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음식 두고 쏜살같이 떠나는 라이더…‘고스트 워커’처럼 느껴졌어요”[영감 한 스푼]
오스트리아의 문화 교육 과학 재단인 ‘아르스 일렉트로니카’는 예술과 기술, 사회의 접점을 찾는 뉴 미디어 아티스트를 발굴·지원하고 있습니다. 1979년부터 오스트리아 린츠에서 미디어 아트 페스티벌을 개최했고, 1987년부터는 ‘프리 아르스 일렉트로니카’ 시상식을 운영하고 있죠.
김아영 작가가 수상한 부문은 ‘뉴 애니메이션 아트’입니다. 전 세계 1116명이 지원한 가운데 최고상인 ‘골든 니카’ 상은 김아영 작가가, 또 2등상인 ‘특별상’은 상희 작가가 수상했습니다.
최고상을 받은 김아영 작가를 서울 영등포구 문래예술공장에서 만나 작품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습니다.
얼굴 없는 ‘고스트 워커’, 배달 라이더의 삶
김민(민): 수상작인 ‘딜리버리 댄서의 구’의 스토리는 어떻게 탄생했나요?
김아영(영): 저는 이야기 만드는 것을 좋아하고 현실의 이슈를 항상 지켜봅니다. 이번에는 팬데믹 시기 동안 배달 음식을 먹으면서, 라이더들의 삶이 궁금했어요.
배달 음식을 문 앞에 두고 얼굴을 볼 기회도 없이 쏜살같이 도망치는 사람들이 ‘고스트 워커’처럼 느껴졌죠. 눈에 보이지 않는 노동자들이 궁금했습니다.
민: 그래서 직접 라이더를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고요.
영: 여성 라이더를 수소문해 찾았어요. 며칠 전에도 그분을 만났는데. 우리나라 배달 플랫폼이 나오기 전부터 6년 동안 일한 베테랑이에요. 배달앱 작동 방식, 단가 책정, 알고리즘 작동법까지 배울 수 있었고, 그 친구 바이크 뒤에 타고 배달도 이틀 나가봤어요.
민: 함께 나가보니 어떻던가요?
영: 코로나가 심할 때 봄바람을 맞으며 서울을 질주하니 해방감이 느껴졌어요. 그런데 그 속에는 다양한 규칙과 프로토콜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됐죠. 특히 배달에서 한동안 굉장한 문제가 된 것이 ‘직선거리 ’알고리즘이에요.
알고리즘은 픽업 장소부터 배달지까지 직선거리로 계산해서 배달료를 책정하는데, 그 사이에 고개를 넘을지 강을 넘을지 모르는 거잖아요. 거기에 불합리함이 있었고, 지금은 개선이 되었지만, 여전히 완벽하게 작동하진 않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또 피크 타임을 비롯한 여러 할증 정책이 라이더를 능수능란하게 관리하죠. 이런 것들은 알고리즘에 의해 작동된다고는 하지만, 그걸 설계한 건 사람이잖아요. ‘긱 이코노미’의 단면을 볼 수가 있었죠.
영: 네 그런데 몇 시간을 해보니 젊은 시기에만 할 수 있는 노동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이가 들수록 신체가 너무 피로하니 번 돈을 치료하는 데 쓰기도 하고. 어쩔 수 없이 배달로 돌아오는 사이클을 벗어나지 못하는 거예요. 젊음을 담보로 하는 노동이죠.
민: ‘딜리버리 댄서의 구’에서 저는 어떤 절망감이 느껴졌는데 그런 맥락일까요.
영: 도시 안에서 작은 입자처럼 움직이는 사람들이 라이더라면, 영상 속에서는 끊임없이 자기와 동일하게 생긴 타자를 만나요. 거기서 위안을 얻고 호감과 연대감, 사랑까지도 시사하게 되는데. 둘은 함께 있고 싶지만 계속 같이 있을 수는 없는 조건이에요.
젊은 세대가 처한 문제가 가진 조건은 모두 다르지만, Z세대가 가진 문제는 돌파가 불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기도 어렵고, 하루하루 살아가야 하기에 자기 계발도 불가능한 처지에 내몰린 사람이 많아요.
가상의 미래로 꿈꾸는 새로운 현실
민: 사회적 문제에 관심 갖는 이유가 궁금해요. 예술가가 선택할 수 있는 소재가 다양하잖아요. 개인적 일상이나 삶부터 예쁘다고 느끼는 풍경이나 사물 등등. 그런데 그 중 사회적 문제를 출발점으로 삼는 계기가 있나요?
영: 자연스럽게 본능적으로 관심이 있는 것 같아요. 제 주변에 활동가가 많은데, 저는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니고. 할 수 있는 한에서 현실과 삶의 변하는 조건을 언급하고 싶어요. 그것이 나만이 만들 수 있는 가상의 이야기나 스토리텔링 방식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요.
허구적인 이야기를 만드는 것을 좋아해요. 제가 좋아하는 문화적 사조 중에 ‘아프로 퓨처리즘’과 ‘에스노 퓨처리즘’이 있어요. 미국의 디아스포라를 경험한 흑인들이 극복할 수 없는 현실의 한계를 가상의 미래를 통해 뛰어넘는, 급진적인 방법론으로 나온 문학이에요.
이를테면 우리는 뛰어난 기술을 가진 우주인인데 지구에 불시착했다고 가정하고 이야기를 지어내면서 고달픈 현실을 극복하는 거죠.
민: 현실이 너무 힘드니, 상상으로라도 뛰어넘으려고 하는군요.
영: 백인 주류와 달리 그들의 현실은 처절하니까요. 제가 좋아하는 옥타비아 버틀러의 예를 들면 수백 년 동안 이어진 노예제를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SF적으로 상상해요. 현실을 다른 방식으로 체득하는 길이었던 것 같아요.
영: 여성 라이더는 분명히 존재하는데 보이지 않아요. 이들의 삶은 더 고달프겠구나 싶었어요. 제가 여성이니 여성의 목소리를 듣고 싶기도 했고요. 그 라이더를 만난 것은 ‘치맛바람 라이더스’라는 커뮤니티를 통해서예요. 여성 바이크 애호가의 커뮤니티인데, 서로 바이크 타는 법을 알려주기도 하고 교류하는 곳이에요.
민: 그런데 영상이나 설치 작업에서 심미적인 부분을 포기하지 않는 것도 인상 깊었어요.
영: 제가 가진 미적 완성도에 대한 기준이 있고, 놓지 못하는 부분이 있어요. 딜리버리 댄서의 구에서는 라이더 에른스트 모가 전사 같은 느낌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주체적일 수 없는 조건에 빠져 있지만 그래도 강단 있는 모습이길 바랐어요. 배우가 원래 짧은 머리였는데, 여성성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머리카락 연장을 했어요.
싱글 채널 영상으로 최고상 수상
민: 아르스 일렉트로니카는 기술을 결합한 예술 작품을 선보이는 가장 역사가 오래된 기관이잖아요. 인스타그램에서 수상 소감에 ‘싱글 채널 영상’인데 상을 받게 돼 의미 있다는 언급을 봤어요. 어떤 의미인가요.
영: 출품작들이 VR, XR, 인터랙티브, AI 등 수많은 하드웨어 장비를 사용하는 것들이 있었어요. 또 실험실 단위로 지원하기도 하죠. 그런데 저는 그냥 영상 하나거든요. 그런 작품에 상을 줬다는 결정이 놀라웠어요. 게다가 제 작품은 기술에 대한 담론이 불거지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민: 기술을 활용해서 라이더의 시선이라던가, 게임 속 플레이어로 인간을 전락시키는 플랫폼의 단면 등을 보여줬다는 걸 중요하게 본 것 아닐까요?
영: 올해부터 기술이 전면화되는 작품보다 예술적 실험에 방점을 두기로 했다고 들었어요. 그 부분에 저에게 좋게 작용을 한 것 같아요.
영: 저는 AI가 번역한 책이나 쓴 문학 작품에는 감흥이 없었어요. 바젤에서 미술관에서 봐야 할 것들을 챗GPT에게 물어서 그걸로 돌아다니기도 했는데 그런 편한 점은 있죠. 그런데 제게 예술이 흥미로운 건 시의 문장이나 영상을 만들기 위해 아티스트가 했던 고민에 있거든요. AI에는 그런 고민이 보이지 않아요.
예술가가 자기 바닥을 치고, 자기와 싸우면서 그 경험에서 나오는 언어와 미학, 이런 것들을 되짚으면서 저는 감동을 하거든요. 그런데 AI는 우발적으로 튀어나오는 느낌이죠.
민: 이번 프리 아르스 일렉트로니카 수상한 두 작가분이 모두 공교롭게도 공공 기관의 지원을 받아 작품을 제작했어요. 예술가로서 이런 부분에 장단점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영: 국공립 지원금이 없이는 지금까지 작업을 할 수 없었을 거예요. 2008년부터 지금까지 무수한 지원금을 문예위나 서울문화재단 등에서 받았고, 이런 것들이 없으면 장기적 계획을 세울 수가 없어요.
한국은 미술 시장이 널리 활성화 되어 있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원하는 작품을 하면서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체계가 잘 안 되어 있어요.
그러나 우려하는 부분은 많은 젊은 예술가들이 지원금에 완전히 의존하기도 한다는 점이에요. 이것을 벗어난 예술 세계 상상을 못 한다고 해야 할까요. 공공 지원금뿐 아니라 컬렉터를 비롯한 예술가를 위한 수익 체계가 다면화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민: 말씀 감사합니다.
※ ‘영감 한 스푼’은 예술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창의성의 사례를 중심으로 미술계 전반의 소식을 소개하는 뉴스레터입니다. 매주 금요일 아침 7시 발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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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 기자 kim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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