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만금은 끝난 줄 알았는데, 마지막 갯벌 ‘수라’에 다시 생명이…
새만금은 끝난 줄 알았다. 2006년 마지막 물막이 공사가 마무리되었을 때, 어렴풋하게 ‘저건 막아야 하지 않나’ 생각하면서도 나는 내 멋대로 정치 세력과 관료, 투자 기관, 지방 토호, 건설 자본, 그리고 언론이 맞물려 있는 거대한 ‘토건 카르텔’의 승리를 선언했다. 그러곤 잊었다.
다큐멘터리스트 황윤도 그랬다. 그는 2003년 3월, 성직자 네 명이 전북 부안군에서 서울까지 장장 305㎞를 걸으며 3보1배를 하는 광경을 목격하면서 새만금 간척사업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2006년에는 부안 계화도 갯벌에 머물며 주민들의 투쟁을 기록했다.
하지만 같은 해 어민 류기화씨의 부고와 함께 다큐 작업을 포기한다. 간척 사업을 진행한 농어촌공사가 예고 없이 방조제 문을 열었고,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 싸우던 어민은 바닷물에 휩쓸려 세상을 떠났다. 조개를 캐 아이들을 키웠던 갯벌은 그의 무덤이 됐다. 이후로 10년이 흐르는 동안 황윤은 새만금을 기억에서 지웠다.
새만금의 마지막 갯벌 ‘수라’
그가 다시 새만금을 찾은 건 2014년, 전북 군산시로 이사를 온 뒤였다. 이사를 하고 나서야 군산이 새만금의 도시임을 깨달았다. 그에게 새만금은 “패배의 기억”이 서려 있는 곳이었지만, 현실은 생각과 달랐다. 그곳에는 여전히 습지가 남아 있었고 그 습지를 지키려는 사람들이 있었다. 새만금 시민생태조사단(생태조사단)의 오동필씨를 따라 새만금의 마지막 갯벌 ‘수라’를 찾았을 때, 그는 멸종위기종 1급인 ‘저어새’와 마주쳤다.
황윤은 다시 카메라를 들고 새만금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 7년의 기록이 다큐멘터리 <수라>다. 그의 카메라와 함께 우리는 깨닫게 된다. ‘끝’이란 말은 새만금을 잊어버린 자들의 언어였을 뿐임을. 그리고 사람들이 더욱 적극적으로 새만금을 잊기를 바라는 토건 카르텔의 무기였음을.
생태조사단은 마지막 물막이 공사가 끝난 뒤에도 새만금을 떠나지 않았다. 그들은 정부가 공사를 강행하면서 작성했던 환경영향평가보고서의 오류를 확인한 이후 적극적으로 새만금 생태환경을 조사하고 기록해왔다. 당시 정부보고서에는 새만금 갯벌을 찾는 새가 41종, 7천여마리에 불과하다고 적혀 있었지만, 생태조사단은 2003년부터 10년간 매해 평균 150여종, 25만2542마리를 관찰했다. 살상은 토건 카르텔 안에서 움직이는 자들이 작성한 서류 위에서 이미 시작됐던 셈이다.
오동필씨는 이렇게 말한다. “언젠가 바닷물이 들어오면 다시 살아날 수 있는 마른땅도 나는 갯벌이라고 생각해요. 마지막 칠게 한 마리가 살아 있어도, 그건 갯벌이에요. 갯벌이라는 이름을 놓지 않으면 언젠가 갯벌로 돌아갈 거니까요. 갯벌이었기 때문에 갯벌이라고 불러줘야 하죠. 그래야 살릴 수 있어요.” 이후에 그는 ‘끝났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새만금을 보여주고 경험하게 해야 한다고 덧붙인다. 그 여전한 아름다움을 본다면, 그곳을 쉽게 포기할 수 없으리라 믿는 것이다.
생태조사단, 새만금해수유통 추진 공동행동, 새만금신공항 백지화 공동행동의 활동으로 2020년 12월, 해수유통 증가가 결정되었다. 전면적 해수유통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그 미미한 조치로도 흙이 숨을 쉬고 생명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다큐멘터리는 ‘다시 시작’을 알리며 끝난다. 하지만 그 시작은 ‘끝’ 이후에 찾아오는 어떤 단절이 아니다. 우리가 외면하고자 했던, 매분 매초 새롭게 열리는 생명의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시작이다. 그리고 그 시작의 기록에는 오동필씨의 아들 오승준씨가 있다.
<수라>는 의외로 자연 다큐멘터리가 아니다. <수라>는 자연과 더불어 끝내 아름다운 인간에 대한 다큐멘터리다. 다큐에는 수문이 완공된 직후 바닷물이 막힌 갯벌에서 수만마리의 조개가 집단으로 폐사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몇날 며칠을 천천히 말라가는 개흙 속에서 밀물이 들어오기를 기다리던 조개들은 첫 비가 내리는 날 모두 개흙 밖으로 올라왔다. 물을 맞이하기 위해 입을 활짝 벌렸던 조개들은, 그러나 좌절했을 것이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담수는 숨죽여 기다렸던 바닷물이 아니었으니까. 비가 멈추고 그들은 하나도 남김없이 죽었다. 하늘을 향해 입을 벌린 채, 그대로 죽어버렸다. 나는 그 장면을 보면서 계속 중얼거렸다. “이 죄를 다 어쩌면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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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만금신공항 부지로 지정된 ‘수라’
그러나 자신이 자연의 일부라는 걸 모르고 신나게 바닷속에 콘크리트를 처박아 넣는 인간이 있다면, 자연이 준 것을 감사히 여기며 그 안에서 자신의 몫을 다하고자 하는 인간도 있다. 파괴하고, 세우고, 부풀리고, 그렇게 거대해진 몸집을 과시하며 자신의 인간됨을 확인하는 자들이 있다면, 조용히 바라보고, 지키고, 응원하고, 녹아들면서 자신의 인간됨을 실천하는 이도 있는 것이다. 오승준씨는 그런 사람이다.
중학생 때부터 아버지를 따라 생태조사단 활동에 참여해온 승준씨는 대학에서도 생물학을 전공했다. 그의 오래된 수첩에는 10년간의 탐조 기록이 빼곡하다. ‘비단에 새겨진 수’라는 아름다운 이름을 가진 갯벌 수라가 새만금신공항 부지로 지정되자 승준씨는 “이름도 낯선 새”를 한 종 찾아보겠다고 나선다. 정부보고서가 누락시킨 환경부 지정 2급 보호종인 검은머리쑥새였다. 황윤은 승준씨와 함께 검은머리쑥새의 존재를 기록하기 위해 다시 수라에 들어선다.
나는 끝없는 개발에 미친 토건 카르텔 사회가 지워버린 모습을 수라에서 볼 수 있었다. 그건 도요새의 눈부신 군무이기도 하고, 해수가 다시 들어오기까지 10년을 땅속에서 버틴 흰발농게의 생명력이기도 했다. 그리고 아버지로부터 공존의 방법을 배웠고, 이제는 그 길을 스스로 만들어가는 한 청년의 조용하지만 뜨거운 뒷모습 역시 그곳에 있었다.
덕분에 나는 인간이라는 사실이 조금 덜 부끄러워졌다. 우리 인간은 폐허를 만드는 데 익숙하지만 그것만이 우리의 유일한 모습은 아니다. <수라>는 세계 최대 규모의 생태 파괴가 일어난 현장을 담은 다큐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내가 배운 것은 오히려 가능성이다. 우리가 ‘패배’라고 단정 짓고 포기해 버리지만 않는다면, 시간은 어쩌면 인간이 오만한 개발의 폭주를 멈추기를 꿈꾸는 다양한 생명들의 편일지도 모른다.
손희정 영화평론가
<당신이 그린 우주를 보았다> 저자. 개봉 영화 비평을 격주로 씁니다. 영화는 엔딩 자막이 올라가고 관객들이 극장 문을 나서는 순간 다시 시작됩니다. 관객들의 마음에서, 대화에서, 그리고 글을 통해서. 영화담은 그 시간들과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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