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낳으러 왔지만, 제 이름은 비밀이에요"...이게 되는 나라들

김성은 기자 2023. 7. 8.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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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 내 아기, 안 키울 권리?⑥
[편집자주] 인간은 유일하게 혼자서 출산할 수 없는 동물이다. 하지만 1년 뒤부턴 '출생통보제'에 따라 병원에서 아기를 낳으면 산모의 이름이 남는다. 그럼 원치 않은 아이를 낳아야 하는 사람들은 어떨까. 이름을 안 남기는 '보호출산제' 도입 법안이 있지만, 자칫 영아 유기를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인간의 자유와 책임, 생명까지 아우르는 딜레마다.


미국, 독일, 프랑스는 우리나라에 앞서 보호출산제를 도입한 대표적인 국가들이다. 미국은 영아피난제도(Infant Safe Haven Law), 프랑스는 익명출산제, 독일은 신뢰출산제(또는 비밀출산제) 등 저마다 다른 명칭으로 불리지만 임신과 출산에서 위기 상황을 경험하는 임산부의 건강과 안전을 보호하고 영아의 생명을 보장하기 위함이란 제도의 취지는 같다.
생모 알 권리 인정 여부는 제각각
미국에서 처음으로 '영아피난제'가 도입된 것은 1999년 텍사스주가 '아기피난소법'을 제정하면서다. 당시 미국 텍사스주에서 영유아 유기 및 사망 사건이 잇따라 발생한 것이 원인이 됐다. 2008년 이후 알래스카, 네브라스카주가 아기피난소법을 채용하면서 미국은 50개주 모두가 영아피난제를 갖게 됐다.

주마다 내용이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미국의 영아피난제는 생후 72시간 또는 50일 이내의 유아를 정해진 '피난소에'에 유기하는 행위에 대한 형·민사상 법적책임 면책, 산모의 익명성 보장을 주된 내용으로 한다.

프랑스는 1941년부터 익명출산제를 도입했다. 당시에는 의회식 토론이 없었기에 정확한 입법 이유 등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군의 아이를 임신한 프랑스 여성들의 두려움 및 스트레스를 덜어주기 위한 조치로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프랑스는 익명출산제를 통해 연간(1990년대~2000년대 초반 기준) 약 600명의 아이들이 태어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프랑스에서는 생모가 본인 신상에 관한 기록을 남기지않고 영아를 남겨둔 채 의료기관을 떠날 수 있고 출산 전에 익명출산을 요구하면 입원비, 출산비를 지원받는다. 영아는 생모의 입양 승낙이 있다면 아동보호시설로 옮겨져 국가 후견을 받게 되며 2개월 경과시 입양 절차를 밟게 된다. 이 2개월 동안 생모는 입양 승낙 의사를 철회, 다시 아이를 데려가 키울 수 있다.

독일에서는 2013년 비밀출산법이 제정돼 2014년 5월부터 시행됐다. 그 전까지 법적 근거없이 베이박스가 설치·운영되고 익명출산이 이뤄지는 문제 해결을 위함이었다. 임신한 여성이 의료기관에서 익명으로 아이를 출산할 수 있단 점에서 익명출산과 같아 보이지만 생모 신상에 관한 정보 기록이 선택사항이 아닌, 반드시 남겨야 한단 점이 차이점이다. 즉, 자녀의 출생등록부에는 생모의 '가명'이 기록되나 이와 별도로 생모의 신상 정보(성명, 주소 등)가 기록·밀봉돼 국가기관에 보관된다.

추후 자녀의 친생부모를 알 권리가 실현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신뢰출산제의 가장 큰 특징이다. 독일에서 신뢰출산으로 태어난 자녀는 16세가 되면 본인의 출산에 관한 기록 열람권을 요청할 수 있다. 단 생모가 이 열람을 반대할 때는 가정법원의 판단에 따르게 된다.

이에 비해 프랑스는 법원이 아닌 생모의 의지에 따른다. 신상 공개를 원치 않는 생모의 익명성을 영구히 보장하는 것이다. 프랑스에서는 익명출산을 하더라도 의료기관 등이 산모를 대상으로 아기가 자신의 출생과 관련된 사실을 제대로 아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 설명, 산모가 이 설명을 듣고 만일 기록을 남기기로 결정한 경우 산모가 자신과 친부의 유전병 등 건강상태, 출생 당시 여건 등을 국가기관에 남기도록 돼 있다.
獨, 상담 후 24% 스스로 양육 선택
선진국들은 산모가 보호출산제 활용을 선택하기 전에 충분한 상담이 이뤄지도록 하고, 양육 대책에 대해서도 충분한 고민의 시간을 준다. 출산과 양육을 사회의 공통 책임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독일에서 신뢰출산제도 도입 이후 2014년 5월부터 2018년 12월까지 독일 임신상담소에서 신뢰출산에 관해 상담을 받은 임신여성의 수는 2249명이다. 상담 목적은 단지 신뢰출산에 대한 안내의 수준을 넘어 곤경에 처한 임신 여성들에게 필요한 정보와 지원을 제공, 스스로 합리적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데 있다. 실제 신뢰출산에 관한 상담을 받은 임신여성들 중 24.2%가 자녀를 스스로 양육하는 삶을 선택했다.

독일엔 '임신갈등상태의 회피 및 극복에 관한 법률'(임신갈등법)이 있어 임신한 여성들은 주에서 인가받은 상담소에서 익명성이 보장되는 상담을 받을 수 있다. 임신갈등법에 따르면 임신여성들은 익명 상담은 물론 비대명 방식의 정보제공이 가능한 인터넷 사이트, 24시간 이용이 가능한 중앙 핫라인 이용이 가능하다. 임신 여성들이 스스로 해법을 찾거나 입양 제도를 활용하게 도와주고, 마지막으로 신뢰출산제에 의한 해결이 이뤄지도록 하려는 취지다.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연구원은 지난 6일 '보호출산제, 논쟁의 지점과 숙고할 사안'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원하지 않는 임신으로 인해 고통을 겪는 자, 임신이 축복이 아닌 비난과 고립의 이유가 된 자, 출산 이후의 삶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으로 합리적인 판단이 어려운 자는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존재할 것"이라며 "곤경에 빠진 산모와 태아를 위해 위기심신 상담 시스템을 활성화하고 상담과정을 통해 출산, 그리고 양육에 대한 두려움과 걱정을 떨치고 미래를 계획할 수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이어 "이러한 상담이 진행되기 위해서는 실제 한 부모로서 자녀를 책임지고 안정적으로 키워낼 수 있는 여러 지원 제도가 마련돼야 하는 것은 물론"이라고 강조했다.

김성은 기자 gttsw@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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