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보니] 죽어야 끝나는 악성 민원 | 빅벙커

윤영균 2023. 7. 8.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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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공무원 25% "악성 민원 때문에 자살 생각" 47% "현 직장 그만둘 생각 있다" 93.2% "악성 민원에 대한 자치단체의 대응 미흡"···악성 민원 증가 원인은? 민원 업무 대폭 증가했지만 공무원 숫자는 '제자리'


악성 민원은 악의를 가졌다고 볼 정도로 민원인의 행태가 도를 넘은 경우를 말합니다. 폭행, 폭언, 협박을 한다든가 반복적으로 같은 민원을 여러 차례 하거나 성희롱을 하는 것도 포함됩니다. 행정안전부의 통계에 따르면 2021년 악성 민원은 총 5만 1,833건 발생했는데요, 이는 2018년과 비교해 약 50% 증가한 수치입니다. 3년 사이에 50%나 늘었다는 건데, 최근 들어 점점 더 많이 증가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욕설 등은 집계를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민원인이 욕설을 하거나 소리를 크게 지른다고 해서 숫자가 카운트되는 건 아니니까 이 수치 역시 현실을 정확하게 반영했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통계상으로 1년에 5만 건 넘게 악성 민원이 발생하고 있는 겁니다.

이런 악성 민원으로 늘어나면서 공무원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례도 늘고 있습니다. 2023년 상반기 구리시에서는 수습 기간이 끝난 지 사흘밖에 안 된 공무원이 극단적인 선택을 한 사건도 있었는데요, 이 공무원은 악성 민원인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 우울증 약을 먹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추승진 전국공무원노동조합 부산지역본부 정책부장 "2022년에는 고용노동부 모 지청 소속 신입 근로감독관이 극단적 선택을 했는데요, 동료들의 증언에 따르면 민원인이 악의적으로 반복적인 민원을 제기하고 결국 민원인과의 송사 문제로 번지면서 심적 부담감으로 끝내 안타까운 선택을 했었어요. 이런 사례들이 매년 전국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2022년의 경우 공무원이 극단적 선택으로 순직 청구를 한 게 49건이었습니다. 2021년에는 26건이니 거의 두 배에 가까운 건데, 1년 사이에 극단적 선택을 한 공무원이 급증했다는 이야기입니다. 물론 이 수치가 모두 악성 민원이 원인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공무원 스트레스 순위에서 악성 민원이 항상 높은 순위를 차지해 왔기 때문에 주요 원인 중 하나라고 짐작할 수 있습니다.


"민원인의 욕설·고성은 흔한 일···손으로 때리는 정도는 양반"
2022년 7월 공무원 민원 응대 매뉴얼이 개정되면서 행안부가 악성 민원인을 크게 4가지 특이 민원으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폭언과 폭행, 장시간 전화와 반복 전화, 이렇게 4개인데요, 2021년의 경우 욕설이나 고성 등의 폭언을 하거나 폭행을 하는 행위가 80.6% 정도 차지하고, 상위 부서에 감사를 요구하겠다거나 신변을 위협하는 등의 협박이 15.3% 정도입니다. 여성 공무원에게 성희롱을 하는 경우가 2%, 그 외 장시간 통화를 하거나 반복적인 전화를 하는 식으로 업무 방해를 하는 행위가 2.1%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추승진 전국공무원노동조합 부산지역본부 정책부장 "현장에서 체감하기로는 폭언, 협박의 경우가 가장 많은 편인데요. 실제 엽총, 도끼, 염산 같은 걸 들고 와서 죽이겠다고 협박하는 경우가 있었고요, 2022년 7월 부산 동래구 행정복지센터에서는 6개월 차 새내기 직원을 주차장으로 불러 무릎 꿇게 하고 가슴을 발로 차고 뺨을 때리고 볼펜으로 눈을 파겠다고 협박한 적이 있습니다. 자신의 몸에 기름을 붓고 라이터 불 켜고 위협한 사례도 있었습니다. 당시 공무원은 정신적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성희롱의 경우 집에 포르노 사진을 도배해 놓고 여성 공무원에게 집 안으로 들어오라고 해서 상담하자고 하는 사례도 있었습니다. 실제 현장에서 민원인이 욕설을 하거나 고성을 하는 경우는 흔한 일이고 손으로 때리는 정도는 양반이라고 할 수 있죠"

이상원 뉴스민 기자 "2021년 10월 경주시청에서는 건축허가 지연 이유로 건축사가 손도끼로 공무원을 위협한 일도 있었어요. 또 1년간 상점 불법 간판 및 광고물 관련 민원을 7,400여 건 제기한 민원인도 있었거든요? 이렇게 계속 반복적인 민원 제기 등으로 공무원들의 정신적 학대, 업무 마비를 초래할 정도로 과다한 업무를 강요하는 사례도 악성 민원에 포함됩니다"

악성 민원 증가 원인은? 민원 업무 대폭 증가했지만 공무원 숫자는 '제자리'
악성 민원은 왜 이렇게 증가하는 걸까요? 큰 이유 중 하나는 공무원의 업무량이 많은 것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국민 기초생활 수급 가구가 2018년과 비교해 2022년에는 44.3%가 증가했습니다. 긴급 지원 대상자도 2018년 대비 2022년에 100.4%가 늘었지만 그걸 담당하는 2021년 기초지자체의 사회복지 담당 공무원은 17.4% 증가했습니다. 공무원이 담당해야 할 민원과 업무는 대폭 증가했는데 공무원은 그만큼 늘지 않았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니 담당 업무가 많을 수밖에 없고 민원 처리가 늦어질 수 있다는 겁니다.

우지영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 "실제로 우리나라 공무원들은 일을 많이 합니다. 우리나라 공무원 비율이 7.6%로 OECD 평균인 18%에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거든요? 최근 정부가 복지 사각지대 발굴 등 사업을 추진하면서 공무원들이 담당할 사회복지 업무가 늘었고 그러면서 우리나라 공무원들의 업무량이 많아진 것도 사실입니다. 2021년 기초지자체 사회복지 담당 공무원의 직무실태를 조사했는데요, 최근 2년 근무 중 폭력 경험과 관련해 응답자의 86.5%가 언어폭력을 경험하고 31.8%가 성희롱, 그리고 신체적 폭력의 경우도 14.9%가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어요. 그러다 보니 응답자의 70% 이상이 직무소진을 경험했다고 나타났는데요, '직무소진'이란 과도한 업무로 인해 지치고 고갈되어 더 이상 힘을 내지 못하는 상태를 말하거든요? 그런 상태를 70% 이상이 경험했다니 굉장히 높은 거죠. 그러다 보니 당연히 직무 상황은 좋지 않고 업무 만족도도 떨어지는 상태인 거로 나타났습니다"


부산시 공무원 36.8% "우울 상태"···청년 공무원 25% "악성 민원 때문에 자살 생각"
코로나 19 이후 정신질환으로 병원에 방문하는 직종 1위가 공무원이라는 보도가 나온 적이 있습니다. 2021년 기준 공무원 건강보험 가입자 119만 7,584명 중 정신질환 진료를 받은 비율도 4.3%에 달합니다. 그만큼 공무원들이 정신적 스트레스를 겪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부산노동권익센터에서 부산시 공무원 노동시간과 노동실태를 조사한 적이 있는데, 응답자의 36.8%가 우울 상태라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또한 그중 21.3%가 병원 진단이 필요할 정도로 우울 상태가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런 정신적 스트레스는 결국 몸으로 나타나고 생활에서 드러나게 되는데요, 감정 노동자의 감정 노동 실태를 보면 감정 노동에 의한 스트레스가 클수록 소화기 계통과 근골격계 등의 질환이 일관되게 높게 나타나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직무 스트레스 1점 상승할 때 두통이나 눈의 피로가 20.5% 상승하고, 소화기 질환은 20.3%, 허리통증은 12.5%가 상승한다고 합니다. 이 말은 결국 정신적 스트레스가 몸의 이상으로 고스란히 나타난다는 이야기입니다.

대민 업무를 청년 공무원들이 담당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청년 공무원들은 악성 민원에 더 노출되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실제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이 2030 청년 조합원을 대상으로 악성 민원에 대해 설문 조사를 실시했는데요, 응답자의 25%가 악성 민원 때문에 자살을 생각한 적이 있다고 답했습니다. 청년 공무원 4명 중 1명이 자살을 생각했다는 거니까 심각한 수준으로 볼 수 있습니다.

내가 낸 세금으로 월급 주니 하인 부리듯 부려도 된다?
악성 민원이 공무원들에게 어떻게 보면 '일상'이 되어 버린 건 악성 민원이 발생해도 공무원이라는 신분적 한계 때문에 저항하기 힘든 면도 있습니다. 으레 '공무원은 국민에게 봉사하는 직업이다', '민원도 공무 수행이고 업무다'라는 인식이 일반 시민들에게는 물론 공무원 사회에서도 깔려 있기 때문입니다.

이상원 뉴스민 기자 "아무래도 민원인 중에는 '내가 낸 세금으로 공무원들 월급을 주는 거다'라는 생각을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하인 부리듯 내가 시켜도 되는 사람이라는 인식으로 민원 해결을 바라는 거죠. 민원인들의 인식도 그렇지만 공무원 스스로도 그런 부분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국가공무원법 제59조를 보면 공무원은 국민 전체의 봉사자로서 친절하고 공정하게 직무를 수행하여야 한다는 조항이 있거든요? 친절하게 해야 한다는 게 전제되니까 한편으로는 공무원들에게 부담으로 작용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어요"

우지영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 "거기다 공무원 내부에서도 악성 민원과 관련한 문제가 발생하면 개인 문제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는 거 같아요. 공무원 사회는 아직 승진이 중요하거든요? 인사 고과를 잘 받아야 승진이 가능한데, 악성 민원이 발생하면 직원 평가가 나빠지게 되고 결국 본인에게 피해가 되니까 문제없는 것처럼, 조용히 공무원 개인이 떠안게 되는 상황이 아닌가 생각이 드네요"

실제 민원인과의 통화 등의 서비스가 인사 고과에 반영되고 친절도로 행정복지센터 순위가 매겨지고 있다고 합니다. 실제로 민원 담당 공무원이 말이 느리다는 이유로 민원인이 문제를 제기해 감사원에서 연락이 온 경우도 있다고 하는데요, 이렇게 개인 인사 평가와 함께 행정복지센터 서비스 순위까지 매겨지는 상황이 되니 민원인의 눈치를 보게 되고 그런 게 부담이라 그냥 홀로 삭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일선 공무원들의 이야기입니다.


행정안전부, 공직자 민원 응대 매뉴얼 발표했지만···
법이나 제도로 악성 민원으로부터 공무원들을 보호할 방법은 없는 걸까요? 행정안전부는 공직자 민원 응대 매뉴얼을 발표했습니다. 내용을 살펴보면 진정을 요청한 뒤 즉시 녹음 고지를 하라고 되어 있습니다. 상대편이 욕하고 협박하면 "선생님, 폭언을 계속하시면 정상적인 상담이 어렵습니다. 정확한 상담을 위해 통화내용을 녹음하겠습니다", "폭언을 계속하시면 관련 법령에 따라 처벌받을 수 있습니다"라고 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칼이나 도끼 등의 위험물을 가져와서 겁을 주는 경우에는 "선생님, 지금 하시는 말씀은 형법 제284조 협박죄에 해당하실 수 있습니다. 진정하시고 차분하게 말씀해 주십시오"라고 응대하라는 것이 매뉴얼의 내용입니다.

우지영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 "화가 난 민원인에게 저 말이 통할지가 일단 의문이네요. 당장에 칼을 눈앞에 보이면서 위협하는데 '형법 제284조 협박죄다' 이러면 더 분노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거든요? 법과 매뉴얼이 있어도 현실에 적용하기는 쉽지 않은 거 같아요"

이런 매뉴얼은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낫겠지만 열악하다는 지적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민원처리법을 보면 '행정기관의 장은 (악성 민원으로부터) 민원 처리 담당자를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지만 두루뭉술해서 제대로 방어막이 되어주지 못합니다. 실제로 감정노동자 보호법에 의해 처벌받을 수 있지만 악성 민원 중 가장 많은 사례인 폭언과 욕설의 경우 신고해도 벌금 정도의 처벌을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거기다 신고를 하면 취하하라는 협박이 돌아오고 또 동네에 사는 민원인의 경우 행정복지센터 등에서 다시 마주칠 수 있어 신고도 쉽지 않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추승진 전국공무원노동조합 부산지역본부 정책부장 "실제로 애매한 경우도 있어요. 범법 행위의 경계에 있는 악성 민원도 많은데, 예를 들어 물건을 발로 찬다거나 서류를 얼굴에 던지고 혼잣말하듯이 욕설하는 등의 행위가 되겠죠. 폭행도 종종 벌어지고 있지만 악성 민원의 절대다수는 폭언과 욕설이거든요? 법과 제도가 있지만 폭언과 욕설은 처벌 수위가 낮고 거기다 인사 고과 등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으니까 피해 공무원은 그냥 좋게 좋게 해결하려는 경우가 많죠"

청년 공무원 47% "현 직장 그만둘 생각 있다"
악성 민원에 따른 정신적 충격은 청년 공무원에게 더 크게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2023년 청년 공무원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25%가 자살을 생각한 적이 있다고 답했습니다. 4명 중 1명이 자살까지 생각할 정도로 정신적 충격이 크다고 볼 수 있는 겁니다.

그러다 보니 이직률과 퇴직률도 높은데요, 2023년 전국공무원노동조합에서 2030 젊은 세대 공무원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현 직장을 그만둘 생각이 있는가'에 대한 질문에 47%가 그만둘 의사가 있다고 답했습니다. 절반에 가까운 젊은 공무원들이 이직을 생각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공무원연금공단의 통계에 따르면 재직 3년 이하 퇴직 공무원은 2017년 4,712명에서 2020년 8,442명으로 3년 사이 2배 정도 늘었습니다. 재직기간이 1년 미만인 초임 공무원의 퇴직도 2017년 731명에서 2020년 1,610명으로 2배 이상 늘었습니다. 어렵게 공무원 시험 과정을 거쳐 공무원이 되고도 생각했던 것과 현실이 달라서 결국 사직서를 쓰는 젊은 공무원들이 매년 늘고 있는 상황입니다.

물론 이 수치들이 악성 민원 때문만이라고는 볼 수 없습니다. 낮은 보수 등 다른 이유로도 퇴직하겠지만 자살을 생각하는 젊은 공무원이 25%나 된다는 것은 악성 민원이 주요한 원인이고, 문제가 얼마나 심각하다는 걸 보여주는 수치일 것입니다.

우지영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 "여기서 우리가 눈여겨볼 자료가 하나 있습니다. 부산노동권익센터에서 공무원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는데요, '무엇 때문에 당신이 우울증을 느끼는가?'라는 질문에 1위가 뭔지 아십니까? 악성 민원이라고 생각이 들 텐데 결과는 '직장 내 위로 부족'이었습니다. 공격적 성향의 민원인보다 직장 내 위로가 부족한 것이 공무원들에게 더 큰 우울증을 느끼게 한다는 거죠"


청년 공무원 93.2% "악성 민원에 대한 자치단체의 대응 미흡"
'악성 민원이 지자체 감정노동자들의 삶의 질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연구를 보면 '사회적 지지'라는 개념이 나옵니다. 감정노동자가 직장에서 업무적인 스트레스 등으로 감정적인 소모가 되었을 경우, 동료나 상사에게 받을 수 있는 지원을 말합니다. 실제로 이 사회적 지지가 강할수록 스트레스와 고통을 덜 느끼게 되는 등 피해 회복이나 우울증 회복이 더 빨리 되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사회적 지지가 잘 작동된다면 '내가 우리 조직으로부터 보호받고 있구나' '동료들이 내 편이구나' 하는 생각에서 어느 정도 정신적 회복이 될 수 있는데, 반대로 악성 민원이 발생했을 때 조직과 동료로부터 이런 사회적 지지를 받지 못한다고 느낄 경우 고립되고 더 큰 트라우마를 겪을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결국 악성 민원은 늘 발생하는 일이니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조직이나 직장 동료의 지지, 그러니까 사회적 지지가 있으면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을 것이지만 문제는 아직 사회적 지지가 탄탄하지 않다는 겁니다. 이 문제와 관련한 설문조사에서도 실제 응답한 청년 공무원의 93.2%가 '악성 민원에 대한 자치단체의 대응이 미흡하다'고 답변했습니다. 조직도 나를 보호해 주지 않는다는 생각이 드니까 기댈 곳이 없다고 공무원들이 느끼고 있다는 겁니다.

악성 민원 피해자들의 트라우마도 문제지만 직접 겪은 당사자만 정신적 충격을 받는 게 아니라 함께 있던 동료, 상황을 지켜본 다른 공무원들도 간접적으로 트라우마를 겪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간접 피해자들에 대한 제도적 지원은 제대로 없는 실정입니다.

추승진 전국공무원노동조합 부산지역본부 정책부장 "민원인이 자신의 몸에 휘발유를 붓고 라이터를 가져와서 불붙이겠다고 협박한 사건이 있었는데요, 민원인을 대응한 공무원도 그렇지만 그 행정복지센터 안에 함께 있었던 동료들 모두 충격을 받았고 정신적 트라우마를 겪었거든요? 이런 일이 벌어지면 일단 민원인과 분리를 하게 되는데, 민원인과 분리를 한다고 하더라도 다른 공무원이 이 민원인을 상대해야 하고 피해 공무원도 진정 후 10분 뒤에는 다시 업무에 복귀해서 다른 민원인들을 상대해야 합니다. 나 때문에 동료의 업무가 늘 수 있기 때문에 마음 놓고 쉬거나 할 수도 없는 상황이죠. 실제 정신적 충격으로 의료진으로부터 6개월 휴가 권고를 받았는데 2개월 만에 복귀한 경우도 있습니다. 3명이 하던 일을 한 명이 쉬게 되면 2명이 하게 되는 거니까, 그러면 쉬는 직원도 마음이 안 편하고 함께 있던 동료도 현장에 있었다면 충격이 있었을 텐데 간접 피해자라는 이유로 말도 제대로 못 하고 그냥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인 겁니다"

'공무원 보호조치 의무 법령' 시행됐지만···관련 조례조차 안 만든 지자체
피해 공무원들이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제대로 보호받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정부는 어떤 조처를 하고 있을까요? '공무원 보호조치 의무 법령'이 2023년 4월부터 시행됐습니다. 주요 내용을 보면 칸막이와 같은 안전 장비 설치와 웨어러블 캠 같은 휴대용 영상 녹음 장비가 도입됐고, 민원 처리 담당자의 신체적, 정신적 피해의 치료와 상담 지원, 법률 상담 지원 등이 담겨 있습니다.

늦은 감은 있지만 어쨌든 공무원 보호 조치 의무 법령이 개정되면서 일정 부분 공무원들을 악성 민원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게 된 것으로 보이는데요, 웨어러블과 가림막은 일정 부분 도움이 되긴 하지만 여전히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라는 현장의 반응입니다. 공직자 민원 응대 매뉴얼이 2022년 개정되어 실시 중이지만, 실시된 뒤를 보더라도 악성 민원 발생률이 감소하지는 않았다는 겁니다.

이상원 뉴스민 기자 "실질적 변화를 못 느끼는 건 조례도 없고 예산도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행안부의 지침에 따라서 각 지자체에서는 조례를 제정하고 관련 예산을 마련해야 하는데 조례조차 안 만들어진 곳도 있거든요? 2023년 6월 1일 기준으로 현재 관련 조례가 없는 곳은 경북의 경우 군위, 울릉, 울진이고 경남은 거창과 하동입니다. 조례조차 제정되지 않았다는 건 지자체의 의지가 없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요?


'쥐꼬리' 대구·부산의 악성 민원 피해 관련 예산
그렇다면 예산 편성 상황은 어떨까요? 대구시는 악성 민원과 관련해 예산 편성이 되어 있으나 정확한 항목별 금액은 확인을 해 줄 수 없다는 입장이고 부산은 예산이 편성되지 않았습니다. 악성 민원 피해 공무원에 대한 심리 상담 지원과 관련해 정확한 항목으로 예산 편성이 된 곳은 대구는 달성군만 2천만 원이 되어 있고 나머지 구·군은 하고 있지 않습니다. 부산의 경우도 연제구, 중구, 남구, 해운대구 4곳을 제외하고는 하지 않는 상황입니다. 이와 관련한 각 시군구는 "심리 상담과 관련해 따로 예산 편성이 되어 있지는 않지만 관내 보건소와 마음건강센터를 통해서 할 수 있다"는 입장입니다. 문제는 보건소는 아무래도 같은 공무원이 업무를 보는 곳이니까 피해 공무원이 상담하기 부담스러울 수 있다는 점입니다.

추승진 전국공무원노동조합 부산지역본부 정책부장 "문제는 또 있습니다. 실제 공무원들의 심리 상담은 공무원 마음건강센터에서 가능합니다. 공무원과 그 가족을 대상으로 대면, 온라인, 전화 상담을 받을 수 있는 곳인데요, 우리 지역에서는 영남권 마음건강센터가 대구에 있습니다. 문제는 이 한 곳에서 대구·경북과 부산·경남을 모두 커버하고 있는데 담당자가 2명이라는 거죠. 2명이 대구·경북과 부산·경남의 모두를 담당하고 있으니 이게 제대로 된 상담이 가능할까 싶은 거죠. 거기다 이렇게 악성 민원에 대한 실비 지원도 지자체마다 다르니까 본인이 어디에 근무하느냐에 따라 지원을 받을 수도 있고 못 받을 수도 있는 거죠"

의료비 지원은 어떨까요? 대구와 부산 모두 심리 상담보다는 많은 기초자치단체에서 지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예산이 아예 없는 곳도 있는데요, 대구의 경우 북구, 부산은 금정구, 사하구, 동래구, 연제구, 동구, 기장군이 아예 예산이 없습니다. 이 역시도 보건소 등과 연계해서 지원하고 있다지만 정확한 항목으로 제대로 된 지원을 하지 않는 곳이 여전히 있다는 게 문제로 지적됩니다.

또한 민원으로 인한 소송이 발생할 경우 변호사 선임 등의 법률 지원과 관련해서 대구와 부산지역 지자체 모두 예산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자체 고문 변호사나 내부 법률 관련 부서에서 담당하기 때문에 따로 예산이 편성이 된 게 아니라고 설명하지만, 악성 민원이 많아질수록 민사 소송 등의 문제가 발생할 확률이 높고, 그렇다면 법률 지원을 위한 예산이 편성되어야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결국 행안부에서 지침을 내렸지만 조례조차 제정하지 않은 곳이 있고, 조례가 있더라도 예산이 없으니 지침이 나오기 전과 크게 다르지 않은 상황입니다. 지자체들이 과연 악성 민원 문제에 대한 해결 의지가 있냐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조례에서 빠진 '안전요원 배치' 항목
대구와 부산 지자체의 조례를 보면 빠진 항목이 하나 있는데, 바로 안전요원 배치입니다. 몇몇 기초지자체에서 하반기에 배치하겠다는 계획은 밝혔는데요, 현장에서는 사실 이 안전요원 확대 배치에 대한 요구가 가장 높다고 합니다.

이상원 뉴스민 기자 "은행에 가면 청원 경찰이 지점마다 있잖아요? 그것처럼 현재 시도에서는 안전요원이 배치된 곳이 있는데, 이게 아직은 시군구나 읍면동까지 확대된 게 아니거든요? 문제는 2021년에 민원인 위법행위 통계를 보면 시도에서 전체의 0.5%, 시군구에서 37.3%, 나머지 62.2%가 읍면동에서 발생했습니다. 그러니까 사실상 읍면동 행정복지센터에서 대부분의 악성 민원이 발생한다는 이야기인데, 문제가 발생하는 더 시급한 곳에 안전요원 배치가 여전히 적용되지 않고 있다는 이야기이죠"

행안부에서는 중앙, 교육청, 지자체(시도 본청, 시군 구·군청)의 민원실에 2023년 3월 31일까지 의무 배치를 해야 하고 민원 혼합부서나 읍면동 주민센터는 확대 배치를 권고했습니다. 결국 읍면동의 경우는 권고 사항이라 배치 업무가 없다 보니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지영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 "행정안전부의 민원 처리 담당자 보호 및 지원에 관한 참고 자치법규 안을 보면 제7조 8항에 청원경찰, 방호원 등 안전요원 배치가 적혀 있거든요? 지자체는 이 참고 자치법규에 따라 조례를 만들어야 합니다. 물론 참고이기에 반드시 똑같아야 하는 건 아니지만 이걸 근간으로 조례를 만들어야 하거든요? 그런데 대구와 부산 지역의 조례를 살펴봤더니 상당수 이 조항이 빠져 있어요. 대구는 서구, 동구, 북구, 수성구에서 항목이 없고 부산은 18개 시군 중 서구, 북구, 사하구, 부산진구, 기장군 등 5곳을 제외한 나머지 13개 시군 모두 안전 요원 항목을 찾아볼 수가 없어요. '업무 지원해야 한다' '예산 배정해야 한다' 이런 식으로 적힌 건 하지 않겠단 이야기죠. 인건비가 많이 드니까 슬그머니 뺀 거고, 이렇게 조례도 없고 예산도 없으니 지자체의 의지가 없다는 방증인 거죠"

물론 악성 민원인으로부터 공무원들을 보호하기 위한 노력을 상대적으로 그나마 잘하는 곳도 있습니다. 대구 달서구의 경우 익명으로 찾아오는 심리 상담을 신청받고 1대 1 치료를 하고 있는데요, 공무원들에게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있어 2023년 하반기에는 건당 15만 원, 총 600만 원으로 예산을 편성해 병원에 개별적으로 방문해 치료하는 것도 지원하기로 했습니다. 대구 달성군의 경우에도 군청에서 자체적으로 심리상담 업체와 연계해서 3년째 진행하고 있고 예산도 2천만 원 편성했습니다.

같이 악성 민원으로 피해를 보더라도 어떤 곳에서 일하면 지원을 받을 수 있고 어떤 곳에서는 받지 못한다면 형평성 문제도 생길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가 나서서 시스템 마련과 사회적 지지를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겁니다.

과거에는 은행에서도 악성 민원이 굉장히 자주 발생했습니다. 하지만 청원경찰이 배치된 뒤 악성 민원은 확연히 줄었고 이후 각 은행 지점별로 청원경찰을 배치했습니다. 악성 민원인으로부터 공무원을 보호할 수 있는 방안 중 하나로 꼽히는 것도 청원경찰 배치인데요, 청원경찰이 다 배치되지 못하는 이유는 단지 예산 때문일까요?

현재 세종시와 구리시가 청원경찰 제도를 시행하고 있는데요, 세종시는 재정자립도가 높으니 가능한 일이지만, 구리시는 그 정도는 아닙니다. 사실 구리시 사례는 사후약방문이라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2023년 상반기에 공무원 사망 사건이 발생해 더 빨리 청원경찰을 배치한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건비라는 예산 문제를 푸는 것이 지자체 차원에서 어렵다면 정부 차원에서 지원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악성 민원으로 인한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또 어떤 것이 필요할까요? 악성 민원으로 병가나 장기 치료 등으로 휴직을 할 때 결원을 채울 수 없습니다. 한 명이 쉬게 되면 그 업무 부담이 동료에게 가중되니까 의료진이 6개월 이상 쉬어야 한다고 권고해도 눈치가 보여서 결국 돌아오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쉬고 싶어서 쉬는 게 아닌데도 결국 인력 부족으로 복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겁니다. 최근 정부가 지자체 공무원이 병가 등으로 6개월 이상 쉴 경우 결원으로 인정하고 추가 인력 투입을 하겠다고 밝혔는데요, 언제부터 시행될지는 아직 불투명한 상황입니다.


악성 민원, 공무원 한 사람의 삶 전체 파괴할 수 있어
내가 내는 세금으로 월급을 받는 공무원이 제대로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일 것입니다. 제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을 때 민원 제기를 하는 것도 물론 필요합니다. 하지만 공무원도 우리와 같은 시민, 노동자,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이해하는 자세 역시 필요한 거 아닐까요? 공무원들이 안정감을 가지고 일을 하면 업무 효율도 늘고 결국 민원 서비스 향상으로 이어질 수 있는 것 아닐까요? 악성 민원이 공무원 한 사람의 몸과 마음, 삶 전체를 파괴할 수 있다는 것도 기억해야 하지 않을까요?

<예산추적 프로젝트 빅벙커> 대구MBC·부산MBC 매주 목요일 밤 9시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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