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시위에서 한동훈 장관이 배워야 할 점

노정태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철학 2023. 7. 8.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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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태의 뷰파인더] 낭만적 디아스포라 담론을 넘어

● ‘그들만의 세상’에 불만을 표한다?
● ‘동화주의’와 ‘다문화주의’의 대립
● 1966년‧2011년 英, 같지만 다른
● 이미 다민족‧다문화 국가 된 韓
● 동정 대신 진정한 ‘우리’ 향해야

6월 27일 프랑스 경찰관이 교통 검문을 피해 달아나던 17세 소년 나엘 메르즈쿠를 총으로 쏴 숨지게 한 사건 이후 경찰의 공권력 남용을 비판하는 시위가 격화되며 폭동으로 번졌다. 6월 30일 프랑스 파리의 한 버스터미널에서 시위대 방화로 불에 새카맣게 탄 버스가 방치돼 있다. [파리=신화 뉴시스]
"그리스나 프랑스 같은 데선 젊은 애들이 정부한테 일자리 마련하라고 데모하고 불 지르고 난리인데 우리나라 애들은 취업 안되는 게 다 지들 잘못인줄 알아요."

영화 '내 깡패 같은 애인'(2010)의 한 장면. 어수룩한 동네 건달 동철(박중훈 분)이 지방 출신 취업준비생 세진(정유미 분)에게 위로의 말을 건넨다. 청년 실업이 한창 화제였던 2000년대 말, 2010년대 초의 분위기를 잘 보여주는 대사다. 말하자면 '프랑스식 데모'를 긍정적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지식인, 특히 진보 진영 지식인 사이에 널리 퍼져 있는 생각을 반영한 대사다.

과연 그럴까.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라면 선뜻 동의하지 못할 듯하다. 지난달 말부터 이달 초까지 이어졌던 격렬한 폭력 시위를 되짚어 보자. 현지시간으로 6월 27일 아침, 파리 외곽 낭테르에서 운전 중 교통 검문에 걸렸던 17세 소년 나엘 메르즈쿠가 경찰의 총격에 의해 사망했다. 경찰은 처음에 '운전자가 차를 몰고 도주하려 했다'고 보고했으나, 경찰관이 운전석에 총을 겨누고 "네 머리에 쏘겠다"고 위협하다가 나엘이 차를 출발시키자 곧장 사격한 모습이 담긴 영상이 공개되면서 상황이 뒤집혔다.

그날부터 시작된 시위는 나엘의 장례식이 치러졌던 7월 1일 정점에 달했고 그 후 잦아들었다. 하지만 프랑스가 받은 상처는 매우 크다. 불타거나 훼손된 자동차는 5600여 대, 건물은 1000채에 달한다. 경찰서 250곳이 시위대에 피해를 당했고, 7월 2일 새벽에는 파리 남쪽에 위치한 도시 라이레로즈 시장 빈센트 장브런의 자택이 습격당하는 사건까지 발생했다.

시위대가 공격한 곳은 그뿐만이 아니다. 학교와 도서관 등이 집중 공격을 받았다. 시위에 참여한 이민자 청소년들이 본인들이 사는 곳과 가까운 교육시설을 습격한 것이다. 프랑스 동부 메츠의 보흐니에 위치한 도서관 화재로 인해 11만 권 이상의 책이 소실됐다는 소식은 한 사람의 애서가로서 생각할수록 가슴이 쓰리다.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이다. 동철의 대사처럼 프랑스 청년들이 정부를 상대로 '일자리 마련'을 요구하며 데모하는 것이라면, 자신들이 책을 읽고 문화생활을 하며 일자리를 구할 수도 있을 지역 도서관에 불을 지를 필요는 없지 않은가.

프랑스 소식을 전한 한 국내 언론 보도는 (출처를 명시하지 않은) 외신 보도를 인용해 "시위대는 교육과 문화의 혜택이 주류에게 편중되는 '그들만의 세상'에 불만을 표하기 위해 학교와 도서관을 훼손했다는 분석이 많다"고 하지만, 선뜻 납득하기 어려운 주장이다. 해당 기사에서 덧붙인 것처럼 "2005년 이민자 청소년들과 경찰이 충돌한 폭력사태 때도 전국에서 20개 이상의 도서관이 불탔다"는 사실을 놓고 보면 더욱 그렇다. 프랑스에서 벌어진 이민자 청년들의 시위와 폭동을 우리는 과연 어떻게 보아야 할까.

나엘 메르즈쿠 사망 이후 발발한 시위로 프랑스 정부가 전국에 경찰 4만5000명을 배치한 가운데, 7월 1일 파리 샹젤리제 개선문 앞에서 경찰관들이 순찰을 돌고 있다. [파리=AP 뉴시스]

동전의 한쪽 면만 바라봐서야…

가난하고 산업적으로 낙후된 나라, 소위 '후진국'에서 경제적으로 윤택하며 법과 제도가 잘 정비된 '선진국'으로 우수한 인재가 이주하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한 보편적 현상이다. 하지만 20세기 중반 이후로는 이주민을 어떤 관점에서 바라봐야 하느냐를 두고 본격 논쟁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오늘날의 이주민 담론은 크게 '동화주의'와 '다문화주의'의 대립 구도를 보이고 있다.

동화주의는 건너온 이들이 원래 살던 이들의 문화, 관습, 제도, 법을 존중하고 따르며 궁극적으로 하나의 국민이 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로마에서는 로마법을 따라야 한다'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역사상 많은 이주민이 새로운 나라에 정착한 후 그들과 동화됐다.

반면 다문화주의는 이주민들이 원래 갖고 있던 문화, 언어, 관습을 지킬 수 있도록 사회가 보장해줘야 하며, 더 나아가 약간의 법적 자치도 허용하는 쪽이 옳다는 입장이다. 신성로마제국이나 몽고제국 같은 근대 이전 다민족 제국의 운영 방침에서 그 기원을 찾아볼 수 있으며, 오늘날 서구에서는 주로 '리버럴 엘리트'들이 선호하고 있다.

동화주의는 이주민들의 문화, 관습, 언어 등을 소멸시킨다. 대신 하나의 사회를 만들어내므로 국민 통합에 유리하다. 반면 다문화주의는 이주민들이 새로운 사회의 완전한 구성원이 되는 과정을 지연시킨다. 그 결과 만들어지는 것이 바로 이주민 집단, '디아스포라'다. 고향인 이스라엘을 떠나 유럽에 살면서도 자신들의 언어, 종교, 관습을 지키면서 살아가던 유대인들을 뜻하던 용어가 뜻이 확장돼 고유한 정체성을 유지하고 사는 이주민 공동체 전반을 뜻하는 용어가 됐다.

서구 리버럴 지식 엘리트의 영향을 크게 받는 한국 지성계에서는 대체로 통합주의보다 다문화주의가 반향을 얻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므로 국내 식자층이 디아스포라에 대해 대체로 우호적인 것도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일본에 형성된 조선계 디아스포라의 존재 및 그것을 둘러싼 국내 담론을 떠올려보면 알 수 있듯, 디아스포라에 대한 국내 논의는 때로 민족주의적, 낭만주의적 감성을 수반하기도 한다.

그런데 디아스포라에 대한 민족적, 낭만적 이해는 동전의 한쪽 면만을 바라보는 것이다. 어떤 외국에 건너와 정착한 이주민들이 디아스포라를 형성하는 것은 반드시 바람직한 일이라 보기 어렵다. 우리가 이번 프랑스 이민자 시위를 통해 목격할 수 있다시피, 문화적으로 통합되지 않은 이주민 집단과 공동체는 쉽게 사회적 갈등에 휘말리며 많은 경우 더 큰 폭력을 낳기 때문이다.

동화되지 않은 디아스포라의 행동

옥스퍼드대 경제학과 교수이자 아프리카 경제연구센터 소장인 폴 콜리어는 '엑소더스: 전 지구적 상생을 위한 이주 경제학'에서 동화주의를 배제한 이민 정책이 낳은 결과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인상적인 사례를 제시했다.

영국의 경찰은 전통적으로 무장하지 않는다. 총기를 휴대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위협적으로 보일 수 있는 곤봉이나 수갑 등도 최대한 자제해 왔다. 시민사회가 국민을 억압하는 공권력의 폭력성을 허용할 수 없다고 밑에서부터 압력을 넣고 있었다. 그런데 이 균형은 깨지기 쉽다. 범죄자들이 흉포한 범죄를 일상적으로 저지른다면 경찰도 비무장 원칙을 언제까지 지킬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1966년 그런 사건이 발생했다. 어떤 범죄자가 경찰을 무려 세 명이나 총으로 살해했다. 충격적인 사건이다. 더 충격적인 것은 그 사건에 대한 시민사회, 아니 범죄사회의 반응이었다. 범인은 런던에서 범죄 집단의 도움을 받아 몸을 숨기려 했지만 범죄 집단이 그를 받아주지 않았다. '비록 우리도 범죄자지만 네가 저지른 짓은 너무 심각하고 받아들여줄 수 없다'는 것이었다. 경찰이 시민들에게 최소한의 무력만 행사하고, 대신 범죄자들도 심각한 폭력의 선을 넘지 않는, 모종의 '영국식 사회계약'이 살아 숨 쉬고 있던 것이다.

2011년에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경찰관 두 명이 한 전과자를 체포했는데, 호송 과정에서 범인이 총을 꺼냈다. 2011년의 영국 경찰들은 이전과 달리 총기 휴대를 많이 하는 편이었고 그 경우에도 그랬다. 범인은 경찰의 총에 목숨을 잃었다.

문제는 그 후에 벌어진 사건이 1966년과 퍽 달랐다는 데 있다. 1966년에는 범죄 집단이 경찰에게 총을 쏜 범죄자에게, 말하자면 파문 선고를 내렸다. 반면 2011년에는 범죄 집단이 경찰서에 몰려와 항의하기 시작했다. 숨진 범인인 마크 더건은 범죄 공동체의 영웅 취급을 받았다. 대체 뭐가 달랐던 걸까. 폴 콜리어의 설명을 직접 들어보자.

"한 가지 핵심적 차이는 더건이 아프리카계 카리브해 사람이었고 경찰서 밖에 모인 항의 집단 역시 아프리카계 카리브해 사람들이었다는 점이다. 런던 지역에 살던 아프리카계 카리브해 사람들에겐 범인이 총기를 소지해서 금기를 깼다는 사실보다도 자신들의 유대 관계가 더 중요했다. 오랜 기간에 걸쳐 아프리카계 카리브해 사람들의 공동체와 런던 경찰은 서로를 불신해왔고, 경찰들 내부에서는 인종주의적 정서가 생겼다. 더건의 사망 소식을 들은 범죄 공동체는 그를 쏜 경찰이 돌발 상황에서 극도의 공포심 때문에 그렇게 대응했으리라는 현실적 해석을 하기보다, 과잉대응으로 총을 겨눴다고 넘겨짚었다. 그 결과 범죄 공동체는 더건을 비판하기는 커녕 서로 결속을 다지며 총을 쏜 경찰을 응징하려고 나섰다."(109쪽)

1966년의 범죄자들은 비록 범죄자일지언정 '영국인'이라는 단일한 정체성을 지니고 있었다. 경찰이 시민들에게 위압감을 주지 않는 현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경찰에게 폭력을 행사하지 않는 영국식 불문율을 이해하고 지켰다. 2011년의 범죄자들은 그렇지 않았다. 영국인이라는 정체성이 없거나 희박한 그들, 동화되지 않은 디아스포라의 일원인 그들은, 경찰을 향해 총을 겨누지 말아야 한다는 금기를 지킬 생각이 전혀 없었다.

차라리 통일부를 개편해…

우리의 현실로 돌아와 보자. 대한민국은 현재 급격한 출생률 저하를 겪고 있다. 고령화 쇼크는 예정된 미래다. 굳이 '미래'를 운운하지 않더라도 이미 서울과 수도권 밖은 이주민 노동자 없이는 돌아가지 않는다. 대한민국은 다민족, 다문화 국가인 것이다.

이러한 현실을 놓고 볼 때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이민청' 추진은 매우 바람직하다. 지난 정부, 아니 그 이전부터 추진됐어야 마땅한 일이다. 하지만 현재 추진되고 있는 정책 방향을 보면 무턱대고 환영할 수만도 없다. 중국인들이 건강보험 재정에 미치는 영향이나 지방선거에서 투표권을 행사하는 문제처럼 단기적으로 표심을 자극할만한 사안은 곧잘 거론되는 반면, 이민청이 진짜 해야 할 장기적이고 중요한 고민에 대한 논의는 (적어도 언론을 통해서) 확인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21세기가 벌써 4분의 1을 향해가고 있는 지금, 대한민국의 이민청이 해야 할 일은 단 하나다. 세계 각지에서 건너오는 이주민을 어떻게 통합해 하나의 대한민국 국민으로 만들어낼 수 있을지 그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다.

다양한 나라에서 온 여러 사람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나라를 만드는 일. 어쩌면 그것은 일개 '청' 단위에서 할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차라리 통일부를 개편해 북한이탈주민을 비롯해 수많은 '낯선 한국인'을 진정한 '우리'로 만들어내는 장기적 과제를 떠맡게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잠시 해본다.

이미 다문화 다인종 국가가 되어 있는 대한민국에 그보다 더 시급한 장기 과제가 또 어디 있겠는가. 우리가 이주민에게 주어야 할 것은 시혜적인 눈길과 동정이 아니다. 그들이 그들만의 디아스포라에 갇히게 해서는 안 된다. 이미 살던 한국인과 새로 온 한국인 모두 한국인으로서 하나가 되어 코리안 드림을 꿈꿀 수 있게 해야 한다.


노정태
● 1983년 출생
● 고려대 법학과 졸업, 서강대 대학원 철학과 석사
● 前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 한국어판 편집장
● 저서 : '불량 정치' '논객시대' '탄탈로스의 신화'
● 역서 : '밀레니얼 선언' '민주주의는 어떻게 망가지는가' '모던 로맨스' 外

노정태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철학 basil8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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