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위드인] 실체 드러난 게임위 비리, 앞으로 남은 과제는?
사전 심의제도·사행성 게임물 관리 능력도 도마 위에 올라
(서울=연합뉴스) 김주환 기자 = 게임물관리위원회의 불투명하고 부실한 심의 절차를 개선하자는 게이머들의 집단행동이 8개월 만에 '7억원대 비리 적발'이라는 결과를 낳았다.
감사원과 문화체육관광부는 게임위에 강도 높은 인사·조직개편을 주문한 상태다.
문제는 게임위의 '셀프 개혁'과 책임자 일부에 대한 '꼬리 자르기'식 조치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과제가 쌓여 있다는 사실이다.
잇단 실언으로 사태 키운 게임위원장, 비리 적발에도 자리 지켜
8일 게임 업계에 따르면 게임위는 지난 5일 인사위원회를 열어 허위 보고 결재와 거짓 설명 자료 작성에 관여한 최충경 사무국장을 직위 해제 조치하고, 법적 대응 수위를 논의하고 있다.
후속 인사가 마무리되는 대로 사무국장 아래 본부장급 3명도 보직에서 물러날 예정이다.
그러나 정작 기관장인 김규철 게임위원장은 현재까지 거취도 공식 사과 입장도 밝히지 않은 채 자리를 지키고 있다.
2021년 문재인 정부 시기 임명된 김 위원장은 작년 국정감사와 기자 간담회 자리에서 잇단 가벼운 언행이 도마 위에 올랐다.
글로벌 게임 유통 플랫폼 '스팀'을 두고 여러 차례 '골칫거리', '포르노 같은 역겨운 게임이 많다'고 언급한 것이 대표적이다.
스팀에서 판매되는 게임 중 국내 등급분류를 받지 않은 게임이 다수 있다는 취지였으나, 국내 중소기업은 물론 대형 게임사까지 해외 서비스 창구로 자주 이용하는 플랫폼을 겨냥한 것치고는 정제되지 않은 발언이었다.
또 현행 게임산업진흥법상 국내 영업이 불가한 블록체인 게임 영업을 허용해야 한다는 국감 질의에는 "솔직히 저도 해 주고 싶다"고 답해 정부가 P2E 게임을 허용하려는 것 아니냐는 논란을 낳기도 했다.
김 위원장의 부적절한 발언은 불공정 심의 사태로 분노한 게이머들의 여론에 기름을 끼얹었고, 더불어민주당 이상헌 의원의 국민감사 청구 연서명에 5천400여 명이 서명하는 결과를 낳았다.
게임강국 중 한국·중국만 있는 사전 심의 의무제, 폐지론 직면
게이머들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정부 산하기관이 모든 게임물을 사전에 심의하고, 이를 거치지 않은 모든 게임물 유통을 불법으로 간주하는 심의제도를 전면 개혁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해외에서 게임위와 비슷한 등급분류 기능을 수행하는 미국의 ESRB, 일본의 CERO, 유럽의 PEGI는 모두 업계가 주도해 설립한 비영리 민간기구로, 법적인 구속력이 없는 자율규제 기관이다.
게임산업이 발달한 국가 중 정부 산하 기관이 게임물 등급 분류를 담당하는 나라는 한국과 중국뿐이다.
이런 사전 심의제도는 해외 게임사가 한국 시장 출시를 염두에 두고 등급분류를 의뢰한 신작 정보가 유출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게임위는 최근 심의 결과를 발표하면서 락스타게임즈의 '레드 데드 리뎀션' 리마스터, 이드 소프트웨어의 퀘이크 1·2 리마스터 버전 개발 소식을 '전 세계 최초 공개'한 바 있다.
이 때문에 해외 유수의 게임 전문 매체가 한국 게임위 심의 결과를 인용해 신작 소식을 보도하는 웃지 못할 사태가 자주 일어났다.
한 게임 업계 관계자는 "이런 일이 반복되면 해외 게임사들이 한국 시장 출시를 주저하게 될 수 있고, 피해는 국내 유통사와 게이머가 입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물론 2017년 자체등급분류제도가 도입된 이후 상당수 게임 심의 업무는 민간에 이양돼 있다.
게임산업법에 따르면 15세 이용가 이하 게임물은 게임문화재단이 만든 게임콘텐츠등급분류위원회(GCRB)를 통해 심의받거나, 허가받은 자체등급분류사업자가 직접 심의를 할 수 있게 되어 있다.
하지만 18세 이용가를 염두에 두고 제작된 게임, 아케이드 게임은 반드시 게임위의 심의를 받게 하고 있어 반쪽짜리 자체등급분류 제도라는 지적이 나온다.
게이머들은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게 PC·콘솔·모바일 게임은 민간기구가 등급분류를 전담하고, 게임위는 설립 취지에 맞게 사행성 아케이드 게임물 관리에 집중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게임물 사전심의 의무를 폐지해 달라는 취지의 국회 국민동의 청원은 작년 10월 5만 명의 동의 수를 채워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 회부된 상태다.
사행성 아케이드 게임 심의·사후관리 제도도 재정비 필요
기술 발전을 따라가지 못하는 제도 때문에 무력화된 사행성 게임 관리 능력도 재정비될 필요성이 있다는 목소리가 크다.
게임위는 지난해 '바다이야기'와 유사한 릴 게임기(돌아가는 무늬를 맞춰 보상을 얻는 게임) '바다신2'를 초등학생도 이용할 수 있는 '전체이용가'로 등급 분류를 내 논란이 일었다.
또 국내외 게임사와 콘텐츠 기업의 저작권을 도용한 것이 명백한, 성인용 저질 아케이드 게임기에도 수년간 무더기로 심의를 해 준 사실이 드러났다.
문제는 사행성 게임물로 이용될 것이 명백한 게임이라도, 제작사 측이 게임위 등급분류 규정에 맞게 심의를 요청하면 허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게임위는 현금 투입에 따라 경품을 배출하는 아케이드 게임기에 일종의 블랙박스인 운영정보표시장치(OIDD)를 의무 장착해 현금 투입량과 경품 배출량을 모니터링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불법 게임장 업자들은 모바일 게임으로 심의받은 도박성 게임을 태블릿PC에 설치해 이른바 '성인피시방'에서 제공하고, 손님들이 딴 게임머니를 현금으로 환전해주는 식으로 법망을 우회하고 있다. 소위 '어플방'이라 불리는 방식이다.
또 PC용 포커·화투 게임에서 돈을 받고 일부러 져 주는 식으로 게임머니를 충전하는 불법환전 사례도 여전하다.
정정원 대구가톨릭대 산학협력교수는 "게임위뿐만 아니라 경찰, 방송통신심의위 등이 참여하는 협의체를 구성해 단속과 서비스 차단, 수사 등이 유기적으로 연계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juju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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