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기자의 숨트뷰]새벽 배송 맛집, 2만 명이 몰렸다

구희령 기자 2023. 7. 8.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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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업체 '컬리', 첫 오프라인 음식 축제
2만원대 입장료에도 아침부터 '오픈런'
시식행사에 '인생샷', 공짜 선물까지
북적북적 축제 속 숨은 얼굴은?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가 보라색 장바구니를 든 사람들로 붐비고 있습니다. 오전 10시에 행사장이 문을 열기도 전에 아침부터 500여명이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는 '오픈런'도 벌어졌습니다. 1만5천원 할인가에 입장권을 예매 못 해둔 사람은 현장에서 9000원을 더 주고 표를 사야 했는데, 그것조차 금세 동이 나서 더는 구할 수 없게 됐습니다. 6~9일 나흘 동안 열리는 '2023 컬리 푸드 페스타' 현장 이야기입니다.

예, 온라인으로 식재료를 주문하면 새벽에 집 앞까지 배송하는 시스템을 도입해서 유명해진 그 컬리가 맞습니다. '마켓 컬리'라는 이름으로 먼저 알려졌지만, 화장품 판매 등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면서 '컬리'로 이름을 바꿨죠.

그런데 온라인 업체인 컬리가 사업을 시작한 지 8년 만에 처음으로 대규모 오프라인 행사를 연 겁니다. 입장료 2만4000원(컨퍼런스 참석권은 24만8000원)인 유료 행사인데도 DDP 홀이 가득 찼습니다. 나흘간 총 관람객은 2만 명을 훌쩍 넘을 것으로 보입니다. '구기자의 숨트뷰'도 사람들로 북적이는 컬리 페스타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2023 컬리 푸드 페스타'가 열리는 DDP 아트홀 1,2관은 아침부터 사람들로 꽉 찼습니다.

고객님, 여기선 못 사십니다



행사장 입구로 들어서자마자 CJ제일제당ㆍ풀무원ㆍ매일유업ㆍ하림 같은 식품 기업의 대형 부스가 먼저 눈에 띕니다.

"여기 갈비탕 한 번 드셔보세요.”
"이번에 새로 나오는 닭가슴살 두부 드릴게요."
"인스타에 게시물 올려 주시면 경품 뽑으실 수 있어요."

곳곳에서 시식 행사를 하고, 신제품을 나눠주고, 소셜미디어 이벤트를 벌이고 있습니다. 먹거리를 주제로 한 박람회에 가면 쉽게 볼 수 있는 풍경이지요.

술 취향 찾기 MBTI를 한 다음 시음을 해볼 수 있는 행사도 열렸습니다.

그런데 와인ㆍ농산물ㆍ디저트 등으로 테마가 정해져 있는 다른 음식 박람회와는 달리 이곳은 탕수육ㆍ샐러드ㆍ떡볶이에 커피ㆍ김ㆍ막걸리까지 종류가 제각각입니다. 직접 손으로 음식을 만드는 곳부터 대기업까지 참여 업체 규모도 차이가 크고요. 이번 행사에 참여한 130여 브랜드의 공통점은 오직 하나, 컬리에서 판매를 한다는 겁니다.

“아…죄송해요, 고객님. 저희가 여기서 현장 판매는 안 하고 있어서요."

그런데 정작 행사장에서는 제품 판매를 안 한다네요? 박람회의 쏠쏠한 재미는 저렴한 '현장가'로 물건을 살 수 있다는 것 아닌가요.

의아해 하는 관람객에게 직원이 부스마다 놓여있는 QR코드를 보여줍니다. 스마트폰으로 QR코드를 찍었더니 컬리 사이트로 바로 연결이 되고, 최대 40%까지 할인한 가격으로 나옵니다. 오프라인 행사지만 판매만큼은 평소처럼 온라인으로 하는 겁니다. 그 자리에서 결제하고 주문 내역을 보여주면 1+1로 덤은 행사장에서 바로 주기도 했습니다.

행사장에서 직접 물건을 살 수는 없고, QR코드를 찍은 다음 컬리 사이트에서 구매할 수 있습니다.

물류센터·대형 치즈 배경으로 '인증샷'



행사장 곳곳에 '인스타용 사진'을 찍을 수 있게 꾸며 놓은 '포토존'도 눈에 띕니다.

대형 딸기와 사과, 치즈 모형 등으로 꾸며놓은 '포토존'.
브로콜리와 아보카도, 치즈와 딸기 등 음식 모형이나 컬리의 상징색인 보라색으로 예쁘게 꾸며 놓기도 했는데요, 정작 가장 인기를 끈 건 컬리 물류센터처럼 연출해 놓은 곳이었습니다.

실제로 센터에서 쓰는 물건을 그대로 가져왔다더니, '평택' 같은 센터 이름표까지 상자에 달려 있습니다.

스물일곱 동갑내기 친구 김보경ㆍ이서윤씨도 커다란 고기 모형을 들고 물류 상자 앞에서 사진을 찍느라 바빴습니다.

동갑내기 친구 김보경(오른쪽)ㆍ이서윤씨가 고기와 채소 사진을 들고 포즈를 취했습니다.
"시식을 많이 해서 배가 너무 불러서요. 쉬고 있는 거예요. 점심은 도저히 못 먹겠어요."

"컬리는 온라인으로 판매하고 다른 곳에선 보기 힘든 제품도 많다 보니까 평소엔 맛을 못 보고 사거든요. 궁금했던 제품들 다 먹어볼 수 있어서 좋아요."

일찌감치 할인가로 표를 예매해둔 보람이 있다면서 입장료가 아깝지 않다고 했습니다. 공짜 장바구니에 과자, 음료수, 물티슈 등 입장 선물도 잔뜩 받았고요.

온라인으로 장을 보면 간편해서 좋지만, 버리는 포장지가 너무 많이 나와서 고민이라고 합니다. 또 고기 같은 음식은 직접 가서 보고 사는 편이라네요. 기름이 너무 많이 붙어있진 않은 지 꼼꼼히 살펴보고 싶어서요.

댓글 창 밖에서 처음 뵙습니다



물류 센터 포토존의 채소 상자 앞에서 설명을 맡은 건 실제 컬리의 채소 담당 MD 손승현 씨입니다.

손승현 컬리 채소 담당 MD가 "영화 '리틀 포레스트'에 나온 채소"라며 소송채를 소개했습니다.
"토마토는 가지에 달린 채로 끝까지 익혀서 따는 게 제일 맛있거든요. 이것도 강원도 화천에서 오늘 따서 온 거예요. 경매 같은 중간 과정이 없어서 밭에서 고객님 댁까지 길어야 하루 걸려요."

소송채처럼 마트에서 쉽게 보기 힘든 채소도 온라인이기 때문에 오히려 더 잘 팔 수 있었다고 해요.

"어떤 채소고 어떻게 드시면 되는지 온라인 페이지에 아주 자세하게 설명글을 올릴 수가 있잖아요. 마트에서는 매번 일일이 MD가 설명을 드릴 수가 없고, 긴 글을 붙여놓기도 힘드니까요."

8년을 컬리 MD로 일했지만 실제로 손님을 만나는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생산지나 물류 창고는 수없이 다녔지만, 온라인 업체 MD에게 손님은 후기와 댓글 창 안에서만 존재하니까요.

"여기 서 있으니까 '어? 저 커다란 케일 내가 많이 사 먹던 건데?' 하고 지나가는 손님도 계시는데, '그거 제가 발굴한 거예요'라고 속으로만 말씀드렸지만 뿌듯했어요."

대파가 아니라 튤립입니다



시식 접시를 들고 다니는 사람들 속에서 백합을 손에 소중하게 들고 걷는 이들이 눈에 띕니다. 저기서 꽃을 나눠주나 봐요. 행사장 한가운데 줄을 아주 길게 섰습니다. 그런데 이런, 백합이 금세 동나 버렸네요.

"지금 춘천 농가에서 꽃을 더 가지고 오고 있습니다. 600송이 정도 준비했었는데, 1000송이도 모자랄 것 같아요. 급히 구하는 중입니다."

권민수 '농부의 꽃' 대표가 관람객에게 아직 피지 않은 백합을 나눠주고 있습니다.

'농부의 꽃' 권민수 대표는 "사람이 이렇게 많이 올 줄 몰랐다"며 놀란 표정입니다.

먹거리 행사에 웬 꽃인가 싶지만, '농부의 꽃'이 컬리에서 판매를 시작한 지도 벌써 3년이 넘었습니다. 코로나로 각종 행사가 취소되면서 꽃 농가가 한창 어려울 때였죠.

"화려한 꽃다발이 아니라 농가에서 바로, 싱싱하게 새벽에 배달해서 2주는 거뜬히 버티는 꽃, '식탁의 완성은 꽃'이라고 알렸죠."

처음엔 튤립 한 종류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다루는 꽃이 60종류나 됩니다. 첫 달엔 1795송이를 겨우 팔았는데, 최근 1년 반 동안만 155만7000송이가 판매됐습니다. 그동안 우여곡절도 많았습니다.

"튤립을 시켰는데 왜 대파를 보냈느냐고 항의하는 손님도 많았어요. 꽃집에선 활짝 핀 꽃만 파는데, 저희는 피어나는 모습까지 오래 즐기시라고 살짝 덜 핀 꽃을 보내니까요. 요즘은 좋은 후기가 많아서 행복합니다."

'감자가 맛있다'는 후기는 좀처럼 올리지 않는 손님도, '예쁜 꽃을 받고 정말 기뻤다'는 글은 곧잘 올려주신다며 권 대표가 활짝 웃었습니다.

온라인 말고 직접 만나서 상담받으러 왔어요



권 대표처럼 새로운 판매처를 찾는 이들도 행사장에서 만날 수 있었습니다. 컬리 김슬아 대표, 서울대 푸드비즈니스랩 문정훈 교수 등의 강연을 들을 수 있는 '컨퍼런스 티켓'을 산 이에겐 컬리 MD와 1대1 상담을 할 기회를 줬거든요.
경기도 고양시 일산에서 12년째 레스토랑 '도어스 앤 테이블'을 운영하는 정지영 대표도 밀키트 사업 소개 자료를 챙겨 왔습니다.

일산에서 프랑스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정지영 대표는 컬리에 밀키트 입점 상담을 받으러 왔습니다.
”원래 컬리는 온라인으로만 입점 상담을 받거든요. 저도 올 2월에 온라인으로 제안서를 제출했는데 거절당했어요. 오늘은 직접 우리 음식 재료는 뭘 쓰고, 맛은 어떤지, 어떤 과정을 거쳐서 만드는지 설명하고 MD분 질문에 답변도 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정 대표가 밀키트 사업을 시작하게 된 것도 코로나 때문이었습니다. 2020년 3월, 레스토랑 매출이 '0원'을 처음 찍었던 때가 아직도 악몽 같습니다. 한 달에 400만원씩 적자가 났습니다. 단골들이 사회적 거리 두기가 가능한 인원씩 짝을 지어 찾아주기도 했지만, 역부족이었습니다.

"배달로 바꿔서 영업을 해봤는데, 저희 집 음식은 만드는 데 시간이 걸리는 편이라 잘 안맞더라고요."

밀키트 제조업 허가를 받고 가내 수공업처럼 시작했습니다. 친구 집으로 배달을 시킨 다음, 정 대표가 친구 집에서 직접 받아서 해 먹어보면서 제품 상태를 체크하던 식이었죠. 음식이 변할까 봐 겨울에만 배송하기도, 단골 상대로만 알음알음 주문을 받기도 했지만 이젠 대량 생산이 가능합니다.

"보통 음식 박람회에 가면 수출입 업체들이 많고, 저희 같은 소규모 업체들이 실제로 비즈니스 상담을 받을 기회는 잘 없거든요. 오늘은 30분 가까이 직접 상담해서 만족해요."

숙제 많은 컬리, 내년에는?



컬리는 '새벽 배송'의 명암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회사입니다. 소비자의 편리함이 노동자의 고단함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숙제를 풀어가야 합니다. 8년 동안 매출도 급성장했지만, 많은 IT 스타트업 기업이 그렇듯 빚도 빨리 늘었죠.

컬리가 '오프라인 축제'를 연 건 주식 시장 상장 계획을 철회한 후에도 건재한 모습을 보여주고 새로운 돌파구를 찾으려는 의미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곳에 몰려든 많은 이들은 그저 음식 축제를 즐기는 모습이었습니다.

"저기에서 지금 새로 시식하더라고요."
"여기가 선물을 더 많이 줘요."

"이건 무슨 줄이에요?"

데이트하러 온 커플, 유아차를 끌고 온 젊은 부부, 청소년 자녀와 함께 온 중년 부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블루보틀이나 하겐다즈 같은 해외 브랜드 앞에 긴 줄을 서기도, 동네 빵집 앞에서 시식을 기다리기도 하고요.

컬리에서만 파는 브랜드를 모아놓은 전시장으로 관람객들이 들어가고 있습니다.
"입장료를 내고 들어왔는데도 왜 설문조사를 하고 소셜미디어 팔로우를 해야 제품을 준다는 건지 모르겠다"고 불평하면서도, 여러 부스에서 받은 제품들로 가득해진 장바구니를 신나게 들어 보이기도 했죠.

시장 조사를 하러 온 식품 전문가도 많았는데, 다들 '파리 세계 식품 박람회(SIAL 파리)'처럼 다양한 먹거리와 행사가 어우러지는 곳으로 자리를 잡았으면 좋겠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내년에도 컬리 푸드 페스타는 열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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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기자의 숨트뷰]는 살아 숨 쉬는 트렌드를 봅니다. 그 속에 숨은 사람의 탁 트인 이야기를 시원하게 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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