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마워' 뜬장에 갇혀있던 국내 사육곰, 美서 생애 처음 '땅' 밟았다 [N인터뷰]

윤효정 기자 2023. 7. 8.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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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들은 한참을 우리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죽어야만 나갈 수 있는 철창, 국내에 있는 사육곰들이 머무는 곳이 바로 한 평 남짓 철창으로 만들어진 뜬장이다.

다큐멘터리 영화 '곰마워'(감독 김민우/기획 동물자유연대/제작 가이아TV)는 국내에서 40여년 간 이어진 사육곰 산업의 비극적 역사와 곰 사육 산업 종식을 향한 노력을 담은 영화다.

언론사에서 영상기자로 일한 김민우 감독은 우연히 사육곰 관련 연출을 제안 받고 '곰마워'의 메가폰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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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육곰 실태, 구조 과정 담은 다큐영화 '곰마워' 김민우 감독 인터뷰
‘사육곰 종식 입법 촉구’ 다큐 '곰마워'를 연출한 김민우 감독이 서울 종로구 공평동 뉴스1 본사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뉴스1 ⓒ News1 박정호 기자

(서울=뉴스1) 윤효정 기자 = 곰들은 한참을 우리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배설물과 먹이가 덕지덕지 묻은 뜬장을 벗어나 드넓은 벌판에 놓였음에도 망설였다. 한참 시간이 흘러 발을 내딛고 생애 처음으로 '땅' 위에 섰다. 길게는 태어난지 14년만에 밟은 땅이었다.

죽어야만 나갈 수 있는 철창, 국내에 있는 사육곰들이 머무는 곳이 바로 한 평 남짓 철창으로 만들어진 뜬장이다. 동물자유연대는 사육곰의 실태를 개선하기 위해 곰 소유권을 양도받아 미국 생추어리(Sanctuary)로 보냈다. 동물들이 자연사할 때까지 본래 서식지와 유사한 환경에서 돌보는 생추어리에 도착한 곰들은 생애 처음 땅을 밟고 몸을 굴렀고 숲속에 숨으며 잊고 있던 습성을 다시 꺼냈다.

다큐멘터리 영화 '곰마워'(감독 김민우/기획 동물자유연대/제작 가이아TV)는 국내에서 40여년 간 이어진 사육곰 산업의 비극적 역사와 곰 사육 산업 종식을 향한 노력을 담은 영화다.

언론사에서 영상기자로 일한 김민우 감독은 우연히 사육곰 관련 연출을 제안 받고 '곰마워'의 메가폰을 잡았다. 막연하게 '안타깝다'라던 생각으로 시작해 실제 사육곰 농장을 찾고는 '이대로는 안 된다'며 진심이 됐다.

김민우 감독은 사육곰 농장의 현실과 왜 곰들을 구조해야 하는지, 그리고 곰들이 자유를 만났을 때 어떤 모습인지 카메라에 담았다. 무엇보다 진심과 공감을 전달하고 싶었다는 그는 앞으로도 남은 사육곰들의 구조와 더 넓은 의미의 동물보호에 힘쓰고 싶은 마음도 전했다.

-처음 연출을 제안 받았을 때는 어땠나. 전혀 모르는 분야를 촬영하고 영상에 담아야 했는데.

▶처음에는 '안타깝다'라는 감정이었다. 사육곰의 실태를 전혀 몰랐다. 1981년부터 시작해서 사육곰을 수입해서 길렀고 이게 지금에 이르렀다. 한때는 1700마리까지 늘었다고 한다. 동물단체에서 이의제기를 했고 해법을 찾다가 우리나라에서 해결이 어려우니까 미국으로 보내보자는 것이었다. 이게 시작이었다. 단순한 홍보가 아니라 사육곰 문제 자체에 대해 문제제기를 해보자는 생각으로 다큐멘터리 장르영화를 만들어야 했다.

-초반의 구상은 어땠나.

▶영상 기자로 일하다보니 처음에는 사실관계 파악을 먼저 하고 반론을 확인했다. 그러다보니 내용이 딱딱해지더라. 설명하는 식으로 푸는 것이 내가 봐도 재미도 없고 지루한 거다. 처음에는 내부 평가도 안 좋았다. 이 영화는 그래서 사육곰을 왜 구해야 되는지 설득하는 영화였다. 곰이 철창에 갇혀 있는 이 현실을 어떻게 관객과 공감대를 형성해야 할까. 곰에 대해 전혀 모르는 감독이 곰에 진심이 되어가는 변화를 담자고 생각했다. 사실 감독 입장에서 내가 등장하는 게 좋은 것만은 아니다. 자칫하면 개인사 영화가 되어 버리니까. 그러던 중에 아들이 태어났다. 새끼곰을 보면서 느끼는 또 다른 감정도 있더라. 인간의 생과 곰의 생의 가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었다.

‘사육곰 종식 입법 촉구’ 다큐 '곰마워'를 연출한 김민우 감독이 서울 종로구 공평동 뉴스1 본사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뉴스1 ⓒ News1 박정호 기자

-실제로 진정성있게 담아내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나.

▶처음에는 내가 맡은 일이라고 생각해서 사육곰 사업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다. 그래도 감을 잡기 어려운 상황이었는데 동물자유연대 활동가분들이 직접 곰을 보라고 말씀해주시더라. 농장을 찾아 갔는데 뜬장 멀리서부터 냄새가 난다. 처음 마주한 곰이 넋이 나간 채로 나를 쳐다보더라. 1평 정도 되는 철창 안에서 배설물, 먹이가 널부러져 있었고 그 옆에 곰이 있었다. 인간이 이래도 되나? 웅담이 뭐길래 이렇게까지 하나 그런 감정부터 먼저 왔다. 감정이 우선 되면 안 되는데도 나도 모르게 이 곰들을 구해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곰들이 철창 밖으로 나가는 장면을 찍을 수 있으면 하고 바랐다. 그때 진심이 됐다.

-맹수를 만난 경험이 없었을텐데, 무섭지는 않았나.

▶나도 무서울 줄 알았다. 10년 넘게 평생을 뜬장 안에서만 살던 곰들이기에 무기력한 모습이었다. 이 곰들은 제대로 뛰어본 적도 없고 제대로 된 먹이를 먹어본 적도 없더라. 사람이 오면 맹한 눈으로 쳐다 본다. 댓글에 '인간은 죄를 지어야 감옥에 가는데 곰들은 태어났다는 이유로 감옥에서 평생을 살다 죽는다'라는 말이 있더라. 공감됐다.

-실제로 본 사육곰 환경은 어땠나.

▶웅담이 잘 팔리지 않으니까 사육곰을 관리하는 데에 돈을 쓰지 않는다. 나중에는 철창이 삭아서 떨어진다. 그럼 곰이 탈출하는 일도 발생한다. 곰의 활동반경이 하루 100km를 가기도 한다고 한다. 넓은 동물들을 1평 철창에 가두는 것이다. 곰 사육을 하는 게 돈이 안 되니 이제는 곰을 매입해달라고 요구하는 (농장주) 분들도 있다. 2025년 12월31일 후로 곰 사육이 전면 금지된다. 그 안에 갇혀 있는 사육곰들을 어떻게 해야할지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2024년까지 구례군에서 생추어리가 만들어진다. 일부는 여기서 맡을 수 있을 것이다. 여러 시민단체와 지자체가 논의를 하고 있다.

-절차적, 제도적 어려움도 크더라. 현실적인 문제이기에 영화에서 다루지 않을 수 없었을텐데 집중력이 흐트러질 수도 있는 부분이다.

▶내용을 버리는 게 어려웠다. 사육곰 수입이 언제 시작해서 어떻게 금지됐고 이런 여러 과정을 다 표현하면 재미도 없고 보지 않으면 의미도 없다. 곰을 풀어주는 진심을 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실관계를 압축했고 그보다 더 어렵게 공감대를 형성했다. 제일 중요한 건 사람의 진심이었다. 곰에 관심이 없었다가도 영화를 찾아볼 수 있도록, 영화를 본 것만으로도 관심을 가질 수 있길 바랐다.

영화 '곰마워' 스틸컷

-감독판을 만들 수 있다면 어떤 이야기를 더 해보고 싶나.

▶미국의 생추어리 환경이 정말 부러웠다. 사자 호랑이 늑대 등 맹수들을 구조해 드넓은 땅 안에서 보호한다. 인간이 한 잘못을 인간이 풀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추어리에 가보니까 백호가 정말 많더라. 인간이 백호를 좋아하니까 동물원에서 집중적으로 길렀고 전시하다가 나이를 먹으면 죽을 때까지 좁은 곳에 가둔다. 그래서 백호가 많은 것이었다. '이게 맞나?'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인간의 잘못으로 일어난 일을 인간이 풀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철창에서 곰을 꺼내는 순간은 어떤 감정이었나. 영화에서도 클라이막스에 해당하는데.

▶오래 갇혀 있던 곰들은 스트레스를 받아서 사람들에게 공격성을 드러낼 수도 있다. 그런데 곰을 풀어주는 날 곰이 사람에게 다가와서 손을 내밀고 가만히 있더라. 잡아달라는 것처럼. 그때 (활동가들과) 손이 닿는다. 영화적으로 억지로 보일 정도로 신기한 순간이었다. 곰들도 자기를 구해주는 걸 아는 건지.

-우여곡절 끝에 미국으로 보낸 곰들이 생추어리에 도착해 자연 속으로 들어가는 엔딩 장면 역시 큰 감동을 준다.

▶곰들은 땅에서 떠있는 뜬장 철창에서만 지냈기 때문에 땅을 밟아본 적이 없다. 미국에 가서 이동장에서 나와 땅에 발을 디딜 때 감동은 정말. 처음 나올 때는 무서운지 한동안 안 나오고 뒤로 가더라. 괜찮다고 어르고 시간을 주었다. 두리번 대다가 땅을 밟고는 등을 대고 구르더라. 땅이라는 걸 몸으로 느끼는 모습이었다. 그러다 자기 몸을 숨길 수 있는 지푸라기 속으로도 들어가본다. 곰의 습성이 나오는 거다. 적응을 하면서 벌판으로 나가던 곰들이 갑자기 돌아보더라. 그게 마치 '나 정말 가도 돼?' 물음처럼 보였다. (촬영팀이) 더 이상 따라가지 않았고 곰들도 숲으로 사라지는데 그게 내게는 마치 인사처럼 느껴졌다. 인사해줘서 고마웠다. 그래서 제목도 '곰마워'가 됐고. 내레이션이 '문 하나만 열면 닿을 수 있는 땅을 만나기까지 길게는 14년이 걸렸다, 우리는 문 하나만 열어줬다' 였다.

-'곰마워'를 제작하는 동안 아빠가 되었다.

▶공교롭게도 곰 다큐멘터리를 찍는 동안 아이가 태어났다. 육아를 하던 때 새끼곰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사람이나 곰이나 막 태어난 아기들은 똑같더라. 곰과 사람이 다른가. 우리가 인간이라고 저들이 곰이라고 이렇게 대해도 되나. 곰도 제 생을 살아갈 가치가 있는 생명체라는 걸 더 명확히 깨달았다.

‘사육곰 종식 입법 촉구’ 다큐 '곰마워'를 연출한 김민우 감독이 서울 종로구 공평동 뉴스1 본사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뉴스1 ⓒ News1 박정호 기자

-영화를 통해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나.

▶우리가 갇혀 지내는 곰을 구조하며 큰 감동을 받았고 그 마음을 많은 분들에게 전달하고 싶다. 처음에는 스물 두 마리만 구조했는데 더 많은 관심을 받아서 다음 절차도 잘 풀어나가고 싶다. 국회에서 시사회도 갖고 사육곰 관련한 법 개정을 위한 행사에 참여하고 있다. 사육곰에 대해 많이 알리고 여론을 모으고 시다. 단순히 영화 흥행을 바라는 게 아니라 실제로 곰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

-앞으로 어떻게 작품 활동을 이어갈 생각인가.

▶KBS '자연의 철학자들' 연출도 했고 영화와 방송일을 같이 하고 있다. 곰 문제에 대해서는 생추어리에서 구조하는 동물들의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는 작은 욕심이 있다.

-개인적으로도 많은 성장을 이룬 시간으로 보인다.

▶연출자로서 메시지를 전해야 한다는 욕심이 강했는데 진심이 담긴 이야기를 하는 것만으로도 족하다, 생명 자체에 대한 이야기로 확장하고 싶다는 바람으로 나아갔다. 동물 다큐멘터리가 국내에서는 큰 관심을 받기 어려운데 '곰마워'를 많은 분들에게 알리고 싶다.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사육곰 농장주를 너무 나쁜 쪽으로만 보지 않길 바라는 마음도 있다. 정부에서 권장한 사업을 시작한 거고 그것 자체를 나쁘다고 말하는 게 과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때와 지금은 시대가 바뀌었다. 세상의 시선이 달라졌다. 그런 걸 농장주분들도 점점 더 많이 알게 되는 과정이다. 잔인한 건 그때의 한국 사회였지 개인이 아니다. (곰을) 먹거리로만 생각했다면 지금은 동물과 더불어 사는 세상이지 않나. (사회가) 성숙해졌다고 생각하고 그게 희망이라고 본다.

ichi@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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