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갤럭시가 일본 시장에 던진 '프리미엄 승부수'
日 시장 전략 바꾼 삼성
갤럭시 대신 삼성 달고
초고가 스마트폰 론칭
아이폰 사랑 극진한 日
전략적 수정 통할까
# 삼성전자가 달라진 전략을 앞세워 일본 시장을 공략하고 있습니다. 초고가 모델(갤럭시S23 울트라 플러스)과 자급제폰으로 승부를 걸고 있는 겁니다. 삼성전자가 지금까지 저가폰에 집중해 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전략적 승부수'를 던졌다고 해도 무방합니다.
# 문제는 일본 시장을 '애플'이 장악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애플은 11년째 일본 스마트폰 시장에서 1위를 놓치지 않고 있습니다. 그만큼 일본 소비자, 특히 젊은층은 '애플愛'에 빠져 있습니다. 삼성전자는 과연 '애플 아성'을 뚫고 의미 있는 성과를 낼 수 있을까요?
한국에서 제일 잘 팔리는 스마트폰은 무엇일까요. 예상했겠지만 답은 삼성전자의 갤럭시 시리즈입니다.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삼성전자는 국내 스마트폰 시장의 63.0%를 점유해 애플(34.0%)을 누르고 1위를 차지했습니다.
2010년 첫 번째 갤럭시 시리즈인 '갤럭시S1'을 출시한 이래 삼성전자는 지금까지 국내에서 점유율 1위 자리를 놓친 적이 없습니다. 이를 두고 누군가는 이렇게 묻곤 합니다. "한국 기업이 '안방'을 장악하는 건 당연한 일 아닌가요?"
그럼 일본에선 일본 스마트폰 제조사가 1위일까요? 아닙니다. 시장조사업체 스트래티지애널리틱스에 따르면 애플이 지난해 전체 시장 점유율의 56.1%를 기록해 1위를 차지했습니다. 일본 국민 2명 중 1명이 아이폰을 쓴다는 얘기입니다. 애플의 점유율은 일본 제조사인 샤프(10.1%), 소니(7.3%)와 비교해 봐도 압도적인 데다, 심지어 애플의 아성은 11년째 깨지지 않고 있습니다.
또다른 통계를 살펴볼까요. 애플 아이폰의 운영체제(OS)인 iOS는 일본 모바일 운영체제 시장의 69.5%(스탯카운터·5월 기준)나 점유하고 있습니다. 이는 애플의 안방인 미국(62.0%)보다 높은 수준입니다. 일본 소비자들이 애플 제품을 얼마나 선호하는지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그런데, 여기엔 흥미로운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자국 기업조차 고전하는 '애플 천하' 일본 시장에서 삼성전자가 약진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2017년 시장 점유율 5.2%로 샤프(5.2%)와 함께 4위에 머물러 있던 삼성전자는 5년 후인 지난해 10.5%로 2위로 올라섰습니다. 애플의 점유율(56.1%)과 비교하면 여전히 낮은 수치지만, 일본 기업들을 따돌렸다는 점을 감안하면 고무적인 결과임에 분명합니다.
이 결과에 자신감을 얻은 걸까요? 삼성전자는 6일부터 '갤럭시S23 울트라(1TB)' 자사 스마트폰을 자급제로 판매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모델의 가격은 25만3440엔(231만원6061원)으로 갤럭시S23 라인업 중에서 가장 비쌉니다. 초고가 모델을 통신사 할인 혜택 없이 자급제로 판다는 건 그만큼 제품에 자신이 있다는 뜻입니다.[※참고: 자급제는 통신사와 연계하지 않고 스마트폰 '기기'만 판매하는 것을 뜻합니다.]
초고가 모델을 앞세운 삼성전자의 새로운 전략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지금까지 삼성전자는 가격 경쟁력에서 우위를 차지하는 방식으로 일본 시장에서 입지를 넓혀 왔습니다.
지난 1분기 일본 스마트폰 판매량 상위 10개 모델 중 9위에 50만원대의 갤럭시A53 5G가 이름을 올린 게 이를 방증합니다(BCN리테일). 삼성전자가 지난해 4월 4만975엔(37만4450원)짜리 가성비폰 '갤럭시M'을 자급제로 선보인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삼성전자는 왜 '가성비'에서 '초고가'로 전략적 수정을 꾀한 걸까요? 신민수 한양대(경영학) 교수의 설명을 들어보겠습니다. "저가폰에선 박리다매 이상의 의미를 기대해선 안 된다. 업계 톱을 노리려면 수요와 가격이 둘 다 높은 프리미엄폰에서 점유율을 늘려야 한다. 일본은 자급제폰 선호도가 높은 나라다. 삼성전자가 초고가 모델을 자급제폰을 출시했다는 건 프리미엄폰을 주력으로 판매하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현재 일본 프리미엄폰 시장을 독식하고 있는 건 역시 애플입니다. 앞서 언급했던 스마트폰 판매량 상위 10개 모델 중 1·2·4·5위가 전부 애플의 아이폰 시리즈입니다. 그중 가성비 모델은 2022년 출시한 아이폰SE (58만9600원)뿐이니, 프리미엄폰 시장을 애플이 꽉 잡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럼 삼성전자가 애플을 누르고 프리미엄 시장에서 우위를 점할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요?익명을 원한 한 전문가는 "아직까진 가능성이 현저히 낮다"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일본 소비자들에게 아이폰은 스마트폰이 아니다. 그 이상의 제품이다. 결코 과장이 아니다. 지금 바로 일본 통신사 홈페이지에 가 보면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을 거다."
■ 고민❶ 뿌리 깊은 애플愛 = 그의 말대로 일본 3대 이동통신사 중 하나인 AU의 홈페이지에 접속해 '스마트폰 페이지'를 살폈습니다. 가장 먼저 아이폰과 아이패드가 눈에 띕니다. 그 밑에는 구글 픽셀, 삼성전자 갤럭시, 소니 엑스페리아 등의 브랜드가 하나로 묶여 나열돼 있습니다. LTE폰·5G폰 등 인터넷 속도별로 제품을 구성한 국내 통신사 홈페이지와는 확연히 다른 구조입니다.
또다른 통신사인 도코모도 마찬가지입니다. 메뉴에 '아이폰' 카테고리가 있고, 그 옆에 아이폰 이외의 상품으로 채워진 '안드로이드'가 있습니다. 소프트뱅크는 한술 더 떠서 휴대전화 구매 페이지의 최상단을 애플 제품으로 가득 채웠습니다.
화면을 한참 내려야 비로소 다른 브랜드들이 눈에 띕니다. 한눈에 봐도 일본 3대 통신사들이 아이폰만 특별 취급하고 있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이는 일본 소비자가 얼마나 애플을 선호하는지 엿볼 수 있는 단면입니다.
특히 일본 젊은 소비층의 아이폰 충성도는 대단합니다. 지난해 4월 일본 시장조사업체 MMD연구소가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사용 중인 스마트폰 운영체제(OS)가 무엇인가'란 질문에 20대 남성의 57.0%, 여성의 70.2%가 아이폰 OS인 'iOS'를 꼽았습니다. iOS를 선택한 10대의 응답률은 남성 70.1%, 여성 84.1%로 더 높습니다. 10~20대가 미래의 주요 소비층이 된다는 점을 생각하면, 향후 몇년간은 '아이폰 아성'이 깨질 가능성이 거의 없습니다.
아이폰 추앙하는 일본
그럼 아이폰은 어떻게 일본의 '국민 스마트폰'으로 거듭난 걸까요? 2007년 애플이 아이폰 1세대를 출시했던 시점으로 잠시 돌아가 보겠습니다. 아이폰의 인기가 전세계를 강타하면서 일본에서도 아이폰 인지도가 빠르게 상승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소니·샤프·도시바 등 일본 기업들이 아이폰에 대항할 만한 제품을 만들어내지 못했고 끝내 시장에서 밀려났습니다. 그 결과, 애플은 2010년 시장 점유율 21.1%를 차지해 업계 1위에 올라섰죠(BCN리테일).
이때까지만 해도 삼성전자는 애플을 바싹 쫓고 있었습니다. 당시 출시한 갤럭시S2가 점유율 19.7%를 기록해 애플에 이어 일본시장 점유율 2위를 차지했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 점유율이 빠지면서 2015년 3.7%까지 주저앉았습니다(시장조사업체 가트너). 이는 하락세를 겪던 소니(15.6%)와 샤프(10.3%)보다 낮은 수치였죠.
국제무역통상연구원 관계자는 당시 시장 상황을 이렇게 분석했습니다. "디자인과 운영체제(iOS)에서 독보적인 영역을 구축한 아이폰이 일본 소비자들 사이에서 호평을 받았지만, 갤럭시는 일본 스마트폰과 큰 차별성이 없는 것으로 인식됐다. 그러면서 자국 제품을 선호하는 일본 소비자들의 성향이 더해져 갤럭시 대신 일본 제품을 선택하는 구매자가 늘면서 점유율이 빠진 것으로 보인다."
■ 고민❷ 부정적인 시선 = 연구원 관계자는 삼성전자의 점유율 하락을 점잖게 표현했지만, 사실 다른 이유도 있었습니다. '반한反韓' 감정을 갖고 있는 일부 일본 소비자가 삼성전자의 점유율이 떨어지는 데 한몫했습니다.
삼성전자가 대일對日 수출용 스마트폰 뒷면에 '삼성(Samsung)'이란 이름 대신 '갤럭시(Galaxy)'를 붙인 건 이런 풍조를 반영한 결과물입니다. 삼성전자가 수출용 스마트폰에 '삼성'을 붙이지 않은 나라는 일본이 유일합니다.
자! 이쯤에서 다시 질문을 던져볼까요? 이런 상황에서 삼성전자의 프리미엄 전략은 성공할 수 있을까요?
황용식 세종대(경영학) 교수는 "프리미엄 제품 시장에선 브랜드 이미지가 그 무엇보다 중요하게 작용한다"면서 "프리미엄 제품을 구매하는 소비자들이 기업의 브랜드 로고를 확인하는 방식으로 품질과 신뢰성을 보장받으려는 경향이 짙기 때문이다"고 지적했습니다. 이 말을 풀어 설명하면, 삼성전자가 프리미엄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선 삼성전자의 높은 브랜드 인지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겁니다.
삼성전자도 이를 잘 알고 있는 듯합니다. 이번에 자급제로 출시하는 갤럭시S23 울트라의 뒷면에 '갤럭시'란 로고 대신 '삼성' 이름을 달고 판매할 예정입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2020 도쿄 올림픽 때 글로벌 파트너로 활동하면서 일본 내 삼성전자 브랜드 인지도가 많이 올랐다"면서 "삼성이란 이름으로도 충분히 일본 시장에서 선전할 수 있다고 판단해 로고를 수정했다"고 말했습니다. 한번 뗐던 이름을 다시 붙여 판매하겠다는 건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얘기일 겁니다.
하지만 일본 소비자는 지금까지 '애플'에 충성하고, '삼성'을 외면해 왔습니다. 삼성 갤럭시 브랜드의 점유율이 올랐다곤 하지만 그건 '저가폰' 시장에서의 일입니다. 과연 삼성전자는 '애플 깃발'이 여기저기 꽂혀 있는 일본 시장에서 알찬 열매를 맺을 수 있을까요?
이혁기 더스쿠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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