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예나의 서투른 ‘오마주’ 전략…따라하기는 이제 그만!
먼저 올리비아 로드리고라는 가수를 간단히 소개해야겠다. 요즘 제일 잘나가는 팝스타이긴 하지만, 2003년생이라는 어린 나이로 불과 몇년 전에 등장했기에 이름을 모르는 독자들도 많을 듯하다. 필리핀계 혼혈인 그는 타고난 재능을 인정받아 어릴 때부터 연예계에서 활동했다. 속삭이는 발라드부터 내지르는 고음까지 안정적으로 소화하는 보컬 능력과 타고난 곡 해석력으로 빌보드 차트 1위는 물론이고 권위 있는 음악 시상식 ‘그래미’에서 3개 부문을 휩쓸었다. 다른 가수들은 평생 걸려도 얻지 못할 성공과 영예를 20살이 되기도 전에 거머쥔 셈이다. 팝 음악의 미래이며 엠제트(MZ) 세대의 최고 스타라는 칭호가 과하지 않다.
최예나는 티브이(TV) 프로그램 <프로듀스 48>로 탄생한 걸그룹 아이즈원 출신으로 지금은 솔로로 활동하는 가수다. 올리비아 로드리고와는 같이 공연하거나 곡 작업을 한 적도 없다. 평생 접점 없이 활동할 운명이었는데, 최예나가 신곡 제목에 ‘로드리고’라는 이름을 넣으면서 운명이 바뀌었다. 제목은 ‘헤이트 로드리고’. 기획사와 최예나의 말에 따르면, 선망의 대상에게 느끼는 동경과 질투 등 다양한 감정을 귀엽고 솔직하게 나타낸 노래라고 한다. ‘헤이트’ (Hate) 라는 반어적인 표현을 써서 그 사람에 대한 동경을 극대화하려고 했다고.
무슨 의도인지는 알겠는데 완전히 잘못 짚었다. 일단 ‘헤이트’라는 단어 선택이 부적절하다. 원래 말뜻도 부정적인데 최근에 아시아계 인종을 대상으로 한 혐오범죄(Anti-Asian hate crime)가 국제적 이슈가 된 상황에서, 제목만 보면 한국인이 필리핀계를 혐오한다는 오해를 받을 수도 있다. 그냥 요즘은 웬만하면 ‘헤이트’라는 단어는 공식적으로 안 쓰는 게 좋다. 가수가 꼭 영어를 잘하거나 사회문제를 깊이 이해할 필요는 없지만, 기획사라면 이 정도 눈치는 있어야 한다. 외국 가수가 ‘헤이트 비티에스’나 ‘헤이트 손흥민’이라는 노래를 발표했다면 어떨까?
이런 정서적인 불편함보다 더 큰 문제는 저작권 침해다. 문제가 된 노래의 뮤직비디오에서 상표권, 초상권, 저작권을 침해한 사실이 밝혀져 비공개로 전환되었다가 수정을 마친 후 공개된 일도 있었다. 법적으로 문제 될 것들은 수정했다지만, 여전히 노래와 뮤직비디오 곳곳에 올리비아 로드리고의 흔적이 덕지덕지 남아 있다. 표현 그대로 덕지덕지 스티커를 붙이는 식의 콜라주 기법을 이용한 연출도, 팝 펑크 패션과 장르적인 특성까지 너무 겹친다. 최예나가 작년에 발표했던 노래 ‘럭 투 유’도 올리비아 로드리고의 ‘굿 포 유’를 노골적으로 따라 했다는 지적이 있었기에 더욱 아쉽다.
사실 요즘 올리비아 로드리고 덕분에 유행하는 팝 펑크 장르도 선구자가 있었다. 꼭 20년 전, 역시 10대 나이에 최고의 팝스타로 등극했던 애브릴 러빈이 있었다. 그의 대표곡 ‘스케이터 보이’를 오랜만에 다시 들어보니, 어 너무 좋은데? 올리비아 로드리고와 견주어도 전혀 촌스럽지 않다. 뮤직비디오에 가득한, 요즘은 보기 힘든 스트리트 패션도 다시 유행할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멋지다. 진짜 혹은 원조의 힘일 것이다. 올리비아 로드리고의 노래 역시 20년 후에 들어도 끝내줄 것이다. 그러나 그를 따라 만든 아류작 노래들은 쉽게 잊히고 녹슬 것이다.
최예나의 신곡이 여러모로 아쉬운 전략을 택한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활동을 중단할 정도의 잘못은 아니다. 노골적인 디스도 아니고 표절도 아니니까. 가수도 기획사도 서툴렀을 뿐이다. 오히려 제목의 논란보다 더 걱정되는 건 전작보다 더 노골화된 ‘올리비아 로드리고 따라 하기’다. 한참 윗세대 가수라면 오마주로 여길 수도 있겠는데 최예나는 99년생으로 오히려 올리비아 로드리고보다 4살 더 많고 데뷔도 빠르다. 노이즈 마케팅으로 화제라도 모았으니 만족한다면 모르겠지만, 최예나라는 아티스트가 더 오래 더 멋지게 활동하기를 바란다면 따라 하기는 이제 그만해야 한다. 그만의 재능과 매력도 충분해 보이니 기대하고 응원해보겠다.
올리비아 로드리고의 신곡 ‘뱀파이어’가 지난주에 공개되었다. 처음 노래를 듣고 뮤직비디오를 봤을 때 돋았던 소름이 아직도 조금 남아 있는 것 같다. 어떻게 이렇게 좋을 수 있지? 이건 완전히 독창적이잖아? 스무살 나이에 이 정도 실력과 음악성을 보여준 여성 솔로의 계보는 내가 팝을 듣기 시작한 80년대 이후 테일러 스위프트와 아델, 빌리 아일리시 정도가 전부다.
앞으로 올리비아 로드리고가 선사해줄 음악의 향연에 두근두근해진다. 이미 올리비아 로드리고의 신곡은 내가 진행하는 음악 프로그램 큐시트에 올려놨다. 멋진 노래를 청취자들에게 빨리 들려주고 싶어 마음이 급하다. 최예나의 신곡은 틀까 말까? 음, 조금만 더 생각해보는 걸로.
이재익 에스비에스 라디오 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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