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프] 내년 최저임금 예상해보니 9,985원? 최저임금 더 올리면 일자리 줄어들고 자영업자 망하나
✏️ 뉴스쉽 네 줄 요약
· 내년 최저임금을 결정하기 위한 논의가 진행 중입니다.
· 경영계는 최저임금을 인상하면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이 파산할 것이라 주장하는 반면 노동계는 임금 인상이 일자리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는 입장입니다.
· 노사 합의가 어렵다 보니 그동안 최저임금 결정은 정부가 위촉한 공익위원들이 이른바 ‘공익위원 계산식’을 통해 정하는 일이 많았는데 그 공식을 통해 도출해보면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률은 3.8%, 시급은 9,980원대 안팎입니다.
· 노사 합의를 통해 정해져야 바람직한 최저임금이 정부의 방향성에 좌우된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12,210원 대 9,620원, 26.9% 인상 대 0% 인상. 노동계와 경영계가 내년 시간당 최저임금으로 처음 제시한 금액입니다. 동남아시아 여행을 할 때, 터무니없는 바가지를 씌우려는 택시기사와 호구가 되지 않으려는 여행객의 흥정이 떠오릅니다. 이들이 처음 부르는 가격처럼 격차가 너무 큽니다.
노동계와 경영계의 평행선은 최저임금을 정해야 하는 법정기한 동안 좁혀지지 않았습니다. 기한을 넘겨서야 낸 1차 수정안은 12,130원 대 9,650원, 2차 수정안은 12,000원 대 9,700원으로 노사 간 격차는 크게 좁혀지지 않았습니다. 여느 때처럼 노사 양측은 최저임금 인상률을 합의하는데 실패했습니다.
‘최저임금 1만 원’ 넘을까
경영계의 입장은 한마디로 최저임금을 많이 올리면 ‘중소기업, 자영업자 다 망한다’, ‘이들이 망하면 결국 일자리가 줄어든다’는 겁니다. 한국경영자총협회(이하 경총)는 최저임금위원회에 수치를 제시했습니다. 경기 불황의 척도인 법인 파산신청건수가 지난해보다 올해 56% 증가했습니다. 지난해 1월부터 5월까지 379건의 법인 파산신청이 있었는데, 올해는 592건입니다.
경총은 ‘다른 선진국과 비교했을 때 우리나라 최저임금이 너무 높다’고 말합니다. 기준으로 든 게 ‘중위임금 60%’입니다. 임금을 받아서 생활하는 근로자를 월급 순으로 1등부터 100등까지 줄 세웠을 때 50등이 받는 임금이 중위임금입니다. 이 중위임금의 60% 수준이 최저임금의 상한선인데 한국은 이미 초과했다는 겁니다. 경총은 OECD 통계를 토대로 올해 최저임금을 중위임금의 62.2%로 추정했습니다. 이 비율은 OECD 30개국 중에서 8등이며, 선진국인 G7과 비교하면 사실상 가장 높다는 게 경총의 주장입니다.
노동계는 ‘자영업자가 망하는 건 임금 때문이 아니라 월세, 물가상승 탓이다’, ‘최저임금 올린다고 일자리가 줄어들지 않는다’는 입장입니다. 민주노총은 근거로 통계청 소상공인 실태조사를 가져왔습니다. 소상공인을 상대로 실태를 알아보니 경영이 힘든 주된 요인은 경쟁심화와 원재료비 상승이 꼽혔습니다. 최저임금 상승 이슈는 임차료보다 낮은 순위를 차지했습니다. 즉, 자영업자가 망하는 건 인건비가 높아서가 아니라 다른 요인의 비중이 크다는 겁니다.
또, 노동계는 최저임금 인상이 일자리를 줄인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반박했습니다. 전경련은 최저임금이 1만 원으로 인상되면 일자리가 최대 6만 8천여 개 감소한다는 보고서를 냈습니다.
하지만 임금인상이 일자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는 여전히 논쟁 중입니다. OECD는 1998년에 최저임금의 고용효과에 대한 합의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밝혔습니다. 영국 저임금위원회가 올해 낸 연구에서도 최저임금이 일자리를 줄이는 효과를 뒷받침할 증거가 발견되지 않았다고 나왔습니다. 노동계의 주장은 ‘최저임금의 고용효과는 입증되지 않았다, 하지만 소득효과는 분명하다’는 겁니다. 최저임금 인상이 일자리를 줄어들게 한다는 건 증거가 없지만, 저임금 노동자 비중을 낮추고 임금 불평등을 줄이는 효과는 크다는 뜻입니다.
부경대학교 문영만 교수는 최저임금이 크게 인상된 2018, 2019년도의 소득효과와 고용효과를 분석했습니다.(「증거기반 최저임금제 실태와 소득·소비·고용효과」, (2022.3)) 2018~2019년은 문재인 정부 집권 초기로 각각 16.4%, 10.9% 최저임금 인상폭을 기록한 시기입니다.
이 연구에 따르면 당시 높은 최저임금 상승으로 저임금노동자 비중이 큰 폭으로 감소했고, 소득불평도가 큰 폭으로 하락했습니다. OECD 회원국 중에서 가장 큰 수준으로 개선된 겁니다. 또 중소기업 근로자의 가계소득이 늘어나면서 소비도 증가됐다는 결과도 나왔습니다. 최저임금의 대폭 상승이 사회 전체적으로도 경기회복과 일자리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겁니다. 고용효과에 있어서는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결과가 나오지 않아, 최저임금 상승이 일자리를 감소시키진 않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해당 연구는 경제지표 등 증거에 기반했지만, 연구자인 문영만 교수가 소득주도성장을 주도한 홍장표 전 청와대 경제수석과 함께 부경대학교에서 근무했고 함께 연구한 적도 있다는 편향은 감안해야 할 겁니다.
문재인 정부 ‘소득주도성장’은 실패했을까
최저임금 인상을 말할 때 문재인 정부를 빼놓을 수는 없습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후보 시절 집권 3년 내 ‘최저임금 1만 원’을 대선공약으로 내세웠습니다. 실제 첫해에 최저임금을 16.4% 인상시키며 급격한 임금 상승을 추진했습니다. 두 번째 해에도 10.9%로 인상률이 높았는데, 3년 차인 2020년 코로나가 터지며 2.9%, 다음 해엔 1.5%로 낮은 인상률 보였습니다. 결국 평균 인상률에서는 문재인 정부(7.2%)가 오히려 박근혜 정부(7.4%)보다 최저임금 인상률이 낮습니다.
문재인 정부 초기 경제정책의 핵심은 ‘소득주도성장’입니다. 국제노동기구(ILO)의 ‘임금주도성장’을 차용한 정책으로 알려졌는데, 문재인 정부 청와대로 간 진보 경제학자들이 주도했고 정책의 중심엔 최저임금 인상이 있었습니다.
소득주도성장을 주도한 경제학자들은 ‘학현학파’로 불립니다. 서울대 경제학과에서 학현 변형윤 선생의 제자들을 가리키는 말인데, 홍장표 전 청와대 경제수석이 대표적입니다. 문재인 정부에서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낸 김상조 교수 또한 변형윤 교수의 직접적인 제자는 아니지만 분배를 강제하는 진보 경제학자입니다.
이들이 최저임금 인상을 중심으로 소득주도성장 정책에 강한 드라이브를 걸었지만, 시간이 얼마 지난 뒤 내부 비판이 나온 바 있습니다. 학현학파로 분류되는 경제학자들 중 일부는 문재인 정부의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이 부작용을 일으켰다고 지적했습니다. 최저임금 인상 자체는 올바른 방향이지만, 속도가 너무 급격했던 만큼 자영업자들이 받을 충격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비판입니다. (▶ 링크 : [취재파일] '삼성 저승사자'는 왜 소득주도성장 비판에 나섰나)
[ 원문 링크 : https://news.sbs.co.kr/d/?id=N1006342585 ]
하지만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과 최저임금 인상의 성패를 분석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최저임금 인상은 정권 초기 2년만 지속되다 코로나19 타격으로 인해 다음 3년간은 지극히 낮은 인상률을 기록했기 때문입니다. 소득주도성장의 효과나 부작용을 분석하기에는 2년의 실험으로 끝날 수밖에 없었던 커다란 외부적 요인이 있었습니다.
구조의 문제 : 합의할 생각 없는 노사, 정부가 정하는 최저임금
3자라고는 하지만 3자 주의 구조에서 정부의 역할은 최소화해야 합니다. 노사 간의 문제는 민간영역인 노사 양측의 자율에 맡기고, 정부는 협상을 활성화하는 역할에 그쳐야 한다는 게 기본적인 원칙입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노사의 극한 대립으로 사회적 합의 모델이 제대로 작동한 적이 많지 않습니다. 노사 동수의 최저임금위원회에서도 양측은 한 치의 양보도 하지 않습니다.
올해 제시한 내년도 최저임금을 봐도 합의의 여지가 없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우선 노동계가 제시한 액수는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1990년대 이후 한 해 만에 26.9%를 인상한 경우는 없습니다. 합의를 염두에 둔 수치가 아닌 경영계가 받아들일 수 없는 액수를 크게 지르는 전략입니다. 경영계는 동결을 주장했습니다. 올해 물가상승률이 3.4% 수준인 상황에서 최저임금을 동결시키자는 주장은 사실상 임금을 깎자는 주장입니다. 경영계 또한 노동계와 합의할 성의조차 안 보이는 수치를 내놨습니다.
최저임금위원회는 35년 중에 9차례만 법에서 정해진 기한을 지켰습니다. 그만큼 노사 합의에 쉽게 이르지 못했다는 방증입니다.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한 노동계는 최저임금위나 경사노위에 적극 참여해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방식보다는 거리에서 투쟁하는 방식을 선호해 왔습니다. 경영계 또한 합리적 방식으로 대안을 내거나 노동계와 상생을 위해 양보하기보다는 극한의 이익을 추구하는 모습을 보여왔습니다. 이러한 투쟁적, 갈등적 노사관계가 최저임금위원회에도 반영됐습니다.
여느 때에도 그랬지만 올해는 특히 합의가 어려운 상황입니다. 정글도와 경찰 강제진압 등으로 사회적 논란이 됐던 김준영 한국노총 금속노련 사무처장이 구속되면서 근로자위원 1명이 공석이 됐습니다. 이 자리를 어떻게 할 건지를 두고서도 최저임금위 내에서 합의에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이 사건을 기화로 비교적 온건한 성향의 한국노총마저 대정부 투쟁으로 나선 상황입니다. 윤석열 정부 또한 회계 장부 제출 요구와 건설노조 수사 등으로 노동계를 압박하면서 최저임금위원회는 노사정 갈등의 최전선이 된 모양새입니다.
노사가 의견을 굽히지 않는 상황에서 최저임금위원회는 주로 정부가 선임하는 공익위원이 주도하는 쪽으로 가닥이 잡혔습니다. 때문에 정권의 성향에 따라 최저임금 상승폭이 영향을 받았습니다. 정권 초기에 권력이 강해 입김이 강하면 더욱 최저임금 인상률이 영향을 받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공익위원들이 ‘중재’를 명목으로 사실상 최저임금 인상폭을 주도하는 상황에서, 보수 정부가 들어선 만큼 큰 폭의 최저임금 상승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옵니다. 한 경제매체는 정부 고위인사를 인용해 ‘2% 인상, 9,800원대’로 전망하는 보도를 내기도 했습니다.
‘계산식’으로 도출해 보니 3.8% 인상... 시급 9,985원 안팎
최근 들어 최저임금위원회가 ‘계산식 만능주의’로 기울어져 가고 있지만, 계산식이 항상 합리적이거나 중립적인 것은 아닙니다. 어떤 요소를 계산에 넣고, 어떤 방식으로 계산식을 만드는지 또한 정부의 지향이나 방향성이 들어갑니다. 계산을 빙자해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최저임금의 기준점을 잡는 것은 노사 간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하는 3자 주의의 원칙을 훼손할 수 있습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전형우 기자 dennoch@sbs.co.kr
Copyright ©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그알', 캄보디아 한국인 BJ 사망사건 추적…사건 당일 CCTV 단독 입수
- '음주 단속' 보자 도망간 SUV…인도 덮쳐 보행자 숨졌다
- "갑자기 '삐-' 하는 소리…조금만 늦었어도 청력 잃을 뻔"
- [Pick] '곰 먹방' 관찰하던 美 박사…7개월 만에 45kg 뺀 비결
- 학교 주차장에서 폭발물이…정작 학교는 몰랐다
- '번쩍' 하더니 승객 비명…한밤 중 택시 덮친 산사태
- '의왕 엘리베이터 폭행' 가해자 구속…"대인 관계 없어"
- "트위터 꼼짝마!"…16시간 만에 3천만 명 몰렸다
- "친정에 맡겼다"더니…아이 숨지자 '종량제 봉투'에
- 삼성전자 14년 만 최악 실적…하반기 전망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