행복하게 키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걸요.”
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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